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北 첫 패럴림픽 출전…꼴찌에게 박수를

입력 2012.09.08 (12:13) 수정 2012.09.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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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안녕하십니까?



9월8일 토요일. 남북의 창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 ]입니다.



지금 영국 런던에서는 제14회 장애인 올림픽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북한도 처음으로 20명 넘는 선수단이 출전했습니다.



북한이 유일하게 출전했던 수영에서는 비록 예선 최하위에 그쳤지만, 관중들은 뜨거운 성원과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북한이 출전하는 데는 한 대북 지원단체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도움이 됐는데요.

 

북한이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과정, 그리고 북한 당국의 장애인 체육에 대한 정책 등을 조아란 리포터가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화려한 불꽃이 런던 밤하늘을 수놓고, 12일간 주경기장을 환하게 밝힐 성화가 점화됐습니다.



<녹취> 엘리자베스(영국 여왕) :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의 개막을 선언합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스티븐 호킹 박사도 출연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아름다운 도전을 축하합니다.



제 14회 런던 장애인 올림픽, 올해 축제에는 새로운 손님도 동참했습니다.



40번째로 입장한 북한 선수단은 사상 처음으로 밟는 장애인 올림픽 무대였지만, 시종일관 환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개막식을 즐겼습니다.



북한 선수단 가운데는 반가운 얼굴도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현정화와 함께 남북 단일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이분희. 이번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북한 선수단 전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녹취> 이분희(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 : "(소감이 어떠세요?) 후에 이야기 할게요."



이번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선수단은 모두 24명입니다.



실제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수영 50미터 자유형에 출전하는 임주성 한 명입니다.



첫 출전이지만 당찬 각오로 선전을 다짐합니다.



<녹취> 임주성(북한장애인올림픽 수영 대표) : "(첫 출전인데 어떠세요?) 막 좋습니다. (긴장되진 않으세요?) 조금 긴장됩니다. 파이팅! "



오른쪽 팔과 다리만으로 힘차게 물속을 헤엄쳐 갑니다.



경기를 이틀 앞둔 훈련 시간, 17살 소년은 컨디션과 경기 감각을 최고로 끌어올립니다.



지금은 수영이 임 선수 삶의 전부가 됐지만, 어려서는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임 선수는 외교관인 아버지 덕분에 중국에서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다섯 살 때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술학교 입학 전날 중장비에 치여 왼쪽 팔과 다리, 그리고 오른쪽 발가락 일부를 잃었습니다.



<인터뷰> 신영순(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본부장) : "동네 형들하고 공사장에 놀러갔다가 그 불도저, 중장비가 움직이는 걸 못보고 거기에 왼발이 딸려 들어가니까 발을 빼내려고 왼손을 집어넣었다가 왼팔까지..."



좌절하던 소년이 수영을 배운 것은 불과 넉 달 전입니다.



그 전까지는 물에 뜨는 법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임 선수는 특유의 밝은 성격과 투지로 놀랄만한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 반 만인 지난 6월, 베를린에서 열렸던 국제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출전한 세 종목 모두 10위 안에 들며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인터뷰> 신영순(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본부장) : "한 3일 만에 물에 뜨고 한 35일 연습해서 독일에 베를린에 보냈는데 거기서 다 10등 안에 통과됐어요. 35일 만에 기적을 이룬 거죠. 정말 그 투지와 그 마음이 그 각오가 굉장히 기특하고 장하죠. "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과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북한 장애인 선수단이 런던에 입성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 됐습니다.



지난 1998년부터 북한의 고아와 장애인을 지원해 온 단체입니다.



북한이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항공료와 체재비 8천만 원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북한 당국이 장애인 올림픽 참가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단체는 북한의 탁구 영웅 이분희와 체육계 인사를 광저우로 초청해 장애인 경기를 참관토록 했고, 경기를 지켜본 북측 인사들은 큰 충격과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곽수광(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대표) : "북에서 오신 분들이 굉장히 감동을 받고 또 충격도 받고. 야, 우리는 장애인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존재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장애인들이 체육도 하고 이렇게 국제경기를 하고 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스럽다. 우리도 한번 북에 돌아가서 한번 해보고 싶다."



특히 장애인 아들을 둔 이분희의 느낌은 남달랐습니다.



북한으로 돌아가자마자 장애인 탁구팀을 만들어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녹취> 송금정(북한 장애인 탁구 선수) : "국제대회에서 세계 사람들과 한번 겨뤄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



북한 당국도 장애인 체육의 필요성과 긍정적 인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조선장애자체육협회를 설립해 장애인 체육의 기틀을 다졌고. 장애인 올림픽 참가를 목표로 국제 장애인 올림픽 위원회, IPC 가입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마침내 IPC로부터 출전권을 얻어 올림픽 데뷔라는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인터뷰> 곽수광(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대표) :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인이 돼 가지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자기 가족 중에 하나, 자녀 중에 하나가 이렇게 국가를 대표해서 간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다들 기대하고 있고 다들 흥분하고 있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임주성 선수가 출전하는 지체장애 6급 선수들의 수영 50m 자유형 예선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임주성 선수는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 경기장을 찾아 몸을 풀었습니다.



50m 길이의 레인을 쉼 없이 왕복하고, 코치들의 조언을 가슴 속에 새기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든 30여 명의 북한 응원단에 우리 교민들까지 가세해 임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6명의 선수 중 가장 늦은 스타트.



힘차게 물살을 가르지만 다른 선수들에 뒤쳐진 임주성 선수는 금세 중계 카메라에서 사라집니다.



선수들이 모두 결승점에 들어온 뒤에도 임주성 선수는 여전히 혼신을 힘을 다해 결승점을 향합니다.



47초 87. 전체 출전 선수 17명 중 꼴찌로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최고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운 임 선수의 목소리와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습니다.



<인터뷰> 임주성(북한장애인올림픽 수영 대표) : "이때까지 한 것 중에서 제일 기록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훈련 더 많이 해가지고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꼭 금메달 따겠습니다. "



비록 꼴찌였지만 이날 임주성 선수는 금메달을 딴 것 못지않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열띤 취재 열기에 다소 얼떨떨한 모습이었지만, 17살의 당찬 북한 소년은 장애인 체육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도 밝혔습니다.



<인터뷰> 임주성(북한장애인올림픽 수영 대표) : "앞으로 언어 공부 좀 잘해가지고 (북한) 체육 활동, 장애자 체육(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선수단을 이끈 이분희 역시 처음 경험한 장애인 올림픽을 통해 더 큰 꿈을 꾸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분희(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 : "제가 이렇게 계속 정상 올림픽만 참가했던 사람인데요. 이번에 장애자 올림픽에 참가하고 보니까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한 마음이 돼가지고 응원하는 모습들, 그들을 위해서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니까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여요. 장애자 올림픽이 더 감동적이에요. 이제 시작이니까 이제 다음번 브라질 올림픽에는 종목이 몇 개 종목이, 더 참가해가지고 메달을 획득해야죠. "



역사적인 첫 장애인 올림픽 참가.



전 세계는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북한 당국이 장애인 체육은 물론 장애인 복지 전반에 더 큰 관심을 갖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곽수광(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대표) : "장애인 체육을 꼭 해야 하는구나 하는 인식이 이제 북한에 정부라든가 또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했고요. 이렇게 운동도 하고 음악도, 미술 또 여러 가지 예술 활동들을 하고 이런 것들이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중요하구나 하는 인식이 이번에 북한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될 것 같아요. "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북한 임주성 선수의 투지는 남과 북을 넘어 지구촌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북한의 장애인 수는 8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요.



이들이 임 선수처럼 새로운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북한이 장애인 올림픽에 처음 출전하는데남한 민간단체의 지원이 큰 힘이 됐던 것처럼 앞으로도 남북이 함께 힘을 합쳐 더 큰 희망과 감동을 일궈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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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北 첫 패럴림픽 출전…꼴찌에게 박수를
    • 입력 2012-09-08 12:13:04
    • 수정2012-09-15 10:02:18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안녕하십니까?

9월8일 토요일. 남북의 창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 ]입니다.

지금 영국 런던에서는 제14회 장애인 올림픽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북한도 처음으로 20명 넘는 선수단이 출전했습니다.

북한이 유일하게 출전했던 수영에서는 비록 예선 최하위에 그쳤지만, 관중들은 뜨거운 성원과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북한이 출전하는 데는 한 대북 지원단체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도움이 됐는데요.
 
북한이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과정, 그리고 북한 당국의 장애인 체육에 대한 정책 등을 조아란 리포터가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화려한 불꽃이 런던 밤하늘을 수놓고, 12일간 주경기장을 환하게 밝힐 성화가 점화됐습니다.

<녹취> 엘리자베스(영국 여왕) :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의 개막을 선언합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스티븐 호킹 박사도 출연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아름다운 도전을 축하합니다.

제 14회 런던 장애인 올림픽, 올해 축제에는 새로운 손님도 동참했습니다.

40번째로 입장한 북한 선수단은 사상 처음으로 밟는 장애인 올림픽 무대였지만, 시종일관 환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개막식을 즐겼습니다.

북한 선수단 가운데는 반가운 얼굴도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현정화와 함께 남북 단일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이분희. 이번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북한 선수단 전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녹취> 이분희(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 : "(소감이 어떠세요?) 후에 이야기 할게요."

이번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선수단은 모두 24명입니다.

실제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수영 50미터 자유형에 출전하는 임주성 한 명입니다.

첫 출전이지만 당찬 각오로 선전을 다짐합니다.

<녹취> 임주성(북한장애인올림픽 수영 대표) : "(첫 출전인데 어떠세요?) 막 좋습니다. (긴장되진 않으세요?) 조금 긴장됩니다. 파이팅! "

오른쪽 팔과 다리만으로 힘차게 물속을 헤엄쳐 갑니다.

경기를 이틀 앞둔 훈련 시간, 17살 소년은 컨디션과 경기 감각을 최고로 끌어올립니다.

지금은 수영이 임 선수 삶의 전부가 됐지만, 어려서는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임 선수는 외교관인 아버지 덕분에 중국에서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다섯 살 때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술학교 입학 전날 중장비에 치여 왼쪽 팔과 다리, 그리고 오른쪽 발가락 일부를 잃었습니다.

<인터뷰> 신영순(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본부장) : "동네 형들하고 공사장에 놀러갔다가 그 불도저, 중장비가 움직이는 걸 못보고 거기에 왼발이 딸려 들어가니까 발을 빼내려고 왼손을 집어넣었다가 왼팔까지..."

좌절하던 소년이 수영을 배운 것은 불과 넉 달 전입니다.

그 전까지는 물에 뜨는 법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임 선수는 특유의 밝은 성격과 투지로 놀랄만한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 반 만인 지난 6월, 베를린에서 열렸던 국제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출전한 세 종목 모두 10위 안에 들며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인터뷰> 신영순(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본부장) : "한 3일 만에 물에 뜨고 한 35일 연습해서 독일에 베를린에 보냈는데 거기서 다 10등 안에 통과됐어요. 35일 만에 기적을 이룬 거죠. 정말 그 투지와 그 마음이 그 각오가 굉장히 기특하고 장하죠. "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과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북한 장애인 선수단이 런던에 입성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 됐습니다.

지난 1998년부터 북한의 고아와 장애인을 지원해 온 단체입니다.

북한이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항공료와 체재비 8천만 원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북한 당국이 장애인 올림픽 참가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단체는 북한의 탁구 영웅 이분희와 체육계 인사를 광저우로 초청해 장애인 경기를 참관토록 했고, 경기를 지켜본 북측 인사들은 큰 충격과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곽수광(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대표) : "북에서 오신 분들이 굉장히 감동을 받고 또 충격도 받고. 야, 우리는 장애인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존재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장애인들이 체육도 하고 이렇게 국제경기를 하고 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스럽다. 우리도 한번 북에 돌아가서 한번 해보고 싶다."

특히 장애인 아들을 둔 이분희의 느낌은 남달랐습니다.

북한으로 돌아가자마자 장애인 탁구팀을 만들어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녹취> 송금정(북한 장애인 탁구 선수) : "국제대회에서 세계 사람들과 한번 겨뤄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

북한 당국도 장애인 체육의 필요성과 긍정적 인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조선장애자체육협회를 설립해 장애인 체육의 기틀을 다졌고. 장애인 올림픽 참가를 목표로 국제 장애인 올림픽 위원회, IPC 가입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마침내 IPC로부터 출전권을 얻어 올림픽 데뷔라는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인터뷰> 곽수광(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대표) :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인이 돼 가지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자기 가족 중에 하나, 자녀 중에 하나가 이렇게 국가를 대표해서 간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다들 기대하고 있고 다들 흥분하고 있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임주성 선수가 출전하는 지체장애 6급 선수들의 수영 50m 자유형 예선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임주성 선수는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전 경기장을 찾아 몸을 풀었습니다.

50m 길이의 레인을 쉼 없이 왕복하고, 코치들의 조언을 가슴 속에 새기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든 30여 명의 북한 응원단에 우리 교민들까지 가세해 임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6명의 선수 중 가장 늦은 스타트.

힘차게 물살을 가르지만 다른 선수들에 뒤쳐진 임주성 선수는 금세 중계 카메라에서 사라집니다.

선수들이 모두 결승점에 들어온 뒤에도 임주성 선수는 여전히 혼신을 힘을 다해 결승점을 향합니다.

47초 87. 전체 출전 선수 17명 중 꼴찌로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최고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운 임 선수의 목소리와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습니다.

<인터뷰> 임주성(북한장애인올림픽 수영 대표) : "이때까지 한 것 중에서 제일 기록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훈련 더 많이 해가지고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꼭 금메달 따겠습니다. "

비록 꼴찌였지만 이날 임주성 선수는 금메달을 딴 것 못지않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열띤 취재 열기에 다소 얼떨떨한 모습이었지만, 17살의 당찬 북한 소년은 장애인 체육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도 밝혔습니다.

<인터뷰> 임주성(북한장애인올림픽 수영 대표) : "앞으로 언어 공부 좀 잘해가지고 (북한) 체육 활동, 장애자 체육(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선수단을 이끈 이분희 역시 처음 경험한 장애인 올림픽을 통해 더 큰 꿈을 꾸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분희(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 : "제가 이렇게 계속 정상 올림픽만 참가했던 사람인데요. 이번에 장애자 올림픽에 참가하고 보니까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한 마음이 돼가지고 응원하는 모습들, 그들을 위해서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니까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여요. 장애자 올림픽이 더 감동적이에요. 이제 시작이니까 이제 다음번 브라질 올림픽에는 종목이 몇 개 종목이, 더 참가해가지고 메달을 획득해야죠. "

역사적인 첫 장애인 올림픽 참가.

전 세계는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북한 당국이 장애인 체육은 물론 장애인 복지 전반에 더 큰 관심을 갖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곽수광(대북 지원단체 ‘푸른나무’ 대표) : "장애인 체육을 꼭 해야 하는구나 하는 인식이 이제 북한에 정부라든가 또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했고요. 이렇게 운동도 하고 음악도, 미술 또 여러 가지 예술 활동들을 하고 이런 것들이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중요하구나 하는 인식이 이번에 북한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될 것 같아요. "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북한 임주성 선수의 투지는 남과 북을 넘어 지구촌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북한의 장애인 수는 8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요.

이들이 임 선수처럼 새로운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북한이 장애인 올림픽에 처음 출전하는데남한 민간단체의 지원이 큰 힘이 됐던 것처럼 앞으로도 남북이 함께 힘을 합쳐 더 큰 희망과 감동을 일궈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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