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올림픽 함께 보려면 결혼해라?”…日도쿄 결혼 광고 ‘물의’

입력 2018.02.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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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올림픽·패럴림픽, 당신은 누구와 보겠습니까?"]

지난 2월초 도쿄도가 유튜브와 자체 동영상 사이트 '도쿄 동영상'에 결혼 독려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 주제는 '당신은 누구와 함께 보겠습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결혼을 응원하기 위한 동영상을 도쿄도에서 처음으로 제작했다. 꼭 감상해주기 바란다'. 상세한 설명까지 붙였다.

흑백과 컬러를 버무린 1분 가량의 동영상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다.


연인 관계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흑백 화면으로 묘사한 과거의 모습에는 젊은 시절 조부모가 등장한다. 조부는 "올림픽·패럴림픽을 함께 보자"면서 청혼한다.


젊은 남녀는 현재로 돌아오자마자 "우리도..."라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자작 동영상처럼 일부러 어수룩하게 만들어 친근감과 설득력, 화제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을까? 언뜻 봐도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동영상 제작에 약 3천만 엔(약 3억 원)이 들어갔다.

조회수도 오르고 비난도 커지고...'왠 참견?' '세금낭비...'

작품의 완성도는 둘째로 치고, 문제의 동영상은 다음과 같은 상식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올림픽을 혼자 보면 비정상인가?', '올림픽을 함께 볼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까지 생각하라고?'


인터넷에 공개한 지 약 3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 8만 6천 회를 넘어섰다. 조회수가 올라가면서 널리 회자되는 단계를 넘어서 논란과 비난이 커지는 양상이다.

도쿄신문은 '동영상 악평'이라는 기사를 통해, 도쿄도의 동영상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다고 보도했다. '3천만 엔의 혈세를 투입했지만 평가가 좋지 않다', '결혼 강요', '혼자서 관전하면 나쁜 것?'등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결혼을 기피하는 본질적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저임금 노동, 비정규직, 어린이 돌봄시설 부족 등 결혼을 가로막는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초솔로사회' 일본..."2035년 인구 절반은 독신"

이른바 '생애 미혼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통상 50세를 기준으로 한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일본 후생노동성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조살 결과를 보면,2015년 기준 일본의 '생애 미혼율'은 남성 23.4%, 여성 14.1%이다.

도쿄에 살고 있는 남성의 경우 26.06%로 전국에서 세번째로 높다. 도쿄 여성의 경우 19.2%로 가장 높다. 도쿄도가 이처럼 무리수를 강행한 배경을 엿볼 수 있다.

2035년 쯤에는 일본 인구의 절반 가량이 (자발적·비자발적)독신으로 지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후생노동성 산하 연구소의 또다른 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18세∼34세 사이 '비혼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는 응답이 남성 86%, 여성 89%로 나타났다. 또 결혼의 장애물로 결혼자금을 꼽은 응답이 남녀 모두 40%를 웃돌았다.


저임금 비정규직이 늘고, 임금수준과 고용안정을 아우른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들이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들 사이에서도 결혼율을 끓어올리는 데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국가가 염려해주는 차원이 아니다. 배경에는 생산인구 감소와 성장 동력 약화라는 현실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인구절벽'이라는 말은 이미 시급한 정책 화두가 됐다.

어려운 화두...'결혼은 사회적 의무인가?'

일본사회에 급격히 진행되는 '비혼' 흐름은 '초솔로사회'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일본의 홍보전문가 '아라카와 가즈히사'의 2017년 저서를 통해 널리 확산된 개념이다. 단, 결혼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가능한 삶의 양식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정부와 전통적인 개념의 경제전문가들은 생산인구 감소가 가져올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결혼을 독려하고 있다. 마음놓고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줘야 한다고 훈수를 놓는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결혼은 사회적 의무라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이제는 '미혼' 대신 '비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아직 결혼 하지 않음(혹은 '결혼 못함')'이 아니라 '결혼을 선택하지 않음'이 옳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비혼의 삶을 비정상적인 삶인 것처럼 희화화하면서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그릇된 사고방식이라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결혼을 원하지만 여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올림픽 함께 구경할 사람'으로 '배우자'를 찾으라는 발상은 '결혼은 의무'라는 고정관념 못지 않게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다.

결혼이 스포츠 관람처럼 결정만 하면 될 일인가? 도쿄도의 결혼 독려광고가 물의를 일으킨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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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올림픽 함께 보려면 결혼해라?”…日도쿄 결혼 광고 ‘물의’
    • 입력 2018-02-21 19:03:04
    특파원 리포트
["2020 올림픽·패럴림픽, 당신은 누구와 보겠습니까?"]

지난 2월초 도쿄도가 유튜브와 자체 동영상 사이트 '도쿄 동영상'에 결혼 독려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 주제는 '당신은 누구와 함께 보겠습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결혼을 응원하기 위한 동영상을 도쿄도에서 처음으로 제작했다. 꼭 감상해주기 바란다'. 상세한 설명까지 붙였다.

흑백과 컬러를 버무린 1분 가량의 동영상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다.


연인 관계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흑백 화면으로 묘사한 과거의 모습에는 젊은 시절 조부모가 등장한다. 조부는 "올림픽·패럴림픽을 함께 보자"면서 청혼한다.


젊은 남녀는 현재로 돌아오자마자 "우리도..."라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자작 동영상처럼 일부러 어수룩하게 만들어 친근감과 설득력, 화제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을까? 언뜻 봐도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동영상 제작에 약 3천만 엔(약 3억 원)이 들어갔다.

조회수도 오르고 비난도 커지고...'왠 참견?' '세금낭비...'

작품의 완성도는 둘째로 치고, 문제의 동영상은 다음과 같은 상식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올림픽을 혼자 보면 비정상인가?', '올림픽을 함께 볼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까지 생각하라고?'


인터넷에 공개한 지 약 3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 8만 6천 회를 넘어섰다. 조회수가 올라가면서 널리 회자되는 단계를 넘어서 논란과 비난이 커지는 양상이다.

도쿄신문은 '동영상 악평'이라는 기사를 통해, 도쿄도의 동영상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다고 보도했다. '3천만 엔의 혈세를 투입했지만 평가가 좋지 않다', '결혼 강요', '혼자서 관전하면 나쁜 것?'등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결혼을 기피하는 본질적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저임금 노동, 비정규직, 어린이 돌봄시설 부족 등 결혼을 가로막는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초솔로사회' 일본..."2035년 인구 절반은 독신"

이른바 '생애 미혼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통상 50세를 기준으로 한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일본 후생노동성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조살 결과를 보면,2015년 기준 일본의 '생애 미혼율'은 남성 23.4%, 여성 14.1%이다.

도쿄에 살고 있는 남성의 경우 26.06%로 전국에서 세번째로 높다. 도쿄 여성의 경우 19.2%로 가장 높다. 도쿄도가 이처럼 무리수를 강행한 배경을 엿볼 수 있다.

2035년 쯤에는 일본 인구의 절반 가량이 (자발적·비자발적)독신으로 지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후생노동성 산하 연구소의 또다른 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18세∼34세 사이 '비혼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는 응답이 남성 86%, 여성 89%로 나타났다. 또 결혼의 장애물로 결혼자금을 꼽은 응답이 남녀 모두 40%를 웃돌았다.


저임금 비정규직이 늘고, 임금수준과 고용안정을 아우른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들이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들 사이에서도 결혼율을 끓어올리는 데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국가가 염려해주는 차원이 아니다. 배경에는 생산인구 감소와 성장 동력 약화라는 현실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인구절벽'이라는 말은 이미 시급한 정책 화두가 됐다.

어려운 화두...'결혼은 사회적 의무인가?'

일본사회에 급격히 진행되는 '비혼' 흐름은 '초솔로사회'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일본의 홍보전문가 '아라카와 가즈히사'의 2017년 저서를 통해 널리 확산된 개념이다. 단, 결혼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가능한 삶의 양식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정부와 전통적인 개념의 경제전문가들은 생산인구 감소가 가져올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결혼을 독려하고 있다. 마음놓고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줘야 한다고 훈수를 놓는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결혼은 사회적 의무라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이제는 '미혼' 대신 '비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아직 결혼 하지 않음(혹은 '결혼 못함')'이 아니라 '결혼을 선택하지 않음'이 옳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비혼의 삶을 비정상적인 삶인 것처럼 희화화하면서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그릇된 사고방식이라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결혼을 원하지만 여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올림픽 함께 구경할 사람'으로 '배우자'를 찾으라는 발상은 '결혼은 의무'라는 고정관념 못지 않게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다.

결혼이 스포츠 관람처럼 결정만 하면 될 일인가? 도쿄도의 결혼 독려광고가 물의를 일으킨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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