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어떻게 육아 천국이 되었나?…“스웨덴은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입력 2018.11.02 (17:52) 수정 2018.11.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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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진에 빈 자리는 없었다.

햇살은 따스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호수는 맑았고 단풍은 짙었다. 지난달 15일, 스웨덴에서 맞이한 북유럽 가을의 첫 인상이었다. 풍경도 예뻐서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때 프레임 안에 유모차가 들어왔다. 돌이 채 안 된 듯 보이는 아가와 젊은 부부가 같이 있었다. 10월의 가을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림 같아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오늘은 평일인데..."

아이가 참 예쁘다며 인사를 했다. 반갑게 맞아줬다. "소풍인가요?" 물었더니 "날씨가 좋잖아요. 매일 이렇게 나와요" 라고 답했다. 부부의 직업이 없는 건지, 일하는 중에 잠시 쉬는 건지, 아니면 휴직 중인지 구체적인 건 묻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다. 평일 낮,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반드시 이 부부만의 풍경은 아니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대변인 Niklas Lofgren스웨덴 사회보험청 대변인 Niklas Lofgren

아빠는 107일동안 '휴가 중'....비결은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북유럽의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할 수 있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실체를 확인하니, 왜 스웨덴은 평일 낮에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가 많은지, 그래서 그 누구의 빈자리도 없이 가족사진이 완성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보험료를 많이 낸다. 소득의 30% 정도를 각종 사회보험의 보험료로 낸다. 많이 내는 만큼, 많이 돌려받는다. 만기 적금처럼 미래를 준비하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내가 낸 보험료를 정부는 즉각 각종 혜택으로 돌려준다. 대표적인 것이 육아 관련 정책이다.

스웨덴 육아 정책의 핵심은 외벌이에서 맞벌이 가정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스웨덴은 남성에게도 육아를 위한 휴직 권리를 부여한 최초 국가이다. 1974년 여성에게만 해당하던 출산휴가 제도를 없애고, 양부모 모두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부모휴가(Foraldraledighet, 이하 육아휴직) 개념을 도입했다. 이름은 '부모 휴가'인데 대부분 남성들은 사용하지 않고 여성에게 양도했다. 여성의 육아 부담이 가중됐다.

그러자 스웨덴은 1991년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를 도입한다.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30일을 사용하도록 한 법이다. 2002년에는 60일, 그 후에는 90일로 할당일을 조금씩 늘려갔다. 현재 남성들은 평균 107일 정도의 육아 휴직을 사용한다.

1974년 아빠의 육아휴직 사용비율은 0% 였지만 1994년 10%대로 높아지고, 2016년에는 25%까지 높아졌다. 육아휴직은 아이가 12살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한 아이 당 480일, 390일 동안은 정부로부터 소득의 80%를 보장받고, 그 후 90일은 낮은 소득으로 보전을 해준다.


아이가 자라면서 혜택은 더 늘어난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임시 휴직'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역시 소득의 80%를 사업주에게 보장해준다. 1년에 아이 한 명당 8일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임시부모휴직'은 한 아이 당 7일까지는 별도의 진단서를 내지 않아도 된다. 단순한 열감기라도 부모가 아이 옆에 있기를 원하면 있어줄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16살이 될 때까지 아이 한 명마다 100유로의 아동 수당을 지급하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게 주거수당도 지급한다. 임대료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인데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18세~28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임대료와 집의 크기, 자녀 수, 소득 수준에 따라서 수당이 결정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 뿐 아니라, 동거 가정이나 이혼 가정, 한부모 가정을 함께 끌어안는 제도를 개발했다. 적어도,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가족의 형태로 차별을 두지는 않는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교수 Dr.Gunnar Anderson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교수 Dr.Gunnar Anderson

'목표'보다는 '남녀가 평등한 환경'...결과는 출산율 1.89

지금 스웨덴의 출산율은 1.89이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것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 스웨덴도 낮은 출산율로 고민한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와, 1990년대 심각한 금융위기와 고학력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율은 곤두박칠 쳤다.

스웨덴 스톡홀롬대학교 사회학과의 Gunnar Anderson 박사에게 그럴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스웨덴은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여성이 다시 직장에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여성의 육아 부담을 줄이고, 남녀가 평등한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을 뿐이라고.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출산율은 따라 올랐다고.

합계 출산율 0.97. 여성이 가임 기간동안 한 명이 채 안되는 출산을 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단순히 여성만, 혹은 부부만 탓할 수 없다. '똑똑한 젊은 여성' 들은 이제 아이를 키우는 것과, 그 대가로 감당해야 할 혹독한 현실을 맞바꾸길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 각오를 했더라도 젊은 부부에게 치솟는 집값과 사교육비, 육아비용은 산처럼 남아있다.

주거와 교육, 의료 대부분을 탄탄한 사회보장제도로 지원해주고 있는 유럽과 우리의 현실은 분명 다르다. 그래도 좌절은 말자. 스웨덴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은 말했다. "우리도 매우 느리게 느리게 발전해 온 것" 이라고. 우리도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는 그 길, 그 어느 중간쯤일 수도 있다.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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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11-02 17:58:32
    취재K
가족 사진에 빈 자리는 없었다.

햇살은 따스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호수는 맑았고 단풍은 짙었다. 지난달 15일, 스웨덴에서 맞이한 북유럽 가을의 첫 인상이었다. 풍경도 예뻐서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때 프레임 안에 유모차가 들어왔다. 돌이 채 안 된 듯 보이는 아가와 젊은 부부가 같이 있었다. 10월의 가을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림 같아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오늘은 평일인데..."

아이가 참 예쁘다며 인사를 했다. 반갑게 맞아줬다. "소풍인가요?" 물었더니 "날씨가 좋잖아요. 매일 이렇게 나와요" 라고 답했다. 부부의 직업이 없는 건지, 일하는 중에 잠시 쉬는 건지, 아니면 휴직 중인지 구체적인 건 묻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다. 평일 낮,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반드시 이 부부만의 풍경은 아니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대변인 Niklas Lofgren
아빠는 107일동안 '휴가 중'....비결은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북유럽의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할 수 있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실체를 확인하니, 왜 스웨덴은 평일 낮에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가 많은지, 그래서 그 누구의 빈자리도 없이 가족사진이 완성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보험료를 많이 낸다. 소득의 30% 정도를 각종 사회보험의 보험료로 낸다. 많이 내는 만큼, 많이 돌려받는다. 만기 적금처럼 미래를 준비하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내가 낸 보험료를 정부는 즉각 각종 혜택으로 돌려준다. 대표적인 것이 육아 관련 정책이다.

스웨덴 육아 정책의 핵심은 외벌이에서 맞벌이 가정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스웨덴은 남성에게도 육아를 위한 휴직 권리를 부여한 최초 국가이다. 1974년 여성에게만 해당하던 출산휴가 제도를 없애고, 양부모 모두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부모휴가(Foraldraledighet, 이하 육아휴직) 개념을 도입했다. 이름은 '부모 휴가'인데 대부분 남성들은 사용하지 않고 여성에게 양도했다. 여성의 육아 부담이 가중됐다.

그러자 스웨덴은 1991년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를 도입한다.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30일을 사용하도록 한 법이다. 2002년에는 60일, 그 후에는 90일로 할당일을 조금씩 늘려갔다. 현재 남성들은 평균 107일 정도의 육아 휴직을 사용한다.

1974년 아빠의 육아휴직 사용비율은 0% 였지만 1994년 10%대로 높아지고, 2016년에는 25%까지 높아졌다. 육아휴직은 아이가 12살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한 아이 당 480일, 390일 동안은 정부로부터 소득의 80%를 보장받고, 그 후 90일은 낮은 소득으로 보전을 해준다.


아이가 자라면서 혜택은 더 늘어난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임시 휴직'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역시 소득의 80%를 사업주에게 보장해준다. 1년에 아이 한 명당 8일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임시부모휴직'은 한 아이 당 7일까지는 별도의 진단서를 내지 않아도 된다. 단순한 열감기라도 부모가 아이 옆에 있기를 원하면 있어줄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16살이 될 때까지 아이 한 명마다 100유로의 아동 수당을 지급하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게 주거수당도 지급한다. 임대료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인데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18세~28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임대료와 집의 크기, 자녀 수, 소득 수준에 따라서 수당이 결정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 뿐 아니라, 동거 가정이나 이혼 가정, 한부모 가정을 함께 끌어안는 제도를 개발했다. 적어도,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가족의 형태로 차별을 두지는 않는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교수 Dr.Gunnar Anderson
'목표'보다는 '남녀가 평등한 환경'...결과는 출산율 1.89

지금 스웨덴의 출산율은 1.89이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것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 스웨덴도 낮은 출산율로 고민한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와, 1990년대 심각한 금융위기와 고학력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율은 곤두박칠 쳤다.

스웨덴 스톡홀롬대학교 사회학과의 Gunnar Anderson 박사에게 그럴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스웨덴은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여성이 다시 직장에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여성의 육아 부담을 줄이고, 남녀가 평등한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을 뿐이라고.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출산율은 따라 올랐다고.

합계 출산율 0.97. 여성이 가임 기간동안 한 명이 채 안되는 출산을 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단순히 여성만, 혹은 부부만 탓할 수 없다. '똑똑한 젊은 여성' 들은 이제 아이를 키우는 것과, 그 대가로 감당해야 할 혹독한 현실을 맞바꾸길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 각오를 했더라도 젊은 부부에게 치솟는 집값과 사교육비, 육아비용은 산처럼 남아있다.

주거와 교육, 의료 대부분을 탄탄한 사회보장제도로 지원해주고 있는 유럽과 우리의 현실은 분명 다르다. 그래도 좌절은 말자. 스웨덴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은 말했다. "우리도 매우 느리게 느리게 발전해 온 것" 이라고. 우리도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는 그 길, 그 어느 중간쯤일 수도 있다.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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