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93→0? ‘증인 없는 청문회’ 우려에도 합의한 이유는?

입력 2019.09.04 (19:19) 수정 2019.09.0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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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릴 듯 열리지 않았던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민주당 이인영·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늘(4일) 오후 회동에서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오는 6일 하루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틀 전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만큼이나 예상 밖이었고, 전격적이었습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6일까지 송부해달라고 다시 요청했을 때만 해도 청문회 개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습니다. 한국당은 줄곧 증인 채택에 필요하다며 청문회까지 '닷새'의 여유 시간을 요구해왔습니다. 청문보고서 송부 기한이 6일 자정까지라, 남은 시간은 단 사흘. 이 물리적 시간을 고려하면 '이틀 청문회'도, 증인을 부르기도 어렵기 때문에 한국당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민주당과 한국당 원내대표들은 두 차례 회동을 한 뒤 청문회 합의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관심은 한국당의 선택에 쏠렸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서로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국회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으로 6일 청문회에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4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여야 원내대표 회동 후 인사청문회 합의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4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여야 원내대표 회동 후 인사청문회 합의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87→93→25→22→0? 증인 없는 청문회 가능성에도 합의한 이유

당초 한국당은 증인 없는 청문회는 '맹탕 청문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인 가족들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한국당은 지난달 27일 증인으로 조 후보자 가족 등 93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랬던 한국당이 오늘 합의에선 증인은 물론 청문 기간까지 모두 양보했습니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답은 오늘 한국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있었습니다. 공개회의에서는 청문회 개최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비공개회의로 전환된 이후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비공개회의에서 중진 의원들 대다수가 청문회를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청문회 개최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청문회를 반드시 해야 한다. 뭐하고 앉아 있느냐"고 원내지도부를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중진 의원 역시 "하루 청문회밖에 안 되고, 증인이 안 나오더라도 해야 한다. 후보자가 선서하고, 정식 청문회 하는 것과 변명에 그친 해명하는 자리와는 100배 다르다"고 발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4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4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

또다시 꺼내 든 나경원의 승부수…주효할까?

나 원내대표로선 고심 끝에 '조국 청문회'라는 승부수를 꺼낸 든 셈입니다. 이런 승부수는 그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지난 2일 오전, 나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조 후보자의 부인, 딸, 어머니를 증인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습니다. 증인을 양보하는 대신 청문회를 미루자 한 건데, 이 승부수에 대한 민주당의 답변은 단박 거절이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 기습적인 조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로 허를 찔린 한국당은 다음 날, 맞불 기자간담회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후보자가 없다 보니 주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2일 국회에서 열린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

‘반박 간담회’로 맞대응했지만, ‘결정타’ 없었다

질의 응답에서는 오히려 한국당의 원내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질문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간담회 도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6일까지 조국 후보자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송부 재요청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때 나 원내대표는 "조 후보자를 임명 강행할 경우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중대 결심' 발언 하루 만에 청문회 개최에 합의한 셈입니다.

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조국 후보자의 거짓! 실체를 밝힌다’ 간담회.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조국 후보자의 거짓! 실체를 밝힌다’ 간담회.

오락가락 행보에 쓴소리…“원내 전략이 없다”

한국당 내에서는 원내지도부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청문회 불가와 강행, 연기 사이에서 확실한 당의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외부 변수에 끌려다녔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달 28일 한국당의 긴급 의원총회입니다. 느닷없는 검찰의 조 후보자 주변인에 대한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조치 소식에 한국당은 의총을 소집해 청문회를 보이콧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원내지도부는 보이콧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다수 의원이 "청문회는 야당을 위한 장"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고 결과적으로 보이콧 논의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당내 반발에 나 원내대표가 체면을 구긴 셈인데, 오히려 민주당의 역공만 받았습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청문회를 보이콧하려 한다'는 프레임으로 공세에 나섰고, 한국당이 협상의 주도권을 내준 꼴이 됐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4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입장하고 있다.4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입장하고 있다.

뒤늦게 합의한 ‘6일 청문회’, 당내에선 불만 터져 나와

나 원내대표는 청문회 개최 합의 직후 간담회에서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만약 법대로 제대로 된 청문회를 하지 않고 일찌감치 조국 후보자의 청문회를 서둘러 진행해 마쳤다면 면죄부가 됐을 것"이라며 "청문회 시간이 늦어지면서 한국당에서 그동안 많은 의혹을 제기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반발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국당 법사위원인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맹탕에 맹탕을 더한 '허망한 청문회'를 통해 임명 강행에 면죄부만 주는 제1야당이 어디에 있느냐"고 비판했고, 법사위 일부 의원들은 "불만이 많다"고 공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또 있습니다. 애당초 여야가 합의했던 지난 2일과 3일 청문회가 열렸다면, 검증보다는 해명에만 방점이 찍힌 '조국 간담회'가 국회에서 열리지 않았을 테고, 의혹 당사자가 없어 주목도가 떨어진 '반박 간담회'도 굳이 열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대통령의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합의된 '국회의 시간', 그리고 이어진 지리멸렬한 협상 과정.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역량과 도덕성 검증을 지켜보며 이 사람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의 시간'이 빠져 있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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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4 19:19:32
    • 수정2019-09-04 20:48:53
    여심야심
열릴 듯 열리지 않았던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민주당 이인영·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늘(4일) 오후 회동에서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오는 6일 하루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틀 전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만큼이나 예상 밖이었고, 전격적이었습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6일까지 송부해달라고 다시 요청했을 때만 해도 청문회 개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습니다. 한국당은 줄곧 증인 채택에 필요하다며 청문회까지 '닷새'의 여유 시간을 요구해왔습니다. 청문보고서 송부 기한이 6일 자정까지라, 남은 시간은 단 사흘. 이 물리적 시간을 고려하면 '이틀 청문회'도, 증인을 부르기도 어렵기 때문에 한국당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민주당과 한국당 원내대표들은 두 차례 회동을 한 뒤 청문회 합의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관심은 한국당의 선택에 쏠렸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서로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국회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으로 6일 청문회에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4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여야 원내대표 회동 후 인사청문회 합의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87→93→25→22→0? 증인 없는 청문회 가능성에도 합의한 이유

당초 한국당은 증인 없는 청문회는 '맹탕 청문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인 가족들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한국당은 지난달 27일 증인으로 조 후보자 가족 등 93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랬던 한국당이 오늘 합의에선 증인은 물론 청문 기간까지 모두 양보했습니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답은 오늘 한국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있었습니다. 공개회의에서는 청문회 개최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비공개회의로 전환된 이후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비공개회의에서 중진 의원들 대다수가 청문회를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청문회 개최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청문회를 반드시 해야 한다. 뭐하고 앉아 있느냐"고 원내지도부를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중진 의원 역시 "하루 청문회밖에 안 되고, 증인이 안 나오더라도 해야 한다. 후보자가 선서하고, 정식 청문회 하는 것과 변명에 그친 해명하는 자리와는 100배 다르다"고 발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4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
또다시 꺼내 든 나경원의 승부수…주효할까?

나 원내대표로선 고심 끝에 '조국 청문회'라는 승부수를 꺼낸 든 셈입니다. 이런 승부수는 그간 몇 차례 있었습니다. 지난 2일 오전, 나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조 후보자의 부인, 딸, 어머니를 증인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습니다. 증인을 양보하는 대신 청문회를 미루자 한 건데, 이 승부수에 대한 민주당의 답변은 단박 거절이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 기습적인 조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로 허를 찔린 한국당은 다음 날, 맞불 기자간담회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후보자가 없다 보니 주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
‘반박 간담회’로 맞대응했지만, ‘결정타’ 없었다

질의 응답에서는 오히려 한국당의 원내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질문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간담회 도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6일까지 조국 후보자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송부 재요청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때 나 원내대표는 "조 후보자를 임명 강행할 경우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중대 결심' 발언 하루 만에 청문회 개최에 합의한 셈입니다.

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조국 후보자의 거짓! 실체를 밝힌다’ 간담회.
오락가락 행보에 쓴소리…“원내 전략이 없다”

한국당 내에서는 원내지도부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청문회 불가와 강행, 연기 사이에서 확실한 당의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외부 변수에 끌려다녔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달 28일 한국당의 긴급 의원총회입니다. 느닷없는 검찰의 조 후보자 주변인에 대한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조치 소식에 한국당은 의총을 소집해 청문회를 보이콧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원내지도부는 보이콧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다수 의원이 "청문회는 야당을 위한 장"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고 결과적으로 보이콧 논의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당내 반발에 나 원내대표가 체면을 구긴 셈인데, 오히려 민주당의 역공만 받았습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청문회를 보이콧하려 한다'는 프레임으로 공세에 나섰고, 한국당이 협상의 주도권을 내준 꼴이 됐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4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입장하고 있다.
뒤늦게 합의한 ‘6일 청문회’, 당내에선 불만 터져 나와

나 원내대표는 청문회 개최 합의 직후 간담회에서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만약 법대로 제대로 된 청문회를 하지 않고 일찌감치 조국 후보자의 청문회를 서둘러 진행해 마쳤다면 면죄부가 됐을 것"이라며 "청문회 시간이 늦어지면서 한국당에서 그동안 많은 의혹을 제기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반발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국당 법사위원인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맹탕에 맹탕을 더한 '허망한 청문회'를 통해 임명 강행에 면죄부만 주는 제1야당이 어디에 있느냐"고 비판했고, 법사위 일부 의원들은 "불만이 많다"고 공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또 있습니다. 애당초 여야가 합의했던 지난 2일과 3일 청문회가 열렸다면, 검증보다는 해명에만 방점이 찍힌 '조국 간담회'가 국회에서 열리지 않았을 테고, 의혹 당사자가 없어 주목도가 떨어진 '반박 간담회'도 굳이 열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대통령의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합의된 '국회의 시간', 그리고 이어진 지리멸렬한 협상 과정.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역량과 도덕성 검증을 지켜보며 이 사람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의 시간'이 빠져 있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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