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 된 최저임금법…대선 공약 어디로?

입력 2016.07.17 (13:21) 수정 2016.07.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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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7.3% 오른 시간당 6천470원으로 결정했다. 내년에는 노동자 모두가 이 금액을 받게 될까? 현실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최저임금 못 받는 노동자, 공식 통계로 222만 명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 1천9백31만 명 가운데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사람이 222만 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11.5%, 9명 가운데 1명꼴이다. 임시/일용직 근로자, 10대 청소년과 60세 이상 노인층에서 그 비율이 특히 높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산정한 최저임금 미달자 수는 더 많다. 김 위원이 작성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264만 명에 이른다. 노동자 7명 가운데 1명꼴이다. 노동계는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과 가사 사용인 등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을 제외하고 불법적으로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만 따져도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 비율, OECD 최고

다른 나라도 이럴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작성한 '고용전망 2015' 보고서를 보자.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이하 소득 노동자 비율을 14.7%(2013년 기준)로 집계했다. 조사 대상 2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20개국의 최저임금 이하 소득 노동자 비율은 평균 5.5%였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시간제 노동(아르바이트)이 더 발달했지만 최저임금 이하 소득 노동자는 전체의 2%에 불과했다. OECD는 보고서에서 "일본과 한국의 정규직 중위임금(임금 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비슷하지만, 최저임금 이하의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현저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서 법을 못 지킨다?

최저임금 미달자가 많은 데 대해 재계는 "최저임금이 비현실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곤 했다. 과연 그럴까? OECD는 위 보고서에서 조사 대상 20개 회원국의 최저임금이 그 나라 정규직 임금 중간값(중위임금)의 몇%에 해당하는지도 적시했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44.2%로 OECD 평균인 46.7%에 못 미쳤다. 나아가, 프랑스와 포르투갈, 호주 등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50%를 넘는(최저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에서도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았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닐뿐더러, 최저임금 이하 근로자 비율은 최저임금 수준과 상관관계가 없음을 OECD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 안 줘도 못 잡아?... 근로감독 인력 크게 부족

그렇다면 최저임금 미달자가 많은 이유가 대체 뭘까? 노동계는 최저임금법을 지키지 않아도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통해 최저임금 미지급 사례를 적발한 경우는 919건이다. 최저임금 미달자가 2백만 명을 넘는 것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최저임금법 위반뿐 아니라 임금 체불과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등 다양한 감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근로감독관 인력이 크게 부족한 탓이다. 근로감독관 수는 현재 1천547명으로, 정원 1천696명에도 못 미친다. 실무인력을 기준으로 1인당 감독해야 할 사업장이 1천758곳, 근로자 수로는 1만 5천 명에 달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근로감독관 업무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통해 "근로감독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려면 감독관 수를 현재보다 40~45% 가량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잡혀도 겁날 게 없다?... 최근 3년 처벌률 1.7%

설령 적발되더라도 사업주에게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지켜지고 있을까? 최근 3년(2013~2015)간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가 고용노동부에 적발된 사례는 2천 657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최저임금법 28조에 따라 처벌 절차를 밟은 건 덜 준 임금을 지급하라는 '시정조치'를 따르지 않은 47건이었다. 1.7%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벌금형도 대개 1~2백만 원 안팎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았다 해도 적발될 가능성이 낮고, 적발되더라도 그때 가서 밀린 월급을 줘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이러니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근로감독 행정이 취약하고 벌칙 수준이 낮으면 최저임금은 종이호랑이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형사처벌' 없애고 '과태료'... '최저임금법' 개정안 논란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최저임금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법 준수율을 높이겠다며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 징역형 등 벌칙 조항을 삭제하고, 대신 2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즉시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사례가 드물고 재판을 청구해도 벌금액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최저임금법을 위반했을 때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사업주에게 훨씬 위협적인 제재 방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계와 참여연대 등은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면 상습적인 위반 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질 우려가 있다"며 "과태료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로감독을 대폭 강화하고 상습 위반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배상 제도 등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선 공약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은 언제?

사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상습 위반 사업주에 대한 가중처벌'은 박근혜 대통령의대선 공약이었다. 새누리당이 발간한 18대 대선 정책공약집 77페이지를 보면, '새누리의 약속' 이라며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을 명시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아직 지켜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이 추진되지 않자, 지난해 야당 의원들이 '징벌적 배상 제도'를 포함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여당 의원들이 이를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자.



호주 편의점 주인이 벌금 3억 6천만 원을 낸 이유는?

지난달 호주 연방 순회법원은 유학생 등 12명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은 세븐일레븐 편의점 주인에게 벌금 40만 8천 호주달러(3억 6천만 원)를 부과했다. 이 벌금액은 업주가 지급하지 않은 임금 8만 2천 호주달러의 5배 가까이 된다. 이 점주는 브리즈번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은행 계좌로는 최저임금을 준수해 입금한 뒤 일부를 돌려받아 실제로는 최저임금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급여를 지급했다.

판결을 내린 마이클 자렛 판사는 "점주의 태도는 법을 대놓고 무시한 행위"라고 지적하고 "최저 임금에 의존해야 하는 저소득층에게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돈이 상당한 액수"라고 밝혔다. 호주의 최저임금은 정규직 근로자 임금의 절반을 넘는 시간당 17.7 호주 달러, 우리 돈으로 1만 5천3백 원 정도이다. 최저임금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이를 지키려는 정부와 사법당국의 의지 또한 확고하다. 호주를 선진국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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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호랑이’ 된 최저임금법…대선 공약 어디로?
    • 입력 2016-07-17 13:21:32
    • 수정2016-07-17 15:00:43
    취재K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7.3% 오른 시간당 6천470원으로 결정했다. 내년에는 노동자 모두가 이 금액을 받게 될까? 현실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최저임금 못 받는 노동자, 공식 통계로 222만 명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 1천9백31만 명 가운데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사람이 222만 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11.5%, 9명 가운데 1명꼴이다. 임시/일용직 근로자, 10대 청소년과 60세 이상 노인층에서 그 비율이 특히 높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산정한 최저임금 미달자 수는 더 많다. 김 위원이 작성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264만 명에 이른다. 노동자 7명 가운데 1명꼴이다. 노동계는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과 가사 사용인 등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을 제외하고 불법적으로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만 따져도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 비율, OECD 최고

다른 나라도 이럴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작성한 '고용전망 2015' 보고서를 보자.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이하 소득 노동자 비율을 14.7%(2013년 기준)로 집계했다. 조사 대상 2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20개국의 최저임금 이하 소득 노동자 비율은 평균 5.5%였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시간제 노동(아르바이트)이 더 발달했지만 최저임금 이하 소득 노동자는 전체의 2%에 불과했다. OECD는 보고서에서 "일본과 한국의 정규직 중위임금(임금 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비슷하지만, 최저임금 이하의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현저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서 법을 못 지킨다?

최저임금 미달자가 많은 데 대해 재계는 "최저임금이 비현실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곤 했다. 과연 그럴까? OECD는 위 보고서에서 조사 대상 20개 회원국의 최저임금이 그 나라 정규직 임금 중간값(중위임금)의 몇%에 해당하는지도 적시했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44.2%로 OECD 평균인 46.7%에 못 미쳤다. 나아가, 프랑스와 포르투갈, 호주 등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50%를 넘는(최저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에서도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았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닐뿐더러, 최저임금 이하 근로자 비율은 최저임금 수준과 상관관계가 없음을 OECD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 안 줘도 못 잡아?... 근로감독 인력 크게 부족

그렇다면 최저임금 미달자가 많은 이유가 대체 뭘까? 노동계는 최저임금법을 지키지 않아도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통해 최저임금 미지급 사례를 적발한 경우는 919건이다. 최저임금 미달자가 2백만 명을 넘는 것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최저임금법 위반뿐 아니라 임금 체불과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등 다양한 감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근로감독관 인력이 크게 부족한 탓이다. 근로감독관 수는 현재 1천547명으로, 정원 1천696명에도 못 미친다. 실무인력을 기준으로 1인당 감독해야 할 사업장이 1천758곳, 근로자 수로는 1만 5천 명에 달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근로감독관 업무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통해 "근로감독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려면 감독관 수를 현재보다 40~45% 가량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잡혀도 겁날 게 없다?... 최근 3년 처벌률 1.7%

설령 적발되더라도 사업주에게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지켜지고 있을까? 최근 3년(2013~2015)간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가 고용노동부에 적발된 사례는 2천 657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최저임금법 28조에 따라 처벌 절차를 밟은 건 덜 준 임금을 지급하라는 '시정조치'를 따르지 않은 47건이었다. 1.7%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벌금형도 대개 1~2백만 원 안팎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았다 해도 적발될 가능성이 낮고, 적발되더라도 그때 가서 밀린 월급을 줘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이러니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근로감독 행정이 취약하고 벌칙 수준이 낮으면 최저임금은 종이호랑이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형사처벌' 없애고 '과태료'... '최저임금법' 개정안 논란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최저임금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법 준수율을 높이겠다며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 징역형 등 벌칙 조항을 삭제하고, 대신 2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즉시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사례가 드물고 재판을 청구해도 벌금액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최저임금법을 위반했을 때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사업주에게 훨씬 위협적인 제재 방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계와 참여연대 등은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면 상습적인 위반 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질 우려가 있다"며 "과태료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로감독을 대폭 강화하고 상습 위반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배상 제도 등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선 공약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은 언제?

사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상습 위반 사업주에 대한 가중처벌'은 박근혜 대통령의대선 공약이었다. 새누리당이 발간한 18대 대선 정책공약집 77페이지를 보면, '새누리의 약속' 이라며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을 명시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아직 지켜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징벌적 배상 제도' 도입이 추진되지 않자, 지난해 야당 의원들이 '징벌적 배상 제도'를 포함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여당 의원들이 이를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자.



호주 편의점 주인이 벌금 3억 6천만 원을 낸 이유는?

지난달 호주 연방 순회법원은 유학생 등 12명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은 세븐일레븐 편의점 주인에게 벌금 40만 8천 호주달러(3억 6천만 원)를 부과했다. 이 벌금액은 업주가 지급하지 않은 임금 8만 2천 호주달러의 5배 가까이 된다. 이 점주는 브리즈번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은행 계좌로는 최저임금을 준수해 입금한 뒤 일부를 돌려받아 실제로는 최저임금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급여를 지급했다.

판결을 내린 마이클 자렛 판사는 "점주의 태도는 법을 대놓고 무시한 행위"라고 지적하고 "최저 임금에 의존해야 하는 저소득층에게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돈이 상당한 액수"라고 밝혔다. 호주의 최저임금은 정규직 근로자 임금의 절반을 넘는 시간당 17.7 호주 달러, 우리 돈으로 1만 5천3백 원 정도이다. 최저임금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이를 지키려는 정부와 사법당국의 의지 또한 확고하다. 호주를 선진국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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