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재용 부회장의 ‘병역’을 묻습니다

입력 2016.12.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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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재계 총수 9명이 출석한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화제가 된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습니다. 전체 질문의 2/3가 이 부회장에게 쏟아졌으니 '이재용 청문회'라 불릴만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도 단연 이 부회장에게 쏠렸습니다. 이 부회장의 답변은 물론 눈빛과 미소, 심지어 '립밤'까지 기사가 되고,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서 삼성이 다른 재벌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착한 데다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 때문이지만,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40대 나이에 최대 재벌 총수가 된 이재용 씨 개인에 대한 관심도 한몫을 했을 겁니다.

이렇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스타' 경영인이지만,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베일에 가려진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 남성의 의무인 병역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징병검사 1급→5급…‘허리디스크’로 면제

이재용 부회장(이하 이재용 씨)이 징병 검사를 받은 건 대학에 다니던 1990년 6월입니다. 최고등급인 1급(현역 입영)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씨는 1년 반 뒤인 91년 11월에 재검사를 요청합니다. 이 재검에서 5급(입영 면제) 판정을 받습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6년 KBS 탐사보도팀은 공개된 각종 자료와 취재 내용을 종합해 이 씨의 병적기록표를 재구성해봤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5급 판정 사유는 '수핵탈출증', 이른바 '허리디스크'였습니다.

종합병원 아닌 ‘안세병원’ 진단서…왜?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씨가 당시 병무청에 제출한 진단서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세병원'이라는 중소병원에서 발행된 것이었습니다.

KBS가 재구성한 이재용 씨 병적기록표(일부)KBS가 재구성한 이재용 씨 병적기록표(일부)

1급 판정이 내려질 만큼 건강했던 허리가 무슨 이유로 1년 반 사이에 군 복무를 면제받을 만큼 나빠졌을까요? 내로라하는 종합병원들을 놔두고 왜 중소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었을까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이재용 씨와 삼성그룹 홍보팀에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거듭된 요청에도 응하지 않던 이재용 씨 측은 한 달 반 만에 답변서를 보내왔습니다.


안세병원, 1991년에는 ‘산부인과’ 전문

서울 강남에 있는 안세병원은 2008년 경영 악화로 폐업하기까지 '척추디스크 전문병원'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이재용 씨의 진단명과 맞아떨어집니다.

안세병원 외경 (2006년)안세병원 외경 (2006년)

그런데 취재진은 안세병원을 조사하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재용 씨가 진단서를 뗀 1991년에는 이 병원이 산부인과 전문병원이었다는 것입니다. 1984년 설립된 안세병원은 91년 당시 제법 유명한 산부인과병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척추 병원으로 탈바꿈한 건 1999년이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 들어본 안세병원 측 설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에도 '허리디스크 전문의'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래서 안세병원 측에 당시 기록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안세병원 측은 "척추 질환을 진료하려면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전문의여야 하는데, 인사 기록을 뒤져보니 1991년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한 명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알려왔습니다.

여러 경로로 수소문해 서울 강남에서 개원의로 일하고 있는 그 전문의를 만났습니다.


안세병원, CT 장비 없어…촬영 어디서?

당시 허리디스크 진단서를 떼려면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 판독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취재 결과, 91년 당시 안세병원에는 CT 장비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재용 씨가 진단서를 받는데 필요했던 CT 필름은 안세병원이 아니라 한 의원에서 촬영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폐업한 해당 의원의 원장을 만나 물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안세병원 상황과 관련된 이런 취재 내용이 이재용 씨 측 답변과 다른 데 대해 해명이나 반론을 요청하는 질의서를 이 씨 측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 차례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이 씨도, 삼성도 아무런 답변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의 질문…더 미뤄선 안 될 답변

위 내용은 2006년 11월 KBS <시사기획 쌈: 파워엘리트, 병역을 말하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된 바 있습니다. 당시 1년 가까운 취재를 거쳤지만 마지막 답변을 듣지 못한 채 방송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중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미완의 보도'를 내보냈지만, 이재용 씨는 지난 10년간 아무런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취재진은 그때 못 들었던 이재용 씨의 답변을 받아내 '미완의 보도'를 제대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CT 장비도 없는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서를 뗀' 이유를 묻는 공개 질의서이기도 합니다. 답변을 받으면, 이를 반영해 후속 기사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10년 전 질문을 다시 꺼내 든 건 이재용 씨가 이제 삼성그룹 총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대한민국에서 삼성그룹 총수는 사실상 '경제 대통령'입니다. '경제 대통령'이 국민의 4대 의무를 이행했는지 정도는 국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는 판단에섭니다.

만에 하나, 이재용 씨가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해도 검찰에 불려갈 일은 없을 겁니다. 병역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가 5년이기 때문입니다.

수십억 원으로 삼성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다"는 '이재용 신화'를 병역 문제 따위가 깨뜨리지는 못할 거라는 얘깁니다. 취재진은 다만 기록으로 남을 진실을 원할 뿐입니다.

[연관 기사] ☞ 48억으로 삼성 경영권 “불법은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청문회에서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내가 책임질 것이 있으면 다 지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자 세계적 기업인 삼성의 리더다운 멋진 발언이었습니다.

이 발언이 병역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기대하며, 6년 전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온 국민에게 던진 화두를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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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이재용 부회장의 ‘병역’을 묻습니다
    • 입력 2016-12-13 09:57:12
    취재후·사건후
지난주 재계 총수 9명이 출석한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화제가 된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습니다. 전체 질문의 2/3가 이 부회장에게 쏟아졌으니 '이재용 청문회'라 불릴만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도 단연 이 부회장에게 쏠렸습니다. 이 부회장의 답변은 물론 눈빛과 미소, 심지어 '립밤'까지 기사가 되고,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서 삼성이 다른 재벌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착한 데다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 때문이지만,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40대 나이에 최대 재벌 총수가 된 이재용 씨 개인에 대한 관심도 한몫을 했을 겁니다.

이렇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스타' 경영인이지만,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베일에 가려진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 남성의 의무인 병역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징병검사 1급→5급…‘허리디스크’로 면제

이재용 부회장(이하 이재용 씨)이 징병 검사를 받은 건 대학에 다니던 1990년 6월입니다. 최고등급인 1급(현역 입영)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씨는 1년 반 뒤인 91년 11월에 재검사를 요청합니다. 이 재검에서 5급(입영 면제) 판정을 받습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6년 KBS 탐사보도팀은 공개된 각종 자료와 취재 내용을 종합해 이 씨의 병적기록표를 재구성해봤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5급 판정 사유는 '수핵탈출증', 이른바 '허리디스크'였습니다.

종합병원 아닌 ‘안세병원’ 진단서…왜?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씨가 당시 병무청에 제출한 진단서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세병원'이라는 중소병원에서 발행된 것이었습니다.

KBS가 재구성한 이재용 씨 병적기록표(일부)
1급 판정이 내려질 만큼 건강했던 허리가 무슨 이유로 1년 반 사이에 군 복무를 면제받을 만큼 나빠졌을까요? 내로라하는 종합병원들을 놔두고 왜 중소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었을까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이재용 씨와 삼성그룹 홍보팀에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거듭된 요청에도 응하지 않던 이재용 씨 측은 한 달 반 만에 답변서를 보내왔습니다.


안세병원, 1991년에는 ‘산부인과’ 전문

서울 강남에 있는 안세병원은 2008년 경영 악화로 폐업하기까지 '척추디스크 전문병원'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이재용 씨의 진단명과 맞아떨어집니다.

안세병원 외경 (2006년)
그런데 취재진은 안세병원을 조사하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재용 씨가 진단서를 뗀 1991년에는 이 병원이 산부인과 전문병원이었다는 것입니다. 1984년 설립된 안세병원은 91년 당시 제법 유명한 산부인과병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척추 병원으로 탈바꿈한 건 1999년이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 들어본 안세병원 측 설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에도 '허리디스크 전문의'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래서 안세병원 측에 당시 기록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안세병원 측은 "척추 질환을 진료하려면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전문의여야 하는데, 인사 기록을 뒤져보니 1991년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한 명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알려왔습니다.

여러 경로로 수소문해 서울 강남에서 개원의로 일하고 있는 그 전문의를 만났습니다.


안세병원, CT 장비 없어…촬영 어디서?

당시 허리디스크 진단서를 떼려면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 판독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취재 결과, 91년 당시 안세병원에는 CT 장비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재용 씨가 진단서를 받는데 필요했던 CT 필름은 안세병원이 아니라 한 의원에서 촬영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폐업한 해당 의원의 원장을 만나 물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안세병원 상황과 관련된 이런 취재 내용이 이재용 씨 측 답변과 다른 데 대해 해명이나 반론을 요청하는 질의서를 이 씨 측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 차례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이 씨도, 삼성도 아무런 답변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의 질문…더 미뤄선 안 될 답변

위 내용은 2006년 11월 KBS <시사기획 쌈: 파워엘리트, 병역을 말하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된 바 있습니다. 당시 1년 가까운 취재를 거쳤지만 마지막 답변을 듣지 못한 채 방송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중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미완의 보도'를 내보냈지만, 이재용 씨는 지난 10년간 아무런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취재진은 그때 못 들었던 이재용 씨의 답변을 받아내 '미완의 보도'를 제대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CT 장비도 없는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서를 뗀' 이유를 묻는 공개 질의서이기도 합니다. 답변을 받으면, 이를 반영해 후속 기사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10년 전 질문을 다시 꺼내 든 건 이재용 씨가 이제 삼성그룹 총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대한민국에서 삼성그룹 총수는 사실상 '경제 대통령'입니다. '경제 대통령'이 국민의 4대 의무를 이행했는지 정도는 국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는 판단에섭니다.

만에 하나, 이재용 씨가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해도 검찰에 불려갈 일은 없을 겁니다. 병역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가 5년이기 때문입니다.

수십억 원으로 삼성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다"는 '이재용 신화'를 병역 문제 따위가 깨뜨리지는 못할 거라는 얘깁니다. 취재진은 다만 기록으로 남을 진실을 원할 뿐입니다.

[연관 기사] ☞ 48억으로 삼성 경영권 “불법은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청문회에서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내가 책임질 것이 있으면 다 지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자 세계적 기업인 삼성의 리더다운 멋진 발언이었습니다.

이 발언이 병역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기대하며, 6년 전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온 국민에게 던진 화두를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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