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에 숨은 ‘원초적 본능’…“사랑에 빠진 것과 비슷”

입력 2017.05.02 (15:22) 수정 2017.05.02 (15:2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투표에 숨은 ‘원초적 본능’…“사랑에 빠진 것과 비슷”

투표에 숨은 ‘원초적 본능’…“사랑에 빠진 것과 비슷”



[연관기사]☞ [뉴스광장] 부동층’ 움직이는 TV 토론…막바지 전략은?

19대 대통령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저녁 8시에 마지막 TV 토론회가 열리니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만약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면 토론회나 유세장에서 그 후보를 대할 때 우리 마음 속에서는 복잡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뇌에서 사랑에 빠진 것과 유사한 반응이 일어난다. '사랑에 눈에 멀다'라는 표현이 있듯 정치적인 선택에도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욕망이 우선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공약보다 후보에 반응하는 뇌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이나 공약을 들을 때 우리 뇌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영역보다는 감정을 관장하는 '쾌락 중추'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연구팀은 과거 대선에서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해 뇌영상을 fMRI로 스캔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특정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뇌의 어떤 영역이 활발하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인데, 신경과학 분야에서 널리 활용된다. 최근에는 인간의 가장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으로 꼽히는 정치적 선택이 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신경정치학'(neuro-politics)이 주목받고 있다.

지지하는 후보를 봤을 때 인간의 뇌에서는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 변연계가 강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지지하는 후보를 봤을 때 인간의 뇌에서는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 변연계가 강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각 정당의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후보의 사진과 공약을 함께 보여주며 뇌영상을 찍었다. 이때 강하게 활성화된 뇌 영역은 즐거움이나 행복, 공포, 욕망 등 감정에 관여하는 '대뇌 변연계'로 사랑에 빠지거나 마약을 복용했을 때 자극돼 '쾌락 중추'로 불린다.

실험을 진행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라며 상대의 공약을 바꿔서 보여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열렬한 긍정의 반응은 멈추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정치적 선택을 할 때 세부 공약보다는 후보가 누구인지에 먼저 집중한다는 얘기다. 촘촘한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후보의 캠프에서 들으면 맥이 빠질지도 모르지만 신경정치학에서 나오는 실험 결과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과로 수렴한다. 인간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욕망에 기반해 투표를 한다고 말이다.


정치적 신념이 바뀌기 어려운 이유

최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심리학 연구진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한번 만들어진 정치적 신념이 쉽게 바뀌기 어려운 이유가 뇌에 있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을 해도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것도 '정치적인 뇌'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연구팀은 4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문장들을 보여주며 뇌영상을 찍었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적인 신념과 반대되는 문장을 접한 참가자의 뇌를 분석하자 대뇌 변연계의 편도체에 '반짝'하고 불이 켜졌다.

편도체는 공포나 쾌락, 증오, 사랑 등 감정 조절의 핵심적인 부위로 뇌 발달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파충류에서도 두드러지게 발달돼있어 '파충류의 뇌'라고도 부른다.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해주는 '포유류의 뇌'와 반대되는 의미로 쓰인다.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파충류의 뇌가 자극됐다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동시에 자신을 위협하는 공포로 느낀다는 의미다. 쉽게 생각하면 명절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투표 성향에 대해서 서로 가볍게 이야기하거나 반대하다가 화를 내면서 결국 싸움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관링크]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사이언티픽 리포트' 논문




특히 국내의 유권자들은 보수와 진보의 성향이 뚜렷한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자신의 안정적인 삶과 생존에 대한 욕망을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황상민 심리학 박사는 분석했다. 자신의 일자리 등 경제 기반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후보, 북한의 위협을 막아줄 수 있는 후보 등 각자가 가진 욕망은 다르지만 안정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황 박사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당위성에서 벗어나 감정적인 요소가 인간의 판단과 의사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가지 명심할 점이 있다. 맹목적인 감정과 욕망으로 뜨겁던 사랑이 어느 순간 끝나거나 시들해지면 후회와 배신감, 좌절감, 무기력함 등이 찾아온다.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감정적으로 투표했을 때 맞게 되는 결말은 단순히 연애에 실패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뇌에서 벌어지는 '열렬한 지지' 기반 속에 어떤 감정이 숨어 있는지 냉정하게 재단해보고 나에게,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될 후보를 가려낼 수 있는 '이성'을 깨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조언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투표에 숨은 ‘원초적 본능’…“사랑에 빠진 것과 비슷”
    • 입력 2017-05-02 15:22:12
    • 수정2017-05-02 15:22:12
    취재K


[연관기사]☞ [뉴스광장] 부동층’ 움직이는 TV 토론…막바지 전략은?

19대 대통령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저녁 8시에 마지막 TV 토론회가 열리니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만약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면 토론회나 유세장에서 그 후보를 대할 때 우리 마음 속에서는 복잡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뇌에서 사랑에 빠진 것과 유사한 반응이 일어난다. '사랑에 눈에 멀다'라는 표현이 있듯 정치적인 선택에도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욕망이 우선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공약보다 후보에 반응하는 뇌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이나 공약을 들을 때 우리 뇌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영역보다는 감정을 관장하는 '쾌락 중추'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연구팀은 과거 대선에서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해 뇌영상을 fMRI로 스캔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특정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뇌의 어떤 영역이 활발하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인데, 신경과학 분야에서 널리 활용된다. 최근에는 인간의 가장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으로 꼽히는 정치적 선택이 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신경정치학'(neuro-politics)이 주목받고 있다.

지지하는 후보를 봤을 때 인간의 뇌에서는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 변연계가 강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각 정당의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후보의 사진과 공약을 함께 보여주며 뇌영상을 찍었다. 이때 강하게 활성화된 뇌 영역은 즐거움이나 행복, 공포, 욕망 등 감정에 관여하는 '대뇌 변연계'로 사랑에 빠지거나 마약을 복용했을 때 자극돼 '쾌락 중추'로 불린다.

실험을 진행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라며 상대의 공약을 바꿔서 보여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열렬한 긍정의 반응은 멈추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정치적 선택을 할 때 세부 공약보다는 후보가 누구인지에 먼저 집중한다는 얘기다. 촘촘한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후보의 캠프에서 들으면 맥이 빠질지도 모르지만 신경정치학에서 나오는 실험 결과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과로 수렴한다. 인간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욕망에 기반해 투표를 한다고 말이다.


정치적 신념이 바뀌기 어려운 이유

최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심리학 연구진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한번 만들어진 정치적 신념이 쉽게 바뀌기 어려운 이유가 뇌에 있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을 해도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것도 '정치적인 뇌'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연구팀은 4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문장들을 보여주며 뇌영상을 찍었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적인 신념과 반대되는 문장을 접한 참가자의 뇌를 분석하자 대뇌 변연계의 편도체에 '반짝'하고 불이 켜졌다.

편도체는 공포나 쾌락, 증오, 사랑 등 감정 조절의 핵심적인 부위로 뇌 발달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파충류에서도 두드러지게 발달돼있어 '파충류의 뇌'라고도 부른다.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해주는 '포유류의 뇌'와 반대되는 의미로 쓰인다.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파충류의 뇌가 자극됐다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동시에 자신을 위협하는 공포로 느낀다는 의미다. 쉽게 생각하면 명절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투표 성향에 대해서 서로 가볍게 이야기하거나 반대하다가 화를 내면서 결국 싸움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관링크]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사이언티픽 리포트' 논문




특히 국내의 유권자들은 보수와 진보의 성향이 뚜렷한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자신의 안정적인 삶과 생존에 대한 욕망을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황상민 심리학 박사는 분석했다. 자신의 일자리 등 경제 기반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후보, 북한의 위협을 막아줄 수 있는 후보 등 각자가 가진 욕망은 다르지만 안정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황 박사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당위성에서 벗어나 감정적인 요소가 인간의 판단과 의사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가지 명심할 점이 있다. 맹목적인 감정과 욕망으로 뜨겁던 사랑이 어느 순간 끝나거나 시들해지면 후회와 배신감, 좌절감, 무기력함 등이 찾아온다.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감정적으로 투표했을 때 맞게 되는 결말은 단순히 연애에 실패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뇌에서 벌어지는 '열렬한 지지' 기반 속에 어떤 감정이 숨어 있는지 냉정하게 재단해보고 나에게,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될 후보를 가려낼 수 있는 '이성'을 깨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조언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