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어린이법’ 계속 밀렸다…“야만의 정치, 선의 있는 줄”

입력 2019.11.30 (09:00) 수정 2019.12.02 (16:0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선의, 부모로서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29일) 국회 본회의가 무산된 뒤, 또다시 기자회견에 나선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을 봤다"고 했습니다. '민식이법'과 '하준이 법'이 본회의 표결 직전까지 온 것이 "국회의원들의 선의에 의한, 부모로서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목숨과 거래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말해줬다"고 했습니다.

국회 통과가 기대됐던 어린이 안전 관련 법안은 이른바 '민식이 법'과 '하준이 법'. 민식이 법은 스쿨존에 무인교통단속 장비와 신호등을 설치하는 내용이고, 하준이법은 경사진 곳에 설치된 주차장에 고임목과 미끄럼 주의 안내표지를 구비하는 내용입니다. 하준이는 2년 전, 경사진 주차장에 주차됐던 차량이 갑자기 내려오면서, 이를 피하지 못한 채 숨졌습니다.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가 지적한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피해 부모들이 지켜보던 긴급 기자회견에서 나왔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제안합니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서 우리 민식이 법 등에 대해서 먼저 상정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통과시켜줄 것을 제안합니다."

이후 나온 한국당의 설명처럼 '민식이 법'과 '하준이 법'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 원내대표는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어제 심야 의원총회 뒤에도 기자들에게 "민식이 법을 필리버스터 신청한 적이 없고, 5개 법안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다 처리하자고 분명히 민주당에 제안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전부 철회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시켜줄 수 없다고 해, 결국 민식이 법을 비롯한 민생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건 민주당 탓"이라고 했습니다.


3년 기다린 '해인이 법'·2년 기다린 '하준이 법', 통과 안 된 건 누구 탓?
'민식이법'같은 어린이 안전법, 그야말로 민생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건 누구 탓일까요?

여당인 민주당이 연내 처리를 공언한 5가지 어린이 안전법 중 하나인 '해인이 법'은 20대 국회 임기 초반인 2016년 8월 발의돼, 3년 넘게 심의를 기다렸습니다. 어린이 안전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가 질병과 사고 재해 등으로 위급한 상태가 되면 시설 관계자가 응급의료기관 이송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한 법안입니다. 민식이 법이 크게 이슈화하며 어린이안전법에 관심이 높아지고, 해인이 부모가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하면서 해인이 법도 지난 28일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습니다.

'하준이 법'은 본회의 직전까지 오는데 2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지난해 초 경사로에 고임목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등 비슷한 취지로 발의됐던 법안은 1년 넘게 심의다운 심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발의한 '하준이 법'은 넉 달 만에 본회의 표결을 앞두게 됐습니다. 이 법이 통과 안 된 2년 동안 적잖은 경사로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지난 8월 수도권의 한 도시에서는 경사로에 주차됐던 차량이 움직이면서 영아가 치여 숨진 사고도 있었습니다.

'민식이 법'은 어린이 안전 관련 법안 중엔 가장 나중에 발의됐습니다. 지난달 14일 발의돼 소관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직전까지 오는데 한 달여 걸렸습니다.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에 민식이 부모가 첫 질문을 해 여론의 큰 관심을 얻었고, 대통령이 대책을 약속하면서 드물게 신속히 진행됐습니다.

또 다른 어린이 안전법인 '한음이 법'은 3년 전에 '태호·유찬이 법'은 6개월 전에 각각 발의돼, '민식이법'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처리를 기다렸지만,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직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는 이 법안의 통과를 피하고 싶은 이해당사자들의 개별 의원들에 대한 압력이 적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5가지 어린이안전법안이 국회 법안 처리 과정의 어느 단계에 와있든, 공통점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 6개월 전, 그러니까 다음 총선을 코앞에 둔 연말에 '여론'에 떠밀려 집중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들이 흔히 말하는 '비쟁점 법안'이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20대 국회 임기 동안 적극적인 심의가 없었고, 처리가 한 건도 안 됐다는 겁니다.


생명 품은 엄마…"이런 나라에서 아이 어떻게 키우라고"
어린이안전법 통과를 위해 숨진 어린이들의 부모 일부는 생업을 내팽개치고, 집에 남아있는 더 어린 자녀들을 기다리게 하면서, 끊임없이 국회를 찾았습니다. 자신과 이웃의 남은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이들은 '공황' 직전 상태라고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기자회견을 한 부모 중엔 생명을 품은 엄마도 있었습니다. 태호 엄마 이소현 씨는 "아이들 생명을 지켜달라는 부모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시는지, 왜 그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소현 씨는 "이미 세상 떠난 아이들 살아 돌아올 수 없지만… 저는 5개월 임산부입니다. 이 아이를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키우라고 말씀을 하시는 건지, 다른 부모님들도 남은 아이들이 다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이 땅을 밟고 살아갈 수 있을지요?"라고 말하며 울먹였습니다.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는 "이런 분들을 우리가 세금으로 밥 먹이고 차 태워가며 이 국회에 보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정말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는 누가 하고 계시는지 얼굴 좀 한번 보시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출산율 0.88명. 이미 귀한 아이를 잃고, 남은 내 아이를, 이웃의 아이를 다시 안전하게 키우게 해달라고 30, 40대 젊은 엄마, 아빠들이 절규합니다. 평균 연령 58세, 20대 국회의원들은 남은 임기, 이들에게 어떤 답을 줘야 할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여심야심] ‘어린이법’ 계속 밀렸다…“야만의 정치, 선의 있는 줄”
    • 입력 2019-11-30 09:00:23
    • 수정2019-12-02 16:09:04
    여심야심
"국회의원들의 선의, 부모로서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29일) 국회 본회의가 무산된 뒤, 또다시 기자회견에 나선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을 봤다"고 했습니다. '민식이법'과 '하준이 법'이 본회의 표결 직전까지 온 것이 "국회의원들의 선의에 의한, 부모로서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목숨과 거래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말해줬다"고 했습니다.

국회 통과가 기대됐던 어린이 안전 관련 법안은 이른바 '민식이 법'과 '하준이 법'. 민식이 법은 스쿨존에 무인교통단속 장비와 신호등을 설치하는 내용이고, 하준이법은 경사진 곳에 설치된 주차장에 고임목과 미끄럼 주의 안내표지를 구비하는 내용입니다. 하준이는 2년 전, 경사진 주차장에 주차됐던 차량이 갑자기 내려오면서, 이를 피하지 못한 채 숨졌습니다.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가 지적한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피해 부모들이 지켜보던 긴급 기자회견에서 나왔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제안합니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서 우리 민식이 법 등에 대해서 먼저 상정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통과시켜줄 것을 제안합니다."

이후 나온 한국당의 설명처럼 '민식이 법'과 '하준이 법'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 원내대표는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어제 심야 의원총회 뒤에도 기자들에게 "민식이 법을 필리버스터 신청한 적이 없고, 5개 법안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다 처리하자고 분명히 민주당에 제안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전부 철회하지 않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시켜줄 수 없다고 해, 결국 민식이 법을 비롯한 민생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건 민주당 탓"이라고 했습니다.


3년 기다린 '해인이 법'·2년 기다린 '하준이 법', 통과 안 된 건 누구 탓?
'민식이법'같은 어린이 안전법, 그야말로 민생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건 누구 탓일까요?

여당인 민주당이 연내 처리를 공언한 5가지 어린이 안전법 중 하나인 '해인이 법'은 20대 국회 임기 초반인 2016년 8월 발의돼, 3년 넘게 심의를 기다렸습니다. 어린이 안전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가 질병과 사고 재해 등으로 위급한 상태가 되면 시설 관계자가 응급의료기관 이송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한 법안입니다. 민식이 법이 크게 이슈화하며 어린이안전법에 관심이 높아지고, 해인이 부모가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돌파하면서 해인이 법도 지난 28일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습니다.

'하준이 법'은 본회의 직전까지 오는데 2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지난해 초 경사로에 고임목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등 비슷한 취지로 발의됐던 법안은 1년 넘게 심의다운 심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발의한 '하준이 법'은 넉 달 만에 본회의 표결을 앞두게 됐습니다. 이 법이 통과 안 된 2년 동안 적잖은 경사로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지난 8월 수도권의 한 도시에서는 경사로에 주차됐던 차량이 움직이면서 영아가 치여 숨진 사고도 있었습니다.

'민식이 법'은 어린이 안전 관련 법안 중엔 가장 나중에 발의됐습니다. 지난달 14일 발의돼 소관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직전까지 오는데 한 달여 걸렸습니다.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에 민식이 부모가 첫 질문을 해 여론의 큰 관심을 얻었고, 대통령이 대책을 약속하면서 드물게 신속히 진행됐습니다.

또 다른 어린이 안전법인 '한음이 법'은 3년 전에 '태호·유찬이 법'은 6개월 전에 각각 발의돼, '민식이법'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처리를 기다렸지만,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직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는 이 법안의 통과를 피하고 싶은 이해당사자들의 개별 의원들에 대한 압력이 적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5가지 어린이안전법안이 국회 법안 처리 과정의 어느 단계에 와있든, 공통점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 6개월 전, 그러니까 다음 총선을 코앞에 둔 연말에 '여론'에 떠밀려 집중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들이 흔히 말하는 '비쟁점 법안'이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20대 국회 임기 동안 적극적인 심의가 없었고, 처리가 한 건도 안 됐다는 겁니다.


생명 품은 엄마…"이런 나라에서 아이 어떻게 키우라고"
어린이안전법 통과를 위해 숨진 어린이들의 부모 일부는 생업을 내팽개치고, 집에 남아있는 더 어린 자녀들을 기다리게 하면서, 끊임없이 국회를 찾았습니다. 자신과 이웃의 남은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이들은 '공황' 직전 상태라고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기자회견을 한 부모 중엔 생명을 품은 엄마도 있었습니다. 태호 엄마 이소현 씨는 "아이들 생명을 지켜달라는 부모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시는지, 왜 그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소현 씨는 "이미 세상 떠난 아이들 살아 돌아올 수 없지만… 저는 5개월 임산부입니다. 이 아이를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키우라고 말씀을 하시는 건지, 다른 부모님들도 남은 아이들이 다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이 땅을 밟고 살아갈 수 있을지요?"라고 말하며 울먹였습니다.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는 "이런 분들을 우리가 세금으로 밥 먹이고 차 태워가며 이 국회에 보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정말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는 누가 하고 계시는지 얼굴 좀 한번 보시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출산율 0.88명. 이미 귀한 아이를 잃고, 남은 내 아이를, 이웃의 아이를 다시 안전하게 키우게 해달라고 30, 40대 젊은 엄마, 아빠들이 절규합니다. 평균 연령 58세, 20대 국회의원들은 남은 임기, 이들에게 어떤 답을 줘야 할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