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태국, 제비집으로 불황 타개

입력 2008.02.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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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의 무차별 테러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태국 남부 지역 주민들을 제비가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없어 비어가는 건물들에 제비가 둥지를 틀면서 고급 중국 음식재료로 쓰이는 제비집이 주민들에게 새로운 소득원이 되고 있는데요.

생태계 파괴라는 환경단체들의 비난 속에서도 제비집 채취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태국 남부 주민들을 김철민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태국 남부 바닷가 휴양도시 파타니.. 지난 4 년간 계속된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의 테러로 지금은 적막한 죽음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밤마다 관광객이 넘쳐 나던 야시장 술집들은 대부분 폐쇄됐고, 노점상들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두엉팁(술집 종업원) : "예전엔 방 10 개가 다 찼었는데 지금은 손님이 없어요."

날마다 불야성을 이루던 도심 빌딩들은 수 년 째 흉물스럽게 방치됐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바닷가 절벽이나 동굴 속에 살던 제비들이, 방치된 도심 빌딩 안에 몇 년 전 부터 하나 둘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한 빌딩에 들어서자 인기척에 놀란 제비들이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4-50 평 남짓 비좁은 공간에 제비들 수 천 마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제비들은 1 년 내내 이곳에서 산란과 부화를 거듭합니다.

<인터뷰> 솜차이(빌딩 주인) : "새끼 제비가 떠난 빈 둥지가 생기면 따낼 수 있습니다."

제비들은 침샘에서 점액질을 뱉어내 둥지를 짓습니다. 산란과 부화를 위해 제비들이 다닥다닥 둥지를 틀면서 주민들은 새로운 소득원이 생겼습니다. 제비집 1 kg 을 따려면 약 2 백여 마리의 제비가 둥지를 틀어야 합니다.

제비가 뱉어낸 침에서 이렇게 하얀색 제비집이 만들어 집니다. 제비가 이 작은 집 하나를 짓는 데는 꼬박 3 주가 걸립니다. 주민들은 이 제비집을 내다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희귀한 고급 음식 재료로 중국인들에게 kg 당 수 백만원씩 팔려 나갑니다. 제비집은 단백질이 풍부해 예로부터 중국 황제가 즐겨먹던 희귀한 보양식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깎아지른 바닷가 절벽이나 동굴에서 목숨 걸고 따내던 제비집을 도심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자 주민들은 너도 나도 제비집 양식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도심 외곽에 우뚝 솟은 6 층짜리 가정집입니다. 3 층까지는 사람이 살려고 지었고 , 4 층부터는 제비들이 살 수 있도록 제비 콘도를 지었습니다. 채광과 통풍, 습도 등을 조절해 제비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대형 앰프와 스피커로 제비 소리를 녹음해 틀어주며 제비들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바닥과 벽에는 제비들 배설물을 쌓아 놓아. 냄새도 진짜 동굴처럼 꾸며 놓습니다.

<인터뷰> 담롱(제비 콘도 주인) : "태국 남부는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제비집 채취 사업이 가장 수익성이 높습니다."

주인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제비집을 따 냅니다. 1등급 제비집 1kg 이면 약 2백만원선. 현지에선 근로자 두 세 달치 월급보다 많습니다.

어제 오후 반나절 만에 따낸 제비집입니다. 산지 가격으로 150 만원, 대도시에선 300 만원이 넘습니다. 관광객이 끊긴 대형 호텔이나 영화관들도 제비집 양식 사업에 잇따라 뛰어 들었습니다. 이 호텔은 지하층을 모두 제비집으로 개조했습니다. 당초 커피숍을 만들려고 했지만 관광객이 줄어들자 제비집 채취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제비 수 만 마리가 이렇게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날아듭니다. 40 일에 한 번 꼴로 약 20 kg 정도 제비집을 땁니다. 제비집을 따낸 자리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제비집을 대신 달아 줍니다. 한 번 제비집을 따면 평균 수입은 약 3천만원 정도입니다.

<인터뷰> 아누싸(호텔 사장) : "어떤 때는 4-5 kg , 어떤 때는 6-7 kg 도 따냅니다.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제비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제비들이 드나드는 시간엔 투숙객들이 소란을 떨지 못하도록 전담 직원까지 배치해 둔다. 제비집을 요리 재료로 만들려면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깃털과 먼지들을 일일이 걷어 내야 합니다.

<인터뷰> 폰 : "깃털이나 먼지같은 더러운 것들을 골라내고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 낸 은백색 제비집은 대도시 고급 식당에서 상어 지느러미와 함께 최고급 스프 재료로 쳐 줍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왕실에서만 먹었다던 제비집 요리는 값도 아주 비쌉니다. 조그만 그릇 한 종지에 반절 남짓 담아서 약 2 만원. 현지인들 주식인 쌀국수 한 끼 가격보다 20 배나 비쌉니다.

<인터뷰> 주지광(관광객) : "너무 맛있습니다. 이 요리를 먹기 위해 타이완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수요에 비해서 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재료이기 때문에 그동안 마구잡이 채취가 계속돼 왔습니다.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긴 제비들은 산란과 부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그래서 국제 환경단체들은 생태계를 짓밟는 제비집 채취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비집 채취로 목돈을 챙긴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태국 남부 곳곳에서 제비집 콘도 건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본 코소보와 그루지야, 파키스탄의 미래는 주변 강국들의 입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불안한 이 나라들의 정세를 보면서 강대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지구촌의 냉엄한 현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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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 태국, 제비집으로 불황 타개
    • 입력 2008-02-24 09:50:5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의 무차별 테러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태국 남부 지역 주민들을 제비가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없어 비어가는 건물들에 제비가 둥지를 틀면서 고급 중국 음식재료로 쓰이는 제비집이 주민들에게 새로운 소득원이 되고 있는데요. 생태계 파괴라는 환경단체들의 비난 속에서도 제비집 채취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태국 남부 주민들을 김철민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태국 남부 바닷가 휴양도시 파타니.. 지난 4 년간 계속된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의 테러로 지금은 적막한 죽음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밤마다 관광객이 넘쳐 나던 야시장 술집들은 대부분 폐쇄됐고, 노점상들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두엉팁(술집 종업원) : "예전엔 방 10 개가 다 찼었는데 지금은 손님이 없어요." 날마다 불야성을 이루던 도심 빌딩들은 수 년 째 흉물스럽게 방치됐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바닷가 절벽이나 동굴 속에 살던 제비들이, 방치된 도심 빌딩 안에 몇 년 전 부터 하나 둘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한 빌딩에 들어서자 인기척에 놀란 제비들이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4-50 평 남짓 비좁은 공간에 제비들 수 천 마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제비들은 1 년 내내 이곳에서 산란과 부화를 거듭합니다. <인터뷰> 솜차이(빌딩 주인) : "새끼 제비가 떠난 빈 둥지가 생기면 따낼 수 있습니다." 제비들은 침샘에서 점액질을 뱉어내 둥지를 짓습니다. 산란과 부화를 위해 제비들이 다닥다닥 둥지를 틀면서 주민들은 새로운 소득원이 생겼습니다. 제비집 1 kg 을 따려면 약 2 백여 마리의 제비가 둥지를 틀어야 합니다. 제비가 뱉어낸 침에서 이렇게 하얀색 제비집이 만들어 집니다. 제비가 이 작은 집 하나를 짓는 데는 꼬박 3 주가 걸립니다. 주민들은 이 제비집을 내다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희귀한 고급 음식 재료로 중국인들에게 kg 당 수 백만원씩 팔려 나갑니다. 제비집은 단백질이 풍부해 예로부터 중국 황제가 즐겨먹던 희귀한 보양식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깎아지른 바닷가 절벽이나 동굴에서 목숨 걸고 따내던 제비집을 도심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자 주민들은 너도 나도 제비집 양식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도심 외곽에 우뚝 솟은 6 층짜리 가정집입니다. 3 층까지는 사람이 살려고 지었고 , 4 층부터는 제비들이 살 수 있도록 제비 콘도를 지었습니다. 채광과 통풍, 습도 등을 조절해 제비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대형 앰프와 스피커로 제비 소리를 녹음해 틀어주며 제비들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바닥과 벽에는 제비들 배설물을 쌓아 놓아. 냄새도 진짜 동굴처럼 꾸며 놓습니다. <인터뷰> 담롱(제비 콘도 주인) : "태국 남부는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제비집 채취 사업이 가장 수익성이 높습니다." 주인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제비집을 따 냅니다. 1등급 제비집 1kg 이면 약 2백만원선. 현지에선 근로자 두 세 달치 월급보다 많습니다. 어제 오후 반나절 만에 따낸 제비집입니다. 산지 가격으로 150 만원, 대도시에선 300 만원이 넘습니다. 관광객이 끊긴 대형 호텔이나 영화관들도 제비집 양식 사업에 잇따라 뛰어 들었습니다. 이 호텔은 지하층을 모두 제비집으로 개조했습니다. 당초 커피숍을 만들려고 했지만 관광객이 줄어들자 제비집 채취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제비 수 만 마리가 이렇게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날아듭니다. 40 일에 한 번 꼴로 약 20 kg 정도 제비집을 땁니다. 제비집을 따낸 자리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제비집을 대신 달아 줍니다. 한 번 제비집을 따면 평균 수입은 약 3천만원 정도입니다. <인터뷰> 아누싸(호텔 사장) : "어떤 때는 4-5 kg , 어떤 때는 6-7 kg 도 따냅니다.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제비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제비들이 드나드는 시간엔 투숙객들이 소란을 떨지 못하도록 전담 직원까지 배치해 둔다. 제비집을 요리 재료로 만들려면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깃털과 먼지들을 일일이 걷어 내야 합니다. <인터뷰> 폰 : "깃털이나 먼지같은 더러운 것들을 골라내고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 낸 은백색 제비집은 대도시 고급 식당에서 상어 지느러미와 함께 최고급 스프 재료로 쳐 줍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왕실에서만 먹었다던 제비집 요리는 값도 아주 비쌉니다. 조그만 그릇 한 종지에 반절 남짓 담아서 약 2 만원. 현지인들 주식인 쌀국수 한 끼 가격보다 20 배나 비쌉니다. <인터뷰> 주지광(관광객) : "너무 맛있습니다. 이 요리를 먹기 위해 타이완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수요에 비해서 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재료이기 때문에 그동안 마구잡이 채취가 계속돼 왔습니다.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긴 제비들은 산란과 부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그래서 국제 환경단체들은 생태계를 짓밟는 제비집 채취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비집 채취로 목돈을 챙긴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태국 남부 곳곳에서 제비집 콘도 건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본 코소보와 그루지야, 파키스탄의 미래는 주변 강국들의 입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불안한 이 나라들의 정세를 보면서 강대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지구촌의 냉엄한 현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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