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신혼 4년에 내집 마련, 자가소유율 90%…여긴 어디?

입력 2018.10.18 (07:01) 수정 2018.10.1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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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트 키(collect key; 열쇠를 받다)…베리 익사이티드(very excited; 매우 흥분)"

"4년을 기다려서 오늘은 열쇠를 받는 날입니다. 열쇠를 받으려고 예약을 미리 하고 왔죠. 매우 흥분되고 또 긴장도 됩니다." -파 고, 켈빈 고 (싱가포르 신혼부부)

4년 전 결혼한 이 신혼부부, 오늘 어떤 열쇠를 받는 날일까요? 또 어디에 왔다는 걸까요? 이 부부는 사실 오늘 공공아파트 분양홍보관에 왔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LH(토지주택공사) 분양홍보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4년 전 분양 신청한 공공아파트가 이제 막 다 지어져서 입주를 위한 열쇠를 오늘 받는 겁니다. 디지털 자물쇠가 아닌지, 직접 실물 열쇠를 받으러 온 거죠. 누구에게나 새집 열쇠를 받아 현관문을 여는 날은 무척 흥분되고 기대되고 또 긴장되는 날이겠죠.

그런데 이 부부, 결혼한 지 4년밖에 안 됐습니다. 결혼하면서부터 청약을 넣어 분양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4년을 기다린 건 아파트가 실제로 완성되는 기간을 기다린 거고요. 어떻게 이렇게 일찍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던 걸까요? 그 비밀을 풀어보겠습니다.

인구밀도 세계 3위…1인 국민소득 세계 3위·아시아 1위

비밀을 풀기 위해 찾은 곳은 아시아의 작은 대국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 서울보다 조금 더 넓은 면적에 약 6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인구밀도로 세계 3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살고 있는지 알만합니다. 또 세계적인 금융, 상업의 중심지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돈이 많은 나라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3천 달러 정도로 우리나라의 2배에 달합니다.

싱가포르 머라이언싱가포르 머라이언

정리하면 땅 좁고, 사람 많고, 돈 많고.. 딱 '부동산 투기'하기 유리한 조건입니다. 동시에 집값 걱정하며 살 가능성이 높은 조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부동산 투기는 우리나라, 특히 서울만큼 심하지 않습니다. 또 집값 걱정하며 사는 국민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공공아파트가 전체의 80%…"누구나 살 수 있는 적당한 값의 집"

신혼부부가 바로 집을 분양받을 수 있는 이유, 집값 걱정 없이 사는 이유는 모두 공공아파트 덕분입니다. 싱가포르는 전체 주택의 80%를 HDB(주택개발청)라고 부르는 공공기관에서 직접 공급합니다. 우리나라 주택 시장이 민간 건설사 위주로 공급되는 것과 차이점이 있는 부분이죠.

공급 주체가 공공이다 보니 가격도 쌉니다. 현재 HDB에서 분양하는 신규 아파트값은 전용면적 110㎡ 기준으로 평균 3억 3천만 원 정도입니다. 싱가포르에도 물론 민간에서 짓는 콘도미니엄이라고 부르는 민영아파트가 있습니다. 수영장이 딸린 초고급 아파트죠. 다만 이곳에서 사는 사람은 전체 국민의 15%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 가격은 전용 110㎡ 기준으로 봐도 10억 원이 넘습니다. 이 민영아파트는 서울의 같은 면적 크기 신규 분양가 평균 7억 4천만 원 보다도 비싼 거죠. 다만 사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대다수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공공아파트 전경공공아파트 전경

단순하게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를 순서대로 매겨보자면 싱가포르 공공아파트(3억 원) < 서울 아파트 (7억 원) < 싱가포르 민간아파트 (10억 원) 이렇게 되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자가소유율은 90%에 달하고 이 가운데 80%는 HDB 공공아파트가, 10%는 민간아파트가 되는 셈입니다. 공공아파트값은 민간 아파트의 1/3 정도이니 부담도 크지 않은 겁니다.

교통+고급공공주택 부정적? "그런 개념 자체가 없어"

싱가포르 공공주택의 특징은 단순히 값이 싸다는 데만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다양한 요건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령 지하철역과 연계해 교통이 편리한 곳 위주로 공급한다든지,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만족할 만한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집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엘레나 씨 집 내부엘레나 씨 집 내부

이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공공아파트 정책을 펴고, 또 대부분 국민이 공공아파트에 살다 보니 부정적인 이미지 자체가 없었습니다. 취재 과정 중에 만난 여러 싱가포르 거주민들에게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공공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제게 되묻곤 했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었던 겁니다. 대답을 듣곤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해보며 부러우면서도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주택+연금 아우른 토털시스템…모든 생애에 걸쳐 도움

싱가포르 공공아파트의 또 다른 특징은 주택이 주택정책 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연금 시스템과 연계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지 취재 둘째 날 저녁. 싱가포르에서 최근에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 곳을 찾았습니다. 말레이시아계 신혼부부의 집을 찾았는데요. 이들도 마침 결혼한 지 4년 된 부부였습니다. 어린아이 2명도 키우고요. 부부의 월 소득은 우리 돈으로 330만 원 정도로 싱가포르의 경제 수준을 봤을 때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새 아파트를 큰 부담 없이 마련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부부 인터뷰부부 인터뷰

"이사를 왔을 때 차이점이라는 것은 우리만의 공간이 있고 또 렌트비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다른 데 써야 할 비용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요.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자유로움 그런 걸 느끼게 됐습니다. CPF가 주택에 관한 모든 것을 커버해주거든요." -아디브 코사난(32), 하피사 카마루딘(30)

이 부부가 HDB아파트, 엄청나게 비싸진 않지만 그럼에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 아파트를 사면서 걱정하지 않은 건 CPF(중앙연금기금) 제도 덕분입니다.

CPF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싱가포르의 연금제도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주택, 의료, 노후 계정을 통합 관리하고 CPF연금을 주택을 구매할 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험료로는 월급의 20%를 근로자가 내고 고용주가 16%를 냅니다. 우리의 국민연금 각 4.5%보다는 훨씬 납부료율이 높지만 그만큼 받는 혜택이 크게 돌아옵니다.


이 부부도 분양가 3억 1천만 원 가운데 CPF를 통해 분양 선수금을 납부했고, 소득에 따른 보조금과 부모와 가까운 곳(4km 이내)에 살아서 받는 지원금 등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잔액은 앞으로 2.6%의 장기 저리로 25년 동안 연금에서 자동 납부됩니다. 따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 소득이 낮아도, 결혼을 막 했더라도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공공이라 아파트값 비싸지 않고, 그 비용마저도 연금으로 충당하는 식입니다.

우리에게 모두 적용할 순 없지만…한국형 맞춤정책 필요

공공주택의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싱가포르. 싱가포르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편다 해도 우리나라의 상황과 배경이 다르다면 바로 벤치마킹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사실 싱가포르가 이런 공공아파트 정책을 편 것은 역사적인 배경, 정치적인 배경 등이 고루 섞여 있습니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의 분리. 독립된 싱가포르의 고민은 다양한 계통의 사람이 살아가는 싱가포르의 국민통합이었습니다. 리콴유 총리는 국민통합을 위해선 국민들이 국가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으로 자가소유 정책을 폈습니다. 집이 있어야 소속감도 생기고 그걸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논리였죠.

또 정치적으로는 리콴유 총리가 이끄는 인민행동당이 장기집권하면서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토지는 대부분 국가소유로 싼값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던 밑바탕이 있었던 거죠. 우리와는 정치적, 경제적 배경이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에서 느낀 점은 국민들을 위한 공공아파트가 훌륭하다는 것, 더 좋은 공공아파트를 짓기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는 것, 투기만큼은 막는다는 것, 연금과 연계해 집 걱정 없이 살게 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공아파트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집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도 아우르는 살기 편하고 좋은 공공주택을 짓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정책 설계가 필요합니다. 집 걱정 없이 생업에 전념해 아시아 최고국가가 된 싱가포르처럼 말입니다.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얘기에 일할 맛 떨어지는 요즘, 더욱 이런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연관 기사] 싱가포르, 4년이면 내집마련…주택·연금이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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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신혼 4년에 내집 마련, 자가소유율 90%…여긴 어디?
    • 입력 2018-10-18 07:01:27
    • 수정2018-10-18 19:54:20
    취재후·사건후
"컬렉트 키(collect key; 열쇠를 받다)…베리 익사이티드(very excited; 매우 흥분)"

"4년을 기다려서 오늘은 열쇠를 받는 날입니다. 열쇠를 받으려고 예약을 미리 하고 왔죠. 매우 흥분되고 또 긴장도 됩니다." -파 고, 켈빈 고 (싱가포르 신혼부부)

4년 전 결혼한 이 신혼부부, 오늘 어떤 열쇠를 받는 날일까요? 또 어디에 왔다는 걸까요? 이 부부는 사실 오늘 공공아파트 분양홍보관에 왔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LH(토지주택공사) 분양홍보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4년 전 분양 신청한 공공아파트가 이제 막 다 지어져서 입주를 위한 열쇠를 오늘 받는 겁니다. 디지털 자물쇠가 아닌지, 직접 실물 열쇠를 받으러 온 거죠. 누구에게나 새집 열쇠를 받아 현관문을 여는 날은 무척 흥분되고 기대되고 또 긴장되는 날이겠죠.

그런데 이 부부, 결혼한 지 4년밖에 안 됐습니다. 결혼하면서부터 청약을 넣어 분양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4년을 기다린 건 아파트가 실제로 완성되는 기간을 기다린 거고요. 어떻게 이렇게 일찍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던 걸까요? 그 비밀을 풀어보겠습니다.

인구밀도 세계 3위…1인 국민소득 세계 3위·아시아 1위

비밀을 풀기 위해 찾은 곳은 아시아의 작은 대국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 서울보다 조금 더 넓은 면적에 약 6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인구밀도로 세계 3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살고 있는지 알만합니다. 또 세계적인 금융, 상업의 중심지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돈이 많은 나라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3천 달러 정도로 우리나라의 2배에 달합니다.

싱가포르 머라이언
정리하면 땅 좁고, 사람 많고, 돈 많고.. 딱 '부동산 투기'하기 유리한 조건입니다. 동시에 집값 걱정하며 살 가능성이 높은 조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부동산 투기는 우리나라, 특히 서울만큼 심하지 않습니다. 또 집값 걱정하며 사는 국민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공공아파트가 전체의 80%…"누구나 살 수 있는 적당한 값의 집"

신혼부부가 바로 집을 분양받을 수 있는 이유, 집값 걱정 없이 사는 이유는 모두 공공아파트 덕분입니다. 싱가포르는 전체 주택의 80%를 HDB(주택개발청)라고 부르는 공공기관에서 직접 공급합니다. 우리나라 주택 시장이 민간 건설사 위주로 공급되는 것과 차이점이 있는 부분이죠.

공급 주체가 공공이다 보니 가격도 쌉니다. 현재 HDB에서 분양하는 신규 아파트값은 전용면적 110㎡ 기준으로 평균 3억 3천만 원 정도입니다. 싱가포르에도 물론 민간에서 짓는 콘도미니엄이라고 부르는 민영아파트가 있습니다. 수영장이 딸린 초고급 아파트죠. 다만 이곳에서 사는 사람은 전체 국민의 15%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 가격은 전용 110㎡ 기준으로 봐도 10억 원이 넘습니다. 이 민영아파트는 서울의 같은 면적 크기 신규 분양가 평균 7억 4천만 원 보다도 비싼 거죠. 다만 사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대다수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공공아파트 전경
단순하게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를 순서대로 매겨보자면 싱가포르 공공아파트(3억 원) < 서울 아파트 (7억 원) < 싱가포르 민간아파트 (10억 원) 이렇게 되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자가소유율은 90%에 달하고 이 가운데 80%는 HDB 공공아파트가, 10%는 민간아파트가 되는 셈입니다. 공공아파트값은 민간 아파트의 1/3 정도이니 부담도 크지 않은 겁니다.

교통+고급공공주택 부정적? "그런 개념 자체가 없어"

싱가포르 공공주택의 특징은 단순히 값이 싸다는 데만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다양한 요건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령 지하철역과 연계해 교통이 편리한 곳 위주로 공급한다든지,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만족할 만한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집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엘레나 씨 집 내부
이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공공아파트 정책을 펴고, 또 대부분 국민이 공공아파트에 살다 보니 부정적인 이미지 자체가 없었습니다. 취재 과정 중에 만난 여러 싱가포르 거주민들에게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공공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제게 되묻곤 했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었던 겁니다. 대답을 듣곤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해보며 부러우면서도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주택+연금 아우른 토털시스템…모든 생애에 걸쳐 도움

싱가포르 공공아파트의 또 다른 특징은 주택이 주택정책 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연금 시스템과 연계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었습니다.

현지 취재 둘째 날 저녁. 싱가포르에서 최근에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 곳을 찾았습니다. 말레이시아계 신혼부부의 집을 찾았는데요. 이들도 마침 결혼한 지 4년 된 부부였습니다. 어린아이 2명도 키우고요. 부부의 월 소득은 우리 돈으로 330만 원 정도로 싱가포르의 경제 수준을 봤을 때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새 아파트를 큰 부담 없이 마련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부부 인터뷰
"이사를 왔을 때 차이점이라는 것은 우리만의 공간이 있고 또 렌트비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다른 데 써야 할 비용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요.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자유로움 그런 걸 느끼게 됐습니다. CPF가 주택에 관한 모든 것을 커버해주거든요." -아디브 코사난(32), 하피사 카마루딘(30)

이 부부가 HDB아파트, 엄청나게 비싸진 않지만 그럼에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 아파트를 사면서 걱정하지 않은 건 CPF(중앙연금기금) 제도 덕분입니다.

CPF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싱가포르의 연금제도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주택, 의료, 노후 계정을 통합 관리하고 CPF연금을 주택을 구매할 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험료로는 월급의 20%를 근로자가 내고 고용주가 16%를 냅니다. 우리의 국민연금 각 4.5%보다는 훨씬 납부료율이 높지만 그만큼 받는 혜택이 크게 돌아옵니다.


이 부부도 분양가 3억 1천만 원 가운데 CPF를 통해 분양 선수금을 납부했고, 소득에 따른 보조금과 부모와 가까운 곳(4km 이내)에 살아서 받는 지원금 등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잔액은 앞으로 2.6%의 장기 저리로 25년 동안 연금에서 자동 납부됩니다. 따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 소득이 낮아도, 결혼을 막 했더라도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공공이라 아파트값 비싸지 않고, 그 비용마저도 연금으로 충당하는 식입니다.

우리에게 모두 적용할 순 없지만…한국형 맞춤정책 필요

공공주택의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싱가포르. 싱가포르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편다 해도 우리나라의 상황과 배경이 다르다면 바로 벤치마킹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사실 싱가포르가 이런 공공아파트 정책을 편 것은 역사적인 배경, 정치적인 배경 등이 고루 섞여 있습니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의 분리. 독립된 싱가포르의 고민은 다양한 계통의 사람이 살아가는 싱가포르의 국민통합이었습니다. 리콴유 총리는 국민통합을 위해선 국민들이 국가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으로 자가소유 정책을 폈습니다. 집이 있어야 소속감도 생기고 그걸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논리였죠.

또 정치적으로는 리콴유 총리가 이끄는 인민행동당이 장기집권하면서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토지는 대부분 국가소유로 싼값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던 밑바탕이 있었던 거죠. 우리와는 정치적, 경제적 배경이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에서 느낀 점은 국민들을 위한 공공아파트가 훌륭하다는 것, 더 좋은 공공아파트를 짓기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는 것, 투기만큼은 막는다는 것, 연금과 연계해 집 걱정 없이 살게 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공아파트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집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도 아우르는 살기 편하고 좋은 공공주택을 짓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정책 설계가 필요합니다. 집 걱정 없이 생업에 전념해 아시아 최고국가가 된 싱가포르처럼 말입니다.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얘기에 일할 맛 떨어지는 요즘, 더욱 이런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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