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문체부, 국기원 개혁 신호탄?

입력 2019.02.28 (12:29) 수정 2019.04.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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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세계 태권도 본산' 국기원을 상대로 칼을 빼 들었다. 외부의 개혁 여론에 사실상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는 국기원 이사회를 향한 압박이다. 향후 국기원 개혁의 신호탄이 될 지 관심이다.

문체부, 국기원 향해 칼 빼든 배경은?

문체부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합동으로 지난 1월 실시한 국기원 사무 및 국고 보조금 검사 결과를 오늘(28일) 발표했다. 국기원의 지난해 예산 약 310억원 중 절반 가까운 145억여원이 국고보조금이었다. 올해 예산 약 270억원 중에서는 112억원 정도를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문체부의 검사는 국기원 개원 이래 처음이다. 문체부는 총 29건의 조치사항을 내놨다. 시정요구(10건), 개선요구(1건), 주의요구(3건), 권고(13개) 외외에 수사 의뢰도 두 건이나 된다.

최근 몇 년간 국기원 운영과 관련된 각종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오현득 전 국기원장은 지난해 직원 부정 채용,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및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동안 언론과 시민단체, 국기원 노동조합 등 국기원 안팎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을 중심으로 문체부가 국기원 고유 업무와 국고보조 사업 전반에 대해 검사한 배경이다.

불법적인 수익 사업에 퇴직수당 부당 지급까지…경찰에 수사 의뢰

국기원이 수익 사업을 하려면 주무관청인 문체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승인 또는 사전 협의 없이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 사이버 대학 설립, 태권도 프로경기 운영, VR 역사관 및 체험형 전시관, 태권도 관련 게임 개발, 캐릭터 상품 개발, 성지순례 프로그램, 국기원을 브랜드로 활용하는 사업 등이다.

문체부는 오 전 원장과 국기원 명소화사업 추진 단장인 국기원 김 모 이사를 태권도법 위반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또, 승인 없이 추진하고 있는 모든 수익 사업을 중단하고 사업 타당성을 재검토하도록 조치했다.

일부 임원에게 퇴직수당을 부당하게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전 사무처장 A씨는 내부 지침에 따라 산정된 퇴직 수당이 1억 9천 5백여만원이었다. 하지만, 운영이사회 의결로 두 배 가까운 3억 7천 만원을 지급했다.

전 사무총장 B씨도 1억 6천 4백여 만원을 받도록 돼 있었지만 원장 재량으로 2억 1천 5백여만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퇴직 신청 당시 징계 대상으로 대기발령을 받거나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어서 명예퇴직금 지급 대상 제외자였다는 사실이다. 또, 지급에 앞서 희망퇴직 대상 기간을 15년 근속에서 10년 근속자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오 전 원장의 배임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폐쇄적인 이사회…그들만의 잔치?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국기원 이사회의 폐쇄적인 구조 때문이다. 국기원 현 정관은 이사장과 원장, 당연직 이사를 포함해 이사를 최대 25인 이내로 두도록 하고 있다. 결원이 발생하면 2개월 이내에 임원을 보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1월 기준 22명이었던 재적이사는 사퇴 등의 이유로 현재 단 7명 뿐이다. 이사회는 이사 충원은 물론이고 당연직 이사 충원도 미루고 있다. 소수 이사들의 담합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구조인 셈이다.

국기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비상근 이사 5명에게 보수 성격의 활동비 및 임금도 지급했다. 김 모 이사는 명소화사업 추진위원장으로 2년 동안 월 250만원의 법인카드를 써 왔다. 이후 2018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명소화사업 추진단장으로 월 40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받았다. 다른 이사들도 국기원 시범단 부단장, 국기원 연수원 수석강사, 기술심의회 의장, 문화산업위원장 등을 겸직하며 적게는 월 12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국기원 정관은 비상근 임원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상근 임원에 대한 겸직 금지나 보수 및 활동비 지급 방식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다. 소수 이사들끼리 '그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더군다나, 행정 감사는 2016년 7월 해임됐고, 회계 감사도 2018년 9월 사임한 탓에 감사 기능도 마비됐다. 감사들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자체 감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국기원은 2018년 세입세출 결산 감사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 길 먼 국기원 내부 개혁

국기원은 지난해 오현득 원장 구속으로 거센 개혁 여론에 휩싸였다. 폐쇄적인 이사회 구조가 제왕적인 원장 체제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문체부가 중심이 돼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진흥재단 등 네 개 단체 추천 인사들로 개혁 태스크포스팀도 꾸렸다.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여론을 수렴했다. 국기원 이사들의 수를 크게 늘리고, 원장과 이사 선출을 투명하게 하는 정관 개정이 개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국기원 이사회의 내부 갈등으로 개혁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당초 홍성천 이사장은 지난 1월, 국기원 정상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7일 국기원에서 공청회를 연다. 최근 임시 이사회에서 네 명의 당연직 이사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총 7명 가운데 네 명의 이사들이 그런 합의는 없었다고 반발하면서 이사회 내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국기원 정관은 재적 이사 3분의 2의 찬성으로 개정된다. 공청회에서 아무리 좋은 의견들이 나오더라도 일부 이사들이 찬성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문체부의 검사…국기원 개혁의 신호탄 될까?

국기원은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특수법인이다. 이 때문에 주무 관청인 문체부는 국기원에 대한 정식 감사권도 없다. 국기원은 주 수입원인 승단 심사비가 매년 백 억원이 훌쩍 넘는다. 물론 전체 예산 절반 가까이를 국고 보조금을 받기는 하지만 이는 해외 태권도 사범 파견 등 대행 사업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아 정부 지원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래저래 문체부가 개입하기 힘든 모양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에 문체부가 깊숙히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문체부에 부담이다. 국기원 이사회가 사실상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음에도 문체부가 태권도계의 내부 개혁를 기대해왔던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체부의 국기원 검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개혁 여론을 등에 업고 문체부가 국기원 사태 해결에 적극 뛰어들 수도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문체부는 이번 국기원 검사 결과를 내놓으며 "<공익법인법>에 준해 법인의 사무 및 재산 상황을 감사하고 공개하도록 관련 법령의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투명하고 공정한 국기원 운영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개선안 마련'도 거듭 촉구했다. 국기원이 앞으로 어떻게 답할 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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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 빼든’ 문체부, 국기원 개혁 신호탄?
    • 입력 2019-02-28 12:29:54
    • 수정2019-04-03 0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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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세계 태권도 본산' 국기원을 상대로 칼을 빼 들었다. 외부의 개혁 여론에 사실상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는 국기원 이사회를 향한 압박이다. 향후 국기원 개혁의 신호탄이 될 지 관심이다. 문체부, 국기원 향해 칼 빼든 배경은? 문체부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합동으로 지난 1월 실시한 국기원 사무 및 국고 보조금 검사 결과를 오늘(28일) 발표했다. 국기원의 지난해 예산 약 310억원 중 절반 가까운 145억여원이 국고보조금이었다. 올해 예산 약 270억원 중에서는 112억원 정도를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문체부의 검사는 국기원 개원 이래 처음이다. 문체부는 총 29건의 조치사항을 내놨다. 시정요구(10건), 개선요구(1건), 주의요구(3건), 권고(13개) 외외에 수사 의뢰도 두 건이나 된다. 최근 몇 년간 국기원 운영과 관련된 각종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오현득 전 국기원장은 지난해 직원 부정 채용,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및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동안 언론과 시민단체, 국기원 노동조합 등 국기원 안팎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을 중심으로 문체부가 국기원 고유 업무와 국고보조 사업 전반에 대해 검사한 배경이다. 불법적인 수익 사업에 퇴직수당 부당 지급까지…경찰에 수사 의뢰 국기원이 수익 사업을 하려면 주무관청인 문체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승인 또는 사전 협의 없이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 사이버 대학 설립, 태권도 프로경기 운영, VR 역사관 및 체험형 전시관, 태권도 관련 게임 개발, 캐릭터 상품 개발, 성지순례 프로그램, 국기원을 브랜드로 활용하는 사업 등이다. 문체부는 오 전 원장과 국기원 명소화사업 추진 단장인 국기원 김 모 이사를 태권도법 위반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또, 승인 없이 추진하고 있는 모든 수익 사업을 중단하고 사업 타당성을 재검토하도록 조치했다. 일부 임원에게 퇴직수당을 부당하게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전 사무처장 A씨는 내부 지침에 따라 산정된 퇴직 수당이 1억 9천 5백여만원이었다. 하지만, 운영이사회 의결로 두 배 가까운 3억 7천 만원을 지급했다. 전 사무총장 B씨도 1억 6천 4백여 만원을 받도록 돼 있었지만 원장 재량으로 2억 1천 5백여만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퇴직 신청 당시 징계 대상으로 대기발령을 받거나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어서 명예퇴직금 지급 대상 제외자였다는 사실이다. 또, 지급에 앞서 희망퇴직 대상 기간을 15년 근속에서 10년 근속자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오 전 원장의 배임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폐쇄적인 이사회…그들만의 잔치?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국기원 이사회의 폐쇄적인 구조 때문이다. 국기원 현 정관은 이사장과 원장, 당연직 이사를 포함해 이사를 최대 25인 이내로 두도록 하고 있다. 결원이 발생하면 2개월 이내에 임원을 보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1월 기준 22명이었던 재적이사는 사퇴 등의 이유로 현재 단 7명 뿐이다. 이사회는 이사 충원은 물론이고 당연직 이사 충원도 미루고 있다. 소수 이사들의 담합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구조인 셈이다. 국기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비상근 이사 5명에게 보수 성격의 활동비 및 임금도 지급했다. 김 모 이사는 명소화사업 추진위원장으로 2년 동안 월 250만원의 법인카드를 써 왔다. 이후 2018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명소화사업 추진단장으로 월 40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받았다. 다른 이사들도 국기원 시범단 부단장, 국기원 연수원 수석강사, 기술심의회 의장, 문화산업위원장 등을 겸직하며 적게는 월 12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국기원 정관은 비상근 임원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상근 임원에 대한 겸직 금지나 보수 및 활동비 지급 방식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다. 소수 이사들끼리 '그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더군다나, 행정 감사는 2016년 7월 해임됐고, 회계 감사도 2018년 9월 사임한 탓에 감사 기능도 마비됐다. 감사들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자체 감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국기원은 2018년 세입세출 결산 감사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 길 먼 국기원 내부 개혁 국기원은 지난해 오현득 원장 구속으로 거센 개혁 여론에 휩싸였다. 폐쇄적인 이사회 구조가 제왕적인 원장 체제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문체부가 중심이 돼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진흥재단 등 네 개 단체 추천 인사들로 개혁 태스크포스팀도 꾸렸다.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여론을 수렴했다. 국기원 이사들의 수를 크게 늘리고, 원장과 이사 선출을 투명하게 하는 정관 개정이 개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국기원 이사회의 내부 갈등으로 개혁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당초 홍성천 이사장은 지난 1월, 국기원 정상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7일 국기원에서 공청회를 연다. 최근 임시 이사회에서 네 명의 당연직 이사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총 7명 가운데 네 명의 이사들이 그런 합의는 없었다고 반발하면서 이사회 내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국기원 정관은 재적 이사 3분의 2의 찬성으로 개정된다. 공청회에서 아무리 좋은 의견들이 나오더라도 일부 이사들이 찬성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문체부의 검사…국기원 개혁의 신호탄 될까? 국기원은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특수법인이다. 이 때문에 주무 관청인 문체부는 국기원에 대한 정식 감사권도 없다. 국기원은 주 수입원인 승단 심사비가 매년 백 억원이 훌쩍 넘는다. 물론 전체 예산 절반 가까이를 국고 보조금을 받기는 하지만 이는 해외 태권도 사범 파견 등 대행 사업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아 정부 지원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래저래 문체부가 개입하기 힘든 모양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에 문체부가 깊숙히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문체부에 부담이다. 국기원 이사회가 사실상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음에도 문체부가 태권도계의 내부 개혁를 기대해왔던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문체부의 국기원 검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개혁 여론을 등에 업고 문체부가 국기원 사태 해결에 적극 뛰어들 수도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문체부는 이번 국기원 검사 결과를 내놓으며 "<공익법인법>에 준해 법인의 사무 및 재산 상황을 감사하고 공개하도록 관련 법령의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투명하고 공정한 국기원 운영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개선안 마련'도 거듭 촉구했다. 국기원이 앞으로 어떻게 답할 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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