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방치된 재앙’, 나이저 델타가 사라진다

입력 2017.03.11 (22:20) 수정 2017.03.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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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는 나이저 델타 지역은 아프리카 최대의 석유 생산지입니다.

하지만 국제 석유 기업들의 무분별한 시추로 산유국이라는 축복이 이 지역 환경에는 재앙이 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원유 유출로 강과 토양, 지하수까지 오염되면서 주민들은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곳을 김덕훈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나이지리아 남부 리버스 스테이트, 강 곳곳에 거대한 구조물이 서 있습니다.

뻘 바닥에서 원유를 뽑아내는 시추 시설입니다.

시도때도 없이 화염을 뿜던 이 시설을 주민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불렀습니다.

<녹취> 크리스티안 크판데이(나이저 델타 주민) :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불러요. 석유기업 로열 더치 쉘(Shell)이 설치해 놓은 장치죠."

주민들은 이 시설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길 바랐습니다.

시추 시설이 최초로 강에 뿌리를 박은 지 60년이 지난 지금, '크리스마스 트리'는 주민들에게 재앙의 상징이 됐습니다.

오늘처럼 흐린 날, 보도 마을은 유난히 잿빛이 됩니다.

마을을 감싸고 도는 강 때문입니다.

수면이 온통 기름막으로 덮혀 있습니다.

뻘은 자정 능력을 잃고 오염된 기름을 표면으로 밀어냅니다.

새들도 기름을 뒤집어 썼습니다.

2008년과 2009년 몇 차례의 대규모 기름 유출로 강이 오염된 겁니다.

유출된 기름의 양은 50만 배럴, 대한민국 전체 하루 석유 소비량의 1/5입니다.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봤습니다.

강을 덮은 기름막 탓에 물속은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기름 냄새가 진동해 오래 배를 타기도 어렵습니다.

<녹취> 파이어스 팡고(어민) : "고기가 많이 안 잡혀요. 잡은 고기들도 기름 냄새가 나서 팔 수가 없고요."

24년째 고기를 잡고 있는 비툼 씨, 하루 종일 일해도 수확이 없어 아이 넷을 학교에 보내지 못합니다.

<인터뷰> 비툼(어민) : "애들 학교 보낼 돈이 없습니다. 등록금 대신 잡은 고기를 대신 드리면 안 되겠느냐고 학교에 사정도 해봤습니다."

수변 생태계도 초토화 됐습니다.

이곳은 한 때 망그로브 나무로 이뤄진 울창한 숲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름 유출이 본격화 된 이후부터는 이렇게 나무 한 그루 남지 않고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노후화 된 시설을 방치한 채 시추를 계속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특히 송유관의 경우 20년마다 교체나 대대적 점검이 필요하지만, 전체 관로의 73%가 적정 교체 주기를 넘겨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41%는 30년이 넘은 노후 관로로 드러났습니다.

2008년 단 두 번의 기름 유출로 여의도 3.5배 면적의 숲 1,000ha(헥타르)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유출된 원유는 토지에도 스며 들었습니다.

뿌리 작물인 카사바를 뽑아봤습니다.

보통 카사바 크기의 1/3에 불과합니다.

<녹취> 고이 마을 주민 : "이 카사바 보여요? 엄청 작죠?" [오염돼서 상태가 안 좋은 건가요?] "토양이 완전이 망가진 거죠."

지하수 오염도 심각합니다.

한 때 이곳 주민 1,500명에게 물을 공급하던 유일한 식수원은 기름 유출로 폐쇄됐습니다.

<녹취> 에릭 두(고이 마을 촌장) : "여기서는 더 이상 물을 얻을 수 없어요. 다른 마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이웃 마을 물은 안전한가요?] "전혀 아니죠.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요."

유엔 산하 유엔환경계획(UNEP)의 환경 실태 조사 결과 69곳 중 41곳의 지하수가 탄화수소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하수 층에서 최대 8cm의 기름층이 발견되는가 하면, 우물에서는 발암물질인 벤젠이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정한 기준치의 최고 900배까지 검출됐습니다.

나이저 델타 오고니 지역의 복원에만 30년 간 약 1조 2천억 원 가량이 투입돼야 합니다.

유엔환경계획은 쉘 등 국제 석유 기업과 나이지리아 정부에 복구 자금을 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환경 복원은 지지부진합니다.

나이지리아 경기 침체와 부패, 석유 기업의 소극적인 협조 등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인터뷰> 켄테베 에비아리도르('환경권리행동' 활동가) : "환경 복원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을정부에 계속 요구해 왔습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한다지만 한참 먼 일이죠."

지역주민들은 부패한 자국 법정을 불신해 쉘의 본사가 있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각각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뷰> 에릭 두(고이 마을 촌장) : "정부는 쉘의 잘못을 방조하고 있습니다. 쉘이 나이지리아에서 규정을 무시하는 건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자국에서도 이곳에서처럼 법을 무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영국 법원은 최근 재판이 불가하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쉘 나이지리아 법인과 주민 간 갈등은 나이지리아 법원에서 풀 문제라는 겁니다.

<인터뷰> 이고 웰리(쉘 나이지리아 대외협력담당/지난 1월) : "쉘과 나이지리아 정부가 합작 투자한 형태이기 때문에 나이지리아 내의 문제는 나이지리아 법으로 푸는 게 옳다고 봅니다."

분노한 주민들 가운데는 지난해 조직된 '나이저 델타 어벤저스'라는 반군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군은 시추 시설을 파괴하며 석유 기업과 정부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습니다.

반군들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나이지리아 원유 생산량은 하루 220만 배럴에서 180만 배럴까지 줄었습니다.

나이저 델타 지역 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50살에 채 미치지 못합니다.

이 아이들 역시 발암물질이 섞인 지하수를 마시고, 오염된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있습니다.

<인터뷰> 브라이트 크포오베(고이 마을 중학생) : "머리나 배가 아플 때가 있죠.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먹을 수 있는 물이 강물 밖에 없거든요."

환경단체들은 석유 기업들이 착취를 멈추고, 주민들과의 공존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에라바나바리 에라크(환경운동가) : "반군으로부터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굳이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석유 기업 각각이 주민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되는 거예요."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인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업에도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환경오염에 테러, 부패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주민과 석유기업이 갈등을 함께 풀어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나이저 델타에서 김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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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방치된 재앙’, 나이저 델타가 사라진다
    • 입력 2017-03-11 22:22:00
    • 수정2017-03-11 22: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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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는 나이저 델타 지역은 아프리카 최대의 석유 생산지입니다.

하지만 국제 석유 기업들의 무분별한 시추로 산유국이라는 축복이 이 지역 환경에는 재앙이 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원유 유출로 강과 토양, 지하수까지 오염되면서 주민들은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곳을 김덕훈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나이지리아 남부 리버스 스테이트, 강 곳곳에 거대한 구조물이 서 있습니다.

뻘 바닥에서 원유를 뽑아내는 시추 시설입니다.

시도때도 없이 화염을 뿜던 이 시설을 주민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불렀습니다.

<녹취> 크리스티안 크판데이(나이저 델타 주민) :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불러요. 석유기업 로열 더치 쉘(Shell)이 설치해 놓은 장치죠."

주민들은 이 시설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길 바랐습니다.

시추 시설이 최초로 강에 뿌리를 박은 지 60년이 지난 지금, '크리스마스 트리'는 주민들에게 재앙의 상징이 됐습니다.

오늘처럼 흐린 날, 보도 마을은 유난히 잿빛이 됩니다.

마을을 감싸고 도는 강 때문입니다.

수면이 온통 기름막으로 덮혀 있습니다.

뻘은 자정 능력을 잃고 오염된 기름을 표면으로 밀어냅니다.

새들도 기름을 뒤집어 썼습니다.

2008년과 2009년 몇 차례의 대규모 기름 유출로 강이 오염된 겁니다.

유출된 기름의 양은 50만 배럴, 대한민국 전체 하루 석유 소비량의 1/5입니다.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봤습니다.

강을 덮은 기름막 탓에 물속은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기름 냄새가 진동해 오래 배를 타기도 어렵습니다.

<녹취> 파이어스 팡고(어민) : "고기가 많이 안 잡혀요. 잡은 고기들도 기름 냄새가 나서 팔 수가 없고요."

24년째 고기를 잡고 있는 비툼 씨, 하루 종일 일해도 수확이 없어 아이 넷을 학교에 보내지 못합니다.

<인터뷰> 비툼(어민) : "애들 학교 보낼 돈이 없습니다. 등록금 대신 잡은 고기를 대신 드리면 안 되겠느냐고 학교에 사정도 해봤습니다."

수변 생태계도 초토화 됐습니다.

이곳은 한 때 망그로브 나무로 이뤄진 울창한 숲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름 유출이 본격화 된 이후부터는 이렇게 나무 한 그루 남지 않고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노후화 된 시설을 방치한 채 시추를 계속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특히 송유관의 경우 20년마다 교체나 대대적 점검이 필요하지만, 전체 관로의 73%가 적정 교체 주기를 넘겨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41%는 30년이 넘은 노후 관로로 드러났습니다.

2008년 단 두 번의 기름 유출로 여의도 3.5배 면적의 숲 1,000ha(헥타르)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유출된 원유는 토지에도 스며 들었습니다.

뿌리 작물인 카사바를 뽑아봤습니다.

보통 카사바 크기의 1/3에 불과합니다.

<녹취> 고이 마을 주민 : "이 카사바 보여요? 엄청 작죠?" [오염돼서 상태가 안 좋은 건가요?] "토양이 완전이 망가진 거죠."

지하수 오염도 심각합니다.

한 때 이곳 주민 1,500명에게 물을 공급하던 유일한 식수원은 기름 유출로 폐쇄됐습니다.

<녹취> 에릭 두(고이 마을 촌장) : "여기서는 더 이상 물을 얻을 수 없어요. 다른 마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이웃 마을 물은 안전한가요?] "전혀 아니죠.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요."

유엔 산하 유엔환경계획(UNEP)의 환경 실태 조사 결과 69곳 중 41곳의 지하수가 탄화수소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하수 층에서 최대 8cm의 기름층이 발견되는가 하면, 우물에서는 발암물질인 벤젠이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정한 기준치의 최고 900배까지 검출됐습니다.

나이저 델타 오고니 지역의 복원에만 30년 간 약 1조 2천억 원 가량이 투입돼야 합니다.

유엔환경계획은 쉘 등 국제 석유 기업과 나이지리아 정부에 복구 자금을 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환경 복원은 지지부진합니다.

나이지리아 경기 침체와 부패, 석유 기업의 소극적인 협조 등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인터뷰> 켄테베 에비아리도르('환경권리행동' 활동가) : "환경 복원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을정부에 계속 요구해 왔습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한다지만 한참 먼 일이죠."

지역주민들은 부패한 자국 법정을 불신해 쉘의 본사가 있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각각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뷰> 에릭 두(고이 마을 촌장) : "정부는 쉘의 잘못을 방조하고 있습니다. 쉘이 나이지리아에서 규정을 무시하는 건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자국에서도 이곳에서처럼 법을 무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영국 법원은 최근 재판이 불가하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쉘 나이지리아 법인과 주민 간 갈등은 나이지리아 법원에서 풀 문제라는 겁니다.

<인터뷰> 이고 웰리(쉘 나이지리아 대외협력담당/지난 1월) : "쉘과 나이지리아 정부가 합작 투자한 형태이기 때문에 나이지리아 내의 문제는 나이지리아 법으로 푸는 게 옳다고 봅니다."

분노한 주민들 가운데는 지난해 조직된 '나이저 델타 어벤저스'라는 반군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군은 시추 시설을 파괴하며 석유 기업과 정부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습니다.

반군들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나이지리아 원유 생산량은 하루 220만 배럴에서 180만 배럴까지 줄었습니다.

나이저 델타 지역 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50살에 채 미치지 못합니다.

이 아이들 역시 발암물질이 섞인 지하수를 마시고, 오염된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있습니다.

<인터뷰> 브라이트 크포오베(고이 마을 중학생) : "머리나 배가 아플 때가 있죠.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먹을 수 있는 물이 강물 밖에 없거든요."

환경단체들은 석유 기업들이 착취를 멈추고, 주민들과의 공존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에라바나바리 에라크(환경운동가) : "반군으로부터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굳이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석유 기업 각각이 주민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되는 거예요."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인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업에도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환경오염에 테러, 부패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주민과 석유기업이 갈등을 함께 풀어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나이저 델타에서 김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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