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취재후] 책임지지 않는 권능…검찰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입력 2019.11.15 (07:00) 수정 2019.11.15 (07:01)

"자의적 검찰권 행사로 청구인(피의자)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

사례1. 부부가 말다툼을 했다. 남편이 TV모니터를 넘어뜨려 화면 유리가 깨졌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는 남편을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남편이 낸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재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재물손괴죄가 성립하려면 망가뜨린 물건이 남의 물건이어야 한다. 그런데 망가진 TV는 남편이 결혼전에 15만 원을 주고 중고로 구입한 자기 물건이었다. 헌재는 검찰에 '중대한 수사미진'이 있고, '법리도 오해'했다고 봤다.

사례2. 시동을 끄고 열쇠를 꽂아 정차시켜둔 화물차가 5미터 정도 움직여 인도를 넘어 건물 기둥에 부딪혔다.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 검사는 이 화물차를 운전한 15살 학생을 절도와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헌재는 이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절도 혐의가 성립하려면 훔치겠다는 의사가 확인돼야 한다. 무면허 운전죄는 고의 여부가 확인돼야 범죄가 성립한다. 피의자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특수학교 학생이었다. 헌재는 피의자에게 무면허 운전의 고의가 있었는지, 훔치겠다는 의사가 있었는지 규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에 중대한 법리오해,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명시했다.

KBS 탐사보도부가 한 건 한 건 확인한 헌법재판소의 기소유예 처분 취소 결정문에는 이렇게 '자의적 검찰권'이 행사된 사건이 빼곡히 기록돼 있었다. 2011년부터 지난 8월까지 323건이다.

같은 기간동안 억울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이 1,781건 접수됐다. 이 가운데 헌재는 1,556건을 심리했다. 그 가운데 저렇게 인용, 즉 기소유예 처분이 취소된 것이 323건이다. 인용율은 이제 나누기를 하면된다. 그냥 산수(算數)다. 323(인용 건수) 나누기 1,556(헌법소원심리 건수). 20.7583... 20.8%다.

취재진이 만난 많은 법조인들이 헌재의 기소유예 취소율 20.8%에 한결같이 기소재량권 남용이 있다고 봤다. 이런 처분의 오류와 오판을 줄일 수 있는 내외부적인 통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검찰의 생각은 달랐다. 검찰은 KBS 보도 직후 대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와 자료 하나를 뿌렸다. KBS 보도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0.016%이라는 숫자를 제시했다. 20.8%와는 엄청난 차이다.

자세히 들여다 봤다. 다시 산수(算數)다. 헌법소원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취소된 사건 수, 즉 분자(分子)의 수는 323으로 같다. 그럼 분모(分母)가 어마어마 하게 늘었다는 의미다. 검찰은 기소유예처분 취소 헌법소원의 심리 건수(1,556)가 아닌 검찰이 기소유예처분을 한 전체 사건수(1,987,332)를 분모로 썼다.

투표율을 계산하면서 투표자 수를, 유권자 수가 아닌 인구수로 나눈 것이나 같은 격이다. 게다가 검찰에 접수된 전체 사건수를 분모로 써서 0.002%라는 숫자도 만들어 냈다. 투표율 계산에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들까지 포함시킨 꼴이다.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범죄분석을 보면 검찰은 한 해 평균 34만 명 정도를 기소유예 처분한다. 이 가운데 90% 이상은 긍적적인 의미의 '선처'일 것이이라고 법조계는 평가한다. 좋다. 그러나 선처가 아닌 잘못된, 억울한 처분이 단 0.1% 라도 있다면 그건 문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잘못된 처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한 처분을 받고도 항의하거나 구제받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큰 문제다. 궁여지책으로 생소하고 어려운 헌법소원이라도 해서 기소유예 처분의 흔적을 없애겠다고 작심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 1,556명이다. 그 가운데 323명이 인용 결정을 받은 거다. 5명 중 한 명이다.

검찰이 보고 있는 10만 명 당 16명, 0.016%라는 수치에는 헌법소원이 청구되지 않은 기소유예처분에는 아무런 흠결도, 문제도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 전제가 적어도 부끄럽지 않으려면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에 대한 불복 절차가 제대로 마련돼 있어야 했다. 최소한 기소유예 통지서(피의사건 처분결과 통지서)에 최후의 기본권 구제 수단인 헌법소원에 대한 안내라도 있어야 했다.

검찰이 피의자의 평둥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수많은 결정이 쌓이도록 아무런 개선 움직임이 없었던 건 왜일까. 혹, 검찰이 그리고 법무부가 '0.016%'라는 통계수치를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헌법소원에서 기소유예 처분 취소 결정이 내려지면 검찰은 사건을 다시 수사하거나 검토해 최종 처분을 다시 내려야 한다.

KBS탐사보도부는 기소유예가 취소된 사건 323건에 대한 최종 처분 내역을 대검찰청에 요구했다. 검찰의 답변은 '대검찰청에서 일괄하여 관리·작성하고 있는 자료가 아니다'고 답변했다. 법무부는 해당 자료를 검찰과 공유하기 때문에 '검찰에 없으면 우리도 없다'고 답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답변이다. 하지만 굳이 이해하려 들자면 이렇게 보인다. 헌재의 기소유예 처분 취소 결정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피의자 기본권 침해에 대한 감수성이 없거나, 아니면 정말 오만이거나.


잘못된 기소유예처분을 한 검사에 대한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을 묻는 질문에 대검찰청은 '헌법소원 인용사건 평정'이라는 걸 통해 '수사검사 및 결재자의 과오 유무를 평정하고, 평정 결과는 인사 참고자료로 활용하며, 과오자 중한 경우 경고 또는 주의 등의 신분조치를 한다'고 답변했다.

경찰의 의뢰를 받아 음주운전자의 혈액을 채취한 간호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며 억울한 기소유예처분을 한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검사와 그 결재선에 대한 평정은 어떻게 됐을까.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관계자는 '평정이 진행중'이라고 했다.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건 2017년 9월 28일. 2년이 지났다.

간호사는 그 사이 헌법소원을 하고, 헌법재판소의 취소 결정을 받고, 보건복지부로부터 자격정지 통보를 받고, 또 다시 이의신청을 해야 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틀어쥔 검찰의 책임지지 않는 권능으로 무고한 간호사가 2년 넘게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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