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한국당 첫 불출마’ 유민봉 “진보·보수는 없다. 여·야만 있을 뿐”

입력 2019.11.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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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틈새라도 내겠다'며 한국당 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유민봉 의원. 몇 차례의 고사 끝에야 인터뷰가 이뤄졌습니다. 불출마 의사를 밝힌 지 8일째, 지난 14일이었습니다. 의원회관에서 유 의원과 마주 앉았습니다.

행정학자 출신인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뒤 한국당 비례대표 12번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그는 언론의 인터뷰나 출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숙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투명인간이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조용해 지냈다'던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말을 이어 갔습니다.

에둘러 말하기도 했지만, 한국당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준은 국민 눈높이였습니다. 당 지도부가 인적 쇄신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의원들은 응당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인 관점에선 황교안 대표에 대해 정치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면서, 비판을 경청하고 보다 학습의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습니다. 더 이상 '친박'은 없다고도 했습니다. 리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20대 국회에 대한 소회도 털어놨습니다. 여야가 공수가 바뀌면 입장마저 바꿔버리는 행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역지사지해서 국민 입장에서 국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현 정부에 대해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국정이 꼬이면 집권 여당이 포용하고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전문]

-불출마 공식 선언한 이유는?
"한국당에서 불출마 의사를 표했던 분들이 마음을 바꿨다는 얘기도 나오고, 당이 너무 경직적이니까 쇄신의 틈새가 안 보이는 거죠. 한국당이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국민의 절실함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인식이 고착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라도 공개적으로 불출마 선언해서 혁신의 물꼬를 트고 싶었어요. 또 작년에 불출마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는데도, 주변에서 계속 '어디 출마해라' '당신 같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하고, 심지어 '정치인은 약속 안 지켜도 된다'는 사람도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안된다. 정치인이 말에 책임지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저는 교수 출신이라 제자들 생각도 나고, 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당에 대한 국민 인식은?
"국민들은 현 정부 정책이나 인사 등에 우리 당이 대응하는 방식이 정말 위험하고 위태롭고 위기라고 보는 것 같아요. 오히려 국민들 보기에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광화문에만 나가도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잔다'고 하는 국민이 있는데, 우리 당 의원 중에 그런 분이 있느냐. 그러니 국민 입장에선 한국당 의원들 답답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인적 쇄신의 모습도 안 보이고.(15일 김성찬 의원 불출마 선언 전 인터뷰)"

-인적 쇄신의 방향은?
"조심스럽지만, 국회의원은 초선이든 다선이든 다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관중, 국민들은 '누구 내려와' 이럴 수 있지만, 같이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너 내려가'라고 하는 건 진정성 있는 모습은 아니죠. 내가 무대에서 내려갈 테니 우리 중에서 누가 좀 내려갈 필요가 있지 않으냐고 할 순 있겠지만. 나는 비례 초선이니까 내려간다 해도 관중들이 큰 의미를 부여하는 데 한계가 있고, 다선이나 당에서 중심 역할을 한 분들이 내려오면 관중들은 '아 무대가 좀 바뀌고 있구나'하면서 메시지가 분명해지겠죠. 다선에 당 대표까지 하신 김무성 의원이 며칠 전에 잘 얘기한 것 같아요. 다선·중진들이 불출마 내지, 험지에 출마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고. 그분 정도면 할 수 있는 얘기죠."

-불출마 주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대안은?
"지역구 의원들이 불출마하긴 쉽진 않아요. 뽑아준 지역 유권자들의 의견 존중해야 하고, 개인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에 불출마 의사를 표했던 분들의 경우에도 당의 쇄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걸 주저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당 지도부에서 기준을 가지고 인적 쇄신하겠다고 해야죠. 거기에 또 자신이 포함되면 기꺼이 물러날 수 있어야 하고."

지난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한국당 유민봉 의원.지난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한국당 유민봉 의원.

-당 지도부가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공천이 가능하겠어요? 총선 5개월 남았는데,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임박했을 때죠. 지금 한국당이 혁신하면서 그 긴장도를 유지할 여력이 있느냐. 없다면 지금은 국민 비난을 받더라도 적절한 때 몰아쳐서 변화에 집중하는 것도 전략일 수 있죠. 지금은 쇄신의 저항선, 그러니까 더 떨어지면 국민들이 완전히 이탈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지켜가면서 결정적 시점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황교안 대표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중도개혁 세력까지 보듬어 당 외연을 확장하는 부분은 확실하게 보강해야죠. 뭐랄까. 공무원 출신이 정치권에 들어와 정치력을 발휘하는 건 초기엔 쉽지 않아요. 한 분야에서 30년 안팎 일을 하면 일정한 사고의 패턴이 형성되는데, 정치권은 문화가 상당히 달라요.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정치인이 봤을 때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죠. 관건은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느냐. 기존 사고방식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구나 생각이 들면 빨리 전환해야죠. 비판을 수용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도 황 대표는 학습하고 있죠. 아직 학습 중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죠.

-황 대표 학습의 속도는 어때 보이나?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야죠. 우리 당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내년 총선을 종착점이라고 보면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순발력과 결단력이 황 대표에게 요구되는 거죠."

-보수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표출되는 양상인데?
"우선 친박과 비박의 선 긋기, 탄핵 정국과 20대 공천 과정에선 분명히 있었죠. 지금은 굉장히 와해가 된 상태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과거 친박·비박계에 속했던 의원이 어떤 발언을 하면 '친박·비박 갈등 프레임'으로 접근한다는 거에요. 유승민·원유철 의원도 역사성이 있죠. 19대 때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이었다는 걸 모르는 분도 꽤 많아요. 맥락을 모르면 최근 원 의원이 통합추진단장 맡은 뒤 왜 논란이 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거죠. 그때 기억을 끄집어내 친박과 비박 갈등으로 규정하는데, 그보단 개인적인 문제죠. 친박이든 비박이든 목소리를 크게, 자주 냈던 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계파의) 집단성을 갖진 않거든요. 리더가 없는데 어떻게 그 집단이 유지되겠어요?"

-친박·비박이 아니라 개인 차원의 문제다?
"우리공화당은 조원진 공동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 등을 봤을 때 집단성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한국당은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이나 공천 받았던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 집단을 형성하진 않잖아요. 누가 전략을 구상하고 행동을 단일화하고 있습니까?"

-보수대통합의 바람직한 방향은?
과거엔 1인 보스 중심의 위계적 집단을 형성했었는데, 지금 야당은 그렇지 않잖아요. 모든 정파를 다 아우르는 강력한 보수가 등장하거나 연합 결정기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쉽지 않죠. 그래서 대통합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꽤 있어요. 문제는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이에요. 여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행 처리할 의지가 분명하다면, 오히려 여당이 보수대통합을 전략적으로 좋아할 수도 있죠. 또 보수대통합이 안 된 상태에서 야당이 선거연대를 하면 여당이 불리한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고. 양면성이 있어요. 현행 선거제가 유지되면 보수대통합을 확실히 추진해야 하고, 연동형 비례제가 된다면 느슨한 형태의 선거 연대가 나을 수도 있고. 한국당, 그러니까 야당은 상수가 아니라 종속 변수라고 봐야죠. 종속 변수가 결단을 해서 상수화시키면, 그만큼 대응할 여지가 줄어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야당이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해요. 보수대통합을 서둘러 확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변혁에선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하는데?
"탄핵은 역사에 맡기자는 데 일정 부분 공감해요. 내년 총선 앞두고 힘을 합쳐야죠. 탄핵 이슈를 끄집어내면 우리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대립과 갈등, 비난만 있을 뿐이지. 보수에서 탄핵 먼저 정리하자고 하면 대통합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봐요. 힘, 투쟁력이 약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전략적 선택을 해야죠."

2013년 5월,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2013년 5월,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2년간 국정기획수석 역임했는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정권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드렸고,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국회에 있는 사람들에겐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텐데, 지난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더 책임이 크죠. 그럼 어떻게 책임질 건가? 우선 친박의 집단성이 해체돼야 해요. 집단으로 응집해 행동하기보다는 자숙하는 태도를 1차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유권자가 선택해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사퇴는 쉬운 일은 아니고. 저는 다른 분들보다 자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대 국회 개원하면서 각종 인터뷰, 방송 출연 요청이 많이 왔는데, 일절 응하지 않았죠.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오늘이 처음인데, 왜냐면 확실하게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입장이 아닌 한에는 변명일 뿐이잖아요. 실망하셨던 국민 눈으로는 아직도 충분히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사실 저는 '투명인간이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조용히 지냈고, 그 대신 정책에 집중했어요. 다른 분들께도 바라는 건 책임 지고 사퇴나 불출마로 내려놓을 수도 있겠지만, 발언하고 싶은 걸 발언하지 않는 것도 내려놓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그 자체가 국민 시각에선,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거죠."

-실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나?
"국민 눈높이에선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고, 또 지금 한국당이 외연을 넓히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20대 국회를 평가한다면?
"국회에 여당과 야당만 있을 뿐, 민주당과 한국당,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있는 건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면 집권 여당은 누가 집권해도 비슷하고, 또 어느 정당이라도 야당이 되면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는 거죠. 국회선진화법, 인사청문회법만 보더라도 여당은 개정하자고 하고, 야당은 반대하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 행복해지고,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역지사지해서 노력하는 건데, 여야 공수가 바뀌면 입장이 번복되는 걸 보면서 국민 입장에선 이 국회가 (국민과 동떨어진) 다른 집단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안타까움이 있죠."

-마지막으로 현 정부에 조언한다면?
"역사로부터 배워야죠. 특히 과거 정부를 적폐로 규정하면서까지 잘못을 징벌한다? 그런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면 이 정부는 그런 적폐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죠. 그런데 그런 게 반복되는 모습이 굉장히 안타깝죠. 또 하나는 정국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그 부담은 대통령과 여당이 안게 되거든요. 아무리 야당이 불합리하고 억지스러운 정치적 행동을 한다 해도, 국정이 꼬이면 이걸 풀어야 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어요. 그런 모습이 부족하다. 특히 한국당을 국정 동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정에 참여해야 할 정당으로,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포용성 측면에서 본다면 그런 부분이 너무 약하죠. 선을 딱 그어서 여기는 같이 갈 수 없는 집단 내지는 정당. 이렇게 배제하고 우리만 가도 된다는 모습이 많이 읽혀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국민들만 피곤한 거죠. 역대 정부에선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정부에선 그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하면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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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한국당 첫 불출마’ 유민봉 “진보·보수는 없다. 여·야만 있을 뿐”
    • 입력 2019-11-16 11:02:11
    여심야심
'빈 틈새라도 내겠다'며 한국당 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유민봉 의원. 몇 차례의 고사 끝에야 인터뷰가 이뤄졌습니다. 불출마 의사를 밝힌 지 8일째, 지난 14일이었습니다. 의원회관에서 유 의원과 마주 앉았습니다.

행정학자 출신인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뒤 한국당 비례대표 12번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그는 언론의 인터뷰나 출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숙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투명인간이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조용해 지냈다'던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말을 이어 갔습니다.

에둘러 말하기도 했지만, 한국당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준은 국민 눈높이였습니다. 당 지도부가 인적 쇄신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의원들은 응당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인 관점에선 황교안 대표에 대해 정치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면서, 비판을 경청하고 보다 학습의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습니다. 더 이상 '친박'은 없다고도 했습니다. 리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20대 국회에 대한 소회도 털어놨습니다. 여야가 공수가 바뀌면 입장마저 바꿔버리는 행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역지사지해서 국민 입장에서 국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현 정부에 대해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국정이 꼬이면 집권 여당이 포용하고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전문]

-불출마 공식 선언한 이유는?
"한국당에서 불출마 의사를 표했던 분들이 마음을 바꿨다는 얘기도 나오고, 당이 너무 경직적이니까 쇄신의 틈새가 안 보이는 거죠. 한국당이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국민의 절실함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인식이 고착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라도 공개적으로 불출마 선언해서 혁신의 물꼬를 트고 싶었어요. 또 작년에 불출마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는데도, 주변에서 계속 '어디 출마해라' '당신 같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하고, 심지어 '정치인은 약속 안 지켜도 된다'는 사람도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안된다. 정치인이 말에 책임지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저는 교수 출신이라 제자들 생각도 나고, 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당에 대한 국민 인식은?
"국민들은 현 정부 정책이나 인사 등에 우리 당이 대응하는 방식이 정말 위험하고 위태롭고 위기라고 보는 것 같아요. 오히려 국민들 보기에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광화문에만 나가도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잔다'고 하는 국민이 있는데, 우리 당 의원 중에 그런 분이 있느냐. 그러니 국민 입장에선 한국당 의원들 답답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인적 쇄신의 모습도 안 보이고.(15일 김성찬 의원 불출마 선언 전 인터뷰)"

-인적 쇄신의 방향은?
"조심스럽지만, 국회의원은 초선이든 다선이든 다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관중, 국민들은 '누구 내려와' 이럴 수 있지만, 같이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너 내려가'라고 하는 건 진정성 있는 모습은 아니죠. 내가 무대에서 내려갈 테니 우리 중에서 누가 좀 내려갈 필요가 있지 않으냐고 할 순 있겠지만. 나는 비례 초선이니까 내려간다 해도 관중들이 큰 의미를 부여하는 데 한계가 있고, 다선이나 당에서 중심 역할을 한 분들이 내려오면 관중들은 '아 무대가 좀 바뀌고 있구나'하면서 메시지가 분명해지겠죠. 다선에 당 대표까지 하신 김무성 의원이 며칠 전에 잘 얘기한 것 같아요. 다선·중진들이 불출마 내지, 험지에 출마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고. 그분 정도면 할 수 있는 얘기죠."

-불출마 주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대안은?
"지역구 의원들이 불출마하긴 쉽진 않아요. 뽑아준 지역 유권자들의 의견 존중해야 하고, 개인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에 불출마 의사를 표했던 분들의 경우에도 당의 쇄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걸 주저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당 지도부에서 기준을 가지고 인적 쇄신하겠다고 해야죠. 거기에 또 자신이 포함되면 기꺼이 물러날 수 있어야 하고."

지난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한국당 유민봉 의원.
-당 지도부가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공천이 가능하겠어요? 총선 5개월 남았는데,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임박했을 때죠. 지금 한국당이 혁신하면서 그 긴장도를 유지할 여력이 있느냐. 없다면 지금은 국민 비난을 받더라도 적절한 때 몰아쳐서 변화에 집중하는 것도 전략일 수 있죠. 지금은 쇄신의 저항선, 그러니까 더 떨어지면 국민들이 완전히 이탈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지켜가면서 결정적 시점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황교안 대표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중도개혁 세력까지 보듬어 당 외연을 확장하는 부분은 확실하게 보강해야죠. 뭐랄까. 공무원 출신이 정치권에 들어와 정치력을 발휘하는 건 초기엔 쉽지 않아요. 한 분야에서 30년 안팎 일을 하면 일정한 사고의 패턴이 형성되는데, 정치권은 문화가 상당히 달라요.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정치인이 봤을 때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죠. 관건은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느냐. 기존 사고방식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구나 생각이 들면 빨리 전환해야죠. 비판을 수용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도 황 대표는 학습하고 있죠. 아직 학습 중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죠.

-황 대표 학습의 속도는 어때 보이나?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야죠. 우리 당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내년 총선을 종착점이라고 보면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순발력과 결단력이 황 대표에게 요구되는 거죠."

-보수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표출되는 양상인데?
"우선 친박과 비박의 선 긋기, 탄핵 정국과 20대 공천 과정에선 분명히 있었죠. 지금은 굉장히 와해가 된 상태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과거 친박·비박계에 속했던 의원이 어떤 발언을 하면 '친박·비박 갈등 프레임'으로 접근한다는 거에요. 유승민·원유철 의원도 역사성이 있죠. 19대 때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이었다는 걸 모르는 분도 꽤 많아요. 맥락을 모르면 최근 원 의원이 통합추진단장 맡은 뒤 왜 논란이 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거죠. 그때 기억을 끄집어내 친박과 비박 갈등으로 규정하는데, 그보단 개인적인 문제죠. 친박이든 비박이든 목소리를 크게, 자주 냈던 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계파의) 집단성을 갖진 않거든요. 리더가 없는데 어떻게 그 집단이 유지되겠어요?"

-친박·비박이 아니라 개인 차원의 문제다?
"우리공화당은 조원진 공동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 등을 봤을 때 집단성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한국당은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이나 공천 받았던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 집단을 형성하진 않잖아요. 누가 전략을 구상하고 행동을 단일화하고 있습니까?"

-보수대통합의 바람직한 방향은?
과거엔 1인 보스 중심의 위계적 집단을 형성했었는데, 지금 야당은 그렇지 않잖아요. 모든 정파를 다 아우르는 강력한 보수가 등장하거나 연합 결정기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쉽지 않죠. 그래서 대통합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꽤 있어요. 문제는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이에요. 여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행 처리할 의지가 분명하다면, 오히려 여당이 보수대통합을 전략적으로 좋아할 수도 있죠. 또 보수대통합이 안 된 상태에서 야당이 선거연대를 하면 여당이 불리한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고. 양면성이 있어요. 현행 선거제가 유지되면 보수대통합을 확실히 추진해야 하고, 연동형 비례제가 된다면 느슨한 형태의 선거 연대가 나을 수도 있고. 한국당, 그러니까 야당은 상수가 아니라 종속 변수라고 봐야죠. 종속 변수가 결단을 해서 상수화시키면, 그만큼 대응할 여지가 줄어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야당이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해요. 보수대통합을 서둘러 확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변혁에선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하는데?
"탄핵은 역사에 맡기자는 데 일정 부분 공감해요. 내년 총선 앞두고 힘을 합쳐야죠. 탄핵 이슈를 끄집어내면 우리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대립과 갈등, 비난만 있을 뿐이지. 보수에서 탄핵 먼저 정리하자고 하면 대통합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봐요. 힘, 투쟁력이 약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전략적 선택을 해야죠."

2013년 5월,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2년간 국정기획수석 역임했는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정권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드렸고,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국회에 있는 사람들에겐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텐데, 지난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더 책임이 크죠. 그럼 어떻게 책임질 건가? 우선 친박의 집단성이 해체돼야 해요. 집단으로 응집해 행동하기보다는 자숙하는 태도를 1차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유권자가 선택해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사퇴는 쉬운 일은 아니고. 저는 다른 분들보다 자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대 국회 개원하면서 각종 인터뷰, 방송 출연 요청이 많이 왔는데, 일절 응하지 않았죠.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오늘이 처음인데, 왜냐면 확실하게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입장이 아닌 한에는 변명일 뿐이잖아요. 실망하셨던 국민 눈으로는 아직도 충분히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사실 저는 '투명인간이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조용히 지냈고, 그 대신 정책에 집중했어요. 다른 분들께도 바라는 건 책임 지고 사퇴나 불출마로 내려놓을 수도 있겠지만, 발언하고 싶은 걸 발언하지 않는 것도 내려놓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그 자체가 국민 시각에선,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거죠."

-실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나?
"국민 눈높이에선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고, 또 지금 한국당이 외연을 넓히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20대 국회를 평가한다면?
"국회에 여당과 야당만 있을 뿐, 민주당과 한국당,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있는 건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면 집권 여당은 누가 집권해도 비슷하고, 또 어느 정당이라도 야당이 되면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는 거죠. 국회선진화법, 인사청문회법만 보더라도 여당은 개정하자고 하고, 야당은 반대하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 행복해지고,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역지사지해서 노력하는 건데, 여야 공수가 바뀌면 입장이 번복되는 걸 보면서 국민 입장에선 이 국회가 (국민과 동떨어진) 다른 집단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안타까움이 있죠."

-마지막으로 현 정부에 조언한다면?
"역사로부터 배워야죠. 특히 과거 정부를 적폐로 규정하면서까지 잘못을 징벌한다? 그런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면 이 정부는 그런 적폐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죠. 그런데 그런 게 반복되는 모습이 굉장히 안타깝죠. 또 하나는 정국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그 부담은 대통령과 여당이 안게 되거든요. 아무리 야당이 불합리하고 억지스러운 정치적 행동을 한다 해도, 국정이 꼬이면 이걸 풀어야 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어요. 그런 모습이 부족하다. 특히 한국당을 국정 동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정에 참여해야 할 정당으로,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포용성 측면에서 본다면 그런 부분이 너무 약하죠. 선을 딱 그어서 여기는 같이 갈 수 없는 집단 내지는 정당. 이렇게 배제하고 우리만 가도 된다는 모습이 많이 읽혀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국민들만 피곤한 거죠. 역대 정부에선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정부에선 그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하면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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