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달콤한 유혹 ‘사찰’…신상털이부터 엿듣기까지

입력 2019.05.09 (07:00) 수정 2019.05.0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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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지역 일일보고…처음부터 사찰은 아니었다.

KBS가 입수한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의혹 수사 기록 중 상당 분량은 310 기무부대의 '안산 일일보고'입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16일부터 10월 12일까지 6개월에 걸쳐 작성해 보고한 문건입니다.

1보부터 179보까지, 매일매일의 안산 보고를 분석해보니 뚜렷한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참사 직후 9일 동안은 별다른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단순한 현장 동향 보고에 가깝습니다. 군 지원 사항, 재난안전대책본부의 피해자 지원 대책, 유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들, 안타까워하는 지역 여론 등을 간략하게 정리한 보고입니다.

특이 사항이 나타난 건 2014년 4월 24일 자 보고부터입니다. 이혼 가정에서 자식이 희생된 슬픔은 뒤로 한 채 보상금을 획득하기 위한 다툼 현상이 있다, 희생된 학생을 놓고 지역에서 "집안을 살려놓고 간 효녀"라고 한다는 등 부정적 인상 평가가 두드러진 겁니다. 이후에는 비슷한 내용의 부정적 보고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310 기무부대의 안산 단원고·안산 지역 일일보고310 기무부대의 안산 단원고·안산 지역 일일보고

점점 노골화된 사찰 지시…이유는 청와대의 칭찬?

안산 현장 보고에 변화가 생긴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정보 수집과 보고 실무를 담당한 부대원들에 대한 수사 기록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 군 검사와 기무사령부 실무자의 진술조서 문답 발췌 *
문 : (기무사령부) 메일 내용 중에는 유가족의 과하다 싶은 정도의 무리한 요구에 초점을 맞춰 파악하라는 지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확인되는가요.
답 : 네
문 : 위 메일의 첨부 파일을 보면 유가족 요구에 따라 장지까지 리무진으로 조치하였고 자신들의 요구 사항 관철을 이유로 서명운동 지속 실시 중이라고 하며, 유가족 증명서 등 발급 요청, 디지털 포렌식 센터 설치 요청, 고 김OO 유가족의 자녀 생일에 따른 미역국 등 지원 요구, 대입 특례 요청하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확인되는가요.
답 : 네. 이는 범대위 자료에 있던 것입니다.
문 : 이와 같은 요구사항 파악이 기무사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답 : 없습니다.


기무사령부가 정보의 '초점'까지 정해주며 보고서 방향을 정한 데도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 이유 역시 기무사 장교에 대한 수사 기록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 군 검사와 기무사령부 장교의 진술조서 문답 발췌 *
문 : (기무사) 사령관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열을 올리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 아는가요.
답 : 그 부분은 실무자인 저로서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문 : 일각에서는, 사령관이 청와대 대면보고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다음, 세월호 사건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성과를 내려고 하였다는 진술이 있는데 어떤가요.
답 : 그 이야기는 저도 들은 바 있습니다.


권력자는 자신의 안위와 직결되는 내밀한 정보를 늘 갈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약'같은 사찰의 유혹을 끊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보안사 해체를 요구하며 단식하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일 유신정권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정보 활동을 하는 자가 상부의 의중 희망 사항을 알고 구미에 맞게 쓰면 역기능이 생긴다."

선을 넘은 기무사…신상털이부터 엿듣기까지


사령관의 욕심과 '상부의 의중'을 알고 맞추려고 한 실무자들, 그 결과는 참담했고 기무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310 기무부대의 2014년 6월 23일 자 안산 지역 일일보고. 실종 학생의 모친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암 검진 예정이라며 예약 시간을 보고합니다. 6일 뒤 보고에는 병명이 뇌종양(뇌 신경섬유종)이라면서 '신경외과 김OO, 이비인후과 정OO 교수가 주치의로 종양이 양쪽 귀를 누르고 있어 청력이 거의 손상, 청력 회복 약물치료 후 신경외과와 협진, 수술 여부 결정 예정'이라는 세밀한 정보까지 포함됩니다.

또 다른 실종 학생 부친은 행정 돌보미에게 차량 정기검사 연기 요청을 했다면서 차량 번호까지 보고서에 기재했고, 군복을 입은 채 친구와 분향소에서 조문한 군인의 신원을 파악해 '군인복무규율 위반'이라는 보고를 올리기도 합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보고서에는 신상털이는 물론 ‘엿듣기’로 추정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보고서에는 신상털이는 물론 ‘엿듣기’로 추정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유가족의 대화를 엿들은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40대 중반 남자 유가족이 미상 소속 여기자와 대화를 하며 "딸의 키가 174cm로 미인형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데 현재는 납골당에 있다. 찾아가면서 울고 도착해서도 울고 가슴이 아프다"고 한탄했다는 겁니다.

한발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사찰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생존자 학부모 대표인 장동원 씨가 금속노조 출신이라면서 두 차례나 "활동 사항에 대해 주의 깊게 확인 중"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사이버 사찰 활동은 좀 더 치밀해서, 유가족의 블로그와 카페 활동, 중고 거래 내역은 물론이고 응원하는 야구팀 정보까지 무차별 수집돼 보고됐습니다.

현장 부대원들의 뒤늦은 후회…"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장 기무 부대원 진술 조서에는 뒤늦은 후회의 심경이 담겨 있다.현장 기무 부대원 진술 조서에는 뒤늦은 후회의 심경이 담겨 있다.

현장 사찰 업무를 담당했던 기무 부대원들은 지난해 군 검찰 조사에서 뒤늦은 회한을 드러냈습니다.

"시신 운구 지원에 동원되는 병력 관리와 애로 사항 등에 대해서는 정보 수집을 하였겠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상부 지시가 없었으면 제가 할 이유가 없는 일들입니다. 사실 그 당시 많이 바쁘고 힘들어서 이러한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현장 활동관과 '절대 무리하지 말자. 차라리 욕먹고 말자'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상급자가 지시하면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대부분 간부들이 업무를 하면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령관이 그렇게 지시를 하니까 실무자들이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사 후 5년…아직도 진실 규명은 진행형


세월호 참사 이후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유가족들도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고, 기억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괴담'으로 치부됐던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은 지난해 초에야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7월입니다. 세월호 CCTV 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 요청이 이뤄진 건 지난달의 일입니다. 세월호 수사 방해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제 막 특조위의 조사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을 추적 중인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늦은 게 아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난 5년의 시간 중 세월호에 눈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3년여. 진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노력이 시작된 건 이제 1년을 겨우 넘겼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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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달콤한 유혹 ‘사찰’…신상털이부터 엿듣기까지
    • 입력 2019-05-09 07:00:51
    • 수정2019-05-09 07:01:04
    취재후·사건후
안산 지역 일일보고…처음부터 사찰은 아니었다.

KBS가 입수한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의혹 수사 기록 중 상당 분량은 310 기무부대의 '안산 일일보고'입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16일부터 10월 12일까지 6개월에 걸쳐 작성해 보고한 문건입니다.

1보부터 179보까지, 매일매일의 안산 보고를 분석해보니 뚜렷한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참사 직후 9일 동안은 별다른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단순한 현장 동향 보고에 가깝습니다. 군 지원 사항, 재난안전대책본부의 피해자 지원 대책, 유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들, 안타까워하는 지역 여론 등을 간략하게 정리한 보고입니다.

특이 사항이 나타난 건 2014년 4월 24일 자 보고부터입니다. 이혼 가정에서 자식이 희생된 슬픔은 뒤로 한 채 보상금을 획득하기 위한 다툼 현상이 있다, 희생된 학생을 놓고 지역에서 "집안을 살려놓고 간 효녀"라고 한다는 등 부정적 인상 평가가 두드러진 겁니다. 이후에는 비슷한 내용의 부정적 보고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310 기무부대의 안산 단원고·안산 지역 일일보고
점점 노골화된 사찰 지시…이유는 청와대의 칭찬?

안산 현장 보고에 변화가 생긴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정보 수집과 보고 실무를 담당한 부대원들에 대한 수사 기록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 군 검사와 기무사령부 실무자의 진술조서 문답 발췌 *
문 : (기무사령부) 메일 내용 중에는 유가족의 과하다 싶은 정도의 무리한 요구에 초점을 맞춰 파악하라는 지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확인되는가요.
답 : 네
문 : 위 메일의 첨부 파일을 보면 유가족 요구에 따라 장지까지 리무진으로 조치하였고 자신들의 요구 사항 관철을 이유로 서명운동 지속 실시 중이라고 하며, 유가족 증명서 등 발급 요청, 디지털 포렌식 센터 설치 요청, 고 김OO 유가족의 자녀 생일에 따른 미역국 등 지원 요구, 대입 특례 요청하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확인되는가요.
답 : 네. 이는 범대위 자료에 있던 것입니다.
문 : 이와 같은 요구사항 파악이 기무사의 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답 : 없습니다.


기무사령부가 정보의 '초점'까지 정해주며 보고서 방향을 정한 데도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 이유 역시 기무사 장교에 대한 수사 기록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 군 검사와 기무사령부 장교의 진술조서 문답 발췌 *
문 : (기무사) 사령관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열을 올리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 아는가요.
답 : 그 부분은 실무자인 저로서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문 : 일각에서는, 사령관이 청와대 대면보고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다음, 세월호 사건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성과를 내려고 하였다는 진술이 있는데 어떤가요.
답 : 그 이야기는 저도 들은 바 있습니다.


권력자는 자신의 안위와 직결되는 내밀한 정보를 늘 갈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약'같은 사찰의 유혹을 끊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보안사 해체를 요구하며 단식하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일 유신정권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정보 활동을 하는 자가 상부의 의중 희망 사항을 알고 구미에 맞게 쓰면 역기능이 생긴다."

선을 넘은 기무사…신상털이부터 엿듣기까지


사령관의 욕심과 '상부의 의중'을 알고 맞추려고 한 실무자들, 그 결과는 참담했고 기무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310 기무부대의 2014년 6월 23일 자 안산 지역 일일보고. 실종 학생의 모친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암 검진 예정이라며 예약 시간을 보고합니다. 6일 뒤 보고에는 병명이 뇌종양(뇌 신경섬유종)이라면서 '신경외과 김OO, 이비인후과 정OO 교수가 주치의로 종양이 양쪽 귀를 누르고 있어 청력이 거의 손상, 청력 회복 약물치료 후 신경외과와 협진, 수술 여부 결정 예정'이라는 세밀한 정보까지 포함됩니다.

또 다른 실종 학생 부친은 행정 돌보미에게 차량 정기검사 연기 요청을 했다면서 차량 번호까지 보고서에 기재했고, 군복을 입은 채 친구와 분향소에서 조문한 군인의 신원을 파악해 '군인복무규율 위반'이라는 보고를 올리기도 합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보고서에는 신상털이는 물론 ‘엿듣기’로 추정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유가족의 대화를 엿들은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40대 중반 남자 유가족이 미상 소속 여기자와 대화를 하며 "딸의 키가 174cm로 미인형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데 현재는 납골당에 있다. 찾아가면서 울고 도착해서도 울고 가슴이 아프다"고 한탄했다는 겁니다.

한발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사찰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생존자 학부모 대표인 장동원 씨가 금속노조 출신이라면서 두 차례나 "활동 사항에 대해 주의 깊게 확인 중"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사이버 사찰 활동은 좀 더 치밀해서, 유가족의 블로그와 카페 활동, 중고 거래 내역은 물론이고 응원하는 야구팀 정보까지 무차별 수집돼 보고됐습니다.

현장 부대원들의 뒤늦은 후회…"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장 기무 부대원 진술 조서에는 뒤늦은 후회의 심경이 담겨 있다.
현장 사찰 업무를 담당했던 기무 부대원들은 지난해 군 검찰 조사에서 뒤늦은 회한을 드러냈습니다.

"시신 운구 지원에 동원되는 병력 관리와 애로 사항 등에 대해서는 정보 수집을 하였겠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상부 지시가 없었으면 제가 할 이유가 없는 일들입니다. 사실 그 당시 많이 바쁘고 힘들어서 이러한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현장 활동관과 '절대 무리하지 말자. 차라리 욕먹고 말자'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상급자가 지시하면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대부분 간부들이 업무를 하면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령관이 그렇게 지시를 하니까 실무자들이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사 후 5년…아직도 진실 규명은 진행형


세월호 참사 이후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유가족들도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고, 기억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괴담'으로 치부됐던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은 지난해 초에야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7월입니다. 세월호 CCTV 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 요청이 이뤄진 건 지난달의 일입니다. 세월호 수사 방해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제 막 특조위의 조사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을 추적 중인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늦은 게 아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난 5년의 시간 중 세월호에 눈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3년여. 진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노력이 시작된 건 이제 1년을 겨우 넘겼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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