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단독] 6번의 심정지에도 계속된 지방흡입…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입력 2020.07.02 (11:12)

수정 2020.07.02 (12:31)

■ 석 달 넘게, 눈 뜨지 못하는 신부

지난해 10월 결혼한 신부 박 모 씨는 오늘도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지난 3월 30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A 의원에서 지방흡입 수술을 받다 의식을 잃은 이후로 석 달째입니다.

남편 강 모 씨가 아침저녁으로 박 씨를 찾아가서 말을 걸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습니다. 병원에서는 박 씨에 대해 "향후 지속적인 의식 저하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며, 신경학적 기능의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박 씨는 지난 3월 이후 석 달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지난해 10월 결혼한 박 씨는 지난 3월 이후 석 달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의료진의 의무기록 : "코 골며 수면 중"

박 씨에게 일어난 일을 따져 보려면 여러 기록을 참고해야 합니다. 먼저 상담 기록지와 간호일지 등 의료진의 의무기록입니다. 의료법은 환자의 증상과 진단, 치료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서명하도록 합니다.

의무기록에 따르면 문제의 그 날, 3월 30일 오전 11시 의료진은 박 씨에게 코로나 19 관련 증상이 있는지 체크합니다. 낮 12시 50분부터는 프로포폴 주사로 마취를 시작합니다. 오후 2시 40분쯤에는 허벅지 뒷면 수술이 끝나는데, 이 직후 갑자기 호흡이 떨어집니다. 의료진은 자세를 바꾸고 기도를 확보합니다.

의무기록만 보면 그 이후로 수술은 순탄해 보입니다. 의료진은 의무기록을 통해, 오후 3시부터 박 씨가 '코 골며 수면'하고, '이름 부르면 눈 뜨고 잠꼬대'도 한다고 적었습니다. 이 사이 맥박은 109~112로 정상 범위보다 조금 높게 유지했고 산소포화도도 97~99 사이 정상 범위를 유지한 걸로 적혀 있습니다.

의료진은 의무기록에 박 씨가 오후 3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코 골며 수면”하거나 “잠이 많이 깬 듯”하다고 적었습니다.의료진은 의무기록에 박 씨가 오후 3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코 골며 수면”하거나 “잠이 많이 깬 듯”하다고 적었습니다.

오후 5시, 의료진은 박 씨의 산소공급을 제거합니다. 이때부터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오후 6시, 7시, 7시 30분에 각각 '잠이 많이 깬 듯함'이라고 적힌 게 다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오후 8시에 응급차를 부릅니다. 8시 30분, 옷을 입히는데 강직이 오는 듯해 산소를 다시 연결하고 마사지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의료진이 작성한 의무기록입니다.

■ CCTV의 기록 : 6번의 심폐소생

그런데 남편 강 씨가 받아본 당일 CCTV의 내용은 의료진의 설명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회복실로 옮겼다'는 의료진 말과 달리 박 씨는 구급대원들에게 이송되기 직전까지 수술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강 씨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수술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2시 50분, 수술을 집도하던 원장이 갑자기 박 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합니다. 7분여간 이어지던 흉부 압박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됐다, 또 멈춥니다. 그리고 또 6분여 뒤, 의료진이 다시 심폐소생술을 1분 남짓 실시합니다. 불과 15분 동안 심폐소생술 세 번 이뤄진 건데, 의학적 지식이 없는 강 씨가 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월 30일 이뤄진 박 씨의 지방흡입 수술에서 의료진은 최소 6번의 심정지에도 박 씨를 상급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지난 3월 30일 이뤄진 박 씨의 지방흡입 수술에서 의료진은 최소 6번의 심정지에도 박 씨를 상급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강 씨는 영상을 보며 "뭔가 조치를 취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심폐소생이 끝나고 3분 뒤, 원장은 수술복을 입더니 다시 수술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오후 3시 26분부터 14분가량 심폐소생술이 다시 시작되고, 12분 뒤 또 한 차례, 거기서 17분 뒤 또 한 차례 심폐소생이 이어집니다. 두 시간 만에 6번의 심폐소생이 진행된 건데, 다시 말하면 두 시간 동안 6번의 심정지가 찾아왔다는 뜻입니다.

■ 119구급일지의 기록 : 의료진의 거짓말 의혹

의무기록과 CCTV를 대조해 본 취재진도 병원 측의 의무기록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CCTV의 설정 시간은 실제 시각과 몇 분에서 몇십 분까지도 다른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확실한 시간을 알기 위해 박 씨의 구급활동일지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영상 속에서 구급 대원들이 도착해 환자에 접촉하는 시간은 오후 8시 52분경, 구급일지 상 환자 접촉도 같은 시각이니, 적어도 CCTV에 표시된 시간은 실제 시각과 같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신고 시각입니다. 의무 기록에서는 '오후 8시 응급차 연락'이라고 적혀 있는데, 구급일지 상에는 신고 일시가 20시 43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의무기록과 43분이나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의무기록을 허위로 기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취재진은 이 부분에 대해 A 병원 원장에게 여러 번 질의했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 전문의 아닌데 '성형외과 전문의' 표기

수술을 집도한 이 원장은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본인을 '국제미용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BS 취재 결과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이 같은 의혹에도 최근 병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체형성형 원탑(최고)'을 내세우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A 병원 원장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데도 홈페이지상 이력에 ‘국제미용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적시했습니다.A 병원 원장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데도 홈페이지상 이력에 ‘국제미용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적시했습니다.

박 씨를 둘러싼 여러 기록들은 서로 엇갈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CCTV 나 119 구급활동 일지의 조작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료진의 의무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 허위로 기록된 것은 없는지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6번의 심폐소생술에도 박 씨를 큰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수술을 이어간 이유에 대해 의료진은 "재판이 진행되면 성실하게 임하여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답만 남겼습니다.

사고 당일 박 씨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가족들은 A 의원 측으로부터 "환자가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실로 가서 회복하던 중,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걸 확인하고 큰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 강 씨는 "당황스럽고 경황이 없었지만 그래도 의료진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발생한 사고에 최선을 다해 대처해 준 거니까 감사 인사도 드렸다"고 말하며, 본인이 너무 순진했다며 자책했습니다.

박 씨의 가족들은 조만간 원장을 포함한 의료진들에 대해 의료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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