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브라질 범죄조직이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린 내막

입력 2020.03.26 (10:37) 수정 2020.03.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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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조직의 활동은 대부분 밤에 은밀하게 이뤄진다. 그런데 어찌 된 걸까? 범죄조직이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마을에 야간 통행을 금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브라질에서 최근 일어나는 현상이다. 브라질 대도시에는 파벨라로 불리는 빈민가가 자리해 있다. 세계적 관광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만해도 760여 곳의 파벨라에 20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파벨라에는 마약밀매 등의 범죄조직이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사실상 파벨라의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에 이 범죄조직이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배경은 무엇일까?


"밤에 돌아다니면 폭력으로 처벌"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서부지역 파벨라 '시다지 지 데우스(신의 도시)',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범죄조직은 현지시각 22일, "밤 8시 이후 통행을 금지한다"고 마을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이를 어기면 폭력적인 방법으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졌다. 치안활동을 벌이는 특수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이들의 총기는 주민들에게 강한 위협이다. 범죄조직은 차량에 스피커를 달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야간통행금지령을 알렸다. "명령을 어기고 거리에 나와 있는 주민들은 누구라도 본보기로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문을 붙였다.


활동 근거지 코로나19 감염될라

리우 빈민가 파벨라에는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 5명 외에도 60여 명의 의심 환자(25일 오전 현재)가 보고됐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확진자와 의심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국은 파벨라를 코로나19의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고 있다. 보건위생이 열악한 데다 허름한 집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고,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이 부족하거나 비누가 없는 가정도 있어 위생이 관건인 코로나19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파벨라에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하면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파벨라 단체 대표들의 얘기다.

범죄조직들은 파벨라에 코로나19의 집단 감염이 일어나게 되면 자신들의 근거지가 위협받는 셈, 파벨라안에서 은밀하게 마약과 총기 밀매를 하고 있어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할 경우, 이들의 범죄 활동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거래되는 총기만 해도 1년에 백만 정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 때문에 범죄 조직은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우려해 보건당국에 한발 앞서 야간통행금지령을 주민들에게 명령한 것이다.


일자리 잃은 파벨라...86% 식품 구매할 돈 없다

파벨라 주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외에도 당장에 먹을거리를 살 돈이 부족해지고 있다. 파벨라 주민 대다수는 파벨라 밖 중산층과 부유층 가정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에 대부분 가정이 이들의 가사도우미 일을 중단시켰다. 외부로부터 가사도우미가 바이러스가 옮겨올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가 받는 일당은 미화 20달러에서 30달러 정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은 일자리가 끊기면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

최근 262개 파벨라의 천 백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파벨라 주민의 70%가 코로나19가 소득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고, 86%는 식품 등 생계를 이어갈 기본적인 물품을 구매할 돈이 없다고 호소했다. 파벨라 주민단체인 파벨라 통합센터(Cufa)는 브라질 전국의 파벨라 주민은 천3백60만 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바이러스와 싸우는 파벨라'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어 이들을 위한 온라인 모금에 들어갔다. 기부를 통해 식료품을 조달하고 노인과 어린이 보호 시설을 설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환율 급등...인플레이션도 괴롭혀

상파울루 시의 가장 큰 규모의 파벨라는 파라이조폴리스다. 이 파벨라 주민연합회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지역 여성들과 함께 파벨라 노인들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고 있다. 하지만 음식 재료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들의 봉사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브라질 헤알 환율이 급등하면서 달걀과 쇠고기 등의 재료 가격이 10%에서 30% 가까이 올랐다. 지우송 호드리게스 연합회장은 "슈퍼마켓에서 주식인 콩과 우유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가 영업 중단...냄비 시위

지난 24일부터는 브라질 상파울루 주의 모든 식당과 상점 영업이 중단됐다. 다음 달 7일까지 한정된 조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주 정부는 더 강한 방침을 내놓을 태세다. 식당과 상점 영업 중단으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당장에 점포 월세와 종업원들에게 지급할 월급을 마련하지 못해 종업원들의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어려워지는 생계에 지난 17일부터는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주요 도시에서는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중남미 특유의 냄비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를 감기의 한 종류로 표현하면서 '대규모 감금'을 끝내고 정상화해야 한다면서 "언론이 패닉과 히스테리를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각 주정부 주지사들은 현재 시행 중인 자가격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코로나19 조치를 두고 연방정부와의 갈등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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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6 10:37:13
    • 수정2020-03-26 10:37:53
    특파원 리포트
범죄조직의 활동은 대부분 밤에 은밀하게 이뤄진다. 그런데 어찌 된 걸까? 범죄조직이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마을에 야간 통행을 금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브라질에서 최근 일어나는 현상이다. 브라질 대도시에는 파벨라로 불리는 빈민가가 자리해 있다. 세계적 관광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만해도 760여 곳의 파벨라에 20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파벨라에는 마약밀매 등의 범죄조직이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사실상 파벨라의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에 이 범죄조직이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배경은 무엇일까?


"밤에 돌아다니면 폭력으로 처벌"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서부지역 파벨라 '시다지 지 데우스(신의 도시)',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범죄조직은 현지시각 22일, "밤 8시 이후 통행을 금지한다"고 마을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이를 어기면 폭력적인 방법으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졌다. 치안활동을 벌이는 특수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이들의 총기는 주민들에게 강한 위협이다. 범죄조직은 차량에 스피커를 달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야간통행금지령을 알렸다. "명령을 어기고 거리에 나와 있는 주민들은 누구라도 본보기로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문을 붙였다.


활동 근거지 코로나19 감염될라

리우 빈민가 파벨라에는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 5명 외에도 60여 명의 의심 환자(25일 오전 현재)가 보고됐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확진자와 의심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국은 파벨라를 코로나19의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고 있다. 보건위생이 열악한 데다 허름한 집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고,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이 부족하거나 비누가 없는 가정도 있어 위생이 관건인 코로나19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파벨라에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하면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파벨라 단체 대표들의 얘기다.

범죄조직들은 파벨라에 코로나19의 집단 감염이 일어나게 되면 자신들의 근거지가 위협받는 셈, 파벨라안에서 은밀하게 마약과 총기 밀매를 하고 있어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할 경우, 이들의 범죄 활동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거래되는 총기만 해도 1년에 백만 정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 때문에 범죄 조직은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우려해 보건당국에 한발 앞서 야간통행금지령을 주민들에게 명령한 것이다.


일자리 잃은 파벨라...86% 식품 구매할 돈 없다

파벨라 주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외에도 당장에 먹을거리를 살 돈이 부족해지고 있다. 파벨라 주민 대다수는 파벨라 밖 중산층과 부유층 가정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에 대부분 가정이 이들의 가사도우미 일을 중단시켰다. 외부로부터 가사도우미가 바이러스가 옮겨올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가 받는 일당은 미화 20달러에서 30달러 정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은 일자리가 끊기면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

최근 262개 파벨라의 천 백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파벨라 주민의 70%가 코로나19가 소득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고, 86%는 식품 등 생계를 이어갈 기본적인 물품을 구매할 돈이 없다고 호소했다. 파벨라 주민단체인 파벨라 통합센터(Cufa)는 브라질 전국의 파벨라 주민은 천3백60만 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바이러스와 싸우는 파벨라'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어 이들을 위한 온라인 모금에 들어갔다. 기부를 통해 식료품을 조달하고 노인과 어린이 보호 시설을 설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환율 급등...인플레이션도 괴롭혀

상파울루 시의 가장 큰 규모의 파벨라는 파라이조폴리스다. 이 파벨라 주민연합회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지역 여성들과 함께 파벨라 노인들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고 있다. 하지만 음식 재료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들의 봉사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브라질 헤알 환율이 급등하면서 달걀과 쇠고기 등의 재료 가격이 10%에서 30% 가까이 올랐다. 지우송 호드리게스 연합회장은 "슈퍼마켓에서 주식인 콩과 우유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가 영업 중단...냄비 시위

지난 24일부터는 브라질 상파울루 주의 모든 식당과 상점 영업이 중단됐다. 다음 달 7일까지 한정된 조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주 정부는 더 강한 방침을 내놓을 태세다. 식당과 상점 영업 중단으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당장에 점포 월세와 종업원들에게 지급할 월급을 마련하지 못해 종업원들의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어려워지는 생계에 지난 17일부터는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주요 도시에서는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중남미 특유의 냄비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를 감기의 한 종류로 표현하면서 '대규모 감금'을 끝내고 정상화해야 한다면서 "언론이 패닉과 히스테리를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각 주정부 주지사들은 현재 시행 중인 자가격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코로나19 조치를 두고 연방정부와의 갈등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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