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한 트럼프, 신중한 문재인…‘4·27 선언’에 비핵화 담길까?

입력 2018.04.24 (13:21) 수정 2018.04.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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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트럼프, 신중한 문재인…‘4/27 선언’에 비핵화 담길까?

흥분한 트럼프, 신중한 문재인…‘4/27 선언’에 비핵화 담길까?

"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 이곳 순안공항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분단 반세기 남북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상봉 장면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첫 상봉을 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보도국 4층에 마련된 정상회담 상황실의 TV 모니터 화면이 갑자기 평양 순안공항으로 바뀌더니 기자의 얼굴과 함께 현장 리포트가 생방송으로 흘러나왔다. 현장 상황을 전하는 베테랑 기자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떨리고 흥분돼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태운 특별기가 무사히 평양에 도착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첫 만남이 공항에서 곧바로 이뤄졌음을 알리는 방북취재단의 평양 1보였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47분, 55년 만에 성사된 첫 정상회담

한복 차림에 일제히 꽃술을 흔들며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에 이어 요란한 함성이 기자의 현장 오디오를 완전히 뒤덮는 순간, 활주로를 가로질러 뚜벅뚜벅 걸어오는 김정일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특별기 트랩까지 이어진 레드카펫을 따라 걸어나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곧이어 김 대통령을 태운 특별기의 문이 열리고, 트랩을 내려오는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이 맞았다. 두 사람은 반갑게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분단 반세기 만에 이뤄진 남북 정상의 첫 만남..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불과 47분의 거리였지만, 남북이 이곳까지 오는 데는 무려 5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김정일의 깜짝 영접 이벤트는 출발 전날까지도 일정을 확정 짓지 못한 대표단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충격 그 자체였고, 앞으로 평양에서 펼쳐질 남북정상회담 드라마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군사분계선 넘은 2차 정상회담, 선언에 그친 ‘10·4선언’


다시 7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10월,

이번엔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 연로한 나이에 다리가 불편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택했던 서해 직항로 대신, 노 대통령은 육로, 특히 직접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파격적인 방식을 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달려 평양에 도착한 노 대통령 일행을 환영행사가 진행된 4.25 문화회관에서 영접했다.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모두 8개 항으로 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른바 '10·4 선언' 을 채택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대선과 함께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10·4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 그 자체에 머문 채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평양 아닌 판문점, 전 과정 생중계 전망

그리고 2018년 4월 27일, 사흘 뒤면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난다.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문재인, 김정은으로 바뀌고, 회담 장소는 평양이 아닌 판문점으로 낙점됐다.


이전 두 차례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 판문점에서 만나는 방식이다. 하루짜리 당일치기로 예정된 정상회담은 27일 오전 양 정상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공식환영식, 정상회담, 환영 만찬으로 진행되며, 만남의 전 과정은 TV를 통해 사실상 생중계될 전망이다.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오늘(24일)은 우리 측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 리허설을 진행하고, 내일(25일)은 김창선 단장 등 북측 선발대가 참여하는 남북합동 리허설을 진행할 예정이다.

흥분한 트럼프, “북한이 비핵화 합의…정상회담 고대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이전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5월 말 또는 6월 초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요즘 눈길을 끄는 대목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달라진 행보다. 평창 올림픽 이후 전개된 일련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트럼프는 연일 흥분된 어조의 트윗을 날리며 낙관론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주말, '핵 실험·ICBM 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골자로 한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 내용이 발표되자, 미국 언론들은 '놀라운 발표'라면서도 비핵화 등 핵심이 빠진 점을 부각하며 신중론을 쏟아냈다.

유력 워싱턴포스트(WP)는 "과연 김정은 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부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강하다"고 우려했고,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무엇을 원하나? 미국은 (북한이) 더 적게 내놓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경계론을 확산시켰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미국 고위 관리를 인용해 북한이 제재 해제를 챙기면서 궁극적으로는 핵보유국을 인정받으려는 '동결의 덫'(freeze trap)을 놓았다는 표현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이런 미국 언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는 지난 21일 북한의 발표 직후 "북한과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이자 큰 진전이다. 정상회담을 고대한다"는 환영 트윗을 날린 데 이어 다섯 시간 만에 다시 "김정은의 메시지는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며 "모두를 위한 진전"이라고 두 번째 트윗을 썼다.

트럼프는 나아가 미국 언론의 보도를 '가짜뉴스'로 일축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고, 그들이 비핵화(세계를 위해 매우 훌륭한 일)와 실험장 폐기, 실험 중단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말 아끼는 문재인, 장밋빛 전망 대신 ‘신중 모드’

이런 트럼프와 대조적으로 정작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신중모드다. 일부 언론과 측근들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유독 문 대통령만은 절제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목전에 뒀지만 문 대통령의 정상회담 관련 발언은 이달 들어 손에 꼽을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지난 1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전체회의의 발언에 그대로 녹아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긴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다"면서 "그러나 한 번에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겠다는 지나친 의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오랜 기간 단절되었던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로 나가는 튼튼한 디딤돌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예정"이라면서 "그 목표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 북한의 조치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이틀이 지난 어제(23일)가 돼서야 절제된 표현의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자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면서도 "북한이 핵 동결로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 폐기의 길로 간다면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고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후속 조치를 거듭 주문했다.

2018년 정상회담은 고차방정식…금기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흥분한 트럼프와 신중한 문재인..일견 상반돼 보이는 두 지도자의 반응은 왜일까?

가장 큰 요인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번 정상회담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주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화해와 교류 협력 확대에 방점이 찍혔다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비핵화'와 '평화'라는 한반도 문제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사실 북핵 문제는 이전 남북회담에서는 거론조차 힘들 정도의 금기어였다. 북한이 논의 자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사안의 성격상 남북보다는 미국 등 국제사회가 풀어야 하는 난제 중에 난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북핵 문제가 남북 최고 수위의 회담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은 앞서 밝힌 대로 북미 정상회담의 예고편이자 길잡이 성격이 강하다. 본게임이라 할 수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의 중재자로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내야 하는 상황은 문 대통령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엄존한 상황에서, 남북이 따로 합의해 추진할만한 사안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도 문 대통령이 보이는 신중한 행보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의 낙관론에는 트럼프 특유의 정치 스타일과 함께 미국 내 정치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협상가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철저히 계산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담판을 앞두고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판을 키우고, 한편으론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고도의 압박이자 협상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에 관해 거래를 해보지 못한 전문가들이 이제 와서 나에게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하는지 얘기하다니 웃기는 일!"이라는 최근 트럼프의 반박은 주목할 대목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내 상황 역시 트럼프의 행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포르노 스캔들 등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고 '빅뱅 방식의 북핵 일괄타결'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이다.

‘4.27선언’에 뭐 담길까?…핵심은 비핵화 문구

'평화, 새로운 시작'을 슬로건으로 내건 2018년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분단 73년 만에 남북이 처음으로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를 향한 담대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이전 두 차례 정상회담과 달리 미국이 협상의 한 축으로 나서 남북정상회담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점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론 '비핵화'라는 힘겨운 난제를 숙제로 던져주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일이 잘 풀리려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점도 분명하다. 특히 회담의 성패는 남북 정상이 회담이 끝난 뒤 내놓을 '4.27 선언' '판문점 선언'에 담길 비핵화 문구가 될 전망이다. 과연 합의문에 '비핵화'의 워딩이 담길지, 담긴다면 어느 수위로 표현될지가 관심이다. 그런 점에서 공은 여전히 북한 코트에 남아 있다. 핵 동결을 넘어선 핵 폐기, 다시 한 번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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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분한 트럼프, 신중한 문재인…‘4·27 선언’에 비핵화 담길까?
    • 입력 2018-04-24 13:21:14
    • 수정2018-04-24 17:49:59
    취재K
"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 이곳 순안공항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분단 반세기 남북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상봉 장면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첫 상봉을 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보도국 4층에 마련된 정상회담 상황실의 TV 모니터 화면이 갑자기 평양 순안공항으로 바뀌더니 기자의 얼굴과 함께 현장 리포트가 생방송으로 흘러나왔다. 현장 상황을 전하는 베테랑 기자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떨리고 흥분돼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태운 특별기가 무사히 평양에 도착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첫 만남이 공항에서 곧바로 이뤄졌음을 알리는 방북취재단의 평양 1보였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47분, 55년 만에 성사된 첫 정상회담

한복 차림에 일제히 꽃술을 흔들며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에 이어 요란한 함성이 기자의 현장 오디오를 완전히 뒤덮는 순간, 활주로를 가로질러 뚜벅뚜벅 걸어오는 김정일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특별기 트랩까지 이어진 레드카펫을 따라 걸어나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곧이어 김 대통령을 태운 특별기의 문이 열리고, 트랩을 내려오는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이 맞았다. 두 사람은 반갑게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분단 반세기 만에 이뤄진 남북 정상의 첫 만남..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불과 47분의 거리였지만, 남북이 이곳까지 오는 데는 무려 5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김정일의 깜짝 영접 이벤트는 출발 전날까지도 일정을 확정 짓지 못한 대표단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충격 그 자체였고, 앞으로 평양에서 펼쳐질 남북정상회담 드라마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군사분계선 넘은 2차 정상회담, 선언에 그친 ‘10·4선언’


다시 7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10월,

이번엔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 연로한 나이에 다리가 불편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택했던 서해 직항로 대신, 노 대통령은 육로, 특히 직접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파격적인 방식을 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달려 평양에 도착한 노 대통령 일행을 환영행사가 진행된 4.25 문화회관에서 영접했다.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모두 8개 항으로 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른바 '10·4 선언' 을 채택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대선과 함께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10·4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 그 자체에 머문 채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평양 아닌 판문점, 전 과정 생중계 전망

그리고 2018년 4월 27일, 사흘 뒤면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난다.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문재인, 김정은으로 바뀌고, 회담 장소는 평양이 아닌 판문점으로 낙점됐다.


이전 두 차례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 판문점에서 만나는 방식이다. 하루짜리 당일치기로 예정된 정상회담은 27일 오전 양 정상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공식환영식, 정상회담, 환영 만찬으로 진행되며, 만남의 전 과정은 TV를 통해 사실상 생중계될 전망이다.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오늘(24일)은 우리 측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 리허설을 진행하고, 내일(25일)은 김창선 단장 등 북측 선발대가 참여하는 남북합동 리허설을 진행할 예정이다.

흥분한 트럼프, “북한이 비핵화 합의…정상회담 고대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이전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5월 말 또는 6월 초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요즘 눈길을 끄는 대목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달라진 행보다. 평창 올림픽 이후 전개된 일련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트럼프는 연일 흥분된 어조의 트윗을 날리며 낙관론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주말, '핵 실험·ICBM 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골자로 한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 내용이 발표되자, 미국 언론들은 '놀라운 발표'라면서도 비핵화 등 핵심이 빠진 점을 부각하며 신중론을 쏟아냈다.

유력 워싱턴포스트(WP)는 "과연 김정은 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부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강하다"고 우려했고,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무엇을 원하나? 미국은 (북한이) 더 적게 내놓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경계론을 확산시켰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미국 고위 관리를 인용해 북한이 제재 해제를 챙기면서 궁극적으로는 핵보유국을 인정받으려는 '동결의 덫'(freeze trap)을 놓았다는 표현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이런 미국 언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는 지난 21일 북한의 발표 직후 "북한과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이자 큰 진전이다. 정상회담을 고대한다"는 환영 트윗을 날린 데 이어 다섯 시간 만에 다시 "김정은의 메시지는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며 "모두를 위한 진전"이라고 두 번째 트윗을 썼다.

트럼프는 나아가 미국 언론의 보도를 '가짜뉴스'로 일축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고, 그들이 비핵화(세계를 위해 매우 훌륭한 일)와 실험장 폐기, 실험 중단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말 아끼는 문재인, 장밋빛 전망 대신 ‘신중 모드’

이런 트럼프와 대조적으로 정작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신중모드다. 일부 언론과 측근들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유독 문 대통령만은 절제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목전에 뒀지만 문 대통령의 정상회담 관련 발언은 이달 들어 손에 꼽을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지난 1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전체회의의 발언에 그대로 녹아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긴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다"면서 "그러나 한 번에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겠다는 지나친 의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오랜 기간 단절되었던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로 나가는 튼튼한 디딤돌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예정"이라면서 "그 목표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 북한의 조치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이틀이 지난 어제(23일)가 돼서야 절제된 표현의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자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면서도 "북한이 핵 동결로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 폐기의 길로 간다면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고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후속 조치를 거듭 주문했다.

2018년 정상회담은 고차방정식…금기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흥분한 트럼프와 신중한 문재인..일견 상반돼 보이는 두 지도자의 반응은 왜일까?

가장 큰 요인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번 정상회담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주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화해와 교류 협력 확대에 방점이 찍혔다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비핵화'와 '평화'라는 한반도 문제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사실 북핵 문제는 이전 남북회담에서는 거론조차 힘들 정도의 금기어였다. 북한이 논의 자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사안의 성격상 남북보다는 미국 등 국제사회가 풀어야 하는 난제 중에 난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북핵 문제가 남북 최고 수위의 회담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은 앞서 밝힌 대로 북미 정상회담의 예고편이자 길잡이 성격이 강하다. 본게임이라 할 수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의 중재자로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내야 하는 상황은 문 대통령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엄존한 상황에서, 남북이 따로 합의해 추진할만한 사안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도 문 대통령이 보이는 신중한 행보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의 낙관론에는 트럼프 특유의 정치 스타일과 함께 미국 내 정치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협상가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철저히 계산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담판을 앞두고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판을 키우고, 한편으론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고도의 압박이자 협상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에 관해 거래를 해보지 못한 전문가들이 이제 와서 나에게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하는지 얘기하다니 웃기는 일!"이라는 최근 트럼프의 반박은 주목할 대목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내 상황 역시 트럼프의 행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포르노 스캔들 등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고 '빅뱅 방식의 북핵 일괄타결'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이다.

‘4.27선언’에 뭐 담길까?…핵심은 비핵화 문구

'평화, 새로운 시작'을 슬로건으로 내건 2018년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분단 73년 만에 남북이 처음으로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를 향한 담대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이전 두 차례 정상회담과 달리 미국이 협상의 한 축으로 나서 남북정상회담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점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론 '비핵화'라는 힘겨운 난제를 숙제로 던져주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일이 잘 풀리려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점도 분명하다. 특히 회담의 성패는 남북 정상이 회담이 끝난 뒤 내놓을 '4.27 선언' '판문점 선언'에 담길 비핵화 문구가 될 전망이다. 과연 합의문에 '비핵화'의 워딩이 담길지, 담긴다면 어느 수위로 표현될지가 관심이다. 그런 점에서 공은 여전히 북한 코트에 남아 있다. 핵 동결을 넘어선 핵 폐기, 다시 한 번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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