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예산안 지각대장’ 국회…올해도 또?

입력 2019.12.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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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국회는 해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의결합니다. 나라의 살림살이를 어디에 얼마나 쓸지, 감시하고 확정하는 권한은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권한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문에 이 권한은 헌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헌법 54조는 국회에 이 권한을 주면서, 의무도 하나 부여했습니다.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계연도 개시일은 이듬해 1월 1일, 따라서 개시 30일 전은 12월 2일입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지키라는 것은 헌법이 권한을 주면서 정한 국회의 '의무'인 셈입니다. 바로 오늘(2일)입니다.

국회는 과연 이 의무를 지킬 수 있을까요?


국회의 '상습 지각'..제대로 지킨 적 없는 '의무'

결론부터 얘기하면 오늘 국회 본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는, '의무'를 지키는 일은, 물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아직 채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예산심사 절차는 '조금' 남은 게 아니라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심사뿐 아니라 처리를 둘러싼 상황도, 웬만한 수학자도 혀를 내두를 고차원 방정식에 버금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상대만 탓할 뿐 방법이 없다는 여야, 왜 반성의 기미도 없을까요?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어긴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런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국회는 2014년 전까지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킨 일이 없습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이듬해 1월 1일 새벽 예산안을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까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지난해 예산안에 준해 최소 경비만 처리하는 '준예산'이 집행되는데, 거의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갔던 것입니다.

2014년에는 12월 2일 저녁 10시쯤, 법정시한을 지켜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이 적용된 첫해였습니다.

개정 국회법 85조의3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다음날인 12월 1일 예산안 정부 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 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바탕으로 한 달 넘게 싸우고 타협하며 깎고 늘렸던 예산안이 다 무위로 돌아가고, 정부의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2014년에 예산안 처리가 제때 이뤄졌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법정시한 다음날인 12월 3일 새벽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물론 지각이긴 하지만, 12월 2일 시작된 본회의가 자정을 넘겨 다음날 새벽 처리된 것이니 '의무'를 지켰다고 인정해줄 만 합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의 속칭 '개업발(개업특수)'은 3년이 한계였던 걸까요? 2017년에는 12월 6일, 2018년에는 12월 8일 예산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다시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법정처리 시한 준수가 사실상 어려워진 올해는 어떨까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예산안이 협상 카드?

'국민의 삶'과 직결된 예산안의 처리가 해마다 늦어지는 것은 해마다 예산안이 쟁점법안 협상의 '카드'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국회에는 항상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 법안'이 있습니다.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여야는 협상을 벌입니다. 이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정치입니다. 그런데 예산안이 여기에 협상 카드로 쓰이는 게 현실입니다.

여당은 가급적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정부의 예산안에는 이듬해 대통령이 국정을 펼치고자 하는 국정 기조가 반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야당은 정부가 불필요하게 '힘을 줬다'고 판단되는 예산을 깎으려 합니다. 야당이 보기에 불필요한 정부 정책을, 예산을 통해 견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예산안과 쟁점 법안 주고받기'가 이뤄져 왔습니다. 적당히 예산안을 조정하고 서로 원하는 법안을 주고받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많이 복잡합니다. 현재 여야의 최대 쟁점 법안은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입니다. 이미 오랜 기간 여야가 논쟁을 벌여왔고, 특히나 선거법의 경우는 개별 국회의원들의 명운이 걸려있는 법입니다. 단순히 예산안을 깎고 늘리며 '끼워 주고받기'에는 부담스러운 법들입니다.

여기에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이라는 돌발 상황마저 발생했습니다. '양대 악법'으로 규정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국당은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쟁점 법안 협상은 물론이고 예산안 논의도 함께 중단됐습니다.

현재 국회법이 정한 국회 예결위의 예산안 심사 기한은 만료됐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입니다. 이제 공식적인 심사(협상) 권한은 여야 원내대표가 갖게 됐습니다.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을 통해 예산안 수정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년의 경우 법정시한을 넘기면 여야 원내대표가 지정한 대리인(통상 예결위 간사)들이 물밑 협상을 벌이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모두 중단돼 있습니다. 예산안 감액 심사가 끝나야 증액 심사를 하는데, 이제 감액 심사가 절반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회 관계자는 "정기국회 내에(12월 10일 전) 예산안이 처리되려면, 물리적인 시간을 고려할 때 이번 주 내에는 예산안 심사가 재개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 2~3일 이내에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4+1(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예산안을 논의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습니다.

예산안 감액·증액에 선거법, 공수처법, '유치원 3법' 등 쟁점 법안들에 한국당의 필리버스터까지. 예산안 처리가 복잡한 고차방정식의 한 조각이 돼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도 또 '예산안 지각처리'가 불가피해진 이유입니다. 이미 '지각'을 하게 된 국회,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일까지 이제 겨우 6일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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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예산안 지각대장’ 국회…올해도 또?
    • 입력 2019-12-02 15:36:54
    여심야심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국회는 해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의결합니다. 나라의 살림살이를 어디에 얼마나 쓸지, 감시하고 확정하는 권한은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권한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문에 이 권한은 헌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헌법 54조는 국회에 이 권한을 주면서, 의무도 하나 부여했습니다.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계연도 개시일은 이듬해 1월 1일, 따라서 개시 30일 전은 12월 2일입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지키라는 것은 헌법이 권한을 주면서 정한 국회의 '의무'인 셈입니다. 바로 오늘(2일)입니다.

국회는 과연 이 의무를 지킬 수 있을까요?


국회의 '상습 지각'..제대로 지킨 적 없는 '의무'

결론부터 얘기하면 오늘 국회 본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는, '의무'를 지키는 일은, 물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아직 채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예산심사 절차는 '조금' 남은 게 아니라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심사뿐 아니라 처리를 둘러싼 상황도, 웬만한 수학자도 혀를 내두를 고차원 방정식에 버금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상대만 탓할 뿐 방법이 없다는 여야, 왜 반성의 기미도 없을까요?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어긴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런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국회는 2014년 전까지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킨 일이 없습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이듬해 1월 1일 새벽 예산안을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까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지난해 예산안에 준해 최소 경비만 처리하는 '준예산'이 집행되는데, 거의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갔던 것입니다.

2014년에는 12월 2일 저녁 10시쯤, 법정시한을 지켜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이 적용된 첫해였습니다.

개정 국회법 85조의3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다음날인 12월 1일 예산안 정부 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 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바탕으로 한 달 넘게 싸우고 타협하며 깎고 늘렸던 예산안이 다 무위로 돌아가고, 정부의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2014년에 예산안 처리가 제때 이뤄졌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법정시한 다음날인 12월 3일 새벽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물론 지각이긴 하지만, 12월 2일 시작된 본회의가 자정을 넘겨 다음날 새벽 처리된 것이니 '의무'를 지켰다고 인정해줄 만 합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의 속칭 '개업발(개업특수)'은 3년이 한계였던 걸까요? 2017년에는 12월 6일, 2018년에는 12월 8일 예산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다시 점점 뒤로 미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법정처리 시한 준수가 사실상 어려워진 올해는 어떨까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예산안이 협상 카드?

'국민의 삶'과 직결된 예산안의 처리가 해마다 늦어지는 것은 해마다 예산안이 쟁점법안 협상의 '카드'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국회에는 항상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 법안'이 있습니다.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여야는 협상을 벌입니다. 이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정치입니다. 그런데 예산안이 여기에 협상 카드로 쓰이는 게 현실입니다.

여당은 가급적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정부의 예산안에는 이듬해 대통령이 국정을 펼치고자 하는 국정 기조가 반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야당은 정부가 불필요하게 '힘을 줬다'고 판단되는 예산을 깎으려 합니다. 야당이 보기에 불필요한 정부 정책을, 예산을 통해 견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예산안과 쟁점 법안 주고받기'가 이뤄져 왔습니다. 적당히 예산안을 조정하고 서로 원하는 법안을 주고받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많이 복잡합니다. 현재 여야의 최대 쟁점 법안은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입니다. 이미 오랜 기간 여야가 논쟁을 벌여왔고, 특히나 선거법의 경우는 개별 국회의원들의 명운이 걸려있는 법입니다. 단순히 예산안을 깎고 늘리며 '끼워 주고받기'에는 부담스러운 법들입니다.

여기에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이라는 돌발 상황마저 발생했습니다. '양대 악법'으로 규정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국당은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쟁점 법안 협상은 물론이고 예산안 논의도 함께 중단됐습니다.

현재 국회법이 정한 국회 예결위의 예산안 심사 기한은 만료됐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입니다. 이제 공식적인 심사(협상) 권한은 여야 원내대표가 갖게 됐습니다.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을 통해 예산안 수정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년의 경우 법정시한을 넘기면 여야 원내대표가 지정한 대리인(통상 예결위 간사)들이 물밑 협상을 벌이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모두 중단돼 있습니다. 예산안 감액 심사가 끝나야 증액 심사를 하는데, 이제 감액 심사가 절반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회 관계자는 "정기국회 내에(12월 10일 전) 예산안이 처리되려면, 물리적인 시간을 고려할 때 이번 주 내에는 예산안 심사가 재개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 2~3일 이내에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4+1(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예산안을 논의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습니다.

예산안 감액·증액에 선거법, 공수처법, '유치원 3법' 등 쟁점 법안들에 한국당의 필리버스터까지. 예산안 처리가 복잡한 고차방정식의 한 조각이 돼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도 또 '예산안 지각처리'가 불가피해진 이유입니다. 이미 '지각'을 하게 된 국회,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일까지 이제 겨우 6일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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