“日 군함 우키시마마루, 고의 폭침 증거 발견”

입력 2006.08.23 (07:06) 수정 2006.08.2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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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군함 우키시마마루, 고의 폭침 증거 발견” 광복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던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폭침사건은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켰다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일본군 비밀문서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사.한일관계사 전공 김문길 교수는 일본 천황이 1945년 8월 21일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천황칙어)를 기록한 대해령(大海令) 52호 6항에서 '8월 24일 오후 6시 이후 정찰임무 이외에 항해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 비밀문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연합군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천황으로 하여금 각군 지휘관들에게 대해령을 내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조선인들을 귀국시키지 말라는 천황의 명령을 기록한 것으로 우키시마마루가 고의로 침몰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 해군사령부가 천황의 지시를 무시하고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을 태운 우키시마마루를 출발시킨 것은 계획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일부 조선인들과 일본인 기간병들이 천황의 칙어를 무시하고 배를 출발시키려는 움직임을 수상히 여겨 배에 승선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도주했다면서 이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일본인 생존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우키시마마루는 현해탄을 건너 부산항으로 가는 직선항로를 선택하지 않고 일본 해군기지가 위치해 바다밑에 기뢰가 많이 설치된 마이쓰루만으로 이동한 것도 의도적 폭침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비밀문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 사료조사위원회가 1982년 일본 방위청 문서실에 보관돼있던 대해령을 모아 만든 편찬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우키시마마루 순난자(殉難者) 추도회 요예 가즈오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가즈오 회장이 보관하고 있던 해군사령부의 비밀문서를 보고 귀중하다고 판단해 그의 양해를 구하고 한국으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우키시마마루사건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3천735명이 광복을 맞아 귀국하기 위해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일본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마루를 타고 가던 중 이 배가 교토 근처 마이쓰루만에서 폭발, 침몰하면서 54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 김문길 교수 “우키시마마루 고의 폭침” 부산외국어대 김문길 교수가 1945년 8월 24일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 폭침사건이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킨 사건이라며 그 증거로 일본 천황이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인 대해령 52호 6항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 日 군함 우키시마마루 부산외국어대 김문길 교수가 1945년 8월 24일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 폭침사건이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킨 사건이라며 그 증거로 일본 천황이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인 대해령 52호 6항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우키시마마루.
광복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던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폭침사건은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켰다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일본군 비밀문서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사.한일관계사 전공 김문길 교수는 일본 천황이 1945년 8월 21일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천황칙어)를 기록한 대해령(大海令) 52호 6항에서 '8월 24일 오후 6시 이후 정찰임무 이외에 항해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 비밀문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연합군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천황으로 하여금 각군 지휘관들에게 대해령을 내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조선인들을 귀국시키지 말라는 천황의 명령을 기록한 것으로 우키시마마루가 고의로 침몰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 해군사령부가 천황의 지시를 무시하고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을 태운 우키시마마루를 출발시킨 것은 계획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일부 조선인들과 일본인 기간병들이 천황의 칙어를 무시하고 배를 출발시키려는 움직임을 수상히 여겨 배에 승선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도주했다면서 이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일본인 생존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우키시마마루는 현해탄을 건너 부산항으로 가는 직선항로를 선택하지 않고 일본 해군기지가 위치해 바다밑에 기뢰가 많이 설치된 마이쓰루만으로 이동한 것도 의도적 폭침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비밀문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 사료조사위원회가 1982년 일본 방위청 문서실에 보관돼있던 대해령을 모아 만든 편찬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우키시마마루 순난자(殉難者) 추도회 요예 가즈오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가즈오 회장이 보관하고 있던 해군사령부의 비밀문서를 보고 귀중하다고 판단해 그의 양해를 구하고 한국으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우키시마마루사건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3천735명이 광복을 맞아 귀국하기 위해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일본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마루를 타고 가던 중 이 배가 교토 근처 마이쓰루만에서 폭발, 침몰하면서 54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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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던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폭침사건은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켰다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일본군 비밀문서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사.한일관계사 전공 김문길 교수는 일본 천황이 1945년 8월 21일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천황칙어)를 기록한 대해령(大海令) 52호 6항에서 '8월 24일 오후 6시 이후 정찰임무 이외에 항해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 비밀문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연합군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천황으로 하여금 각군 지휘관들에게 대해령을 내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조선인들을 귀국시키지 말라는 천황의 명령을 기록한 것으로 우키시마마루가 고의로 침몰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 해군사령부가 천황의 지시를 무시하고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을 태운 우키시마마루를 출발시킨 것은 계획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일부 조선인들과 일본인 기간병들이 천황의 칙어를 무시하고 배를 출발시키려는 움직임을 수상히 여겨 배에 승선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도주했다면서 이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일본인 생존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우키시마마루는 현해탄을 건너 부산항으로 가는 직선항로를 선택하지 않고 일본 해군기지가 위치해 바다밑에 기뢰가 많이 설치된 마이쓰루만으로 이동한 것도 의도적 폭침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비밀문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 사료조사위원회가 1982년 일본 방위청 문서실에 보관돼있던 대해령을 모아 만든 편찬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우키시마마루 순난자(殉難者) 추도회 요예 가즈오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가즈오 회장이 보관하고 있던 해군사령부의 비밀문서를 보고 귀중하다고 판단해 그의 양해를 구하고 한국으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우키시마마루사건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3천735명이 광복을 맞아 귀국하기 위해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일본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마루를 타고 가던 중 이 배가 교토 근처 마이쓰루만에서 폭발, 침몰하면서 54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광복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던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폭침사건은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켰다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일본군 비밀문서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사.한일관계사 전공 김문길 교수는 일본 천황이 1945년 8월 21일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천황칙어)를 기록한 대해령(大海令) 52호 6항에서 '8월 24일 오후 6시 이후 정찰임무 이외에 항해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 비밀문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연합군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천황으로 하여금 각군 지휘관들에게 대해령을 내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조선인들을 귀국시키지 말라는 천황의 명령을 기록한 것으로 우키시마마루가 고의로 침몰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 해군사령부가 천황의 지시를 무시하고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을 태운 우키시마마루를 출발시킨 것은 계획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일부 조선인들과 일본인 기간병들이 천황의 칙어를 무시하고 배를 출발시키려는 움직임을 수상히 여겨 배에 승선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도주했다면서 이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일본인 생존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우키시마마루는 현해탄을 건너 부산항으로 가는 직선항로를 선택하지 않고 일본 해군기지가 위치해 바다밑에 기뢰가 많이 설치된 마이쓰루만으로 이동한 것도 의도적 폭침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비밀문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 사료조사위원회가 1982년 일본 방위청 문서실에 보관돼있던 대해령을 모아 만든 편찬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우키시마마루 순난자(殉難者) 추도회 요예 가즈오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가즈오 회장이 보관하고 있던 해군사령부의 비밀문서를 보고 귀중하다고 판단해 그의 양해를 구하고 한국으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우키시마마루사건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3천735명이 광복을 맞아 귀국하기 위해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일본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마루를 타고 가던 중 이 배가 교토 근처 마이쓰루만에서 폭발, 침몰하면서 54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광복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던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폭침사건은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켰다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일본군 비밀문서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사.한일관계사 전공 김문길 교수는 일본 천황이 1945년 8월 21일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천황칙어)를 기록한 대해령(大海令) 52호 6항에서 '8월 24일 오후 6시 이후 정찰임무 이외에 항해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 비밀문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연합군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천황으로 하여금 각군 지휘관들에게 대해령을 내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조선인들을 귀국시키지 말라는 천황의 명령을 기록한 것으로 우키시마마루가 고의로 침몰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 해군사령부가 천황의 지시를 무시하고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을 태운 우키시마마루를 출발시킨 것은 계획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일부 조선인들과 일본인 기간병들이 천황의 칙어를 무시하고 배를 출발시키려는 움직임을 수상히 여겨 배에 승선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도주했다면서 이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일본인 생존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우키시마마루는 현해탄을 건너 부산항으로 가는 직선항로를 선택하지 않고 일본 해군기지가 위치해 바다밑에 기뢰가 많이 설치된 마이쓰루만으로 이동한 것도 의도적 폭침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비밀문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 사료조사위원회가 1982년 일본 방위청 문서실에 보관돼있던 대해령을 모아 만든 편찬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우키시마마루 순난자(殉難者) 추도회 요예 가즈오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가즈오 회장이 보관하고 있던 해군사령부의 비밀문서를 보고 귀중하다고 판단해 그의 양해를 구하고 한국으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우키시마마루사건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3천735명이 광복을 맞아 귀국하기 위해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일본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마루를 타고 가던 중 이 배가 교토 근처 마이쓰루만에서 폭발, 침몰하면서 54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광복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던 조선인 5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군함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폭침사건은 일본 군부가 고의로 일으켰다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일본군 비밀문서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사.한일관계사 전공 김문길 교수는 일본 천황이 1945년 8월 21일 해군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명령서(천황칙어)를 기록한 대해령(大海令) 52호 6항에서 '8월 24일 오후 6시 이후 정찰임무 이외에 항해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 비밀문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연합군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천황으로 하여금 각군 지휘관들에게 대해령을 내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조선인들을 귀국시키지 말라는 천황의 명령을 기록한 것으로 우키시마마루가 고의로 침몰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 해군사령부가 천황의 지시를 무시하고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을 태운 우키시마마루를 출발시킨 것은 계획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일부 조선인들과 일본인 기간병들이 천황의 칙어를 무시하고 배를 출발시키려는 움직임을 수상히 여겨 배에 승선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도주했다면서 이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일본인 생존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우키시마마루는 현해탄을 건너 부산항으로 가는 직선항로를 선택하지 않고 일본 해군기지가 위치해 바다밑에 기뢰가 많이 설치된 마이쓰루만으로 이동한 것도 의도적 폭침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비밀문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대학교수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 사료조사위원회가 1982년 일본 방위청 문서실에 보관돼있던 대해령을 모아 만든 편찬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우키시마마루 순난자(殉難者) 추도회 요예 가즈오 회장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가즈오 회장이 보관하고 있던 해군사령부의 비밀문서를 보고 귀중하다고 판단해 그의 양해를 구하고 한국으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우키시마마루사건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3천735명이 광복을 맞아 귀국하기 위해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일본해군 수송선인 우키시마마루를 타고 가던 중 이 배가 교토 근처 마이쓰루만에서 폭발, 침몰하면서 54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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