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 지지 vs 반대…아파트 현수막 싸움?

입력 2017.04.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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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메이저리그 야구장 '내셔널스 파크'가 있다. 워싱턴 내셔널스 팀의 홈구장이다. 이 야구장 서쪽으로 큰길 하나 건너편에 아파트가 한 동 자리잡고 있는데, 아파트 고층에서 보면 야구장 관중석이 살짝 보이기도 하는, 야구 팬에게는 목 좋은(?) 아파트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일부 주민은 발코니 난간에 워싱턴 내셔널스 팀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흑인 인권 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주민은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쓴 현수막을 걸어 놓기도 했다. 지난 몇 년 간 발코니 난간에 현수막을 거는 일이 주민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체 주민에게 발코니에 현수막을 걸지 말라는 이메일 통보를보냈다. 현수막 게시 행위가 임대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관리사무소가 제시한 계약서에는 발코니에 1)그릴을 내놓지 말 것 2)부착물을 게시하지 말 것 3)가구를 내놓지 말 것 4)애완동물을 남겨두지 말 것 5)흡연하지 말 것 등 다섯 가지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특히 2)번 항목의 게시 금지 부착물에는 스포츠 팀 응원 현수막을 포함해 모든 부착물이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발코니 게시물에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던 관리사무소가 이런 통보를 해 온 데는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이웃 간에 벌어진 '정치적 반목'이 원인이었다. 몇 달 전부터 아파트의 한 주민이 '트럼프'라고 적힌 현수막을 자신의 발코니 난간에 걸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아랫 집에 사는 주민이 자신의 발코니에 '반대(Nope)'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 건 것이다. 그리고 '반대(Nope)'라는 글자 위에는 위쪽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두 게시물을 합쳐서 보면 '트럼프 반대' 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윗집 주민 반대'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러자 이를 알아차린 윗집 주민이 '트럼프'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리고 자신의 난간에 '힐러리를 대통령으로(Hillary for President)'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걸었다. 아랫 집 난간에는 '반대(Nope)'라는 글자가 선명한 현수막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까 두 집의 게시물을 합쳐서 보면 이번에는 먼저와는 정반대로 '힐러리 반대'라는 의미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아랫집 주민은 이웃 간 '정치적 반목'이 담긴 현수막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다. 그는 현수막을 매개로 이웃 간에 벌어진 정치적 반목 사건에 흥미를 갖고 찾아온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히고, 지난 대선 패배를 보고 나서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반대(Nope)'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 자신이 몇 달 동안 '트럼프' 현수막 아래에서 살아 왔다는 생각에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은 윗집 주민과도 인터뷰를 시도했다.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린 윗집 주민은 아랫집 주민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파트에 사는 동안 아랫집 주민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를 만난다면 기쁠 것이라고 했다.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은 흥미 있다는 반응, 관리사무소 조치가 지나치다는 반응 등 다양했다.


워싱턴은 미국 정치의 중심이고,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도 강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발코니 현수막 논란이 벌어진 아파트는 워싱턴에 있는 사우스 캐피톨 스트리트 상에 위치하고 있다. 워싱턴 남쪽에서 중심부로 들어가는 초입이고 미 국회의사당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그런 곳에 사는 주민들이라서 정치적 색채도 뚜렷한 것일까? 하지만 일부에서는 찬반 시위대 간 충돌도 벌어지는 마당에 이 정도의 '정치적 반목'은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어찌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트럼프 취임 100일 즈음에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소소한 일의 단상이다.

어쨋거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5월부터 발코니 난관에 어떤 게시물도 부착할 수 없게 됐다. 관리사무소가 규정을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경우에 따라 임대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관리사무소의 처사는 지나치다는 일부 전문가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아파트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며 계약에 따른 조치라는 입장으로 물러설 의향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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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트럼프 지지 vs 반대…아파트 현수막 싸움?
    • 입력 2017-04-29 11:01:39
    특파원 리포트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메이저리그 야구장 '내셔널스 파크'가 있다. 워싱턴 내셔널스 팀의 홈구장이다. 이 야구장 서쪽으로 큰길 하나 건너편에 아파트가 한 동 자리잡고 있는데, 아파트 고층에서 보면 야구장 관중석이 살짝 보이기도 하는, 야구 팬에게는 목 좋은(?) 아파트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일부 주민은 발코니 난간에 워싱턴 내셔널스 팀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흑인 인권 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주민은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쓴 현수막을 걸어 놓기도 했다. 지난 몇 년 간 발코니 난간에 현수막을 거는 일이 주민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체 주민에게 발코니에 현수막을 걸지 말라는 이메일 통보를보냈다. 현수막 게시 행위가 임대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관리사무소가 제시한 계약서에는 발코니에 1)그릴을 내놓지 말 것 2)부착물을 게시하지 말 것 3)가구를 내놓지 말 것 4)애완동물을 남겨두지 말 것 5)흡연하지 말 것 등 다섯 가지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특히 2)번 항목의 게시 금지 부착물에는 스포츠 팀 응원 현수막을 포함해 모든 부착물이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발코니 게시물에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던 관리사무소가 이런 통보를 해 온 데는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이웃 간에 벌어진 '정치적 반목'이 원인이었다. 몇 달 전부터 아파트의 한 주민이 '트럼프'라고 적힌 현수막을 자신의 발코니 난간에 걸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아랫 집에 사는 주민이 자신의 발코니에 '반대(Nope)'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 건 것이다. 그리고 '반대(Nope)'라는 글자 위에는 위쪽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두 게시물을 합쳐서 보면 '트럼프 반대' 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윗집 주민 반대'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러자 이를 알아차린 윗집 주민이 '트럼프'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리고 자신의 난간에 '힐러리를 대통령으로(Hillary for President)'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걸었다. 아랫 집 난간에는 '반대(Nope)'라는 글자가 선명한 현수막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까 두 집의 게시물을 합쳐서 보면 이번에는 먼저와는 정반대로 '힐러리 반대'라는 의미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아랫집 주민은 이웃 간 '정치적 반목'이 담긴 현수막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다. 그는 현수막을 매개로 이웃 간에 벌어진 정치적 반목 사건에 흥미를 갖고 찾아온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히고, 지난 대선 패배를 보고 나서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반대(Nope)'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 자신이 몇 달 동안 '트럼프' 현수막 아래에서 살아 왔다는 생각에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은 윗집 주민과도 인터뷰를 시도했다.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린 윗집 주민은 아랫집 주민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파트에 사는 동안 아랫집 주민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를 만난다면 기쁠 것이라고 했다.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은 흥미 있다는 반응, 관리사무소 조치가 지나치다는 반응 등 다양했다.


워싱턴은 미국 정치의 중심이고,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도 강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발코니 현수막 논란이 벌어진 아파트는 워싱턴에 있는 사우스 캐피톨 스트리트 상에 위치하고 있다. 워싱턴 남쪽에서 중심부로 들어가는 초입이고 미 국회의사당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그런 곳에 사는 주민들이라서 정치적 색채도 뚜렷한 것일까? 하지만 일부에서는 찬반 시위대 간 충돌도 벌어지는 마당에 이 정도의 '정치적 반목'은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어찌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트럼프 취임 100일 즈음에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소소한 일의 단상이다.

어쨋거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5월부터 발코니 난관에 어떤 게시물도 부착할 수 없게 됐다. 관리사무소가 규정을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경우에 따라 임대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관리사무소의 처사는 지나치다는 일부 전문가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아파트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며 계약에 따른 조치라는 입장으로 물러설 의향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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