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술 마시고 응급시술해도 뭐…국립대병원장의 ‘클라스’

입력 2018.04.20 (13:17) 수정 2018.04.20 (18:5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취재후] 응급실서 음주시술해도 뭐…국립대병원장의 ‘클라스’

[취재후] 응급실서 음주시술해도 뭐…국립대병원장의 ‘클라스’

'음주시술'...그리고 '음주운전'

"얼마나 음주를 했는지도...사실 음주운전도 뭐 그 어느 정도 수치 이상이 돼야지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설마 ??..'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의사가, 그것도 국립대학병원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병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질문이 무엇이었냐고요? 간호사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급성 심근경색환자 시술보조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시술을 했던 집도의가 시술이 끝난 뒤 현장에서 사실을 확인했고, 해당 간호사가 이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녹음 파일이 제 손에 있었습니다. 대화 내용을 옮겨봅니다.

"○○○ 선생님, 몇 잔 마셨나. 얼굴 빨개졌는데.." "세 잔…."
"△△△ 선생님도 마시고? 몇 잔? 한 잔?"
"네. 저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정말 석 잔이고, 한 잔뿐이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어쨌든 환자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집도의는 먼저 시술을 마쳤고, 시술이 끝난 직후에 간호사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집도의와 간호사 간에 오간 말투와 웃음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반성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2016년 12월 8일 밤, 강원대학병원 응급시술실에서 벌어진 이 일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에 병원장의 대답은 그랬습니다.

"음주운전도 뭐 그 어느 정도 수치 이상이 돼야지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정부 지정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전문의료진 365일 24시간 대기

이 병원은 지난 2008년 보건복지부가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지정했습니다. 심근경색, 뇌경색처럼 반드시 골든타임 안에 응급 시술이 필요한 급성 뇌혈관 질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섭니다. 후송과 동시에 시술할 수 있도록 365일 24시간 전문의료진들이 대기합니다. 전국에 권역별로 11곳에 이런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있습니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후송되면 대기하고 있던 전문의 1명과 간호사 2명, 방사선사 1명이 시술을 합니다.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혈관이 갑자기 막혀서 심장으로 피를 보내지 못하면 심장에 마비가 오면서 사망 위험이 극도로 높아지는데 이게 급성 심근경색입니다. 예전엔 가슴을 열고 수술을 했지만, 요즘은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팔다리 혈관을 통해 직접 기구를 넣어서 막힌 혈관을 찾아 뚫는 시술을 합니다. 스텐트 삽입술이라고 합니다. 이 스텐트를 넣어서 혈관을 넓혀주면 피가 돌면서 환자가 금방 좋아지는 겁니다. 하지만 가느다란 혈관을 기구로 뚫는 시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정확성이 필요합니다. 시술하는 의사는 물론 보조하는 간호사들은 환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생명줄을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술 먹고 급성심근경색 환자 시술(?)

이 시술의 어려움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생명을 다루는 의사나 간호사가 음주 상태에서 수술이나 시술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윤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당연합니다. 이 병원의 당직근무지침에도 '당직근무 중 음주행위 및 오락을 금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병원의 몇몇 의사들은 문제가 된 1년 4개월 전 그날 말고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저녁이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근무를 하는 것을 번번이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365일 24시간 응급체계를 유지한다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에서 근무자가 음주 중에 또는 음주 상태에서 응급환자가 후송되면 그다음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음주시술' 보고 받은 병원장... 개선 요구 묵살

음주 시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녹음 파일로 고스란히 남은 그 날은 물론 음주 근무 관행에 대해 권역센터 책임자들은 병원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진에 보낸 답변서에서 병원장은 해당 간호사들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허위고백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야 내부 감사위원회를 열어 조사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간호사의 웃음소리까지 묻어있는 녹음파일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시 음주에 대한 병원장의 주의사항도 전달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권역센터 해당 파트의 지휘 선상에 있는 책임자들인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병원 측은 문제를 제기한 책임자를 지난 17일 보직에서 해임했습니다. 음주 근무를 막으려고 근무자의 일정과 위치를 보고하도록 한 것이 부당한 업무지시와 인권침해라는 겁니다. 이를 요청한 직원 4명 가운데에는 음주 시술을 한 간호사 두 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음주 시술의 진상은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이 문제를 개선하려고 한 의사를 보직 해임 한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의사가 간호사들이게 컵라면과 선풍기 심부름을 시켰다며 병원노조가 '갑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을 백번 양보해도 그렇습니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도 뭐 그 어느 정도 수치 이상이 돼야지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병원장의 이 발언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술 마시고 응급시술해도 뭐…국립대병원장의 ‘클라스’
    • 입력 2018-04-20 13:17:22
    • 수정2018-04-20 18:59:28
    취재후·사건후
'음주시술'...그리고 '음주운전'

"얼마나 음주를 했는지도...사실 음주운전도 뭐 그 어느 정도 수치 이상이 돼야지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설마 ??..'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의사가, 그것도 국립대학병원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병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질문이 무엇이었냐고요? 간호사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급성 심근경색환자 시술보조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시술을 했던 집도의가 시술이 끝난 뒤 현장에서 사실을 확인했고, 해당 간호사가 이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녹음 파일이 제 손에 있었습니다. 대화 내용을 옮겨봅니다.

"○○○ 선생님, 몇 잔 마셨나. 얼굴 빨개졌는데.." "세 잔…."
"△△△ 선생님도 마시고? 몇 잔? 한 잔?"
"네. 저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정말 석 잔이고, 한 잔뿐이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어쨌든 환자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집도의는 먼저 시술을 마쳤고, 시술이 끝난 직후에 간호사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집도의와 간호사 간에 오간 말투와 웃음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반성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2016년 12월 8일 밤, 강원대학병원 응급시술실에서 벌어진 이 일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에 병원장의 대답은 그랬습니다.

"음주운전도 뭐 그 어느 정도 수치 이상이 돼야지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정부 지정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전문의료진 365일 24시간 대기

이 병원은 지난 2008년 보건복지부가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지정했습니다. 심근경색, 뇌경색처럼 반드시 골든타임 안에 응급 시술이 필요한 급성 뇌혈관 질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섭니다. 후송과 동시에 시술할 수 있도록 365일 24시간 전문의료진들이 대기합니다. 전국에 권역별로 11곳에 이런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있습니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후송되면 대기하고 있던 전문의 1명과 간호사 2명, 방사선사 1명이 시술을 합니다.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혈관이 갑자기 막혀서 심장으로 피를 보내지 못하면 심장에 마비가 오면서 사망 위험이 극도로 높아지는데 이게 급성 심근경색입니다. 예전엔 가슴을 열고 수술을 했지만, 요즘은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팔다리 혈관을 통해 직접 기구를 넣어서 막힌 혈관을 찾아 뚫는 시술을 합니다. 스텐트 삽입술이라고 합니다. 이 스텐트를 넣어서 혈관을 넓혀주면 피가 돌면서 환자가 금방 좋아지는 겁니다. 하지만 가느다란 혈관을 기구로 뚫는 시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정확성이 필요합니다. 시술하는 의사는 물론 보조하는 간호사들은 환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생명줄을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술 먹고 급성심근경색 환자 시술(?)

이 시술의 어려움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생명을 다루는 의사나 간호사가 음주 상태에서 수술이나 시술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윤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당연합니다. 이 병원의 당직근무지침에도 '당직근무 중 음주행위 및 오락을 금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병원의 몇몇 의사들은 문제가 된 1년 4개월 전 그날 말고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저녁이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근무를 하는 것을 번번이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365일 24시간 응급체계를 유지한다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에서 근무자가 음주 중에 또는 음주 상태에서 응급환자가 후송되면 그다음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음주시술' 보고 받은 병원장... 개선 요구 묵살

음주 시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녹음 파일로 고스란히 남은 그 날은 물론 음주 근무 관행에 대해 권역센터 책임자들은 병원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진에 보낸 답변서에서 병원장은 해당 간호사들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허위고백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야 내부 감사위원회를 열어 조사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간호사의 웃음소리까지 묻어있는 녹음파일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시 음주에 대한 병원장의 주의사항도 전달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권역센터 해당 파트의 지휘 선상에 있는 책임자들인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병원 측은 문제를 제기한 책임자를 지난 17일 보직에서 해임했습니다. 음주 근무를 막으려고 근무자의 일정과 위치를 보고하도록 한 것이 부당한 업무지시와 인권침해라는 겁니다. 이를 요청한 직원 4명 가운데에는 음주 시술을 한 간호사 두 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음주 시술의 진상은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이 문제를 개선하려고 한 의사를 보직 해임 한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의사가 간호사들이게 컵라면과 선풍기 심부름을 시켰다며 병원노조가 '갑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을 백번 양보해도 그렇습니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도 뭐 그 어느 정도 수치 이상이 돼야지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병원장의 이 발언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