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美 이지스함의 굴욕…도쿄 앞바다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17.06.21 (14:16) 수정 2017.06.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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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美 이지스함의 굴욕…도쿄 앞바다에서 무슨 일이?

[특파원리포트] 美 이지스함의 굴욕…도쿄 앞바다에서 무슨 일이?

미군의 이지스함이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대파됐다. '신의 방패'라는 첨단 군함이 비무장 민간 상선에 굴욕을 당한 셈이다. '코앞의 대형선박도 못 피하면서 미사일 방어는 어떻게?'라는 상식적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지스의 천적은 컨테이너선'이라는 우스개까지 등장했다.

수도 도쿄의 코앞에서 벌어진 대형 선박사고를 놓고, 일본 언론도 연일 속보와 분석기사를 실었다. 미군 측은 으레 그러하듯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추측성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전투상황도 아닌데 미군의 첨단 이지스함이 대파됐을까?

첨단 군함과 대형 상선의 '희귀한' 충돌사고

지난 10일 새벽 2시 반쯤, 일본 도쿄 인근 시즈오카 현의 이즈 반도 앞바다 20km 지점에서 필리핀 선적 컨테이너 선이 미 해군 선박과 충돌했다는 보고가 일본 해상 보안본부에 접수됐다. 사고 선박은 미군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와 필리핀 선적의 컨테이너선 'ACX크리스털'이었다.

컨테이너선의 뱃머리 좌측이 이지즈함의 우측 앞부분 측면과 강하게 충돌했고, 그 결과, 이지스함의 피해가 훨씬 심각했다. 함교 오른쪽 아래 부분이 크게 파손됐다. 선체 밑바닥 부근에 큰 구멍이 생기면서 승무원 거주 공간과 기계실이 침수됐다.


승무원 7명이 숨지고, 함장 등 3명이 부상당했다. 충돌 부위는 승무원 백여 명이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새벽 시간이어서 인명피해가 컸다. 충돌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선체는 오른쪽으로 위태롭게 기울어졌다. 자력 항해가 어려워 예인선에 끌려 이동했다. 저녁 무렵에야 요코스카 기지에 입항했다. '신의 방패'라는 애칭이 무색하게, 최첨단 이지스함이 작은 예인선에 이끌려 이동하는 초라한 모습이 항공촬영을 통해 생생하게 공개됐다.


이지스함을 작전 불능 상태로 만든 컨테이너선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었다. 뱃머리 부분이 찌그러졌지만, 자력으로 목적지인 도쿄항에 입항했다. 부상자도 없었다. 공교롭게도 컨테이너선의 가장 단단한 뱃머리 부분이 이지스함의 가장 취약한 측면을 들이받은 결과이다.

154미터와 222미터...눈에 안띌수가 없을 텐데

이지스함은 길이 154미터, 8,315톤 규모의 대형선박이다. 약 300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다. 다수의 미사일을 동시에 추격해 요격할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있다. 사고 전날인 16일, 경계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코스카항을 출발했다.


컨테이너 선의 길이는 222.6미터. 2만9,060톤의 초대형 선박이다. 당초 필리핀 선적이 강조됐지만, 실제로는 일본 해운사 니혼 유센이 전세로 운행하고 있다. 승무원은 약 20명. 16일, 아이치 현 나고야 항을 떠나 도쿄로 향하고 있었다.


선박자동식별장치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 사고 시각은 당초 알려진 시각보다 1시간 가량 이른 새벽2시 반쯤이었다. 컨테이너선이 이지스함을 충돌한 뒤 여러번 급선회한 이후에 사고 발생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상 과실'의 가능성...머나먼 진실 규명의 길

일본 해상보안부는 사고 직후부터 업무상 과실 행위에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사고 시점이 깊은 새벽이었지만 악천후 상황은 아니었다.

선박끼리의 충돌사고를 막기 위한 법률에 따라 어느 쪽에 '회피 의무'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해상에서 선박들끼리 근접할 경우, 우측으로 선회해서 회피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정면에서 마주칠 경우에는 서로 우측으로 선회해야 한다. 직각으로 만나게 될 경우에는 상대방을 우측으로 바라보는 배, 바꿔 말해 좌측에서 다가오는 배가 우측으로 선회한다.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는 추월하려는 배가 다른 배를 피해가야 한다.

두 선박의 충돌 지점은 각각 좌측과 우측이다. 충돌 당시 같은 쪽을 향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충돌 회피 규칙을 어겼거나, 또는 양쪽 모두 상대방이 피해갈 것으로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해상보안부와 국가 운수안전위원회가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컨테이너 선박의 손상상태를 확인하고 사고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 측이 이지스함 내부와 운항기록, 승무원 조치 사항 등을 조사할 권한은 없다.

이즈함의 구체적 항적과 내부 시스템 등은 그 자체가 군사기밀이다. 조사는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사기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책임소재를 놓고 진실 공방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군함과 민간 선박 충돌 사고, 끊이지 않아


해당 해역은 도쿄 만을 드나들거나 태평양 연안을 지나는 선박의 길목이다. 도쿄로 향하는 선박만 하루 400척에 이르는 등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과거에도 해난 사고가 여러번 발생해, 일본선장협회는 위험 해역을 자체 설정해 사고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앞서, 미군 함선이 관련된 사고는 여러 차례 있었다. 1981년 가고시마 현 앞바다에서 화물선이 미국 원자력 잠수함과 충돌했다. 화물선이 침몰하면서 선장 등 2명이 숨졌다. 2001년 미국 하와이 앞바다에서 일본 수산고교의 실습선 '에히메마루'호가 미국 원자력 잠수함에 충돌당했다. 배가 침몰하면서 학생 9명이 숨졌다.

일본 자위대 함선과 민간 선박이 추돌하는 사고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88년 가나가와 현에서는 자위대 잠수함과 민간선박이 충돌해 30명이 숨졌다. 2008년 치바 현에서는 이지스함과 어선이 충돌해 2명이 숨졌다. 2009년엔 호위함과 한국 콘테이너 선이 충돌해 호위함 승무원 4명이 다쳤고, 2014년엔 자위대 수송선과 낚싯배가 충돌해 2명이 숨졌다.

첨단 방어장비로 중무장한 군함도 종종 민간 선박을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내거나 당한다. 아무리 우수한 장비를 갖춰도 허점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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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1 14:16:15
    • 수정2017-06-26 09:26:33
    특파원 리포트
미군의 이지스함이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대파됐다. '신의 방패'라는 첨단 군함이 비무장 민간 상선에 굴욕을 당한 셈이다. '코앞의 대형선박도 못 피하면서 미사일 방어는 어떻게?'라는 상식적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지스의 천적은 컨테이너선'이라는 우스개까지 등장했다.

수도 도쿄의 코앞에서 벌어진 대형 선박사고를 놓고, 일본 언론도 연일 속보와 분석기사를 실었다. 미군 측은 으레 그러하듯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추측성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전투상황도 아닌데 미군의 첨단 이지스함이 대파됐을까?

첨단 군함과 대형 상선의 '희귀한' 충돌사고

지난 10일 새벽 2시 반쯤, 일본 도쿄 인근 시즈오카 현의 이즈 반도 앞바다 20km 지점에서 필리핀 선적 컨테이너 선이 미 해군 선박과 충돌했다는 보고가 일본 해상 보안본부에 접수됐다. 사고 선박은 미군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와 필리핀 선적의 컨테이너선 'ACX크리스털'이었다.

컨테이너선의 뱃머리 좌측이 이지즈함의 우측 앞부분 측면과 강하게 충돌했고, 그 결과, 이지스함의 피해가 훨씬 심각했다. 함교 오른쪽 아래 부분이 크게 파손됐다. 선체 밑바닥 부근에 큰 구멍이 생기면서 승무원 거주 공간과 기계실이 침수됐다.


승무원 7명이 숨지고, 함장 등 3명이 부상당했다. 충돌 부위는 승무원 백여 명이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새벽 시간이어서 인명피해가 컸다. 충돌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선체는 오른쪽으로 위태롭게 기울어졌다. 자력 항해가 어려워 예인선에 끌려 이동했다. 저녁 무렵에야 요코스카 기지에 입항했다. '신의 방패'라는 애칭이 무색하게, 최첨단 이지스함이 작은 예인선에 이끌려 이동하는 초라한 모습이 항공촬영을 통해 생생하게 공개됐다.


이지스함을 작전 불능 상태로 만든 컨테이너선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었다. 뱃머리 부분이 찌그러졌지만, 자력으로 목적지인 도쿄항에 입항했다. 부상자도 없었다. 공교롭게도 컨테이너선의 가장 단단한 뱃머리 부분이 이지스함의 가장 취약한 측면을 들이받은 결과이다.

154미터와 222미터...눈에 안띌수가 없을 텐데

이지스함은 길이 154미터, 8,315톤 규모의 대형선박이다. 약 300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다. 다수의 미사일을 동시에 추격해 요격할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있다. 사고 전날인 16일, 경계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코스카항을 출발했다.


컨테이너 선의 길이는 222.6미터. 2만9,060톤의 초대형 선박이다. 당초 필리핀 선적이 강조됐지만, 실제로는 일본 해운사 니혼 유센이 전세로 운행하고 있다. 승무원은 약 20명. 16일, 아이치 현 나고야 항을 떠나 도쿄로 향하고 있었다.


선박자동식별장치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 사고 시각은 당초 알려진 시각보다 1시간 가량 이른 새벽2시 반쯤이었다. 컨테이너선이 이지스함을 충돌한 뒤 여러번 급선회한 이후에 사고 발생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상 과실'의 가능성...머나먼 진실 규명의 길

일본 해상보안부는 사고 직후부터 업무상 과실 행위에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사고 시점이 깊은 새벽이었지만 악천후 상황은 아니었다.

선박끼리의 충돌사고를 막기 위한 법률에 따라 어느 쪽에 '회피 의무'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해상에서 선박들끼리 근접할 경우, 우측으로 선회해서 회피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정면에서 마주칠 경우에는 서로 우측으로 선회해야 한다. 직각으로 만나게 될 경우에는 상대방을 우측으로 바라보는 배, 바꿔 말해 좌측에서 다가오는 배가 우측으로 선회한다.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는 추월하려는 배가 다른 배를 피해가야 한다.

두 선박의 충돌 지점은 각각 좌측과 우측이다. 충돌 당시 같은 쪽을 향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충돌 회피 규칙을 어겼거나, 또는 양쪽 모두 상대방이 피해갈 것으로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해상보안부와 국가 운수안전위원회가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컨테이너 선박의 손상상태를 확인하고 사고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 측이 이지스함 내부와 운항기록, 승무원 조치 사항 등을 조사할 권한은 없다.

이즈함의 구체적 항적과 내부 시스템 등은 그 자체가 군사기밀이다. 조사는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사기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책임소재를 놓고 진실 공방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군함과 민간 선박 충돌 사고, 끊이지 않아


해당 해역은 도쿄 만을 드나들거나 태평양 연안을 지나는 선박의 길목이다. 도쿄로 향하는 선박만 하루 400척에 이르는 등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과거에도 해난 사고가 여러번 발생해, 일본선장협회는 위험 해역을 자체 설정해 사고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앞서, 미군 함선이 관련된 사고는 여러 차례 있었다. 1981년 가고시마 현 앞바다에서 화물선이 미국 원자력 잠수함과 충돌했다. 화물선이 침몰하면서 선장 등 2명이 숨졌다. 2001년 미국 하와이 앞바다에서 일본 수산고교의 실습선 '에히메마루'호가 미국 원자력 잠수함에 충돌당했다. 배가 침몰하면서 학생 9명이 숨졌다.

일본 자위대 함선과 민간 선박이 추돌하는 사고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88년 가나가와 현에서는 자위대 잠수함과 민간선박이 충돌해 30명이 숨졌다. 2008년 치바 현에서는 이지스함과 어선이 충돌해 2명이 숨졌다. 2009년엔 호위함과 한국 콘테이너 선이 충돌해 호위함 승무원 4명이 다쳤고, 2014년엔 자위대 수송선과 낚싯배가 충돌해 2명이 숨졌다.

첨단 방어장비로 중무장한 군함도 종종 민간 선박을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내거나 당한다. 아무리 우수한 장비를 갖춰도 허점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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