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12년 전 참사 잊지 않는 일본…제도 개혁도 계속

입력 2017.04.27 (17:43) 수정 2017.04.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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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5일 아침 9시 18분.

일본 효고 현 아마가사키 시의 한 선로에서 통근 열차가 탈선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커브 길을 고속으로 달리던 7량의 열차 가운데, 탈선과 함께 선두 두 량이 선로변 아파트에 부딪히면서 10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시속 70km 구간을 100km가 넘는 속도로 진입하면서 발생한 참사. 안전 대국 일본에 대한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사고이자 인재였다. 그로부터 12년...일본은 당시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고 후 12년…아직도 그날을 되새기는 일본의 언론들

"사고가 일어났던 오전 9시 18분과 같은 시간대에 통과하는 열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사고 당일인 25일 NHK 저녁 메인 뉴스는 이 같은 현장 기자의 멘트와 함께 다시 한 번 그 날의 참사를 되새겼다.

아침 뉴스에서는 당시 생존자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전했고 9시 메인 뉴스에서는 유족의 현장 방문과 추모 분위기, 추모식 등의 소식을 방송했다.

또 대부분의 조간신문은 전날 있었던 사고 추모 행사 사진을 실으면서 오늘이 그날임을 일깨웠다.

추모행사 사진을 실은 일본 조간 신문들추모행사 사진을 실은 일본 조간 신문들

사실 5주년도 아니고, 10주년도 아니고 12주년이 되는 해인 데다, 이미 10년이 지난 사고에 대해 언론들이 대대적인 보도를 하는 모습은 우리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당시 워낙 많은 희생자를 내고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설명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 상처 주지 않으려는 배려

일본의 대형 사건 사고에 대한 꾸준한 후속 보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가까이는 2012년 발생한 일본 주오고속도로 천장 붕괴 사고(9명 사망)에서부터 2011년 3.11 대지진, 그리고 멀리로는 1995년 고베 대지진까지.

일본 언론은 해당일이 되면 현장의 추모 모습이나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그리고 앞으로는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남겨진 이들의 현재를 전하곤 한다.

열차 사고 추도식과 유족의 현장 추도 모습열차 사고 추도식과 유족의 현장 추도 모습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보도를 전하며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해치는 자극적인 보도는 피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 25일 열차 탈선 사고를 전하는 NHK 보도 가운데 당시 사고 현장을 자세히 전하는, 참극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은 사용되지 않았다.

NHK의 보도 장면NHK의 보도 장면

2005년 사고 당시 영상은 헬기에서 찍은 풀샷 1컷을 수 초 정도 보여준 정도로, 근접 촬영을 통해 아비규환이 돼 있거나 열차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근접 샷은 일절 내보내지 않았다. 유가족이 당시 영상을 보며 떠올리게 될 아픔을 헤아린 배려라고 생각된다.

다른 사고에 대한 보도에서도 마찬가지로, 터널 천장 붕괴 사고의 경우도 터널 앞에서 유족이 헌화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면은 TV에 나가도, 당시 끔찍했던 사고 현장을 다시 보여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직죄’ 신설을 위한 노력…아직도 계속되는 제도 개선

UN의 ‘재난 보도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매스미디어는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며 국민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인명을 구하는 것이 가능한 만큼 ‘재난·재해의 근본적인 원인과 사회적 영향을 고찰하고, 재해 리스크 경감과 연관된 보도를 행하는 것’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사건 현상에 대한 보도 이외에 이후의 변화를 위한 보도, 개선을 위한 보도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NHK의 지난 25일 열차탈선 사고 12주년 관련 뉴스는 그런 보도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NHK는 사고 추모 뉴스와 함께 뉴스 시간의 상당 시간을 유가족이 신설을 요구하고 있는 '조직죄'에 대해 다뤘다.

‘조직죄’에 대한 NHK의 보도‘조직죄’에 대한 NHK의 보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조직죄'는 큰 참사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죄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해도 법률상 개인에게 밖에 죄를 물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조직죄'를 신설해 기업에도 징벌적 의미의 처벌을 하자는 제도이다.

탈선 사고에서도 열차 운영 회사인 JR히가시니혼의 당시 사장과 전 사장 3명 등 최고 경영자 4명이 기소됐지만 모두 무죄가 됐다.

물론 당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열차 운행에 관련한 상당한 보완이 이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쇠퇴하기 마련. 때문에 '조직죄'를 만들어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현재형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현재 유족이 주장하고 있는 처벌 수준은 기업의 '자산'에 상당하는 액수를 벌금을 물리는 것으로 안전사고를 일으킬 경우 기업의 존립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만큼 평소 관리에 철저하도록 하는 구조다.

NHK는 '조직죄'에 대해 처벌이 엄한 만큼 기업이 나서 사고의 진상을 은폐하고 벌을 면하려고 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인터뷰로까지 전하며 관련 내용을 자세히 다뤘다.

"12년 전 사고의 교훈이 잊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NHK의 관련 보도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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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7 17: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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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5일 아침 9시 18분. 일본 효고 현 아마가사키 시의 한 선로에서 통근 열차가 탈선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커브 길을 고속으로 달리던 7량의 열차 가운데, 탈선과 함께 선두 두 량이 선로변 아파트에 부딪히면서 10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시속 70km 구간을 100km가 넘는 속도로 진입하면서 발생한 참사. 안전 대국 일본에 대한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사고이자 인재였다. 그로부터 12년...일본은 당시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고 후 12년…아직도 그날을 되새기는 일본의 언론들 "사고가 일어났던 오전 9시 18분과 같은 시간대에 통과하는 열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사고 당일인 25일 NHK 저녁 메인 뉴스는 이 같은 현장 기자의 멘트와 함께 다시 한 번 그 날의 참사를 되새겼다. 아침 뉴스에서는 당시 생존자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전했고 9시 메인 뉴스에서는 유족의 현장 방문과 추모 분위기, 추모식 등의 소식을 방송했다. 또 대부분의 조간신문은 전날 있었던 사고 추모 행사 사진을 실으면서 오늘이 그날임을 일깨웠다. 추모행사 사진을 실은 일본 조간 신문들 사실 5주년도 아니고, 10주년도 아니고 12주년이 되는 해인 데다, 이미 10년이 지난 사고에 대해 언론들이 대대적인 보도를 하는 모습은 우리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당시 워낙 많은 희생자를 내고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설명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 상처 주지 않으려는 배려 일본의 대형 사건 사고에 대한 꾸준한 후속 보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가까이는 2012년 발생한 일본 주오고속도로 천장 붕괴 사고(9명 사망)에서부터 2011년 3.11 대지진, 그리고 멀리로는 1995년 고베 대지진까지. 일본 언론은 해당일이 되면 현장의 추모 모습이나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그리고 앞으로는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남겨진 이들의 현재를 전하곤 한다. 열차 사고 추도식과 유족의 현장 추도 모습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보도를 전하며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해치는 자극적인 보도는 피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 25일 열차 탈선 사고를 전하는 NHK 보도 가운데 당시 사고 현장을 자세히 전하는, 참극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은 사용되지 않았다. NHK의 보도 장면 2005년 사고 당시 영상은 헬기에서 찍은 풀샷 1컷을 수 초 정도 보여준 정도로, 근접 촬영을 통해 아비규환이 돼 있거나 열차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근접 샷은 일절 내보내지 않았다. 유가족이 당시 영상을 보며 떠올리게 될 아픔을 헤아린 배려라고 생각된다. 다른 사고에 대한 보도에서도 마찬가지로, 터널 천장 붕괴 사고의 경우도 터널 앞에서 유족이 헌화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면은 TV에 나가도, 당시 끔찍했던 사고 현장을 다시 보여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직죄’ 신설을 위한 노력…아직도 계속되는 제도 개선 UN의 ‘재난 보도 언론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매스미디어는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며 국민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인명을 구하는 것이 가능한 만큼 ‘재난·재해의 근본적인 원인과 사회적 영향을 고찰하고, 재해 리스크 경감과 연관된 보도를 행하는 것’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사건 현상에 대한 보도 이외에 이후의 변화를 위한 보도, 개선을 위한 보도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NHK의 지난 25일 열차탈선 사고 12주년 관련 뉴스는 그런 보도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NHK는 사고 추모 뉴스와 함께 뉴스 시간의 상당 시간을 유가족이 신설을 요구하고 있는 '조직죄'에 대해 다뤘다. ‘조직죄’에 대한 NHK의 보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조직죄'는 큰 참사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죄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해도 법률상 개인에게 밖에 죄를 물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조직죄'를 신설해 기업에도 징벌적 의미의 처벌을 하자는 제도이다. 탈선 사고에서도 열차 운영 회사인 JR히가시니혼의 당시 사장과 전 사장 3명 등 최고 경영자 4명이 기소됐지만 모두 무죄가 됐다. 물론 당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열차 운행에 관련한 상당한 보완이 이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쇠퇴하기 마련. 때문에 '조직죄'를 만들어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현재형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현재 유족이 주장하고 있는 처벌 수준은 기업의 '자산'에 상당하는 액수를 벌금을 물리는 것으로 안전사고를 일으킬 경우 기업의 존립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만큼 평소 관리에 철저하도록 하는 구조다. NHK는 '조직죄'에 대해 처벌이 엄한 만큼 기업이 나서 사고의 진상을 은폐하고 벌을 면하려고 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인터뷰로까지 전하며 관련 내용을 자세히 다뤘다. "12년 전 사고의 교훈이 잊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NHK의 관련 보도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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