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방송 녹화에 여자 심판은 치마 필수”…당구연맹의 ‘이상한 권유’

입력 2019.01.25 (10:01) 수정 2019.01.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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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가명, 여성)씨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당구의 매력에 쏙 빠졌습니다. 김 씨는 당구가 너무 좋아 늦깎이 선수 생활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선수생활은 당구에 대한 그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지 못했습니다.

선수생활을 이어오던 김 씨는 2007년부터 당구 경기 심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당구 고수들의 경기를 보고 배우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당시 당구 심판은 보수도 없었습니다. 봉사활동 개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김 씨는 당구 경기에서 심판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만큼 당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김 씨가 지난 2017년, 심판직을 내려놨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2017년 9월 당시, 대한당구연맹심판위원장과 부위원장의 SNS 대화 내용2017년 9월 당시, 대한당구연맹심판위원장과 부위원장의 SNS 대화 내용

"예선도 녹화할 텐데 녹화는 여자 치마 필수"
2017년, 당구연맹심판위원회 지도부에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핵심 구성원 대부분이 교체됐습니다. 김 씨는 실력을 인정받아 이때 당구연맹 '심판 위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당구연맹심판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종목별 심판 위원, 그리고 일반 심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심판 위원은 실제 경기에서 일반 심판들을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만큼 김 씨의 역할은 컸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기쁨도 잠시, 김 씨는 대회마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합니다. 바로 '치마' 때문입니다.

김 씨는 "2017년 스리쿠션 아시아경기 때, 심판연맹위원장이 방송 녹화에 나오는 여자 심판들은 치마를 입자"고 말했다며 "여성 심판들에게 개인적으로 다 연락해 치마를 가져오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치마에 대한 '이상한 권유'가 시작된 겁니다.

김 씨가 초구를 놓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김 씨가 초구를 놓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어서 김 씨는 "심판을 봐야 하는 사람은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선수들 뒤를 따라가면서 봐야 하는데, 치마를 입고는 이게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심판이 초구를 놓을 때는 당구대 깊숙이 놓아야 해 많이 숙일 수도 있다"며 "치마를 입고 어떻게 그러나?"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 9월 당시, 대한당구연맹심판위원장과 부위원장의 SNS 대화 내용2017년 9월 당시, 대한당구연맹심판위원장과 부위원장의 SNS 대화 내용

"위원도 배제되는데..."
당구 심판 선정에 있어 위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본인도 2017년 '청주 직지 월드컵'에서 치마를 안 입어 불이익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대회 예선 당시 심판 서른 명 정도가 투입됐는데, 경기를 거치면서 경기 횟수가 줄어드니 심판도 차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 심판도 차출됐는데 그 당시 위원이었던 내가 본선 심판에서 배제됐다. 치마를 입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입장이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엔, "위원도 배제당하는데, 말 안 들으면 그냥 못 하는 거 아니냐. 심판 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인데"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부당한 것에 대항하던 저는 미운털이었다"
김 씨 말고도 피해를 주장한 사람은 또 있습니다. 또 다른 여성 심판 최수영(가명, 여성) 씨입니다.

최 씨는 KBS 취재진에, 김 씨와 비슷한 얘기를 전해왔습니다. 2017년 아시아권 대회부터 심판위원장이 치마를 강요했다는 겁니다.

최 씨는 "2017년 6월쯤, 저는 심판일 뿐,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성을 보여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과 일을 수행함에서 치마는 너무나 불편한 복장일 뿐, 심판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복장이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부당한 것에 대항하던 나는 미운털이었을 것이다"며 "2018년엔 단체의 위력을 이용해 (내게) 제재 고지서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최 씨가 평소 당구 관련 언론에 투고하던 칼럼의 내용과 개인 SNS에 올린 글이 심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일으켰다는 거였습니다.

이에 대해 최 씨는 대한체육회에 민원을 제기했고, 대한체육회에서는 연맹에 직권남용이라는 결론을 내려 '최 씨에게 제재를 가한 사람들을 징계하라'고 권고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대한당구연맹은 해당자들에게 경징계(견책)를 내렸습니다.

최 씨는 "이 건과 관련해 협박죄로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당구연맹 누리집에 올라온 심판위원회 복장규정. 대한당구연맹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대한당구연맹 누리집에 올라온 심판위원회 복장규정. 대한당구연맹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바로 가기] 대한당구연맹 홈페이지


"심판은 연맹에서 규정한 복장과 장비만 사용하여야 한다"
치마는 연맹 규칙상 문제가 없을까. 대한당구연맹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심판위원회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규정 중 제24조 2항 심판의 품위에서 복장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모호했습니다. '심판은 연맹에서 규정한 복장과 장비만 사용하여야 한다'가 내용의 전부였습니다.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규정한 복장'에 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규정, 있기는 한 걸까요.


"강요한 적은 없다. 권유만 했다"
심판 위원장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심판위원장은 취재진에 "입기 싫은 사람은 안 입었고, 그렇다고 배제하지도 않았다. 실제 경기에서 바지를 입은 여자 심판도 많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치마를 입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하며 강요가 아니라 권유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왜 치마를 권유했느냐는 질문엔 "2014년도에 스커트를 착용한 사례가 있었고,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몇몇 여성분들은 불편하다고 하는데, 반응이 어떻게 좋았는지.

위원장은 "심판 같아 보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다른 종목들도 여자 심판들이 스커트 착용하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납득이 가는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보자가 취재진에 제시한 '스커트 필수' 메시지는 뭐였을까요.

이에 대해 위원장은 "기왕에 입었던 사례가 있으니 입고 나가면 좋겠다고 부위원장에게 개인적 의견으로 얘기한 거다."라며 "문제가 될 거 같아서 바지 입은 여자 심판을 녹화에 배정했다. 필수라는 게 굳이 문제가 될만한 사안은 아닌 거 같은데"라고 말했습니다.


강요인가 권유인가?
이번 이야기는 '치마를 강요(혹은 권유)'한 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연맹은 심판 하의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치마든, 바지든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겁니다.

문제는, 당구연맹심판위원회 위원장의 권한과 권력입니다. 심판 배치부터 다양한 요소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위원장이 하는 말, 단순히 권유로만 다가갈 수 있을까요?

김 씨가 취재진에게 한 말로 이야기를 끝내 보려 합니다.

"치마 얘기가 나와서, 옛날 생각이 났다. 1992년도에 회사 면접을 봤는데, 치마를 안 입으면 안 된다고 해서 떨어졌다. 그때 수치심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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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5 10:01:36
    • 수정2019-01-25 11:13:06
    취재K
김미진(가명, 여성)씨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당구의 매력에 쏙 빠졌습니다. 김 씨는 당구가 너무 좋아 늦깎이 선수 생활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선수생활은 당구에 대한 그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지 못했습니다.

선수생활을 이어오던 김 씨는 2007년부터 당구 경기 심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당구 고수들의 경기를 보고 배우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당시 당구 심판은 보수도 없었습니다. 봉사활동 개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김 씨는 당구 경기에서 심판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만큼 당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김 씨가 지난 2017년, 심판직을 내려놨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2017년 9월 당시, 대한당구연맹심판위원장과 부위원장의 SNS 대화 내용
"예선도 녹화할 텐데 녹화는 여자 치마 필수"
2017년, 당구연맹심판위원회 지도부에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핵심 구성원 대부분이 교체됐습니다. 김 씨는 실력을 인정받아 이때 당구연맹 '심판 위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당구연맹심판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종목별 심판 위원, 그리고 일반 심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심판 위원은 실제 경기에서 일반 심판들을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만큼 김 씨의 역할은 컸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기쁨도 잠시, 김 씨는 대회마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합니다. 바로 '치마' 때문입니다.

김 씨는 "2017년 스리쿠션 아시아경기 때, 심판연맹위원장이 방송 녹화에 나오는 여자 심판들은 치마를 입자"고 말했다며 "여성 심판들에게 개인적으로 다 연락해 치마를 가져오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치마에 대한 '이상한 권유'가 시작된 겁니다.

김 씨가 초구를 놓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어서 김 씨는 "심판을 봐야 하는 사람은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선수들 뒤를 따라가면서 봐야 하는데, 치마를 입고는 이게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심판이 초구를 놓을 때는 당구대 깊숙이 놓아야 해 많이 숙일 수도 있다"며 "치마를 입고 어떻게 그러나?"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 9월 당시, 대한당구연맹심판위원장과 부위원장의 SNS 대화 내용
"위원도 배제되는데..."
당구 심판 선정에 있어 위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본인도 2017년 '청주 직지 월드컵'에서 치마를 안 입어 불이익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대회 예선 당시 심판 서른 명 정도가 투입됐는데, 경기를 거치면서 경기 횟수가 줄어드니 심판도 차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 심판도 차출됐는데 그 당시 위원이었던 내가 본선 심판에서 배제됐다. 치마를 입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입장이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엔, "위원도 배제당하는데, 말 안 들으면 그냥 못 하는 거 아니냐. 심판 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인데"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부당한 것에 대항하던 저는 미운털이었다"
김 씨 말고도 피해를 주장한 사람은 또 있습니다. 또 다른 여성 심판 최수영(가명, 여성) 씨입니다.

최 씨는 KBS 취재진에, 김 씨와 비슷한 얘기를 전해왔습니다. 2017년 아시아권 대회부터 심판위원장이 치마를 강요했다는 겁니다.

최 씨는 "2017년 6월쯤, 저는 심판일 뿐,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성을 보여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과 일을 수행함에서 치마는 너무나 불편한 복장일 뿐, 심판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복장이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부당한 것에 대항하던 나는 미운털이었을 것이다"며 "2018년엔 단체의 위력을 이용해 (내게) 제재 고지서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최 씨가 평소 당구 관련 언론에 투고하던 칼럼의 내용과 개인 SNS에 올린 글이 심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일으켰다는 거였습니다.

이에 대해 최 씨는 대한체육회에 민원을 제기했고, 대한체육회에서는 연맹에 직권남용이라는 결론을 내려 '최 씨에게 제재를 가한 사람들을 징계하라'고 권고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대한당구연맹은 해당자들에게 경징계(견책)를 내렸습니다.

최 씨는 "이 건과 관련해 협박죄로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당구연맹 누리집에 올라온 심판위원회 복장규정. 대한당구연맹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바로 가기] 대한당구연맹 홈페이지


"심판은 연맹에서 규정한 복장과 장비만 사용하여야 한다"
치마는 연맹 규칙상 문제가 없을까. 대한당구연맹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심판위원회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규정 중 제24조 2항 심판의 품위에서 복장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모호했습니다. '심판은 연맹에서 규정한 복장과 장비만 사용하여야 한다'가 내용의 전부였습니다.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규정한 복장'에 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규정, 있기는 한 걸까요.


"강요한 적은 없다. 권유만 했다"
심판 위원장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심판위원장은 취재진에 "입기 싫은 사람은 안 입었고, 그렇다고 배제하지도 않았다. 실제 경기에서 바지를 입은 여자 심판도 많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치마를 입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하며 강요가 아니라 권유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왜 치마를 권유했느냐는 질문엔 "2014년도에 스커트를 착용한 사례가 있었고,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몇몇 여성분들은 불편하다고 하는데, 반응이 어떻게 좋았는지.

위원장은 "심판 같아 보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다른 종목들도 여자 심판들이 스커트 착용하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납득이 가는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보자가 취재진에 제시한 '스커트 필수' 메시지는 뭐였을까요.

이에 대해 위원장은 "기왕에 입었던 사례가 있으니 입고 나가면 좋겠다고 부위원장에게 개인적 의견으로 얘기한 거다."라며 "문제가 될 거 같아서 바지 입은 여자 심판을 녹화에 배정했다. 필수라는 게 굳이 문제가 될만한 사안은 아닌 거 같은데"라고 말했습니다.


강요인가 권유인가?
이번 이야기는 '치마를 강요(혹은 권유)'한 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연맹은 심판 하의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치마든, 바지든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겁니다.

문제는, 당구연맹심판위원회 위원장의 권한과 권력입니다. 심판 배치부터 다양한 요소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위원장이 하는 말, 단순히 권유로만 다가갈 수 있을까요?

김 씨가 취재진에게 한 말로 이야기를 끝내 보려 합니다.

"치마 얘기가 나와서, 옛날 생각이 났다. 1992년도에 회사 면접을 봤는데, 치마를 안 입으면 안 된다고 해서 떨어졌다. 그때 수치심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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