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총리 부인 아키에’와 ‘최순실’…‘私人’과 ‘公人’ 사이

입력 2017.03.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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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 스캔들'의 여진이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스캔들 초기 "관련성이 드러나면 의원직을 그만두겠다"고 당차게(?) 말했던 아베 총리가 그 말에 발목 잡혀 연일 야당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사안을 두고 일본에서는 총리의 부인, 즉 아키에 여사의 지위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아키에 여사는 사인(私人)일까? 공인(公人)일까?

아키에 여사, 아베 총리 부인아키에 여사, 아베 총리 부인

총리부인은 '사인(私人)'이라 못박은 일본 정부

지난 1일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아키에 스캔들'과 관련해, "나는 공인이지만, 아내는 사인(私人)이다. 그런 아내를 마치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극히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아키에 여사가 오사카 모리토모 재단에서 설립을 추진 중이던 초등학교의 명예 교장을 맡았었는데, 이 재단이 감정가 100억 원에 가까운 국유지를 90%나 싸게 불하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계속 의혹이 제기되자 '사인(私人)'임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한 것이다.

이후 일본 정부의 아키에 여사에 대한 정의는 사인(私人)이었다. 국회 답변에서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부장관은 "'내각총리 부인'은 총리 배우자로서의 일반적 호칭으로 국가공무원으로 발령을 요하는 것이 아니므로 '공인(公人)'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외국 순방에 나선 아베 총리와 아키에 여사외국 순방에 나선 아베 총리와 아키에 여사

재무성까지 움직인 '사인(私人)' 총리부인 아키에

그러나 아키에 여사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걸까? 이후 속속 드러나는 '공인(公人)' 못지 않은 활동력에 아베 총리의 말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먼저 2년 전 된 모리토모 소속 유치원 강연에 공무원인 부속 직원들을 동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됐다. 총리 순방 동행 등 공적 목적의 활동이 아닌 상황에서 개인 일정에 정부 파견 비서 2명을 데리고 간 사안이다. 여기까지는 그렇고 하자.

하지만 모리토모 재단의 가고이케 이사장이 아키에 여사에게 국유지 불하와 토지 비용 처리 문제를 상의했고, 이후 아키에 여사 비서로부터 재무성의 입장을 팩스로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인과 공인'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가고이케 이사장은 청문회에서 "국유지 불하와 관련해 아키에 여사에게 전화를 했고, 통화가 되지 않아 내용을 남겼다. 이후 아키에 여사의 비서로부터 관련 내용에 대한 팩스를 받았다"고 밝혔다.

국회 답변에 나선 모리토모 재단 가고이케 이사장국회 답변에 나선 모리토모 재단 가고이케 이사장

팩스에는 국유지 불하에 대해 해당 비서가 관련 부서인 재무성에 문의해 받은 답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재무성 담당자는 가고이케 이사장의 민원성 질의에 대해 "해당 연도에는 불가능하지만 다음 해에 '예산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비서는 이런 내용을 아키에 여사에게 보고하겠다는 말까지 팩스에 담았다.

해당 비서는 경제산업성 소속의 공무원으로 총리 부인에게 상주 직원을 파견한 것은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처음 시작된 것이라고 아사히 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 측은 개인 비서가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단독으로 처리한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갈 만한 수준의 답은 아니었다.

아키에 여사의 활동폭이 정부 기관까지 움직이는 범위였음이 드러나면서 야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아키에 여사를 국회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사인과 공인 논란을 보도한 25일 자 ‘아사히’ 신문사인과 공인 논란을 보도한 25일 자 ‘아사히’ 신문

아키에 면담하니 예산 바로 배정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도쿄신문은 지난 23일 비정부기구인 일본국제민간협력회 이사가 "아키에 여사를 면담한 뒤 바로 그날 예산을 얻었다. 8천만 엔(약 8억 원)이다. 이 부부는 핫라인이 엄청나다"라는 말을 강연에서 했다고 보도했다. 강연 영상도 있는 상황.

해당 예산은 케냐에서 실시할 위생개선사업에 관련된 것으로, 협력회가 아케에 여사와의 면담 사실을 인정하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고, 그녀의 힘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국 18세 이상 남녀 943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74%가 '아키에 스캔들' 관련 정부 측 설명에 대해 '납득 못한다'고 답한 것도 결국 '사인(私人)' 아키에 여사가 단순한 총리 부인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구심에 기인한다.

1~2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총리 탓에 정치가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일본이지만, 아베 총리는 60%에 가까운 지지율에 전후 최장(最長) 총리를 노리며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치권과 독립돼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던 일본의 관료계조차 아베 총리와 인사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스가 관방장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 정설. 하지만 꺽일 줄 몰랐던 아베 총리의 인기도 이번 스캔들로 하향세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의 뒤에 숨어 아무런 직책도 없었던 최순실의 국정 개입 사건을 겪은 우리로서는, 잘나가던 아베 총리가 처한 이번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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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총리 부인 아키에’와 ‘최순실’…‘私人’과 ‘公人’ 사이
    • 입력 2017-03-27 18:25:03
    특파원 리포트
'아키에 스캔들'의 여진이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스캔들 초기 "관련성이 드러나면 의원직을 그만두겠다"고 당차게(?) 말했던 아베 총리가 그 말에 발목 잡혀 연일 야당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사안을 두고 일본에서는 총리의 부인, 즉 아키에 여사의 지위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아키에 여사는 사인(私人)일까? 공인(公人)일까?

아키에 여사, 아베 총리 부인
총리부인은 '사인(私人)'이라 못박은 일본 정부

지난 1일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아키에 스캔들'과 관련해, "나는 공인이지만, 아내는 사인(私人)이다. 그런 아내를 마치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극히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아키에 여사가 오사카 모리토모 재단에서 설립을 추진 중이던 초등학교의 명예 교장을 맡았었는데, 이 재단이 감정가 100억 원에 가까운 국유지를 90%나 싸게 불하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계속 의혹이 제기되자 '사인(私人)'임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한 것이다.

이후 일본 정부의 아키에 여사에 대한 정의는 사인(私人)이었다. 국회 답변에서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부장관은 "'내각총리 부인'은 총리 배우자로서의 일반적 호칭으로 국가공무원으로 발령을 요하는 것이 아니므로 '공인(公人)'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외국 순방에 나선 아베 총리와 아키에 여사
재무성까지 움직인 '사인(私人)' 총리부인 아키에

그러나 아키에 여사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걸까? 이후 속속 드러나는 '공인(公人)' 못지 않은 활동력에 아베 총리의 말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먼저 2년 전 된 모리토모 소속 유치원 강연에 공무원인 부속 직원들을 동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됐다. 총리 순방 동행 등 공적 목적의 활동이 아닌 상황에서 개인 일정에 정부 파견 비서 2명을 데리고 간 사안이다. 여기까지는 그렇고 하자.

하지만 모리토모 재단의 가고이케 이사장이 아키에 여사에게 국유지 불하와 토지 비용 처리 문제를 상의했고, 이후 아키에 여사 비서로부터 재무성의 입장을 팩스로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인과 공인'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가고이케 이사장은 청문회에서 "국유지 불하와 관련해 아키에 여사에게 전화를 했고, 통화가 되지 않아 내용을 남겼다. 이후 아키에 여사의 비서로부터 관련 내용에 대한 팩스를 받았다"고 밝혔다.

국회 답변에 나선 모리토모 재단 가고이케 이사장
팩스에는 국유지 불하에 대해 해당 비서가 관련 부서인 재무성에 문의해 받은 답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재무성 담당자는 가고이케 이사장의 민원성 질의에 대해 "해당 연도에는 불가능하지만 다음 해에 '예산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비서는 이런 내용을 아키에 여사에게 보고하겠다는 말까지 팩스에 담았다.

해당 비서는 경제산업성 소속의 공무원으로 총리 부인에게 상주 직원을 파견한 것은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처음 시작된 것이라고 아사히 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 측은 개인 비서가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단독으로 처리한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갈 만한 수준의 답은 아니었다.

아키에 여사의 활동폭이 정부 기관까지 움직이는 범위였음이 드러나면서 야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아키에 여사를 국회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사인과 공인 논란을 보도한 25일 자 ‘아사히’ 신문
아키에 면담하니 예산 바로 배정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도쿄신문은 지난 23일 비정부기구인 일본국제민간협력회 이사가 "아키에 여사를 면담한 뒤 바로 그날 예산을 얻었다. 8천만 엔(약 8억 원)이다. 이 부부는 핫라인이 엄청나다"라는 말을 강연에서 했다고 보도했다. 강연 영상도 있는 상황.

해당 예산은 케냐에서 실시할 위생개선사업에 관련된 것으로, 협력회가 아케에 여사와의 면담 사실을 인정하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고, 그녀의 힘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국 18세 이상 남녀 943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74%가 '아키에 스캔들' 관련 정부 측 설명에 대해 '납득 못한다'고 답한 것도 결국 '사인(私人)' 아키에 여사가 단순한 총리 부인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구심에 기인한다.

1~2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총리 탓에 정치가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일본이지만, 아베 총리는 60%에 가까운 지지율에 전후 최장(最長) 총리를 노리며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치권과 독립돼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던 일본의 관료계조차 아베 총리와 인사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스가 관방장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 정설. 하지만 꺽일 줄 몰랐던 아베 총리의 인기도 이번 스캔들로 하향세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의 뒤에 숨어 아무런 직책도 없었던 최순실의 국정 개입 사건을 겪은 우리로서는, 잘나가던 아베 총리가 처한 이번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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