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미투(MeToo) 어렵네”…日 정부 ‘성희롱 피해 조사’의 ‘난폭성’

입력 2018.04.20 (14:18) 수정 2018.04.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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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자 성희롱 의혹을 받아온 일본 재무성 후쿠다 사무차관이 파문 엿새 만에 물러났다. 주요 언론은 이를 사실상의 경질로 해석했다. 그러나 당사자는 성희롱 의혹을 부인하면서 법정 다툼을 예고했다. '성희롱 사건'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거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이름 내걸고 나오라고?’

18일 저녁, 아베 정권의 이인자인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이 갑자기 기자들 앞에 섰다. 성희롱 의혹의 장본인 후쿠다 차관의 사임 소식을 알렸다. "직책을 완수하는 것이 곤란하게 됐다고 해서 사임을 인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당초, 아소 재무상은 후쿠다 차관을 계속 옹호해왔다. 성희롱 사실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 처신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여론의 압력에 백기를 들었다. 특히 재무성의 어설프고 공격적인 대응이 비판 여론을 더욱 자극했다.

논란 발생 초기, 재무성은 고문계약을 맺은 변호사 사무실에 조사를 요청하고, 피해여성이 조사에 응하도록 언론계 협조를 요청했다. 피해 여성이 나서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아소 부총리 발언은 더 큰 비난을 불렀다.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日정부, 성희롱은 인권 침해라는 의식 결여”

재무성은 기자단에 가입한 각 언론사의 여성기자들에 대해 성희롱 피해를 당한 일이 있으면 재무성과 고문계약을 맺은 변호사 사무실에 이름을 대고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성희롱 문제 등에 정통한 고토 게이지 변호사는 "재무성의 조사 방식은 일반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매우 난폭하다고 생각한다"고 NHK에 밝혔다. 먼저 후쿠다 차관의 평소 언행에 대해 부처 내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자체 내부 조사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문노련신문노련

전국의 신문사와 통신사 노동자로 구성된 일본신문노동조합 연합(신문노련)은 고바야시 중앙집행위원장 이름의 성명을 통해, 재무성의 조사 방식은 '언론에 대한 압력'이라고 항의했다.

신문노련 측은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해 '성희롱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모자란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권력관계에서 압도적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이름을 대고 나오라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공갈이며 언론에 대한 압력, 공격이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 내 성희롱 여부 전면 조사해야”

또한,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 부처를 대상으로 또 다른 성희롱 사안은 없었는지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지금까지도 취재처에서 성희롱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기자가 취재대상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보고할 경우, 기자에게 인내를 강요·지시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성희롱을 용인하는 것과 같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무성 기자단 항의문재무성 기자단 항의문

재무성의 기자단도 재무성의 조사 방식에 대한 항의문을 전달했다. NHK와 민방, 전국의 신문기자 등이 가입한 '재정연구회'는 재무성의 '여성기자 조사 협력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

기자단은 후쿠다 차관이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소송 준비를 진행하는 가운데, 여성기자가 나서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매우 크고, 본인에게 불이익이 발생하는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도교 지역 변호사 등 항의서명 전달도교 지역 변호사 등 항의서명 전달

도쿄와 시즈오카 등의 변호사 5명은 '재무성의 조사 방법 철회'를 요구하는 네티즌 2만 7천여 명의 서명을 모아 제출했다. 서명운동은 계속 확산하고 있다.

‘성희롱도 잘못이지만, 외부 공개도 문제라고?’

'피해 여성'이 소속돼 있는 TV아사히의 대응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TV아사히 보도국장 기자회견TV아사히 보도국장 기자회견

성희롱 의혹 사건은 1년 반 전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자는 상사에게 '성희롱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느냐'며 상담을 했지만, 상사는 "본인이 특정돼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보도를 보류했다. 또 재무성이나 차관 본인에게 항의도 하지 않았다.

TV아사히는 이례적인 새벽 기자회견을 통해 자사 여성기자의 '피해 사실'을 공표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뒤늦게 항의문을 재무성에 전달했다. 공교롭게도 '가해자로 지목된' 후쿠다 사무차관의 사임(혹은 경질)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TV아사히 항의문TV아사히 항의문

TV아사히는 "사원으로부터 성희롱 정보가 있었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피해)직원이 취재 정보를 외부에 건네준 것은 부적절했다.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또 "이 직원은 재무성 사무차관이라는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입장의 사람의 부적절한 행위가 드러나지 않으면 성희롱 피해가 묵인되고 말 것이라는 강한 생각에서 주간지 측에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미투(#MeToo)’운동 쉽지 않은 日 주류사회의 민낯

이번 사례를 계기로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피해자가 공개 고발하는 '미투(#MeToo)'운동이 일본에서도 활성화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때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그릇된 비난의 무게가 여느 '선진국'보다 훨씬 무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 녹취록과 녹음 파일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을 처음 고발한 '주간신조' 출판사 측은 "기사는 모두 사실에 근거한다. 후쿠다 차관이 성희롱 행위를 부정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NHK에 밝혔다.

‘주간신조’ 출판사‘주간신조’ 출판사

아소 재무상은 문제의 녹음 파일 속 '성희롱 목소리'가 후쿠다 차관의 목소리임을 전제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당은 일제히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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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0 14:18:48
    • 수정2018-04-20 16: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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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자 성희롱 의혹을 받아온 일본 재무성 후쿠다 사무차관이 파문 엿새 만에 물러났다. 주요 언론은 이를 사실상의 경질로 해석했다. 그러나 당사자는 성희롱 의혹을 부인하면서 법정 다툼을 예고했다. '성희롱 사건'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거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이름 내걸고 나오라고?’

18일 저녁, 아베 정권의 이인자인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이 갑자기 기자들 앞에 섰다. 성희롱 의혹의 장본인 후쿠다 차관의 사임 소식을 알렸다. "직책을 완수하는 것이 곤란하게 됐다고 해서 사임을 인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당초, 아소 재무상은 후쿠다 차관을 계속 옹호해왔다. 성희롱 사실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 처신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여론의 압력에 백기를 들었다. 특히 재무성의 어설프고 공격적인 대응이 비판 여론을 더욱 자극했다.

논란 발생 초기, 재무성은 고문계약을 맺은 변호사 사무실에 조사를 요청하고, 피해여성이 조사에 응하도록 언론계 협조를 요청했다. 피해 여성이 나서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아소 부총리 발언은 더 큰 비난을 불렀다.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日정부, 성희롱은 인권 침해라는 의식 결여”

재무성은 기자단에 가입한 각 언론사의 여성기자들에 대해 성희롱 피해를 당한 일이 있으면 재무성과 고문계약을 맺은 변호사 사무실에 이름을 대고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성희롱 문제 등에 정통한 고토 게이지 변호사는 "재무성의 조사 방식은 일반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매우 난폭하다고 생각한다"고 NHK에 밝혔다. 먼저 후쿠다 차관의 평소 언행에 대해 부처 내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자체 내부 조사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문노련
전국의 신문사와 통신사 노동자로 구성된 일본신문노동조합 연합(신문노련)은 고바야시 중앙집행위원장 이름의 성명을 통해, 재무성의 조사 방식은 '언론에 대한 압력'이라고 항의했다.

신문노련 측은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해 '성희롱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모자란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권력관계에서 압도적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이름을 대고 나오라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공갈이며 언론에 대한 압력, 공격이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 내 성희롱 여부 전면 조사해야”

또한,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 부처를 대상으로 또 다른 성희롱 사안은 없었는지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지금까지도 취재처에서 성희롱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기자가 취재대상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보고할 경우, 기자에게 인내를 강요·지시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성희롱을 용인하는 것과 같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무성 기자단 항의문
재무성의 기자단도 재무성의 조사 방식에 대한 항의문을 전달했다. NHK와 민방, 전국의 신문기자 등이 가입한 '재정연구회'는 재무성의 '여성기자 조사 협력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

기자단은 후쿠다 차관이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소송 준비를 진행하는 가운데, 여성기자가 나서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매우 크고, 본인에게 불이익이 발생하는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도교 지역 변호사 등 항의서명 전달
도쿄와 시즈오카 등의 변호사 5명은 '재무성의 조사 방법 철회'를 요구하는 네티즌 2만 7천여 명의 서명을 모아 제출했다. 서명운동은 계속 확산하고 있다.

‘성희롱도 잘못이지만, 외부 공개도 문제라고?’

'피해 여성'이 소속돼 있는 TV아사히의 대응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TV아사히 보도국장 기자회견
성희롱 의혹 사건은 1년 반 전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자는 상사에게 '성희롱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느냐'며 상담을 했지만, 상사는 "본인이 특정돼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보도를 보류했다. 또 재무성이나 차관 본인에게 항의도 하지 않았다.

TV아사히는 이례적인 새벽 기자회견을 통해 자사 여성기자의 '피해 사실'을 공표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뒤늦게 항의문을 재무성에 전달했다. 공교롭게도 '가해자로 지목된' 후쿠다 사무차관의 사임(혹은 경질)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TV아사히 항의문
TV아사히는 "사원으로부터 성희롱 정보가 있었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피해)직원이 취재 정보를 외부에 건네준 것은 부적절했다.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또 "이 직원은 재무성 사무차관이라는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입장의 사람의 부적절한 행위가 드러나지 않으면 성희롱 피해가 묵인되고 말 것이라는 강한 생각에서 주간지 측에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미투(#MeToo)’운동 쉽지 않은 日 주류사회의 민낯

이번 사례를 계기로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피해자가 공개 고발하는 '미투(#MeToo)'운동이 일본에서도 활성화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때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그릇된 비난의 무게가 여느 '선진국'보다 훨씬 무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 녹취록과 녹음 파일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을 처음 고발한 '주간신조' 출판사 측은 "기사는 모두 사실에 근거한다. 후쿠다 차관이 성희롱 행위를 부정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NHK에 밝혔다.

‘주간신조’ 출판사
아소 재무상은 문제의 녹음 파일 속 '성희롱 목소리'가 후쿠다 차관의 목소리임을 전제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당은 일제히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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