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겉은 ‘축사’ 안은 ‘불법 승마장’…시청은 ‘뒷짐’

입력 2017.04.28 (16:29) 수정 2017.04.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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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5대를 들이받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도로에서 말을 볼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그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가 있다는 건 큰 뉴스였다.

사고를 담당했던 경찰서를 통해 해당 승마장 주소를 받았다. 한 시간이 꼬박 걸려 승마장에 도착하니 승마장 주인이 화가 난 얼굴로 밖에 나와 있었다. 자신의 말이 사고를 내서 저렇게 화가 난 건가 싶어 주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웬걸. 도로를 달리던 말은 자신의 말도 아니고, 언론사와 경찰에서 잘못된 주소를 알려주는 바람에 졸지에 피해자가 됐다는 것이다.




6곳의 승마 연습장 중 불법 승마장이 5곳

그런데 이어진 주인의 호소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도로를 도망친 말이 아마 이 근처의 불법 승마장에 소속된 말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근처에는 여섯 군데가 넘는 승마장이 있는데, 단 한 곳만 빼놓고 대부분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그곳으로 사람들이 말을 타러 방문하기 때문에 관리 사각지대가 된다고 말하고, 말 이송 과정에서 사고도 잦다는 호소를 했다. 당시 도로를 탈주 했던 말은 근처 승마장의 말은 아니라고 이후 확인 됐지만, 승마장 주인이 제기한 의혹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도로에 말이 출몰하는 사건이 많아졌다. 지난 8일에는 경기도 평택의 도로에서 말 한 마리가 15분 넘게 배회했다. 또 지난달에는 전라남도 장성군에서도 승마장에서 사육하는 경주마 두 마리가 승마장을 탈출했다. 말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는 차와 말이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축사'로 등록해 놓고 버젓이 승마장 운영.. 다쳐도 대책 없는 안전 사각지대

승마장 주인의 말을 단서로 서울로 돌아와 취재를 이어갔다. 알고 보니 경기도 시흥과 그 근처는 큰 그린벨트가 조성돼 있어 정식 체육시설이 등록되기 어려웠다. 때문에 논과 밭, 축사 등 농축업만 운영할 수 있어 승마장을 운영하려는 이들은 주로 '축사'로 등록을 한다. 즉, 축사에서 손님을 받으며 돈을 벌고 있던 것이다.

이런 불법 승마장들은 안전이 가장 큰 문제다. 체육시설법에 따르면 승마장은 말을 타다 다쳤을 때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보험을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또한 말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트랙에 80㎝ 이상의 목책을 설치하는 등 안전시설들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차 몰래 방문한 불법 승마장들은 보험이 없었다. 더군다나 사고가 나도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손님이 져야 한다는 강요서에 가까운 서약서를 써야 했다. 안전 시설이 설치되지도 않은 곳도 허다했다.

불법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해가 지기 전 찾아가, 원하는 난이도를 이야기하고 6-7만 원 가량의 돈을 내면 1시간 정도 말을 배울 수 있다. 보험은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주인도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 모자와 조끼를 착용한 후 말을 타고나면 끝. 불법 승마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잘못된 점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다.


승마인들 늘지만.. 불법 승마장 쉬쉬한 시청

더 놀라운 것은 시청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 승마장의 존재를 아느냐는 질문에 시청 관계자는 "근처는 그린벨트라서 합법 승마장이 들어서기 어려운데, 불법 승마장이 속속 생기고 있다면서, 수차례 신고를 받고 바꾸려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시청은 안전하지 않은 승마장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불법 영업으로 인한 부당 이익도 알고 있었지만 해결에는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최근 승마 인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승마장 수는 2014년 299곳, 2015년 308곳, 지난해에는 322곳으로 집계됐다. 말 사육두수도 2014년 2만 5,819마리에서 2015년 2만 6,330마리, 지난해 2만 7,676마리로 3년 새 1,800여 마리가 늘었다. 하지만, 불법 영업승마장의 숫자는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승마에 대한 수요는 점차 늘어가는데, 안전히 즐길 수 있는 곳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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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겉은 ‘축사’ 안은 ‘불법 승마장’…시청은 ‘뒷짐’
    • 입력 2017-04-28 16:29:04
    • 수정2017-04-28 16:32:23
    취재후·사건후

승용차 5대를 들이받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도로에서 말을 볼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그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가 있다는 건 큰 뉴스였다.

사고를 담당했던 경찰서를 통해 해당 승마장 주소를 받았다. 한 시간이 꼬박 걸려 승마장에 도착하니 승마장 주인이 화가 난 얼굴로 밖에 나와 있었다. 자신의 말이 사고를 내서 저렇게 화가 난 건가 싶어 주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웬걸. 도로를 달리던 말은 자신의 말도 아니고, 언론사와 경찰에서 잘못된 주소를 알려주는 바람에 졸지에 피해자가 됐다는 것이다.




6곳의 승마 연습장 중 불법 승마장이 5곳

그런데 이어진 주인의 호소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도로를 도망친 말이 아마 이 근처의 불법 승마장에 소속된 말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근처에는 여섯 군데가 넘는 승마장이 있는데, 단 한 곳만 빼놓고 대부분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그곳으로 사람들이 말을 타러 방문하기 때문에 관리 사각지대가 된다고 말하고, 말 이송 과정에서 사고도 잦다는 호소를 했다. 당시 도로를 탈주 했던 말은 근처 승마장의 말은 아니라고 이후 확인 됐지만, 승마장 주인이 제기한 의혹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도로에 말이 출몰하는 사건이 많아졌다. 지난 8일에는 경기도 평택의 도로에서 말 한 마리가 15분 넘게 배회했다. 또 지난달에는 전라남도 장성군에서도 승마장에서 사육하는 경주마 두 마리가 승마장을 탈출했다. 말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는 차와 말이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축사'로 등록해 놓고 버젓이 승마장 운영.. 다쳐도 대책 없는 안전 사각지대

승마장 주인의 말을 단서로 서울로 돌아와 취재를 이어갔다. 알고 보니 경기도 시흥과 그 근처는 큰 그린벨트가 조성돼 있어 정식 체육시설이 등록되기 어려웠다. 때문에 논과 밭, 축사 등 농축업만 운영할 수 있어 승마장을 운영하려는 이들은 주로 '축사'로 등록을 한다. 즉, 축사에서 손님을 받으며 돈을 벌고 있던 것이다.

이런 불법 승마장들은 안전이 가장 큰 문제다. 체육시설법에 따르면 승마장은 말을 타다 다쳤을 때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보험을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또한 말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트랙에 80㎝ 이상의 목책을 설치하는 등 안전시설들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차 몰래 방문한 불법 승마장들은 보험이 없었다. 더군다나 사고가 나도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손님이 져야 한다는 강요서에 가까운 서약서를 써야 했다. 안전 시설이 설치되지도 않은 곳도 허다했다.

불법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해가 지기 전 찾아가, 원하는 난이도를 이야기하고 6-7만 원 가량의 돈을 내면 1시간 정도 말을 배울 수 있다. 보험은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주인도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 모자와 조끼를 착용한 후 말을 타고나면 끝. 불법 승마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잘못된 점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다.


승마인들 늘지만.. 불법 승마장 쉬쉬한 시청

더 놀라운 것은 시청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 승마장의 존재를 아느냐는 질문에 시청 관계자는 "근처는 그린벨트라서 합법 승마장이 들어서기 어려운데, 불법 승마장이 속속 생기고 있다면서, 수차례 신고를 받고 바꾸려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시청은 안전하지 않은 승마장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불법 영업으로 인한 부당 이익도 알고 있었지만 해결에는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최근 승마 인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승마장 수는 2014년 299곳, 2015년 308곳, 지난해에는 322곳으로 집계됐다. 말 사육두수도 2014년 2만 5,819마리에서 2015년 2만 6,330마리, 지난해 2만 7,676마리로 3년 새 1,800여 마리가 늘었다. 하지만, 불법 영업승마장의 숫자는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승마에 대한 수요는 점차 늘어가는데, 안전히 즐길 수 있는 곳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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