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임금으로 받은 ‘가짜 종이돈’…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입력 2019.12.13 (08:27) 수정 2019.12.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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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저희같은 직장인들은 물론 일을 하시는 분들은 한달에 가장 기분좋은 순간이 바로 급여를 받는 날이죠.

그런데, 이 화면 한번 보시죠.

5만원, 7만원 이렇게 써있는데 종이쿠폰입니다.

이걸 임금로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금 대신 '종이 쿠폰' 일당을 받은 노동자들은 외국인들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현장으로 가보시죠.

[리포트]

일자리를 알선하는 파견 용역업체의 관계자가 인부들의 일당 지급을 위한 정산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뭉치를 들고 한참을 세더니 장부에 액수를 쓰는데요.

용역업체 관계자가 손에 쥐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종이 쿠폰입니다.

1만 원 권부터 5만 원, 7만 원, 10만 원까지.

이게 다 뭘까요?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종이돈 쿠폰 그걸 잔뜩 가지고 있더라고요. 좀 이상하잖아요. 왜냐고 물어보니까 일당을 돈으로 안 받고 종이돈으로 받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농장에서 밭일을 하고 현금 대신 종이돈으로 일당을 받았다는 베트남인.

그런데 이 같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최선희/대구경북 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 : "(피해) 규모는 한 200명 정도로 예상되고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피해 사실을 확인한 사람은 총 15명 정도고요. 15명의 피해 금액은 1억 3천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피해 사실을 고용노동청에 고발했습니다."]

해당 용역업체가 인부들을 모집하던 농촌으로 가봤습니다.

양파, 마늘 농사를 주로 짓는 이 마을은 겨울에 접어들면서 한산한 모습이었는데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일이 바쁜 철엔 아침마다 농장으로 출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합니다.

[인근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작년에는 많을 때는 한 400명 됐어요. 베트남 사람 제일 많고 그다음에 중국,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여자 경우는 6~7만 원이고 남자들은 9~10만 원. (작업시간) 긴 건 12만 원까지 하고요."]

[마을 주민/음성변조 : "70~80명 모여요. 아침마다. (차에) 싣고 가고 그런 거는 항상 보죠, 아침마다 제가. (아침) 6시 되면 전부 나오는 거예요. 이제 일하러 가려고. 그렇게 오면 (업체 관계자가) 어디로 가라, 어디로 가라 지시를 한다니까요. 그러면 몽땅 차로 움직여서 세 번, 네 번 흩어지는 거예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용역 업체를 통해서 일손을 구하는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농장 관계자/음성변조 :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일하러 와요? 안 와요. 끼고 하죠. 용역 업체 안 끼면 안 돼요."]

농사일이 바쁜 봄 여름철엔 일손이 부족하지만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한산해지는 탓에 인력을 고정적으로 채용할 수 없는 농장주들은 용역 업체를 통해 일손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건데요.

문제가 된 용역업체는 베트남인들을 상대로 SNS를 활용해 구인을 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베트남 분들이 SNS를 많이 사용하시더라고요. 마늘 양파 농사일이 많으니까 필요한 사람은 와서 일을 (하라고) 직업 소개를 올려놓은 거 같더라고요. 거기서 보고 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렇게 일자리를 구해 매일 밭에서 9시간 넘게 일한 베트남인들이 손에 쥔 건 바로 이 종이돈.

이 업체가 현금이 아닌 종이돈으로 일당을 지급한 이유는 뭘까요?

[인근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저도 물어봤어요. 왜 그런가. 한 4~50명 되니까. 아침에 사람 배분해야 되고 덥고 그러니까. 쿠폰 줘서 챙겨놨다가 그 쿠폰만큼 돈 주는 거지. 자기 쉬우려고 하는 거지. 그랬으면 (돈을) 줬어야 하는데 안 주니까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

하지만 단순히 정산을 손쉽게 하려는 목적인 것만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나중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며 현금이 아닌 종이돈을 줬지만 차일피일 미룬 정산은 1년이 훌쩍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생활용품도 필요하고 월세도 내야 되고 하니까 필요한 금액 한 달에 20만 원, 많게는 30만 원, 또 5만 원 줄 때도 있고. 최소한의 금액만 지급을 하고 지금까지 계속 미뤄 와서 누적돼 온 거죠."]

피해자들은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가족 초청 비자로 입국해 국내에서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악용한 거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가족 초청 비자는 취업 자체가 제한되어있어요. 종이돈 받는 걸 혹시나 노동부나 경찰이나 신고를 하게 되면 당신네들이 벌금을 내야 되고 혹시나 추방될 수도 있고 혹시나 더 크게 되면 징역까지 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신고를 전혀 못하도록 그런 분위기를…."]

[인근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자기는 속은 거 같다고 하길래 물어보니 돈 다 받았냐 하니까 못 받았다 얼마냐니까 1200만 원이라고 해. 그래서 알게 됐죠. 그 당시에 미수금이 3억 원 나오더라고. 올봄에. 전화하든가 해야지 왜 가만있냐 하니까 준다는 약속만 믿고 또 나와서 일할 데는 없고 하니까 돈 벌 욕심에 억지로 질질 끌려다니는 거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해온 건데요.

결국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출국한 이들도 있어 피해규모는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왜 지금까지 돈을 못 받았는데 일을 계속 하셨냐고 제가 물어봤어요. 물어보니까 하시는 말씀이 이거예요. 다른 분들은 2천만 원, 2천5백만 원, 2천7백만 원, 심지어 3천만 원 다 넘는데 다른 분들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일당 달라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냐고…."]

해당 용역 업체에서는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았던 농장에서 대금이 밀리면서 정산이 늦어진 거라는 입장입니다.

[해당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몇 억 원 아니고 몇 천만 원 그 정도라…. 우리는 협박도 한 적 없고요. 여기서 한 번도 안 했고요."]

하지만 취재진이 현장에서 만난 농장주들은 일당 지급을 미룬 적은 없다며 이번 일이 터지면서 가뜩이나 일손 부족한 상황에 시름만 깊어졌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농장 관계자/음성변조 : "우리는 바로바로 준다. 그렇게 안 하면 안 돼요. 누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딱 그날 그날 줘야 돼요. 안 그러면 다 떼먹어요. 반장이 또 따로 오거든. 그 사람이 바로 주던지 안 그러면 따로 다 주든지 해요."]

[마을 주민/음성변조 : "다 마늘 농사죠. 다 마늘 농사인데. 베트남 사람 없으면 못 지어요. 큰일 났어요. 안 그래도 내년에 어떨지 이 사건 때문에. 봄 되면 또다시 (베트남인이) 들어와야 되는데 들어올지 모르겠어요."]

해당 지방고용노동청은 이 업체가 무등록 파견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임금 체불 규모를 파악하는 등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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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임금으로 받은 ‘가짜 종이돈’…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 입력 2019-12-13 08:28:25
    • 수정2019-12-13 09: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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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저희같은 직장인들은 물론 일을 하시는 분들은 한달에 가장 기분좋은 순간이 바로 급여를 받는 날이죠.

그런데, 이 화면 한번 보시죠.

5만원, 7만원 이렇게 써있는데 종이쿠폰입니다.

이걸 임금로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금 대신 '종이 쿠폰' 일당을 받은 노동자들은 외국인들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현장으로 가보시죠.

[리포트]

일자리를 알선하는 파견 용역업체의 관계자가 인부들의 일당 지급을 위한 정산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뭉치를 들고 한참을 세더니 장부에 액수를 쓰는데요.

용역업체 관계자가 손에 쥐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종이 쿠폰입니다.

1만 원 권부터 5만 원, 7만 원, 10만 원까지.

이게 다 뭘까요?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종이돈 쿠폰 그걸 잔뜩 가지고 있더라고요. 좀 이상하잖아요. 왜냐고 물어보니까 일당을 돈으로 안 받고 종이돈으로 받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농장에서 밭일을 하고 현금 대신 종이돈으로 일당을 받았다는 베트남인.

그런데 이 같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최선희/대구경북 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 : "(피해) 규모는 한 200명 정도로 예상되고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피해 사실을 확인한 사람은 총 15명 정도고요. 15명의 피해 금액은 1억 3천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피해 사실을 고용노동청에 고발했습니다."]

해당 용역업체가 인부들을 모집하던 농촌으로 가봤습니다.

양파, 마늘 농사를 주로 짓는 이 마을은 겨울에 접어들면서 한산한 모습이었는데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일이 바쁜 철엔 아침마다 농장으로 출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합니다.

[인근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작년에는 많을 때는 한 400명 됐어요. 베트남 사람 제일 많고 그다음에 중국,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여자 경우는 6~7만 원이고 남자들은 9~10만 원. (작업시간) 긴 건 12만 원까지 하고요."]

[마을 주민/음성변조 : "70~80명 모여요. 아침마다. (차에) 싣고 가고 그런 거는 항상 보죠, 아침마다 제가. (아침) 6시 되면 전부 나오는 거예요. 이제 일하러 가려고. 그렇게 오면 (업체 관계자가) 어디로 가라, 어디로 가라 지시를 한다니까요. 그러면 몽땅 차로 움직여서 세 번, 네 번 흩어지는 거예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용역 업체를 통해서 일손을 구하는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농장 관계자/음성변조 :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일하러 와요? 안 와요. 끼고 하죠. 용역 업체 안 끼면 안 돼요."]

농사일이 바쁜 봄 여름철엔 일손이 부족하지만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한산해지는 탓에 인력을 고정적으로 채용할 수 없는 농장주들은 용역 업체를 통해 일손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건데요.

문제가 된 용역업체는 베트남인들을 상대로 SNS를 활용해 구인을 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베트남 분들이 SNS를 많이 사용하시더라고요. 마늘 양파 농사일이 많으니까 필요한 사람은 와서 일을 (하라고) 직업 소개를 올려놓은 거 같더라고요. 거기서 보고 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렇게 일자리를 구해 매일 밭에서 9시간 넘게 일한 베트남인들이 손에 쥔 건 바로 이 종이돈.

이 업체가 현금이 아닌 종이돈으로 일당을 지급한 이유는 뭘까요?

[인근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저도 물어봤어요. 왜 그런가. 한 4~50명 되니까. 아침에 사람 배분해야 되고 덥고 그러니까. 쿠폰 줘서 챙겨놨다가 그 쿠폰만큼 돈 주는 거지. 자기 쉬우려고 하는 거지. 그랬으면 (돈을) 줬어야 하는데 안 주니까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

하지만 단순히 정산을 손쉽게 하려는 목적인 것만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나중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며 현금이 아닌 종이돈을 줬지만 차일피일 미룬 정산은 1년이 훌쩍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생활용품도 필요하고 월세도 내야 되고 하니까 필요한 금액 한 달에 20만 원, 많게는 30만 원, 또 5만 원 줄 때도 있고. 최소한의 금액만 지급을 하고 지금까지 계속 미뤄 와서 누적돼 온 거죠."]

피해자들은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가족 초청 비자로 입국해 국내에서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악용한 거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가족 초청 비자는 취업 자체가 제한되어있어요. 종이돈 받는 걸 혹시나 노동부나 경찰이나 신고를 하게 되면 당신네들이 벌금을 내야 되고 혹시나 추방될 수도 있고 혹시나 더 크게 되면 징역까지 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신고를 전혀 못하도록 그런 분위기를…."]

[인근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자기는 속은 거 같다고 하길래 물어보니 돈 다 받았냐 하니까 못 받았다 얼마냐니까 1200만 원이라고 해. 그래서 알게 됐죠. 그 당시에 미수금이 3억 원 나오더라고. 올봄에. 전화하든가 해야지 왜 가만있냐 하니까 준다는 약속만 믿고 또 나와서 일할 데는 없고 하니까 돈 벌 욕심에 억지로 질질 끌려다니는 거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해온 건데요.

결국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출국한 이들도 있어 피해규모는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 가족/음성변조 : "왜 지금까지 돈을 못 받았는데 일을 계속 하셨냐고 제가 물어봤어요. 물어보니까 하시는 말씀이 이거예요. 다른 분들은 2천만 원, 2천5백만 원, 2천7백만 원, 심지어 3천만 원 다 넘는데 다른 분들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일당 달라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냐고…."]

해당 용역 업체에서는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았던 농장에서 대금이 밀리면서 정산이 늦어진 거라는 입장입니다.

[해당 용역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몇 억 원 아니고 몇 천만 원 그 정도라…. 우리는 협박도 한 적 없고요. 여기서 한 번도 안 했고요."]

하지만 취재진이 현장에서 만난 농장주들은 일당 지급을 미룬 적은 없다며 이번 일이 터지면서 가뜩이나 일손 부족한 상황에 시름만 깊어졌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농장 관계자/음성변조 : "우리는 바로바로 준다. 그렇게 안 하면 안 돼요. 누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딱 그날 그날 줘야 돼요. 안 그러면 다 떼먹어요. 반장이 또 따로 오거든. 그 사람이 바로 주던지 안 그러면 따로 다 주든지 해요."]

[마을 주민/음성변조 : "다 마늘 농사죠. 다 마늘 농사인데. 베트남 사람 없으면 못 지어요. 큰일 났어요. 안 그래도 내년에 어떨지 이 사건 때문에. 봄 되면 또다시 (베트남인이) 들어와야 되는데 들어올지 모르겠어요."]

해당 지방고용노동청은 이 업체가 무등록 파견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임금 체불 규모를 파악하는 등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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