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 태조 왕건이 29번 결혼한 이유

입력 2017.07.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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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은 제1비 신혜왕후 유 씨를 시작으로 평생 무려 29명의 부인을 맞이했습니다. 고려의 왕들은 모두 왕건처럼 부인을 많이 얻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왕건을 제외한 다른 고려 왕들의 평균 부인 수는 3.2명에 불과했는데요. 그렇다면 왕건이 29명이나 되는 여인들과 혼인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왕건은 고려 건국 이후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후백제와 전쟁을 벌이고 신라를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이때 왕건이 가장 필요로 한 것은 각 지방에서 독립 세력으로 존재하던 호족들의 지원이었습니다. 따라서 각 지방의 유력 호족과 가장 강력한 동맹을 맺는 방법이 혼인이었습니다.

왕과의 혼인은 곧 정치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호족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딸을 태조 왕건과 혼인시킨다는 것은 훗날 최고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왕건의 혼인이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일종의 전략이었다는 사실은 혼인 시기를 통해서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는 무장의 딸과 혼인했다면 후삼국 통일 후에는 신라 왕족의 딸과 혼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왕건 부인들의 출신지는 전국에 걸쳐서 나타나게 됩니다. 황해도 9명, 경기도 4명, 강원도 3명, 충청도 3명, 경상도 6명, 전라도 2명, 지역 미상 2명으로 한 지역에 부인이 여러 명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경기도 광주의 광주원부인 왕 씨와 소광주원부인 왕 씨, 동주(지금의 황해도 서흥군)의 소서원부인 김 씨와 대서원부인 김 씨는 놀랍게도 친자매였는데요. 이 경우에는 이들의 아버지가 두 딸을 모두 왕건과 혼인시키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건이 29명의 부인과 혼인해서 낳은 자녀들은 왕자가 25명, 공주가 9명으로 총 34명이었습니다. 29명의 부인 중 왕건의 자녀를 가장 많이 낳은 왕비는 제3 비였던 신명순성왕후 유 씨로 총 5남 2녀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왕건이 이 왕비와 특별히 사랑이 깊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이 왕비의 출신지가 전략상의 요충지인 충주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태조 왕건은 29번의 혼인을 통해 호족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나라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이 29명의 부인이 있었기에 고려의 역사는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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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은 제1비 신혜왕후 유 씨를 시작으로 평생 무려 29명의 부인을 맞이했습니다. 고려의 왕들은 모두 왕건처럼 부인을 많이 얻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왕건을 제외한 다른 고려 왕들의 평균 부인 수는 3.2명에 불과했는데요. 그렇다면 왕건이 29명이나 되는 여인들과 혼인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왕건은 고려 건국 이후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후백제와 전쟁을 벌이고 신라를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이때 왕건이 가장 필요로 한 것은 각 지방에서 독립 세력으로 존재하던 호족들의 지원이었습니다. 따라서 각 지방의 유력 호족과 가장 강력한 동맹을 맺는 방법이 혼인이었습니다.

왕과의 혼인은 곧 정치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호족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딸을 태조 왕건과 혼인시킨다는 것은 훗날 최고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왕건의 혼인이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일종의 전략이었다는 사실은 혼인 시기를 통해서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는 무장의 딸과 혼인했다면 후삼국 통일 후에는 신라 왕족의 딸과 혼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왕건 부인들의 출신지는 전국에 걸쳐서 나타나게 됩니다. 황해도 9명, 경기도 4명, 강원도 3명, 충청도 3명, 경상도 6명, 전라도 2명, 지역 미상 2명으로 한 지역에 부인이 여러 명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경기도 광주의 광주원부인 왕 씨와 소광주원부인 왕 씨, 동주(지금의 황해도 서흥군)의 소서원부인 김 씨와 대서원부인 김 씨는 놀랍게도 친자매였는데요. 이 경우에는 이들의 아버지가 두 딸을 모두 왕건과 혼인시키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건이 29명의 부인과 혼인해서 낳은 자녀들은 왕자가 25명, 공주가 9명으로 총 34명이었습니다. 29명의 부인 중 왕건의 자녀를 가장 많이 낳은 왕비는 제3 비였던 신명순성왕후 유 씨로 총 5남 2녀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왕건이 이 왕비와 특별히 사랑이 깊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이 왕비의 출신지가 전략상의 요충지인 충주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태조 왕건은 29번의 혼인을 통해 호족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나라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이 29명의 부인이 있었기에 고려의 역사는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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