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부시 前 대통령, 죽이 맞았다”

입력 2019.05.23 (07:03) 수정 2019.05.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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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늘(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합니다.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감수하면서 추도식에 참석하는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 사이는 어땠는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게 전화 인터뷰를 통해 물었습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참여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사진출처: 연합뉴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사진출처: 연합뉴스]

■ “부시 말기에는 죽이 잘 맞았다”

이 전 장관은 “부시 대통령은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 사고였고, 노 대통령은 포용 정책이었다. 철학이 처음에는 안 맞았지만, 마지막에는 좋은 사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자 당시 야당이 ‘포용정책 실패’로 공격하면서 이 전 장관은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 전 장관은 야당의 공격은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자 참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격이라 생각해 장관직을 사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표 제출 뒤 20일도 안 돼서 부시 행정부의 강경 보수 기조의 대표 주자로 불리던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2006년 11월 경질됐고, 이후 미국의 대북 기조가 포용 정책으로 노선이 바뀌었고, 2007년 2ㆍ13 합의도 이끌어냈다고 이 전 장관은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시 전 대통령의 중간선거 참패도 럼스펠드 경질에 영향을 끼쳤겠지만, 끊임없는 노 대통령의 설득이 부시 대통령의 마음을 결국 바꿔놨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기분이 좋으셔서, 미국 네오콘들 때문에 잘 안 되고 있다가 되니까. ‘대북정책을 미국보다 반 발 뒤로 쫓아가도 괜찮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사실은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한 발짝 앞서나가면서 미국을 견인하려고 애썼는데. (중략) 북한 핵실험 한 달 후 부시가 대북 정책을 180도 바꿨어요. 그 바람에 부시 대통령 말기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죽이 맞은 거죠. 그래서 당시에 남북정상회담도 2007년에 한 거죠."

■ “김정일 거짓말쟁이라고 안 하겠다”

2004년 11월 칠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노무현-부시 前 대통령2004년 11월 칠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노무현-부시 前 대통령

이 전 장관은 “두 사람의 기질이 다른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합의된 게 많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관련 사례는 이 전 장관의 저서에도 언급된 바 있습니다. 2004년 11월 20일 칠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내용입니다.

노무현: 협상이라는 것은 원래 믿기 어려운 사람과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부시: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매우 좋은 지적입니다.
노무현: 협상할 때는 때로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참거나 협상이 끝날 때까지 미룰 필요가 있습니다.
부시: 좋은 지적입니다. 저는 김정일을 거짓말쟁이라고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이종석 전 장관 저서 <칼날 위의 평화> 299쪽 발췌

이후 부시 대통령은 북측과 상호 비방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4차 6자 회담에 이어 9.19 공동 성명을 이끌어냈습니다. 같은 달 미국은 북한의 통치자금을 동결하면서 이른바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07년 9월 호주 APEC 정상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대해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다”며 부시 대통령의 언급을 이끌어내려고 압박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명확히 할 게 없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한미 관계는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습니다.

퇴임 후 부시 전 대통령은 자서전 <결정의 순간>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기는 글’을 통해 “몇 가지 주요 현안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적었고 “2009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음을 밝히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한 뒤 추도식에 참석하는 부시 전 대통령은 북측의 도발 이후 강경파 럼스펠드를 경질했고, 집권 말기 포용 노선으로 틀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방한 뒤 워싱턴 정가에 비핵화 관련 여론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전망도 일부 제기됩니다. 일각에서는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란을 상대로 강경론을 제기하면서 경질설도 함께 거론되는 상황, 그리고 내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앞둔 상황 등은 부시 행정부가 먼저 겪었던 일과 유사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종의 ‘평행이론’이 아니겠냐는 겁니다.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재단에도 추도사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추도식 당일에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재로서는 순차 통역을 준비했다고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추도사에는 노 대통령과의 일화와 주요 업적을 회고하는 내용이 들어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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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3 07:03:09
    • 수정2019-05-23 09:33:01
    취재K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늘(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합니다.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감수하면서 추도식에 참석하는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 사이는 어땠는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게 전화 인터뷰를 통해 물었습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참여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사진출처: 연합뉴스]
■ “부시 말기에는 죽이 잘 맞았다”

이 전 장관은 “부시 대통령은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 사고였고, 노 대통령은 포용 정책이었다. 철학이 처음에는 안 맞았지만, 마지막에는 좋은 사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자 당시 야당이 ‘포용정책 실패’로 공격하면서 이 전 장관은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 전 장관은 야당의 공격은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자 참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격이라 생각해 장관직을 사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표 제출 뒤 20일도 안 돼서 부시 행정부의 강경 보수 기조의 대표 주자로 불리던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2006년 11월 경질됐고, 이후 미국의 대북 기조가 포용 정책으로 노선이 바뀌었고, 2007년 2ㆍ13 합의도 이끌어냈다고 이 전 장관은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시 전 대통령의 중간선거 참패도 럼스펠드 경질에 영향을 끼쳤겠지만, 끊임없는 노 대통령의 설득이 부시 대통령의 마음을 결국 바꿔놨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기분이 좋으셔서, 미국 네오콘들 때문에 잘 안 되고 있다가 되니까. ‘대북정책을 미국보다 반 발 뒤로 쫓아가도 괜찮다’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사실은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한 발짝 앞서나가면서 미국을 견인하려고 애썼는데. (중략) 북한 핵실험 한 달 후 부시가 대북 정책을 180도 바꿨어요. 그 바람에 부시 대통령 말기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죽이 맞은 거죠. 그래서 당시에 남북정상회담도 2007년에 한 거죠."

■ “김정일 거짓말쟁이라고 안 하겠다”

2004년 11월 칠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노무현-부시 前 대통령
이 전 장관은 “두 사람의 기질이 다른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합의된 게 많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관련 사례는 이 전 장관의 저서에도 언급된 바 있습니다. 2004년 11월 20일 칠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내용입니다.

노무현: 협상이라는 것은 원래 믿기 어려운 사람과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부시: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매우 좋은 지적입니다.
노무현: 협상할 때는 때로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참거나 협상이 끝날 때까지 미룰 필요가 있습니다.
부시: 좋은 지적입니다. 저는 김정일을 거짓말쟁이라고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이종석 전 장관 저서 <칼날 위의 평화> 299쪽 발췌

이후 부시 대통령은 북측과 상호 비방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4차 6자 회담에 이어 9.19 공동 성명을 이끌어냈습니다. 같은 달 미국은 북한의 통치자금을 동결하면서 이른바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07년 9월 호주 APEC 정상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대해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다”며 부시 대통령의 언급을 이끌어내려고 압박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명확히 할 게 없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한미 관계는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습니다.

퇴임 후 부시 전 대통령은 자서전 <결정의 순간>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기는 글’을 통해 “몇 가지 주요 현안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적었고 “2009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음을 밝히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한 뒤 추도식에 참석하는 부시 전 대통령은 북측의 도발 이후 강경파 럼스펠드를 경질했고, 집권 말기 포용 노선으로 틀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방한 뒤 워싱턴 정가에 비핵화 관련 여론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전망도 일부 제기됩니다. 일각에서는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란을 상대로 강경론을 제기하면서 경질설도 함께 거론되는 상황, 그리고 내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앞둔 상황 등은 부시 행정부가 먼저 겪었던 일과 유사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종의 ‘평행이론’이 아니겠냐는 겁니다.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재단에도 추도사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추도식 당일에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재로서는 순차 통역을 준비했다고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추도사에는 노 대통령과의 일화와 주요 업적을 회고하는 내용이 들어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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