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한 경제 원로 ‘박봉주’…그의 역할은?
입력 2020.09.05 (08:06)
수정 2020.09.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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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 북한 파워엘리트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경제사령탑으로 불리는 박봉주 부위원장인데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올해 82살의 고령에도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식료공장 지배인이었던 박봉주는 어떻게 내각 총리를 거쳐 오늘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의 행보를 보면, 북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은 박봉주가 걸어온 길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가 북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나흘간의 회의가 끝나고, 당 간부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연단 앞으로 나온 김정은 위원장.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때마침 등장한 휠체어 한 대.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이었다.
회의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던 박봉주는 이날 김정은 위원장의 옆자리를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조선중앙TV/9월1일 :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동지가 황해남도 장연군의 여러 농장에서 태풍 피해 복구 사업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일, 박봉주는 황해남도 태풍피해 지역을 현지지도하며 노동신문 1면을 차지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여느 관료보다 적극적이고 섬세하게 피해상황을 살핀 박봉주.
주민들과 풀밭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의 주민친화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이라든지 경제 관료 또 당 관료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에요. 개인적 욕심이 없고 또 권력욕이 없고 오직 북한 경제 발전과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노력해온 인물이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북한 내 당과 국가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또 많은 경제 주체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보니까 이 사람이 계속 중용이 되고 있는 거고..."]
1939년, 함경북도 출생으로 알려진 박봉주.
그는 덕천 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기계제작 기사, 룡천 식료공장 지배인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 관료 출신이다.
1980년, 박봉주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데, 출신 성분이나 학벌 배경 없이 능력으로 승승장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박봉주라는 인물은 북한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겪은 사람은 아닙니다. 현장을 알고 기술을 알고 현지 형편을 알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그런 경제 전문가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도 무시할 수 없는 그래서 계속해서 중용하는 그런 케이스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박봉주가 고위 관료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초반. 당시 북한의 경제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정도의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개혁경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01년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그는 중국의 경제 성장에 놀라움도 드러내기도 했다.
[조선중앙TV/2001년 1월 : "김정일 동지께서는 세계가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해는 천지개벽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북한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 개혁 지시가 내려졌고, 2002년에는‘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단행됐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경제 기본 토대가 다 파괴가 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아 이것 가지고는 뭔가 안 되겠다 해서 내놓은 게 2002년 7월 1일 경제 개선 조치입니다. 북한에서는 개선, 경제 개선 조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조치를 내놓았고 이 총대를 맺던 사람이 바로 박봉주입니다."]
[조선중앙TV/2003년 : "회의에서는 내각총리 박봉주 대의원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승원들을 제기하였으며 전원 찬성으로 임명됐습니다."]
경제관리개선 조치 1년이 지난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봉주를 내각 총리직에 전격 발탁한다. 실무에 능하고 개혁 성향이 강했던 박봉주가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개혁 의지를 가장 잘 수행할 적임자였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경제 건설이 그만큼 절실했던 거고 박봉주의 경력을 보면 현장의 지배인 역할도 하고 또 다양한 내각 부서를 부서의 책임자를 다 경험하면서 북한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또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박봉주 부위원장만큼 경제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후 실제로 북한 경제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주민 생활에서부터 일어났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사는 게 나아졌지요. 농사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아, 장사요?) 네, 농민 시장이랑 해서..."]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농민시장은 옛날부터 있던 거 아니에요?) 이젠 마음대로 장사하게 해놨지요. 전에는 공업품 통제했었는데 이제는 시장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근로 의욕이 높아지면서 북한 경제 전반도 활기를 띄었다.
박봉주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계획경제 대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경제 정책에서도 시장 경제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KBS 뉴스9/2005년 3월 : "북한의 박봉주 총리가 보기 드물게 공개적으로 엿새간의 중국 방문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2005년, 중국을 방문한 박봉주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경제에 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박봉주/2005년 인터뷰 : "정보 산업 시대의 요구에 맞게 첨단 과학 기술을 향해서 회사가 더욱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박봉주의 추진력은 곧 힘을 잃고 만다.
개혁 조치로 영향력이 축소된 당과 군부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결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조직 지도부의 반발을 수용했고, 2007년 박봉주는 지방으로 좌천된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고영환 : "이것은 유일 지배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요소로 들어와서 우리 국민들을 파괴할 수 있다 이런 논리하고 부딪혀가지고 결국은 여기서 조직 지도부한테 밀려서 2007년도에 자리를 내놓고 다시 내려가는 거거든요."]
이후 2009년, 북한 당국은 경제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전격적인 화폐 개혁을 단행하지만 곧바로 실패에 봉착했다.
물가와 환율은 요동쳤고 주민들의 식량난은 가중됐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자, 화폐 교환 조치를 주도한 노동당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공개 처형되기도 했다.
박봉주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가 해임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더 나아지든지 뭔가 달라져야 되는데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게 2009년에 나왔던 화폐개혁 조치고 김정은 위원장이 그때도 후계자 수업을 받고 2011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자기가 권력 승계받아야 되는데 경제가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오히려 더 어려워진 거지. 그러니까 당장 경제 건설 통해서 주민 생활향상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3대 권력 세습자로서의 정당성 정통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박봉주를 부를 수밖에 없는 거죠."]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박봉주는 다시 핵심 엘리트 반열에 올라선다.
[조선중앙TV/2013년 : "박봉주 대의원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각 총리로 선거했습니다."]
이후 박봉주는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우리 식 경제 관리 방법의 핵심이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예요. 국가가 권한을 줄 테니까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 임금을 결정하는 권한 노동력을 채용하는 권한 투자를 받아들이는 권한 상당한 권한을 줄 테니까 경영활동을 잘해봐라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평양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지방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을 방법이 가져온 성과라고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나 지난해 4월, 북한 당국은 돌연 박봉주를 내각총리직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렇지만 박봉주가 여전히 경제 정책을 지휘 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저는 박봉주 총리를 당 중앙의 부위원장으로 돌린 거는 김정은 위원장의 어떤 배려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총리는 북한 경제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자리입니다. 그 총리 수명이 길지가 못해요. 뒤에서 경제하고 어떻게 잘 굴러가도록 좀 코치를 해달라 당신이 지침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 가라고 중책을 줬다고 생각을 해요."]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총동원되어 민심을 추스르고 있는 북한 당국.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분야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박봉주의 역할에 어느 때 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하는 거고 더 많은 자율과 권한 이런 것을 부여함으로 인해서 경제를 더 발전시키라는 그런 요구를 계속하고 있는 거고 그걸 지금 묵묵하게 박봉주 부위원장이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20년 가까이 핵심 엘리트로 북한 경제를 지휘하며 북한의 개혁 경제를 주도해온 박봉주.
박봉주의 진퇴와 북한 경제 상황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그려오고 있다.
여든둘, 고령의 북한 엘리트의 행보가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다.
요즘 북한 파워엘리트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경제사령탑으로 불리는 박봉주 부위원장인데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올해 82살의 고령에도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식료공장 지배인이었던 박봉주는 어떻게 내각 총리를 거쳐 오늘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의 행보를 보면, 북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은 박봉주가 걸어온 길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가 북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나흘간의 회의가 끝나고, 당 간부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연단 앞으로 나온 김정은 위원장.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때마침 등장한 휠체어 한 대.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이었다.
회의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던 박봉주는 이날 김정은 위원장의 옆자리를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조선중앙TV/9월1일 :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동지가 황해남도 장연군의 여러 농장에서 태풍 피해 복구 사업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일, 박봉주는 황해남도 태풍피해 지역을 현지지도하며 노동신문 1면을 차지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여느 관료보다 적극적이고 섬세하게 피해상황을 살핀 박봉주.
주민들과 풀밭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의 주민친화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이라든지 경제 관료 또 당 관료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에요. 개인적 욕심이 없고 또 권력욕이 없고 오직 북한 경제 발전과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노력해온 인물이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북한 내 당과 국가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또 많은 경제 주체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보니까 이 사람이 계속 중용이 되고 있는 거고..."]
1939년, 함경북도 출생으로 알려진 박봉주.
그는 덕천 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기계제작 기사, 룡천 식료공장 지배인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 관료 출신이다.
1980년, 박봉주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데, 출신 성분이나 학벌 배경 없이 능력으로 승승장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박봉주라는 인물은 북한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겪은 사람은 아닙니다. 현장을 알고 기술을 알고 현지 형편을 알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그런 경제 전문가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도 무시할 수 없는 그래서 계속해서 중용하는 그런 케이스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박봉주가 고위 관료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초반. 당시 북한의 경제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정도의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개혁경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01년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그는 중국의 경제 성장에 놀라움도 드러내기도 했다.
[조선중앙TV/2001년 1월 : "김정일 동지께서는 세계가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해는 천지개벽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북한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 개혁 지시가 내려졌고, 2002년에는‘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단행됐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경제 기본 토대가 다 파괴가 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아 이것 가지고는 뭔가 안 되겠다 해서 내놓은 게 2002년 7월 1일 경제 개선 조치입니다. 북한에서는 개선, 경제 개선 조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조치를 내놓았고 이 총대를 맺던 사람이 바로 박봉주입니다."]
[조선중앙TV/2003년 : "회의에서는 내각총리 박봉주 대의원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승원들을 제기하였으며 전원 찬성으로 임명됐습니다."]
경제관리개선 조치 1년이 지난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봉주를 내각 총리직에 전격 발탁한다. 실무에 능하고 개혁 성향이 강했던 박봉주가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개혁 의지를 가장 잘 수행할 적임자였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경제 건설이 그만큼 절실했던 거고 박봉주의 경력을 보면 현장의 지배인 역할도 하고 또 다양한 내각 부서를 부서의 책임자를 다 경험하면서 북한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또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박봉주 부위원장만큼 경제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후 실제로 북한 경제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주민 생활에서부터 일어났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사는 게 나아졌지요. 농사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아, 장사요?) 네, 농민 시장이랑 해서..."]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농민시장은 옛날부터 있던 거 아니에요?) 이젠 마음대로 장사하게 해놨지요. 전에는 공업품 통제했었는데 이제는 시장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근로 의욕이 높아지면서 북한 경제 전반도 활기를 띄었다.
박봉주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계획경제 대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경제 정책에서도 시장 경제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KBS 뉴스9/2005년 3월 : "북한의 박봉주 총리가 보기 드물게 공개적으로 엿새간의 중국 방문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2005년, 중국을 방문한 박봉주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경제에 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박봉주/2005년 인터뷰 : "정보 산업 시대의 요구에 맞게 첨단 과학 기술을 향해서 회사가 더욱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박봉주의 추진력은 곧 힘을 잃고 만다.
개혁 조치로 영향력이 축소된 당과 군부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결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조직 지도부의 반발을 수용했고, 2007년 박봉주는 지방으로 좌천된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고영환 : "이것은 유일 지배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요소로 들어와서 우리 국민들을 파괴할 수 있다 이런 논리하고 부딪혀가지고 결국은 여기서 조직 지도부한테 밀려서 2007년도에 자리를 내놓고 다시 내려가는 거거든요."]
이후 2009년, 북한 당국은 경제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전격적인 화폐 개혁을 단행하지만 곧바로 실패에 봉착했다.
물가와 환율은 요동쳤고 주민들의 식량난은 가중됐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자, 화폐 교환 조치를 주도한 노동당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공개 처형되기도 했다.
박봉주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가 해임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더 나아지든지 뭔가 달라져야 되는데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게 2009년에 나왔던 화폐개혁 조치고 김정은 위원장이 그때도 후계자 수업을 받고 2011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자기가 권력 승계받아야 되는데 경제가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오히려 더 어려워진 거지. 그러니까 당장 경제 건설 통해서 주민 생활향상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3대 권력 세습자로서의 정당성 정통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박봉주를 부를 수밖에 없는 거죠."]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박봉주는 다시 핵심 엘리트 반열에 올라선다.
[조선중앙TV/2013년 : "박봉주 대의원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각 총리로 선거했습니다."]
이후 박봉주는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우리 식 경제 관리 방법의 핵심이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예요. 국가가 권한을 줄 테니까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 임금을 결정하는 권한 노동력을 채용하는 권한 투자를 받아들이는 권한 상당한 권한을 줄 테니까 경영활동을 잘해봐라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평양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지방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을 방법이 가져온 성과라고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나 지난해 4월, 북한 당국은 돌연 박봉주를 내각총리직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렇지만 박봉주가 여전히 경제 정책을 지휘 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저는 박봉주 총리를 당 중앙의 부위원장으로 돌린 거는 김정은 위원장의 어떤 배려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총리는 북한 경제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자리입니다. 그 총리 수명이 길지가 못해요. 뒤에서 경제하고 어떻게 잘 굴러가도록 좀 코치를 해달라 당신이 지침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 가라고 중책을 줬다고 생각을 해요."]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총동원되어 민심을 추스르고 있는 북한 당국.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분야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박봉주의 역할에 어느 때 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하는 거고 더 많은 자율과 권한 이런 것을 부여함으로 인해서 경제를 더 발전시키라는 그런 요구를 계속하고 있는 거고 그걸 지금 묵묵하게 박봉주 부위원장이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20년 가까이 핵심 엘리트로 북한 경제를 지휘하며 북한의 개혁 경제를 주도해온 박봉주.
박봉주의 진퇴와 북한 경제 상황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그려오고 있다.
여든둘, 고령의 북한 엘리트의 행보가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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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9-05 08:11:16
- 수정2020-09-05 08:33:29
[앵커]
요즘 북한 파워엘리트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경제사령탑으로 불리는 박봉주 부위원장인데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올해 82살의 고령에도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식료공장 지배인이었던 박봉주는 어떻게 내각 총리를 거쳐 오늘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의 행보를 보면, 북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은 박봉주가 걸어온 길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가 북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나흘간의 회의가 끝나고, 당 간부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연단 앞으로 나온 김정은 위원장.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때마침 등장한 휠체어 한 대.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이었다.
회의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던 박봉주는 이날 김정은 위원장의 옆자리를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조선중앙TV/9월1일 :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동지가 황해남도 장연군의 여러 농장에서 태풍 피해 복구 사업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일, 박봉주는 황해남도 태풍피해 지역을 현지지도하며 노동신문 1면을 차지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여느 관료보다 적극적이고 섬세하게 피해상황을 살핀 박봉주.
주민들과 풀밭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의 주민친화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이라든지 경제 관료 또 당 관료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에요. 개인적 욕심이 없고 또 권력욕이 없고 오직 북한 경제 발전과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노력해온 인물이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북한 내 당과 국가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또 많은 경제 주체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보니까 이 사람이 계속 중용이 되고 있는 거고..."]
1939년, 함경북도 출생으로 알려진 박봉주.
그는 덕천 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기계제작 기사, 룡천 식료공장 지배인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 관료 출신이다.
1980년, 박봉주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데, 출신 성분이나 학벌 배경 없이 능력으로 승승장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박봉주라는 인물은 북한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겪은 사람은 아닙니다. 현장을 알고 기술을 알고 현지 형편을 알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그런 경제 전문가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도 무시할 수 없는 그래서 계속해서 중용하는 그런 케이스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박봉주가 고위 관료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초반. 당시 북한의 경제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정도의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개혁경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01년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그는 중국의 경제 성장에 놀라움도 드러내기도 했다.
[조선중앙TV/2001년 1월 : "김정일 동지께서는 세계가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해는 천지개벽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북한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 개혁 지시가 내려졌고, 2002년에는‘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단행됐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경제 기본 토대가 다 파괴가 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아 이것 가지고는 뭔가 안 되겠다 해서 내놓은 게 2002년 7월 1일 경제 개선 조치입니다. 북한에서는 개선, 경제 개선 조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조치를 내놓았고 이 총대를 맺던 사람이 바로 박봉주입니다."]
[조선중앙TV/2003년 : "회의에서는 내각총리 박봉주 대의원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승원들을 제기하였으며 전원 찬성으로 임명됐습니다."]
경제관리개선 조치 1년이 지난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봉주를 내각 총리직에 전격 발탁한다. 실무에 능하고 개혁 성향이 강했던 박봉주가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개혁 의지를 가장 잘 수행할 적임자였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경제 건설이 그만큼 절실했던 거고 박봉주의 경력을 보면 현장의 지배인 역할도 하고 또 다양한 내각 부서를 부서의 책임자를 다 경험하면서 북한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또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박봉주 부위원장만큼 경제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후 실제로 북한 경제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주민 생활에서부터 일어났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사는 게 나아졌지요. 농사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아, 장사요?) 네, 농민 시장이랑 해서..."]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농민시장은 옛날부터 있던 거 아니에요?) 이젠 마음대로 장사하게 해놨지요. 전에는 공업품 통제했었는데 이제는 시장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근로 의욕이 높아지면서 북한 경제 전반도 활기를 띄었다.
박봉주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계획경제 대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경제 정책에서도 시장 경제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KBS 뉴스9/2005년 3월 : "북한의 박봉주 총리가 보기 드물게 공개적으로 엿새간의 중국 방문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2005년, 중국을 방문한 박봉주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경제에 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박봉주/2005년 인터뷰 : "정보 산업 시대의 요구에 맞게 첨단 과학 기술을 향해서 회사가 더욱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박봉주의 추진력은 곧 힘을 잃고 만다.
개혁 조치로 영향력이 축소된 당과 군부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결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조직 지도부의 반발을 수용했고, 2007년 박봉주는 지방으로 좌천된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고영환 : "이것은 유일 지배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요소로 들어와서 우리 국민들을 파괴할 수 있다 이런 논리하고 부딪혀가지고 결국은 여기서 조직 지도부한테 밀려서 2007년도에 자리를 내놓고 다시 내려가는 거거든요."]
이후 2009년, 북한 당국은 경제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전격적인 화폐 개혁을 단행하지만 곧바로 실패에 봉착했다.
물가와 환율은 요동쳤고 주민들의 식량난은 가중됐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자, 화폐 교환 조치를 주도한 노동당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공개 처형되기도 했다.
박봉주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가 해임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더 나아지든지 뭔가 달라져야 되는데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게 2009년에 나왔던 화폐개혁 조치고 김정은 위원장이 그때도 후계자 수업을 받고 2011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자기가 권력 승계받아야 되는데 경제가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오히려 더 어려워진 거지. 그러니까 당장 경제 건설 통해서 주민 생활향상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3대 권력 세습자로서의 정당성 정통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박봉주를 부를 수밖에 없는 거죠."]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박봉주는 다시 핵심 엘리트 반열에 올라선다.
[조선중앙TV/2013년 : "박봉주 대의원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각 총리로 선거했습니다."]
이후 박봉주는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우리 식 경제 관리 방법의 핵심이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예요. 국가가 권한을 줄 테니까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 임금을 결정하는 권한 노동력을 채용하는 권한 투자를 받아들이는 권한 상당한 권한을 줄 테니까 경영활동을 잘해봐라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평양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지방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을 방법이 가져온 성과라고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나 지난해 4월, 북한 당국은 돌연 박봉주를 내각총리직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렇지만 박봉주가 여전히 경제 정책을 지휘 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저는 박봉주 총리를 당 중앙의 부위원장으로 돌린 거는 김정은 위원장의 어떤 배려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총리는 북한 경제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자리입니다. 그 총리 수명이 길지가 못해요. 뒤에서 경제하고 어떻게 잘 굴러가도록 좀 코치를 해달라 당신이 지침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 가라고 중책을 줬다고 생각을 해요."]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총동원되어 민심을 추스르고 있는 북한 당국.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분야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박봉주의 역할에 어느 때 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하는 거고 더 많은 자율과 권한 이런 것을 부여함으로 인해서 경제를 더 발전시키라는 그런 요구를 계속하고 있는 거고 그걸 지금 묵묵하게 박봉주 부위원장이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20년 가까이 핵심 엘리트로 북한 경제를 지휘하며 북한의 개혁 경제를 주도해온 박봉주.
박봉주의 진퇴와 북한 경제 상황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그려오고 있다.
여든둘, 고령의 북한 엘리트의 행보가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다.
요즘 북한 파워엘리트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경제사령탑으로 불리는 박봉주 부위원장인데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올해 82살의 고령에도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식료공장 지배인이었던 박봉주는 어떻게 내각 총리를 거쳐 오늘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의 행보를 보면, 북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은 박봉주가 걸어온 길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가 북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나흘간의 회의가 끝나고, 당 간부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연단 앞으로 나온 김정은 위원장.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때마침 등장한 휠체어 한 대.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이었다.
회의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던 박봉주는 이날 김정은 위원장의 옆자리를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조선중앙TV/9월1일 :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동지가 황해남도 장연군의 여러 농장에서 태풍 피해 복구 사업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일, 박봉주는 황해남도 태풍피해 지역을 현지지도하며 노동신문 1면을 차지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여느 관료보다 적극적이고 섬세하게 피해상황을 살핀 박봉주.
주민들과 풀밭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의 주민친화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이라든지 경제 관료 또 당 관료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에요. 개인적 욕심이 없고 또 권력욕이 없고 오직 북한 경제 발전과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노력해온 인물이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북한 내 당과 국가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또 많은 경제 주체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보니까 이 사람이 계속 중용이 되고 있는 거고..."]
1939년, 함경북도 출생으로 알려진 박봉주.
그는 덕천 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기계제작 기사, 룡천 식료공장 지배인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 관료 출신이다.
1980년, 박봉주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데, 출신 성분이나 학벌 배경 없이 능력으로 승승장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박봉주라는 인물은 북한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겪은 사람은 아닙니다. 현장을 알고 기술을 알고 현지 형편을 알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그런 경제 전문가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도 무시할 수 없는 그래서 계속해서 중용하는 그런 케이스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박봉주가 고위 관료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초반. 당시 북한의 경제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정도의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개혁경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01년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그는 중국의 경제 성장에 놀라움도 드러내기도 했다.
[조선중앙TV/2001년 1월 : "김정일 동지께서는 세계가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해는 천지개벽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북한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 개혁 지시가 내려졌고, 2002년에는‘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단행됐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경제 기본 토대가 다 파괴가 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아 이것 가지고는 뭔가 안 되겠다 해서 내놓은 게 2002년 7월 1일 경제 개선 조치입니다. 북한에서는 개선, 경제 개선 조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조치를 내놓았고 이 총대를 맺던 사람이 바로 박봉주입니다."]
[조선중앙TV/2003년 : "회의에서는 내각총리 박봉주 대의원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승원들을 제기하였으며 전원 찬성으로 임명됐습니다."]
경제관리개선 조치 1년이 지난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봉주를 내각 총리직에 전격 발탁한다. 실무에 능하고 개혁 성향이 강했던 박봉주가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개혁 의지를 가장 잘 수행할 적임자였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경제 건설이 그만큼 절실했던 거고 박봉주의 경력을 보면 현장의 지배인 역할도 하고 또 다양한 내각 부서를 부서의 책임자를 다 경험하면서 북한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또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박봉주 부위원장만큼 경제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후 실제로 북한 경제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주민 생활에서부터 일어났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사는 게 나아졌지요. 농사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아, 장사요?) 네, 농민 시장이랑 해서..."]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북한 주민/2003년 인터뷰 : "(농민시장은 옛날부터 있던 거 아니에요?) 이젠 마음대로 장사하게 해놨지요. 전에는 공업품 통제했었는데 이제는 시장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근로 의욕이 높아지면서 북한 경제 전반도 활기를 띄었다.
박봉주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계획경제 대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경제 정책에서도 시장 경제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KBS 뉴스9/2005년 3월 : "북한의 박봉주 총리가 보기 드물게 공개적으로 엿새간의 중국 방문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2005년, 중국을 방문한 박봉주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경제에 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박봉주/2005년 인터뷰 : "정보 산업 시대의 요구에 맞게 첨단 과학 기술을 향해서 회사가 더욱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박봉주의 추진력은 곧 힘을 잃고 만다.
개혁 조치로 영향력이 축소된 당과 군부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결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조직 지도부의 반발을 수용했고, 2007년 박봉주는 지방으로 좌천된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고영환 : "이것은 유일 지배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요소로 들어와서 우리 국민들을 파괴할 수 있다 이런 논리하고 부딪혀가지고 결국은 여기서 조직 지도부한테 밀려서 2007년도에 자리를 내놓고 다시 내려가는 거거든요."]
이후 2009년, 북한 당국은 경제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전격적인 화폐 개혁을 단행하지만 곧바로 실패에 봉착했다.
물가와 환율은 요동쳤고 주민들의 식량난은 가중됐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자, 화폐 교환 조치를 주도한 노동당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공개 처형되기도 했다.
박봉주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가 해임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더 나아지든지 뭔가 달라져야 되는데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게 2009년에 나왔던 화폐개혁 조치고 김정은 위원장이 그때도 후계자 수업을 받고 2011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자기가 권력 승계받아야 되는데 경제가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오히려 더 어려워진 거지. 그러니까 당장 경제 건설 통해서 주민 생활향상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3대 권력 세습자로서의 정당성 정통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박봉주를 부를 수밖에 없는 거죠."]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박봉주는 다시 핵심 엘리트 반열에 올라선다.
[조선중앙TV/2013년 : "박봉주 대의원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각 총리로 선거했습니다."]
이후 박봉주는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우리 식 경제 관리 방법의 핵심이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예요. 국가가 권한을 줄 테니까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 임금을 결정하는 권한 노동력을 채용하는 권한 투자를 받아들이는 권한 상당한 권한을 줄 테니까 경영활동을 잘해봐라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평양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지방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을 방법이 가져온 성과라고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나 지난해 4월, 북한 당국은 돌연 박봉주를 내각총리직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렇지만 박봉주가 여전히 경제 정책을 지휘 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고 있다.
[고영환/전 국가안보전략 연구원 부원장 : "저는 박봉주 총리를 당 중앙의 부위원장으로 돌린 거는 김정은 위원장의 어떤 배려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총리는 북한 경제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자리입니다. 그 총리 수명이 길지가 못해요. 뒤에서 경제하고 어떻게 잘 굴러가도록 좀 코치를 해달라 당신이 지침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 가라고 중책을 줬다고 생각을 해요."]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총동원되어 민심을 추스르고 있는 북한 당국.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분야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박봉주의 역할에 어느 때 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는 평가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박봉주 부위원장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하는 거고 더 많은 자율과 권한 이런 것을 부여함으로 인해서 경제를 더 발전시키라는 그런 요구를 계속하고 있는 거고 그걸 지금 묵묵하게 박봉주 부위원장이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20년 가까이 핵심 엘리트로 북한 경제를 지휘하며 북한의 개혁 경제를 주도해온 박봉주.
박봉주의 진퇴와 북한 경제 상황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그려오고 있다.
여든둘, 고령의 북한 엘리트의 행보가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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