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가재 껍질 벗겨주는 아르바이트까지…中 ‘게으름뱅이’가 키우는 경제

입력 2018.12.2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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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낳은 아르바이트 "가재 껍질 대신 벗겨드립니다."

한국인의 '국민 야식'이 치킨이라면 중국에선 샤오룽샤(小龙虾)가 꼽힌다. 말 그대로 용처럼 생긴 민물 가재인데 크기에 비해 살이 적고 껍질을 벗기기도 불편하다. 하지만 워낙 맛이 좋아 해마다 샤오룽샤가 제철이면 '식욕'과 '게으름' 사이에 갈등하는 중국인들이 많다.

지난 여름 중국 상하이의 한 식당은 이런 고객들의 수요를 파고들어 '껍질 벗겨주는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내놓았다. 음식값의 15%를 서비스료로 지불하면 아르바이트생이 대신 껍질을 벗겨줘 샤오룽샤를 바로바로 집어먹을 수 있다는 것인데, '아예 대신 씹어달라고 하지 그러느냐'부터 '정말 원하던 서비스다'까지 네티즌들의 평가가 다양하게 쏟아졌다. 아르바이트생이 부지런히 껍질을 까면 한 달에 만 위안(한화 약 160만 원)까지도 번다고 하니 수요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의 ‘국민 야식’ 샤오룽샤중국인들의 ‘국민 야식’ 샤오룽샤

'100보 청년(百步青年)'의 한 끼는 배달 음식

지난 10월 일주일간의 긴 국경절 연휴 기간 자금성과 만리장성 등 중국 내 유명 관광지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 자료를 보면 국경절 기간 무려 2100만 명이 하루 평균 100걸음도 걷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100보 청년(百步青年)'이라 불리는 이들은 북적이는 거리를 피해 집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쇼핑과 게임을 즐기며 휴가를 보냈다.
'100보 청년'들은 회사 점심시간에도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수고로움 대신 몇 번의 스마트폰 클릭만으로 배달 앱을 이용해 한 끼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음식 배달뿐 아니라 꽃, 약품, 생필품 구매 등 '기타 심부름'까지 다 가능해졌다. 수수료는 들지만 시간을 아낀 만큼 여가를 즐긴다. 이렇다 보니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의 점심시간이면 맛집 건물 앞에 파랑, 노랑 유니폼의 배달 기사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배달 기사는 알리바바 계열의 '어러머(饿了么)' 소속이고 노랑 유니폼은 텐센트 계열의 '메이퇀와이마이(美团外卖)'. 중국의 대표 IT 대기업들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배달 시장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전면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어러머(饿了么, 좌)와 메이퇀와이마이(美团外卖, 우) 배달 기사들어러머(饿了么, 좌)와 메이퇀와이마이(美团外卖, 우) 배달 기사들

'란런(懒人) 경제'…게으름 피우는 데 쓴 돈 2조 6천억 원

중국에서 '란런 경제'가 부상하고 있다. '란런 경제'는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중국어 '란런(懒人)'과 경제를 합친 말이다. 게으르다는 말의 어감 때문에 부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기서 '란런'은 주로 바쁜 일상 때문에 귀찮은 가사 노동 시간 등은 최대한 줄이고 원하는 일에 시간을 더 쓰려는 20~30대를 가리킨다.

중국 최대 쇼핑몰인 타오바오(淘宝)가 최근 공개한 '란런 소비 데이터(懒人消费数据)'를 보면 이런 게으름뱅이들 때문에 형성된 시장이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보고서는 2018년 중국인들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지난해보다 70% 급증한 160억 위안(한화 약 2조 6,100억 원)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특히 지우우허우(1995년 이후 출생)들은 증가율이 1년 새 82% 늘어났다.

'란런 경제' 현상은 대도시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혼자 사는 '나홀로족'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란런'들은 소비에서 지불 능력과 주관이 있어서 돈을 들여서라도 시간을 아끼고 남는 시간을 관심사에 투자한다.

많은 상품 기획자들은 이런 추세에 발맞춰 '게으름뱅이'를 위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타오바오에선 오래 누워서 동영상을 봐도 편안한 소파와 스마트폰 거치대, 로봇 청소기 등이 지난해 대비 매출이 크게 올랐다. 여성들에겐 초간편하게 눈썹을 그릴 수 있는 눈썹 가이드나 요리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스마트 볶음기 등이 인기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폭발적 성장...새로운 '게으름' 발굴이 과제

'란런 경제'는 중국이 강점을 보이는 다양한 O2O(온라인+오프라인) 서비스 분야에서 확장되고 있다.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에 따르면, 특히 집으로 찾아와 서비스 해주는 자택 방문형 O2O 시장은 해마다 급증해 2019년에는 5,000억 위안(한화 81조 5천억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기 둔화 우려에 직면한 중국에서 란런 경제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래서 기업들은 새로운 게으름을 발굴하고 신규 '란런'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IT 공룡들까지 합세한 경쟁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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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0 16:23:18
    특파원 리포트
게으름이 낳은 아르바이트 "가재 껍질 대신 벗겨드립니다."

한국인의 '국민 야식'이 치킨이라면 중국에선 샤오룽샤(小龙虾)가 꼽힌다. 말 그대로 용처럼 생긴 민물 가재인데 크기에 비해 살이 적고 껍질을 벗기기도 불편하다. 하지만 워낙 맛이 좋아 해마다 샤오룽샤가 제철이면 '식욕'과 '게으름' 사이에 갈등하는 중국인들이 많다.

지난 여름 중국 상하이의 한 식당은 이런 고객들의 수요를 파고들어 '껍질 벗겨주는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내놓았다. 음식값의 15%를 서비스료로 지불하면 아르바이트생이 대신 껍질을 벗겨줘 샤오룽샤를 바로바로 집어먹을 수 있다는 것인데, '아예 대신 씹어달라고 하지 그러느냐'부터 '정말 원하던 서비스다'까지 네티즌들의 평가가 다양하게 쏟아졌다. 아르바이트생이 부지런히 껍질을 까면 한 달에 만 위안(한화 약 160만 원)까지도 번다고 하니 수요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의 ‘국민 야식’ 샤오룽샤
'100보 청년(百步青年)'의 한 끼는 배달 음식

지난 10월 일주일간의 긴 국경절 연휴 기간 자금성과 만리장성 등 중국 내 유명 관광지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 자료를 보면 국경절 기간 무려 2100만 명이 하루 평균 100걸음도 걷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100보 청년(百步青年)'이라 불리는 이들은 북적이는 거리를 피해 집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쇼핑과 게임을 즐기며 휴가를 보냈다.
'100보 청년'들은 회사 점심시간에도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수고로움 대신 몇 번의 스마트폰 클릭만으로 배달 앱을 이용해 한 끼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음식 배달뿐 아니라 꽃, 약품, 생필품 구매 등 '기타 심부름'까지 다 가능해졌다. 수수료는 들지만 시간을 아낀 만큼 여가를 즐긴다. 이렇다 보니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의 점심시간이면 맛집 건물 앞에 파랑, 노랑 유니폼의 배달 기사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배달 기사는 알리바바 계열의 '어러머(饿了么)' 소속이고 노랑 유니폼은 텐센트 계열의 '메이퇀와이마이(美团外卖)'. 중국의 대표 IT 대기업들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배달 시장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전면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어러머(饿了么, 좌)와 메이퇀와이마이(美团外卖, 우) 배달 기사들
'란런(懒人) 경제'…게으름 피우는 데 쓴 돈 2조 6천억 원

중국에서 '란런 경제'가 부상하고 있다. '란런 경제'는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중국어 '란런(懒人)'과 경제를 합친 말이다. 게으르다는 말의 어감 때문에 부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기서 '란런'은 주로 바쁜 일상 때문에 귀찮은 가사 노동 시간 등은 최대한 줄이고 원하는 일에 시간을 더 쓰려는 20~30대를 가리킨다.

중국 최대 쇼핑몰인 타오바오(淘宝)가 최근 공개한 '란런 소비 데이터(懒人消费数据)'를 보면 이런 게으름뱅이들 때문에 형성된 시장이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보고서는 2018년 중국인들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지난해보다 70% 급증한 160억 위안(한화 약 2조 6,100억 원)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특히 지우우허우(1995년 이후 출생)들은 증가율이 1년 새 82% 늘어났다.

'란런 경제' 현상은 대도시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혼자 사는 '나홀로족'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란런'들은 소비에서 지불 능력과 주관이 있어서 돈을 들여서라도 시간을 아끼고 남는 시간을 관심사에 투자한다.

많은 상품 기획자들은 이런 추세에 발맞춰 '게으름뱅이'를 위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타오바오에선 오래 누워서 동영상을 봐도 편안한 소파와 스마트폰 거치대, 로봇 청소기 등이 지난해 대비 매출이 크게 올랐다. 여성들에겐 초간편하게 눈썹을 그릴 수 있는 눈썹 가이드나 요리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스마트 볶음기 등이 인기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폭발적 성장...새로운 '게으름' 발굴이 과제

'란런 경제'는 중국이 강점을 보이는 다양한 O2O(온라인+오프라인) 서비스 분야에서 확장되고 있다.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에 따르면, 특히 집으로 찾아와 서비스 해주는 자택 방문형 O2O 시장은 해마다 급증해 2019년에는 5,000억 위안(한화 81조 5천억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기 둔화 우려에 직면한 중국에서 란런 경제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래서 기업들은 새로운 게으름을 발굴하고 신규 '란런'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IT 공룡들까지 합세한 경쟁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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