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동상이몽…과거 사례로 본 북핵 폐기 시나리오는?

입력 2018.04.23 (15:05) 수정 2018.04.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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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동상이몽…과거 사례로 본 북핵 폐기 시나리오는?

‘한반도 비핵화’ 동상이몽…과거 사례로 본 북핵 폐기 시나리오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제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빠르면 5월, 늦어도 6월 초에는 북미 정상회담도 연쇄적으로 예정돼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누가 뭐라해도 북한의 비핵화 문제이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문제를 놓고 극적인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실제로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당사국 간 합의가 이뤄질지,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이를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써는 낙관하기 힘든 부분이다. 북한이 지난주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풍계리 핵시설 폐쇄를 선언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는 핵 폐기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핵보유국 '선언'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CVID'냐 '단계적 핵폐기'냐...동상이몽

특히 북한과 중국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에 의해 '단계적으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을 보며' 핵 폐기를 진행할 것임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양자의 입장 차가 상당한 상황에서 섣불리 비핵화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낮은 목표라 해도, 실제로 이를 달성하려면 실현 가능한 여러 대안을 마련한 후 이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했거나 핵무기를 보유하려 시도했으나 최종적으로는 핵무기를 포기한 국가들의 사례는 북한의 비핵화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각각의 사례가 북한에 직접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각 사례에서 북한의 사례에 적용 가능한 점들을 모아 분석하는 작업은 실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란과 리비아, 우크라이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4개 나라의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단계별 비핵화' 이란, 엄격한 검증 규정 핵심

이란은 이들 4개국 가운데 가장 최근에 핵 폐기를 결정한 국가다. 이란은 중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 비밀리에 핵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우라늄 농축 시설을 운영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금융제재를 받게 됐고, 때마침 핵무기 보유를 필수 과제로 여기지 않던 중도개혁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핵 폐기를 위한 협상에 나섰다.

2013년 미국과 비밀리에 협상을 시작한 이란은 이후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속 5개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P5+1)과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라는 협정을 타결했다. 이 협정은 우라늄 농축을 제한하고, 기존 농축시설과 중수로를 용도 변경하는 등 핵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징은 이란이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해제한 제재를 다시 되돌리는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란식 해법은 검증 규정이 엄격하다는 장점과 함께 단계별 조치를 선호하는 북한의 입장과 통하는 점이 있다. 다만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사실상 핵 개발 중단을 결정한 것이어서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는 북한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이란의 핵 폐기보다도 북한의 핵 폐기가 훨씬 더 매우 곤란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임을 시사한다.

'확실하고 신속한 핵폐기' 리비아식 해법

21세기 들어 핵 폐기를 이뤄낸 두 번째 국가는 리비아다. 리비아는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안보를 유지하고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농축 우라늄(HEU)프로그램을 통해 핵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유엔과 미국의 제재가 오래도록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자발적으로 핵 폐기를 선언했다.

리비아는 먼저 핵 폐기를 약속한 후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의정서(AP)에 가입했다. '추가의정서(AP)'란 신고하지 않은 핵시설에 대해서도 언제든 IAEA가 사찰에 나설 수 있는 것으로 핵 검증과 관련한 협정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이다. 이후 IAEA의 사찰을 받은 리비아는 핵 관련 시설 및 장비를 미국으로 이전했다. '선(先) 핵 폐기' 후 국제사회의 철저한 감시를 받은 다음 경제제재 해제 등의 보상을 받은 리비아의 사례는 미국, 특히 공화당 측에서 바람직한 핵 폐기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리비아의 핵 포기는 상당히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특징도 있다. 리비아가 핵 포기를 선언한 후 IAEA의 사찰을 받고 관련 장비를 미국으로 옮기는 등 일련의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는 10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리비아의 무하마드 카다피 국가원수는 이후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말미암은 내전으로 반군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처형당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핵 포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사례가 된 것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핵 떠안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후 독립하면서 많은 양의 핵무기를 물려받았다. 2천여 기에 달하는 전략 핵탄두에 이를 운반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갖춘 우크라이나는 일약 '핵 강국'으로 거듭났으나 곧 핵 포기 결정을 내린다. 신생국가로서 체제 안정과 경제 재건을 위한 서방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 러시아와 핵무기 소유권을 법적으로 거부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는 것을 명문화 한 '리스본 의정서'를 체결한 우크라이나는 1994년에는 미, 러, 영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로 불리는 안전보장 각서를 체결한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전량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원전에서 쓰는 우라늄 원료를 모두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사용 후 핵연료도 러시아로 반출해 처리하고 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경제 지원을 담당했다. 여기에는 핵 과학자를 비롯해 핵무기 생산과 운영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주는 작업도 포함됐다. 이를 '협력적 위협 감소(CTR, Cooperative Threat Reduction)'라 부른다.

국가 혹은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핵 폐기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북한의 주장하는 단계별 핵 폐기와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자발적으로 핵을 가지려 노력한 적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핵보유국이 됐지만, 북한은 수십 년에 걸쳐 국가의 총력을 동원한 끝에 핵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에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 일대를 합병하면서 강대국이 보장했던 '안전보장' 이 말뿐이었다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께름칙하다. 앞서 리비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 결국 '핵이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개발하고 스스로 폐기한' 남아공

마지막으로 살펴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안보 위협과 국제 사회의 압력 등으로 스스로 핵 보유를 선택했으나, 핵 폐기 결정은 물론 실행까지도 스스로 결정한 특이 사례다.

남아공은 1970년대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실제 핵폭탄을 제조해 보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후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안보 환경이 나아지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될 움직임이 보이자 곧 핵 폐기를 결정한다.

남아공은 모든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스스로 해체한 후 NPT에 가입하고,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맺은 후 사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핵무기 및 시설을 국외로 반출하는 일은 없었고, 국제사회가 이에 대해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후 국제사회가 점진적으로 제재를 해제했고 미국은 민수용 핵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을 지원했다.)

남아공의 사례는 스스로의 필요성에 따라 핵무기를 개발해 보유했다는 점에서는 북한과 유사하지만, 스스로 '대가 없는' 핵폐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사례에 적용하기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결국, 위의 네 가지 사례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북한의 사례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다만 리비아의 신속한 핵 폐기, 이란 협정 체결 과정에서 나타난 국제 사회의 협력과 단계적 보상 방안 등 개별 사례에서 적용 가능한 부분을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미리 고민해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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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비핵화’ 동상이몽…과거 사례로 본 북핵 폐기 시나리오는?
    • 입력 2018-04-23 15:05:23
    • 수정2018-04-23 16:30:11
    취재K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제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빠르면 5월, 늦어도 6월 초에는 북미 정상회담도 연쇄적으로 예정돼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누가 뭐라해도 북한의 비핵화 문제이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문제를 놓고 극적인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실제로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당사국 간 합의가 이뤄질지,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이를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써는 낙관하기 힘든 부분이다. 북한이 지난주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풍계리 핵시설 폐쇄를 선언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는 핵 폐기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핵보유국 '선언'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CVID'냐 '단계적 핵폐기'냐...동상이몽

특히 북한과 중국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에 의해 '단계적으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을 보며' 핵 폐기를 진행할 것임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양자의 입장 차가 상당한 상황에서 섣불리 비핵화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낮은 목표라 해도, 실제로 이를 달성하려면 실현 가능한 여러 대안을 마련한 후 이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했거나 핵무기를 보유하려 시도했으나 최종적으로는 핵무기를 포기한 국가들의 사례는 북한의 비핵화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각각의 사례가 북한에 직접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각 사례에서 북한의 사례에 적용 가능한 점들을 모아 분석하는 작업은 실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란과 리비아, 우크라이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4개 나라의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단계별 비핵화' 이란, 엄격한 검증 규정 핵심

이란은 이들 4개국 가운데 가장 최근에 핵 폐기를 결정한 국가다. 이란은 중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 비밀리에 핵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우라늄 농축 시설을 운영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금융제재를 받게 됐고, 때마침 핵무기 보유를 필수 과제로 여기지 않던 중도개혁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핵 폐기를 위한 협상에 나섰다.

2013년 미국과 비밀리에 협상을 시작한 이란은 이후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속 5개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P5+1)과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라는 협정을 타결했다. 이 협정은 우라늄 농축을 제한하고, 기존 농축시설과 중수로를 용도 변경하는 등 핵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징은 이란이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해제한 제재를 다시 되돌리는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란식 해법은 검증 규정이 엄격하다는 장점과 함께 단계별 조치를 선호하는 북한의 입장과 통하는 점이 있다. 다만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사실상 핵 개발 중단을 결정한 것이어서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는 북한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이란의 핵 폐기보다도 북한의 핵 폐기가 훨씬 더 매우 곤란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임을 시사한다.

'확실하고 신속한 핵폐기' 리비아식 해법

21세기 들어 핵 폐기를 이뤄낸 두 번째 국가는 리비아다. 리비아는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안보를 유지하고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농축 우라늄(HEU)프로그램을 통해 핵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유엔과 미국의 제재가 오래도록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자발적으로 핵 폐기를 선언했다.

리비아는 먼저 핵 폐기를 약속한 후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의정서(AP)에 가입했다. '추가의정서(AP)'란 신고하지 않은 핵시설에 대해서도 언제든 IAEA가 사찰에 나설 수 있는 것으로 핵 검증과 관련한 협정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이다. 이후 IAEA의 사찰을 받은 리비아는 핵 관련 시설 및 장비를 미국으로 이전했다. '선(先) 핵 폐기' 후 국제사회의 철저한 감시를 받은 다음 경제제재 해제 등의 보상을 받은 리비아의 사례는 미국, 특히 공화당 측에서 바람직한 핵 폐기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리비아의 핵 포기는 상당히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특징도 있다. 리비아가 핵 포기를 선언한 후 IAEA의 사찰을 받고 관련 장비를 미국으로 옮기는 등 일련의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는 10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리비아의 무하마드 카다피 국가원수는 이후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말미암은 내전으로 반군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처형당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핵 포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사례가 된 것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핵 떠안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후 독립하면서 많은 양의 핵무기를 물려받았다. 2천여 기에 달하는 전략 핵탄두에 이를 운반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갖춘 우크라이나는 일약 '핵 강국'으로 거듭났으나 곧 핵 포기 결정을 내린다. 신생국가로서 체제 안정과 경제 재건을 위한 서방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 러시아와 핵무기 소유권을 법적으로 거부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는 것을 명문화 한 '리스본 의정서'를 체결한 우크라이나는 1994년에는 미, 러, 영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로 불리는 안전보장 각서를 체결한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전량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원전에서 쓰는 우라늄 원료를 모두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사용 후 핵연료도 러시아로 반출해 처리하고 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경제 지원을 담당했다. 여기에는 핵 과학자를 비롯해 핵무기 생산과 운영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주는 작업도 포함됐다. 이를 '협력적 위협 감소(CTR, Cooperative Threat Reduction)'라 부른다.

국가 혹은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핵 폐기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북한의 주장하는 단계별 핵 폐기와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자발적으로 핵을 가지려 노력한 적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핵보유국이 됐지만, 북한은 수십 년에 걸쳐 국가의 총력을 동원한 끝에 핵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에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 일대를 합병하면서 강대국이 보장했던 '안전보장' 이 말뿐이었다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께름칙하다. 앞서 리비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 결국 '핵이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개발하고 스스로 폐기한' 남아공

마지막으로 살펴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안보 위협과 국제 사회의 압력 등으로 스스로 핵 보유를 선택했으나, 핵 폐기 결정은 물론 실행까지도 스스로 결정한 특이 사례다.

남아공은 1970년대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실제 핵폭탄을 제조해 보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후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안보 환경이 나아지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될 움직임이 보이자 곧 핵 폐기를 결정한다.

남아공은 모든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스스로 해체한 후 NPT에 가입하고,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맺은 후 사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핵무기 및 시설을 국외로 반출하는 일은 없었고, 국제사회가 이에 대해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후 국제사회가 점진적으로 제재를 해제했고 미국은 민수용 핵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을 지원했다.)

남아공의 사례는 스스로의 필요성에 따라 핵무기를 개발해 보유했다는 점에서는 북한과 유사하지만, 스스로 '대가 없는' 핵폐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사례에 적용하기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결국, 위의 네 가지 사례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북한의 사례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다만 리비아의 신속한 핵 폐기, 이란 협정 체결 과정에서 나타난 국제 사회의 협력과 단계적 보상 방안 등 개별 사례에서 적용 가능한 부분을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미리 고민해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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