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없다]① 저항 안하면 ‘성폭행 피해자’ 아니다?…“강간죄 개정해야”

입력 2018.09.24 (21:28) 수정 2018.09.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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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18년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온 사건 중의 하나가 '미투' 운동인데요.

성폭력과 성차별을 당하고도 숨죽여 살아왔던 여성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담담히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모습은 큰 충격을 줬습니다.

성폭력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용인하는 법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자연히 높아졌습니다.

국회의 역할이 단연 주목받고 있는데요.

KBS에서는 오늘(24일)부터 닷새 동안, '미투' 운동을 계기로 떠오른 중요한 입법 과제들을 소개합니다.

오늘(24일)은 먼저, 강간죄 처벌 법규 문제를 김채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형부가 집에 찾아온 새벽.

거실에서 자고 있던 처제는 안방으로 끌려가 성폭행 당했습니다.

옆방에 아버지가 자고 있었지만, 공포감과 가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불만 뒤집어 쓰고 소리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가해자,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법원의 첫 판단은 '무죄'였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가해자의 죄목, 형법 297조 강간죄인데요.

성관계 때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합니다.

엄벌이 당연해보이는 강간 사건이 무죄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조항에 숨어있습니다.

강간 당시의 폭행과 협박이 어느 수준인지가 관건인데, 법원의 해석은 엄격합니다.

피해자의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로 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많이 보는 게 피해자가 얼마나 적극 저항했는지입니다.

피해자가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이를 폭행·협박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1심 판결처럼 강간죄를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공포감에 몸이 얼어붙어 아무 저항을 못한 걸 두고 강간이 아니라는 증거라며 가해자를 풀어주는 꼴이죠.

폭행·협박 문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현실과 괴리된 판결이 계속 나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폭행·협박 수준을 완화해 규정하거나, 강간을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로 재정의하자는 형법 개정안이 논의 중입니다.

강간죄 조항은 그대로 두되, '합의 안한 성관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새로 만들고 죄질에 따라 처벌하자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 얘기도 나옵니다.

[장다혜/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어떤 행위가 성폭력 행위인지 지금 사회적인 것과 법적인 격차가 존재하고 있는 거잖아요. 굉장히 법적인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법 개정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에요."]

다만 법이 바뀌더라도,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어떻게 입증할지는 또 다른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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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이없다]① 저항 안하면 ‘성폭행 피해자’ 아니다?…“강간죄 개정해야”
    • 입력 2018-09-24 21:31:54
    • 수정2018-09-27 21: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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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18년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온 사건 중의 하나가 '미투' 운동인데요.

성폭력과 성차별을 당하고도 숨죽여 살아왔던 여성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담담히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모습은 큰 충격을 줬습니다.

성폭력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용인하는 법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자연히 높아졌습니다.

국회의 역할이 단연 주목받고 있는데요.

KBS에서는 오늘(24일)부터 닷새 동안, '미투' 운동을 계기로 떠오른 중요한 입법 과제들을 소개합니다.

오늘(24일)은 먼저, 강간죄 처벌 법규 문제를 김채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형부가 집에 찾아온 새벽.

거실에서 자고 있던 처제는 안방으로 끌려가 성폭행 당했습니다.

옆방에 아버지가 자고 있었지만, 공포감과 가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불만 뒤집어 쓰고 소리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가해자,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법원의 첫 판단은 '무죄'였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가해자의 죄목, 형법 297조 강간죄인데요.

성관계 때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합니다.

엄벌이 당연해보이는 강간 사건이 무죄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조항에 숨어있습니다.

강간 당시의 폭행과 협박이 어느 수준인지가 관건인데, 법원의 해석은 엄격합니다.

피해자의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로 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많이 보는 게 피해자가 얼마나 적극 저항했는지입니다.

피해자가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이를 폭행·협박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1심 판결처럼 강간죄를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공포감에 몸이 얼어붙어 아무 저항을 못한 걸 두고 강간이 아니라는 증거라며 가해자를 풀어주는 꼴이죠.

폭행·협박 문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현실과 괴리된 판결이 계속 나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폭행·협박 수준을 완화해 규정하거나, 강간을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로 재정의하자는 형법 개정안이 논의 중입니다.

강간죄 조항은 그대로 두되, '합의 안한 성관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새로 만들고 죄질에 따라 처벌하자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 얘기도 나옵니다.

[장다혜/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어떤 행위가 성폭력 행위인지 지금 사회적인 것과 법적인 격차가 존재하고 있는 거잖아요. 굉장히 법적인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법 개정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에요."]

다만 법이 바뀌더라도,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어떻게 입증할지는 또 다른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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