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떠나는 자, 남는 자

입력 2000.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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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2000년 7월 22일(토) 밤 10:35~11:15 / KBS1
■취재 : 권오훈 PD ohoon@kbs.co.kr
■제작 : 보도제작국 보도제작2부
(전화)02-781-4321
(팩스)02-781-4398
(인터넷)http://www.kbs.co.kr/4321


*녹취:
"(선생님들이 가족과 고향으로 가실 수 있도록 기원하는 세배를 드립시다. 건강하십시오.) 일주일 앞당겨 세배를 받고, 미리 설 떡국을 먹으며 설기분을 내는 동안 마음은 어느새 북녘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권오훈 PD:
올해 초, <취재파일>팀은 분단시대의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던 비전향 장기수들의 애절한 망향가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넉달 뒤, 평양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은 이들의 소망을 현실로 바꿔놓았습니다. 송환을 희망하는 남쪽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전원 북으로 돌려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송환시기는 오는 9월초. 비전향장기수 88명 가운데 현재, 북으로의 송환을 희망한 사람은 모두 59명. 나머지는 남쪽에 남기로 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다가오는 9월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비전향장기수 - 떠나는 자, 남는 자]

*권오훈 PD:
6달만에 다시찾은 우리탕제원. 그 사이에 이 곳 탕제원 식구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유한욱, 조창손씨는 송환을, 남쪽이 고향인 양희철, 안학섭씨는 남쪽에 남기로 했습니다.

<39년만의 귀향-조창손>

남파될 당시 북에 아내와 4살바기 딸, 갓난아기였던 아들을 두고 떠나왔던 조창손씨. 송환방침이 결정되면서 이달부터는 그동안 해오던 약 달이는 일에서는 손을 뗐습니다.

*조창손(72세/ 비전향장기수/ 송환 희망자):
"간다간다 하니 진짜 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갈 준비는 해야죠. -(PD)북쪽으로 갈 준비하시는 거예요? =북쪽으로 갈 준비... 예."

*권오훈 PD:
가져갈 것이라고 해야, 출소 후 찍었던 사진들과 옷가지 정도지만 마음은 북녘 고향에 서성입니다. 자신의 머릿속엔 갓난아기때 기억 밖에 없지만 이미 장년이 된 북쪽 자식과 40년 가까이 혼자 살아왔을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목이 멥니다.

*조창손:
"가족들하고 얘기하고 싶은 것은 참 고생했다. 아빠없이 아이들끼리 고생했다. 그 말 밖에 해줄게 없어요. 나야 고생을 자처한 거고 집사람만 새파란 청춘에 과부가 돼서..."

*권오훈 PD:
그토록 바라던 송환의 꿈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사진으로만 남은 40여년 간의 남쪽생활을 정리하는 것 뿐입니다.

<남쪽에 남기로한 장기수-안학섭>

조창손씨와는 달리, 경기도 강화가 고향인 안학섭씨는 남쪽에 남기로 했습니다. 북쪽에 이렇다할 연고가 없는 데다, 최근 남쪽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까지만해도 70대 노총각이었던 안씨는 이달 초, 40대 처녀를 신부로 맞았습니다. 신부는 올해 마흔살의 피아노 강사 이지연씨. 3년 전, 처음 만나 감옥에서 익힌 지압술로, 양팔이 불편하던 이씨를 말끔히 고쳐준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이지연(안학섭씨 부인):
"팔을 이렇게 못 올렸어요. 쳐져 가지고. 잠을 못잤어요. 앉아서 잘 수밖에 없더군요. 자고 나면 얼굴이 붓고... 선생님이 두 번 지압을 해주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제가 누워서 자고 있더군요. 팔을 올리면 팔이 올라가요."

*권오훈 PD:
신혼여행을 다녀온 안씨부부는 탕제원에 남아있던 짐들을 정리해, 신혼집으로 옮겼습니다. 오랜 독신 생활 탓인지 안씨의 짐은 , 옷가지와 사진 등 몇 꾸러미 되지 않았습니다. 탕제원에서 10여분 거리에 마련한 신혼집... 좁은 공간에 아직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아 어지럽지만,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곳입니다. 40여년간의 감옥살이를 포함해, 70평생 처음 마련한 보금자리기 때문입니다. 남쪽에 남기로한 안씨는 요즘 탕제원 일과 병행해, 사흘에 한번꼴로 취로사업을 나가고 있습니다. 재활용쓰레기 분리작업장... 새벽 5시부터 시작해 점심때가 돼서야 끝나는 이 일을 통해 받는 돈은 일당 만칠천원입니다.

*안학섭(70세/ 비전향장기수/ 잔류 희망자):
"12일을 하면 20만4천원이 되죠. -(PD)한달에...? =있는 사람에게는 별거 아니겠지만 없는 사람에게는 큰 돈이죠.-(PD)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실 생각인가요?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해야죠."

*권오훈 PD:
이곳에서도 안씨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종류별로 분리된 재활용 쓰레기를 커다란 가마니에 담는일... 아직 해가 나오기전 새벽 시간이지만, 금세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한달 뒤면 다른 동료들과 헤어져, 이젠 혼자힘으로 그 공백을 메워나가야 할 안학섭씨... 70대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의 마음은 수십년 전의 출발점 위에 가 있습니다.

*안학섭:
"일생을 내 안일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좀 어려운 곳에서 어려운 삶을 살다 일생을 그렇게 마칠 생각입니다."

<남에는 어머니,북에는 자식-신인영>

*권오훈 PD:
남과 북에 모두 혈육을 두고있는 신인영씨는 그 처지가 남다릅니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인 신씨는 남쪽에 93살된 노모와 형제들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갔던 신씨는 그곳에서 아내와 세명의 자식을 뒀습니다. 다른 북쪽 출신 장기수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67년 남파돼 30년 넘게 헤어져 있던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기위해 송환을 신청했습니다. 주위사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이 신씨의 건강입니다. 32년째 옥에 갇혀있던 지난 98년, 골수암 판정을 받고서야, 풀려 날 수 있었던 신씨... 올해초 병세가 악화되면서 요즘도 병원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종양이 장기와 팔로 전이돼 두달째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양대식(방사선과 전문의):
"교과서적으로는 재발이 없어야 하고 이렇게 빨리 재발이 안되는 것으로 돼 있어요. -(PD)지금 신인영씨 상태는 어떤지? =어떻게 보면 시한폭탄 같아요."

*권오훈 PD:
최근 신씨는 30여년 전 헤어졌던 아내와 세남매가 있는, 북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북행을 결심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습니다. 그가 석방될 날만을 기다리며 30여년간 옥바라지를 해온 93살의 노모 때문입니다. 송환을 앞둔 요즘, 그의 남쪽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횟수도 잦아 졌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섭니다. 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고향얘기와 어린시절 추억들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웁니다.

*신규영(65세/ 다섯째 동생):
"29년,39년,49년이죠. 오빠가 29년이고, 제가 39년, 얘가 49년. -(신인영)내 등에 오줌도 싸고 그랬어."

*권오훈 PD:
그러나 신씨의 송환이 화제에 오르자 남쪽 가족들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신선영(63세/ 여섯째 동생):
"막상 가신다고 하니까 좋기도 하지만 또 헤어지잖아. 나는 오래 못 살면 오빠도 못 보잖아."

*권오훈 PD:
30여년을 기다려, 다시 만난 지 겨우 3년째... 또다시 아들을 보내야 하는 노모의 눈물은 그칠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40년 가까이 남편을 기다려온 며느리와 아버지없이 자란 손자들을 생각하면 아들의 앞길을 막을 수도 없는 처지... 다만 살아생전, 북에 있는 며느리와 아들의 피붙이들을 만나 봤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고봉희(93세/ 신인영씨 어머니):
"한번 보면 내가 소원도 풀고 새끼들도 보고 며느리도 보고 오면 안심하고 사는데, 그쪽에서 형편 되면 또 올지 모르니까 그것도 기다리고. 한번 가게 해줘요."

<돌아갈 수 없는 장기수-금재성,최남규>

*권오훈 PD:
7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 봉천동 만남의 집... 대부분 북쪽에 가족을 두고 있는 이곳 장기수들도 송환을 신청해놓고 있습니다. 남쪽 출신인 김선명씨를 뺀 나머지 6명이 북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오랜 감옥생활로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야만 외출을 할 수 있는 김석형씨... 고향에 두고온 아내와 6남매 생각에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쑵니다.

*김석형(87세/ 비전향장기수/ 송환 희망자):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고 우리 꼬마들이 나타나 그 애가 3살이었어 내가 떠날 때 다른 애들은 다 안보이는데 그 애만 나타나."

*권오훈 PD:
그러나 귀향을 앞둔 그의 마음이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곳 만남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비전향 장기수들 때문입니다. 지난 98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금재성씨, 그리고 지난해말, 치매에 시달리다 끝내 눈을 감은 최남규씨가 그들입니다. 지난 18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속에 김석형씨는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도 파주의 한 절을 찾았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섭니다.

*김석형:
"어제 저녁에 여기 온다고 해서 마음이 설랬어.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최남규 선생이 꿈에 나타났는데 금재성이는 안나타났어."

*권오훈 PD:
잇따라 세상을 떠난 금재성,최남규씨의 무덤가엔 찾아오는 이 없어 잡풀만 무성합니다. 이들 역시 북녘 고향에 가족이 살아있을 것이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 뭐라 얘기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김석형:
"비전향 출소장기수가 갈때는 이분들도 비전향 장기수 들이에요. 조건이 똑같은데 유명을 달리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이번에 갈 때 유골을 가지고 가야돼요. 가족들 만나면 할 말이 없어요."

*권오훈 PD:
그동안 분단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앙금처럼 남아있던 비전향장기수들. 어떤이는 가족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또 어떤이는 새로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송환이 또다른 이별의 시작이 아니라 남과 북이 장벽을 걷고 서로 자유롭게 오가는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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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전향 장기수-떠나는 자, 남는 자
    • 입력 2000-07-24 00:00:00
    취재파일K
■방송 : 2000년 7월 22일(토) 밤 10:35~11:15 / KBS1 ■취재 : 권오훈 PD ohoon@kbs.co.kr ■제작 : 보도제작국 보도제작2부 (전화)02-781-4321 (팩스)02-781-4398 (인터넷)http://www.kbs.co.kr/4321 *녹취: "(선생님들이 가족과 고향으로 가실 수 있도록 기원하는 세배를 드립시다. 건강하십시오.) 일주일 앞당겨 세배를 받고, 미리 설 떡국을 먹으며 설기분을 내는 동안 마음은 어느새 북녘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권오훈 PD: 올해 초, <취재파일>팀은 분단시대의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던 비전향 장기수들의 애절한 망향가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넉달 뒤, 평양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은 이들의 소망을 현실로 바꿔놓았습니다. 송환을 희망하는 남쪽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전원 북으로 돌려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송환시기는 오는 9월초. 비전향장기수 88명 가운데 현재, 북으로의 송환을 희망한 사람은 모두 59명. 나머지는 남쪽에 남기로 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다가오는 9월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비전향장기수 - 떠나는 자, 남는 자] *권오훈 PD: 6달만에 다시찾은 우리탕제원. 그 사이에 이 곳 탕제원 식구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유한욱, 조창손씨는 송환을, 남쪽이 고향인 양희철, 안학섭씨는 남쪽에 남기로 했습니다. <39년만의 귀향-조창손> 남파될 당시 북에 아내와 4살바기 딸, 갓난아기였던 아들을 두고 떠나왔던 조창손씨. 송환방침이 결정되면서 이달부터는 그동안 해오던 약 달이는 일에서는 손을 뗐습니다. *조창손(72세/ 비전향장기수/ 송환 희망자): "간다간다 하니 진짜 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갈 준비는 해야죠. -(PD)북쪽으로 갈 준비하시는 거예요? =북쪽으로 갈 준비... 예." *권오훈 PD: 가져갈 것이라고 해야, 출소 후 찍었던 사진들과 옷가지 정도지만 마음은 북녘 고향에 서성입니다. 자신의 머릿속엔 갓난아기때 기억 밖에 없지만 이미 장년이 된 북쪽 자식과 40년 가까이 혼자 살아왔을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목이 멥니다. *조창손: "가족들하고 얘기하고 싶은 것은 참 고생했다. 아빠없이 아이들끼리 고생했다. 그 말 밖에 해줄게 없어요. 나야 고생을 자처한 거고 집사람만 새파란 청춘에 과부가 돼서..." *권오훈 PD: 그토록 바라던 송환의 꿈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사진으로만 남은 40여년 간의 남쪽생활을 정리하는 것 뿐입니다. <남쪽에 남기로한 장기수-안학섭> 조창손씨와는 달리, 경기도 강화가 고향인 안학섭씨는 남쪽에 남기로 했습니다. 북쪽에 이렇다할 연고가 없는 데다, 최근 남쪽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까지만해도 70대 노총각이었던 안씨는 이달 초, 40대 처녀를 신부로 맞았습니다. 신부는 올해 마흔살의 피아노 강사 이지연씨. 3년 전, 처음 만나 감옥에서 익힌 지압술로, 양팔이 불편하던 이씨를 말끔히 고쳐준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이지연(안학섭씨 부인): "팔을 이렇게 못 올렸어요. 쳐져 가지고. 잠을 못잤어요. 앉아서 잘 수밖에 없더군요. 자고 나면 얼굴이 붓고... 선생님이 두 번 지압을 해주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제가 누워서 자고 있더군요. 팔을 올리면 팔이 올라가요." *권오훈 PD: 신혼여행을 다녀온 안씨부부는 탕제원에 남아있던 짐들을 정리해, 신혼집으로 옮겼습니다. 오랜 독신 생활 탓인지 안씨의 짐은 , 옷가지와 사진 등 몇 꾸러미 되지 않았습니다. 탕제원에서 10여분 거리에 마련한 신혼집... 좁은 공간에 아직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아 어지럽지만,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곳입니다. 40여년간의 감옥살이를 포함해, 70평생 처음 마련한 보금자리기 때문입니다. 남쪽에 남기로한 안씨는 요즘 탕제원 일과 병행해, 사흘에 한번꼴로 취로사업을 나가고 있습니다. 재활용쓰레기 분리작업장... 새벽 5시부터 시작해 점심때가 돼서야 끝나는 이 일을 통해 받는 돈은 일당 만칠천원입니다. *안학섭(70세/ 비전향장기수/ 잔류 희망자): "12일을 하면 20만4천원이 되죠. -(PD)한달에...? =있는 사람에게는 별거 아니겠지만 없는 사람에게는 큰 돈이죠.-(PD)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실 생각인가요?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해야죠." *권오훈 PD: 이곳에서도 안씨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종류별로 분리된 재활용 쓰레기를 커다란 가마니에 담는일... 아직 해가 나오기전 새벽 시간이지만, 금세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한달 뒤면 다른 동료들과 헤어져, 이젠 혼자힘으로 그 공백을 메워나가야 할 안학섭씨... 70대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의 마음은 수십년 전의 출발점 위에 가 있습니다. *안학섭: "일생을 내 안일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좀 어려운 곳에서 어려운 삶을 살다 일생을 그렇게 마칠 생각입니다." <남에는 어머니,북에는 자식-신인영> *권오훈 PD: 남과 북에 모두 혈육을 두고있는 신인영씨는 그 처지가 남다릅니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인 신씨는 남쪽에 93살된 노모와 형제들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갔던 신씨는 그곳에서 아내와 세명의 자식을 뒀습니다. 다른 북쪽 출신 장기수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67년 남파돼 30년 넘게 헤어져 있던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기위해 송환을 신청했습니다. 주위사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이 신씨의 건강입니다. 32년째 옥에 갇혀있던 지난 98년, 골수암 판정을 받고서야, 풀려 날 수 있었던 신씨... 올해초 병세가 악화되면서 요즘도 병원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종양이 장기와 팔로 전이돼 두달째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양대식(방사선과 전문의): "교과서적으로는 재발이 없어야 하고 이렇게 빨리 재발이 안되는 것으로 돼 있어요. -(PD)지금 신인영씨 상태는 어떤지? =어떻게 보면 시한폭탄 같아요." *권오훈 PD: 최근 신씨는 30여년 전 헤어졌던 아내와 세남매가 있는, 북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북행을 결심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습니다. 그가 석방될 날만을 기다리며 30여년간 옥바라지를 해온 93살의 노모 때문입니다. 송환을 앞둔 요즘, 그의 남쪽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횟수도 잦아 졌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섭니다. 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고향얘기와 어린시절 추억들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웁니다. *신규영(65세/ 다섯째 동생): "29년,39년,49년이죠. 오빠가 29년이고, 제가 39년, 얘가 49년. -(신인영)내 등에 오줌도 싸고 그랬어." *권오훈 PD: 그러나 신씨의 송환이 화제에 오르자 남쪽 가족들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신선영(63세/ 여섯째 동생): "막상 가신다고 하니까 좋기도 하지만 또 헤어지잖아. 나는 오래 못 살면 오빠도 못 보잖아." *권오훈 PD: 30여년을 기다려, 다시 만난 지 겨우 3년째... 또다시 아들을 보내야 하는 노모의 눈물은 그칠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40년 가까이 남편을 기다려온 며느리와 아버지없이 자란 손자들을 생각하면 아들의 앞길을 막을 수도 없는 처지... 다만 살아생전, 북에 있는 며느리와 아들의 피붙이들을 만나 봤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고봉희(93세/ 신인영씨 어머니): "한번 보면 내가 소원도 풀고 새끼들도 보고 며느리도 보고 오면 안심하고 사는데, 그쪽에서 형편 되면 또 올지 모르니까 그것도 기다리고. 한번 가게 해줘요." <돌아갈 수 없는 장기수-금재성,최남규> *권오훈 PD: 7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 봉천동 만남의 집... 대부분 북쪽에 가족을 두고 있는 이곳 장기수들도 송환을 신청해놓고 있습니다. 남쪽 출신인 김선명씨를 뺀 나머지 6명이 북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오랜 감옥생활로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야만 외출을 할 수 있는 김석형씨... 고향에 두고온 아내와 6남매 생각에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쑵니다. *김석형(87세/ 비전향장기수/ 송환 희망자):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고 우리 꼬마들이 나타나 그 애가 3살이었어 내가 떠날 때 다른 애들은 다 안보이는데 그 애만 나타나." *권오훈 PD: 그러나 귀향을 앞둔 그의 마음이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곳 만남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비전향 장기수들 때문입니다. 지난 98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금재성씨, 그리고 지난해말, 치매에 시달리다 끝내 눈을 감은 최남규씨가 그들입니다. 지난 18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속에 김석형씨는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도 파주의 한 절을 찾았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섭니다. *김석형: "어제 저녁에 여기 온다고 해서 마음이 설랬어.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최남규 선생이 꿈에 나타났는데 금재성이는 안나타났어." *권오훈 PD: 잇따라 세상을 떠난 금재성,최남규씨의 무덤가엔 찾아오는 이 없어 잡풀만 무성합니다. 이들 역시 북녘 고향에 가족이 살아있을 것이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 뭐라 얘기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김석형: "비전향 출소장기수가 갈때는 이분들도 비전향 장기수 들이에요. 조건이 똑같은데 유명을 달리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이번에 갈 때 유골을 가지고 가야돼요. 가족들 만나면 할 말이 없어요." *권오훈 PD: 그동안 분단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앙금처럼 남아있던 비전향장기수들. 어떤이는 가족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또 어떤이는 새로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송환이 또다른 이별의 시작이 아니라 남과 북이 장벽을 걷고 서로 자유롭게 오가는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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