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지리산 올라가는데”…웬 ‘사찰 통행료’?

입력 2017.05.11 (18:25) 수정 2017.05.1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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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지리산 올라가는데”…웬 ‘사찰 통행료’ ?

[취재후] “지리산 올라가는데”…웬 ‘사찰 통행료’ ?

"절에 가지 않아도 돈을 내야"

지리산 성삼재로 향하는 861번 지방도로를 지나다 보면 낯선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직원은 지나는 차를 세우고 탑승 인원을 확인한 뒤 1인당 1,600원의 요금을 요구한다. 인근에 있는 천은사에서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받고 있는 거다.

직원에게 "천은사가 아니라 지리산에 올라간다."라고 말하자, "그래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도로가 천은사 땅을 지나고 있어 사찰에 가지 않아도 돈을 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통행료’인 셈이다.


매표소를 지나 성삼재에서 만난 등산객은 취재진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저도 국립공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유지 보수차원에서 징수하면 당연히 내야죠.(하지만)일개 사찰에서 사유지라는 명목하에 징수하는 건 기분 상당히 나쁘죠. 내고 싶지 않았는데 사유지이고 내야지 통과가 된다길래 어쩔 수 없이 냈는데.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계속 그거 가지고 기분이 나빠서 (친구와) 서로 중얼중얼 구시렁거리고 그랬네요."

10년째 이어져 온 갈등

과거에는 국립공원 입장료와 사찰이 받는 문화재 관람료를 국립공원 입구에서 함께 받았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2007년에 폐지됐지만, 일부 사찰들은 매표소 위치를 여전히 국립공원 입구에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사찰에 가지 않는 등산객들과 10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문화재 관람료 징수사찰은 전국 64곳, 2015년 4월 기준)


지리산에 있는 또 다른 절인 화엄사 역시 사찰에서 1.3km 떨어진 곳에 매표소를 두고 있다. 등산객들은 화엄사 옆 등산로에 갈 때도 1인당 3천 500원의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한다. 매표소와 사찰 사이에 있는 민간 리조트 이용객도 마찬가지다.


사찰 측은 문화재를 관리하는데 비용이 드는 만큼 요금 징수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특히 사찰 문화재는 경내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므로 점(點)이 아닌 면(面)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송까지 간 관람료 논란…결론은?

2010년 일부 등산객들이 천은사로 상대로 입장료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등산객의 손을 들어줬다. 사찰이 소송을 낸 등산객들에게 관람료 1,600원을 돌려주고 위자료 1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문화재 관람료' 대신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하지만 천은사는 이후 ‘문화재 관람료’를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라는 이름으로 바꿔 지금까지도 사실상 ‘통행료’를 받고 있다.


티켓에 적혀 있는 징수 근거인 법령을 한번 찾아봤다.


공원관리청에 해당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요금 징수와 관련해 천은사와 협의를 했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사찰 측이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받고 있는 거다.

갈등이 계속되자 문화재청은 연구 용역을 통해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10개 사찰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 실태 조사 최종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올해 3월까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교계가 협의 없이 문화재청이 실태조사를 벌였다며 반발하자, 지난 3월 6일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조계종을 찾아 사과까지 했다.

문제가 된 보고서를 KBS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했다. 보고서 결론은 상식적이고 간단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해 조계종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불교 조계종 측은 문화재 관람료 징수와 관련한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제가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오늘도 등산객들은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산에 오르고 있다. 협의와 대화 모두 중요하지만 시민의 관점에서 법률에 근거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연관기사] [뉴스광장] 관람료냐 통행료냐…해묵은 분쟁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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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지리산 올라가는데”…웬 ‘사찰 통행료’?
    • 입력 2017-05-11 18:25:09
    • 수정2017-05-11 22:06:52
    취재후·사건후
"절에 가지 않아도 돈을 내야"

지리산 성삼재로 향하는 861번 지방도로를 지나다 보면 낯선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직원은 지나는 차를 세우고 탑승 인원을 확인한 뒤 1인당 1,600원의 요금을 요구한다. 인근에 있는 천은사에서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받고 있는 거다.

직원에게 "천은사가 아니라 지리산에 올라간다."라고 말하자, "그래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도로가 천은사 땅을 지나고 있어 사찰에 가지 않아도 돈을 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통행료’인 셈이다.


매표소를 지나 성삼재에서 만난 등산객은 취재진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저도 국립공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유지 보수차원에서 징수하면 당연히 내야죠.(하지만)일개 사찰에서 사유지라는 명목하에 징수하는 건 기분 상당히 나쁘죠. 내고 싶지 않았는데 사유지이고 내야지 통과가 된다길래 어쩔 수 없이 냈는데.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계속 그거 가지고 기분이 나빠서 (친구와) 서로 중얼중얼 구시렁거리고 그랬네요."

10년째 이어져 온 갈등

과거에는 국립공원 입장료와 사찰이 받는 문화재 관람료를 국립공원 입구에서 함께 받았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2007년에 폐지됐지만, 일부 사찰들은 매표소 위치를 여전히 국립공원 입구에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사찰에 가지 않는 등산객들과 10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문화재 관람료 징수사찰은 전국 64곳, 2015년 4월 기준)


지리산에 있는 또 다른 절인 화엄사 역시 사찰에서 1.3km 떨어진 곳에 매표소를 두고 있다. 등산객들은 화엄사 옆 등산로에 갈 때도 1인당 3천 500원의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한다. 매표소와 사찰 사이에 있는 민간 리조트 이용객도 마찬가지다.


사찰 측은 문화재를 관리하는데 비용이 드는 만큼 요금 징수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특히 사찰 문화재는 경내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므로 점(點)이 아닌 면(面)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송까지 간 관람료 논란…결론은?

2010년 일부 등산객들이 천은사로 상대로 입장료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등산객의 손을 들어줬다. 사찰이 소송을 낸 등산객들에게 관람료 1,600원을 돌려주고 위자료 1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문화재 관람료' 대신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하지만 천은사는 이후 ‘문화재 관람료’를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라는 이름으로 바꿔 지금까지도 사실상 ‘통행료’를 받고 있다.


티켓에 적혀 있는 징수 근거인 법령을 한번 찾아봤다.


공원관리청에 해당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요금 징수와 관련해 천은사와 협의를 했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사찰 측이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받고 있는 거다.

갈등이 계속되자 문화재청은 연구 용역을 통해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10개 사찰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 실태 조사 최종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올해 3월까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교계가 협의 없이 문화재청이 실태조사를 벌였다며 반발하자, 지난 3월 6일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조계종을 찾아 사과까지 했다.

문제가 된 보고서를 KBS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했다. 보고서 결론은 상식적이고 간단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해 조계종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불교 조계종 측은 문화재 관람료 징수와 관련한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제가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오늘도 등산객들은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산에 오르고 있다. 협의와 대화 모두 중요하지만 시민의 관점에서 법률에 근거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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