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美 말레이시아에서 극비 접촉…왜 이 시기에?

입력 2016.10.21 (21:04) 수정 2016.10.2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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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이 말레이시아에서 극비접촉을 벌이는 현장을 KBS 취재진이 단독으로 확인했습니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고강도의 대북제재를 넘어 심지어 대북 선제타격론까지 나오며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북한 대미외교의 실무총책임자와 자타공인 미국 내 최고 북핵 전문가들이 만난 겁니다.

북미 간 비밀접촉은 오늘(21일) 오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습니다. KBS 취재진은 며칠 간의 수소문 끝에 북미 비밀접촉의 현장인 쿠알라룸푸르의 모 호텔 2층 회의실 앞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KBS 취재진의 등장에 한성렬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미국과의 협상 의제를 묻자 적극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북미 간 극비접촉이 열리는 현장에 접근한 KBS 취재진은 미국 대표단의 면면에 깜짝 놀랐습니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북미 제네바 합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와 6자회담 차석대표를 지낸 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비확산센터 소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북한 측에서는 장일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까지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북한의 '대미 라인' 실무총책임자와 전직 미국 북핵 협상 대표였던 갈루치와 디트라니의 참석은 이번 접촉이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번 비밀 접촉의 민감성을 의식한 미국 측 대표들은 KBS 취재진의 질문에 말을 아꼈습니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한 北美 비밀접촉

지난 18일 베이징 공항에서 목격된 한성렬 부상 일행은 극비리에 쿠알라룸푸르로 이동했습니다. 취재진은 며칠 동안 콸라룸푸의 호텔들을 수소문한 끝에 한 부상 일행이 묵는 호텔과 접촉 장소를 겨우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대표단의 면면도 취재진이 오늘 비밀접촉 장소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습니다.

북미 대표단들은 이틀간의 일정으로 회의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내일도 오전 10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만남을 갖고 서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취재진에게 노출된 만큼 접촉 일정에 변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는 상황입니다.

美, "미북 말레이시아 접촉, 정부와 무관"...
"민간채널 대화는 정부 간 대화의 전초전"

미국 정부는 지난 19일 미북 간 말레이시아 극비접촉 여부를 묻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게 "정부와는 무관한 접촉"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캐티나 애덤스 미 국무부 아태담당 대변인은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트랙 2' 미팅은 미국 정부와는 무관하게, 전 세계에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일상적으로 열리는 미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미국 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는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던 지난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측 수석 대표였습니다. 갈루치 전 대표는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독일 베를린 등지에서 여러 차례 북측 인사들과 접촉하며 트랙 2 대표 역할을 해왔습니다.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미 국가정보국 산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센터 소장을 역임한 조지프 디트라니는 올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개발을 멈추려면 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현직 유엔 주재 차석 대사인 북측의 한성렬과 장일훈은 북미 간 연락 창구, 일명 '뉴욕채널'의 주역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차례 유엔 차석 대사를 맡은 한성렬 외무성 부상은 2013년 갈루치를 만난 데 이어 지난 5월 스웨덴 학술회의에서도 미국의 의중을 탐색하는 등 수시로 미국 측과 접촉해 왔습니다.

한성렬 후임으로 부임한 장일훈 유엔 차석 대사는 지난 2013년 한성렬과 함께 유럽에서 미국과 접촉하는 등 북측의 대미 창구 실무자입니다. 민간 채널 대화이지만 북미 정부 간 대화의 전초전이라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왜 이 시기에?...시간 벌려는 북, 부담 덜려는 오바마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은 왜 이 시점에 대화를 재개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구하려면 20년 넘게 벌어졌던 북미 간 대화를 되짚어 봐야 합니다. 1994년 영변 핵 시설 폭격 위기까지 갔던 1차 북핵 위기는 갈루치 전 대표가 주도했던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체제 안전보장과 경수로를 챙기며 시간을 벌었고 몰래 핵 개발을 지속했습니다.

결국, 2002년 10월 부시 행정부 당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으로 고농축우라늄 비밀 개발 의혹이 불거지며 2차 북핵 위기가 터지고 맙니다. 결국 제네바 합의는 깨지고 북한은 다시 6자 회담을 지리하게 끌어가며 다시 시간을 벌었습니다.

6자 회담 진행 중이던 2006년에 북한은 1차 핵실험까지 감행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2007년 2·13합의와 10·3 합의에 따른 검증을 거부하며 6자 회담은 막을 내렸습니다. 위기에 몰리면 대화에 나와 시간을 벌며 핵 개발을 진전시키고 핵 폐기나 검증의 순간이 오면 북한은 판을 뒤집었던 것입니다.

북핵 피로감이 극에 달했던 부시 행정부는 임기 막바지 미봉책으로 영변 냉각탑 폭파 쇼를 벌이고 떠났습니다. 이번 북미 극비 회동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는 분석입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준비, 완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시간벌기용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대선 기간에 조용히 있으면 보상을 해주겠다는 속내를 보여줬다는 관측입니다.

끝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는 이 순간, 북미가 극비 접촉으로 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자칫 한국만 소외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북미 접촉은 내일까지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KBS의 특종으로 당초 일정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 북미 접촉에 대해 미국과 북한은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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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6-10-21 21:11:04
    정치
미국과 북한이 말레이시아에서 극비접촉을 벌이는 현장을 KBS 취재진이 단독으로 확인했습니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고강도의 대북제재를 넘어 심지어 대북 선제타격론까지 나오며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북한 대미외교의 실무총책임자와 자타공인 미국 내 최고 북핵 전문가들이 만난 겁니다.

북미 간 비밀접촉은 오늘(21일) 오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습니다. KBS 취재진은 며칠 간의 수소문 끝에 북미 비밀접촉의 현장인 쿠알라룸푸르의 모 호텔 2층 회의실 앞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KBS 취재진의 등장에 한성렬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미국과의 협상 의제를 묻자 적극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북미 간 극비접촉이 열리는 현장에 접근한 KBS 취재진은 미국 대표단의 면면에 깜짝 놀랐습니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북미 제네바 합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와 6자회담 차석대표를 지낸 북핵 전문가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비확산센터 소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북한 측에서는 장일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까지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북한의 '대미 라인' 실무총책임자와 전직 미국 북핵 협상 대표였던 갈루치와 디트라니의 참석은 이번 접촉이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번 비밀 접촉의 민감성을 의식한 미국 측 대표들은 KBS 취재진의 질문에 말을 아꼈습니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한 北美 비밀접촉

지난 18일 베이징 공항에서 목격된 한성렬 부상 일행은 극비리에 쿠알라룸푸르로 이동했습니다. 취재진은 며칠 동안 콸라룸푸의 호텔들을 수소문한 끝에 한 부상 일행이 묵는 호텔과 접촉 장소를 겨우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대표단의 면면도 취재진이 오늘 비밀접촉 장소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습니다.

북미 대표단들은 이틀간의 일정으로 회의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내일도 오전 10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만남을 갖고 서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취재진에게 노출된 만큼 접촉 일정에 변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는 상황입니다.

美, "미북 말레이시아 접촉, 정부와 무관"...
"민간채널 대화는 정부 간 대화의 전초전"

미국 정부는 지난 19일 미북 간 말레이시아 극비접촉 여부를 묻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게 "정부와는 무관한 접촉"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캐티나 애덤스 미 국무부 아태담당 대변인은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트랙 2' 미팅은 미국 정부와는 무관하게, 전 세계에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일상적으로 열리는 미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미국 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는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던 지난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측 수석 대표였습니다. 갈루치 전 대표는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독일 베를린 등지에서 여러 차례 북측 인사들과 접촉하며 트랙 2 대표 역할을 해왔습니다.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미 국가정보국 산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센터 소장을 역임한 조지프 디트라니는 올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개발을 멈추려면 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현직 유엔 주재 차석 대사인 북측의 한성렬과 장일훈은 북미 간 연락 창구, 일명 '뉴욕채널'의 주역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차례 유엔 차석 대사를 맡은 한성렬 외무성 부상은 2013년 갈루치를 만난 데 이어 지난 5월 스웨덴 학술회의에서도 미국의 의중을 탐색하는 등 수시로 미국 측과 접촉해 왔습니다.

한성렬 후임으로 부임한 장일훈 유엔 차석 대사는 지난 2013년 한성렬과 함께 유럽에서 미국과 접촉하는 등 북측의 대미 창구 실무자입니다. 민간 채널 대화이지만 북미 정부 간 대화의 전초전이라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왜 이 시기에?...시간 벌려는 북, 부담 덜려는 오바마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은 왜 이 시점에 대화를 재개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구하려면 20년 넘게 벌어졌던 북미 간 대화를 되짚어 봐야 합니다. 1994년 영변 핵 시설 폭격 위기까지 갔던 1차 북핵 위기는 갈루치 전 대표가 주도했던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체제 안전보장과 경수로를 챙기며 시간을 벌었고 몰래 핵 개발을 지속했습니다.

결국, 2002년 10월 부시 행정부 당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으로 고농축우라늄 비밀 개발 의혹이 불거지며 2차 북핵 위기가 터지고 맙니다. 결국 제네바 합의는 깨지고 북한은 다시 6자 회담을 지리하게 끌어가며 다시 시간을 벌었습니다.

6자 회담 진행 중이던 2006년에 북한은 1차 핵실험까지 감행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2007년 2·13합의와 10·3 합의에 따른 검증을 거부하며 6자 회담은 막을 내렸습니다. 위기에 몰리면 대화에 나와 시간을 벌며 핵 개발을 진전시키고 핵 폐기나 검증의 순간이 오면 북한은 판을 뒤집었던 것입니다.

북핵 피로감이 극에 달했던 부시 행정부는 임기 막바지 미봉책으로 영변 냉각탑 폭파 쇼를 벌이고 떠났습니다. 이번 북미 극비 회동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는 분석입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준비, 완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시간벌기용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대선 기간에 조용히 있으면 보상을 해주겠다는 속내를 보여줬다는 관측입니다.

끝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는 이 순간, 북미가 극비 접촉으로 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자칫 한국만 소외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북미 접촉은 내일까지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KBS의 특종으로 당초 일정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 북미 접촉에 대해 미국과 북한은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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