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마지막길 함께”…‘시한부’ 아내와 마지막 여행

입력 2015.09.02 (08:30) 수정 2015.09.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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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말기암으로,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은 아내.

그런 아내와의 여행을 위해, 남은 재산을 털어 캠핑카를 구입한 70대 남성이 있습니다.

한 달 동안의 오붓한 여행 도중 아내는 숨졌고, 그러자 남편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독극물을 마십니다.

가슴 아픈 이 사연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흘 전 전북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뉴스따라잡기는 어느 70대 노부부의 안타까운 마지막 여행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리포트>

사흘 전인 지난달 30일 이른 아침.

전북 장수군에 있는 작은 등산로 입구의 주차장.

<인터뷰>윤순상(소방교/무진장소방서 장수119안전센터) : "6시쯤에 사람이 사망한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고요. 호흡이 없는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출동 중에 전화로 현장 상황을 알아보니까 환자가 두 분이라고."

등산로 입구에 세워져 있던 흰색 캠핑카.

캠핑카 안으로 들어갔더니, 여행을 온 듯한 70대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 옆으로 망연자실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노부부는 사별을 한 듯했습니다.

<인터뷰> 윤순상(소방교/무진장소방서 장수119안전센터) : "(할아버지가) 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할머니가 떠나가시면 자기도 같이 따라가겠다고 생각을 하셨다고, 감기약에 농약을 넣어서 한 세 컵 정도를 마셨다고 하셨거든요."

대체 이 노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여행을 떠난 건 한 달 전쯤이었습니다.

청천벽력같은 말기 암 판정을 받게 된 할머니.

병원에서는 할머니의 남은 생이 길어야 한 달 정도일 거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머니가 인천 쪽 병원에서 말기 암 진단을 받고 한두 달 밖에 못 사신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께서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곳에서 여행을 다니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남은 재산을 털어 캠핑카 한 대를 구입합니다.

어쩌면 아내와 함께하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행길.

모든 걸 잊고, 노부부는 둘 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아버지가 중고 캠핑카를 사신 거예요. 그래서 지리산으로 해서 돌아다니다가…."

젊은 시절부터 오붓한 여행을 즐겨 다녔다는 부부.

살고 있던 인천을 떠난 노부부는 전국 곳곳을 발길 닿는 대로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산과 들, 바다와 강.

덜컹이는 캠핑카에 몸을 실은 부부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새기며, 둘 만의 시간에 푹 빠졌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할머니의 병도 할아버지의 걱정도 모두 없는 일인 듯 했는데요,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아버지가 참 정성스럽게 보살펴 드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캠핑카 내부도 깨끗하고, 정리정돈도 잘 돼 있고요."

하지만, 야속한 시간은 함께 있고 싶었던 부부를 마냥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한 달 정도 뒤, 할아버지와의 행복한 시간에 빠져있던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맙니다.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예정된 시간은 너무나 빨리 닥쳐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손을 한동안 놓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머니가) 여행 중에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영정사진도 할아버지, 할머니 것 (두 개를) 준비했고."

그렇게 할머니가 숨을 거두고, 실의에 빠진 할아버지는 그만 해서는 안 될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맙니다.

<인터뷰> 양영호(경위/장수경찰서 산서파출소) :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자기도 생을 마감해야 되겠다. 자기도 살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전에부터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집에서 준비해 온 농약을 마셨다."

할머니 없는 삶이 견디기 힘들었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유서를 쓰고, 장례식에 써달라는 비용까지 봉투에 넣어 둔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유서내용은 할아버지가 “암 환자 가족입니다. 아내를 따라서 가려고 하니까 5백만 원 현금이 있으니까 조용히 장례를 치러주십시오“ 라고……."

하지만, 농약을 마신 할아버지는 얼마 뒤 극적으로 정신을 차리게 됐고, 이를 알게 된 가족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져 다행히 목숨을 구했습니다.

<인터뷰> 김효선(의사/전북대병원 응급의학과) : "차콜이라고 해서 흡수를 시켜서 약을 빼내는 약을 투여했고, 합병증이 나타나거나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폐나 위 이런데 문제는 나타날 수 있어서 그 부분은 증상 조절을 하면서……."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본인이 음독하고 별 이상이 없으니까 새벽에 사위한테 연락을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위가 현장에 한 새벽 5시쯤 도착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었던 그제.

취재팀은 성치 않은 몸으로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챙기던 할아버지를 어렵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큰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다행히 할아버지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는데요,

<녹취> 박모 할아버지(음성변조) : "여행 많이 갔지. 낚시도 다니고 같이. 동네에서 다 부러워할 정도로 그렇게 했어요. 없이는 살았지만 우리는 반말을 해본 적이 없어 서로가. 어딜 가도 내 걱정하고, 나도 어딜 가면 집사람 걱정하고 살았거든요."

할아버지는 아직까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받아 들이는게 무척 어려워 보였습니다.

<녹취> 박모 할아버지 (음성변조) : “나는 참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나는 먼저 갈 테니까 잘 하고 잘 살다 오시라”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을 보내놓고 내가 살 면목도 없고 용기가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한 거예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사랑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마지막 여행을 떠났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에게 할머니의 빈자리는 너무 커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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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마지막길 함께”…‘시한부’ 아내와 마지막 여행
    • 입력 2015-09-02 08:32:07
    • 수정2015-09-02 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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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말기암으로,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은 아내.

그런 아내와의 여행을 위해, 남은 재산을 털어 캠핑카를 구입한 70대 남성이 있습니다.

한 달 동안의 오붓한 여행 도중 아내는 숨졌고, 그러자 남편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독극물을 마십니다.

가슴 아픈 이 사연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흘 전 전북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뉴스따라잡기는 어느 70대 노부부의 안타까운 마지막 여행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리포트>

사흘 전인 지난달 30일 이른 아침.

전북 장수군에 있는 작은 등산로 입구의 주차장.

<인터뷰>윤순상(소방교/무진장소방서 장수119안전센터) : "6시쯤에 사람이 사망한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고요. 호흡이 없는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출동 중에 전화로 현장 상황을 알아보니까 환자가 두 분이라고."

등산로 입구에 세워져 있던 흰색 캠핑카.

캠핑카 안으로 들어갔더니, 여행을 온 듯한 70대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 옆으로 망연자실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노부부는 사별을 한 듯했습니다.

<인터뷰> 윤순상(소방교/무진장소방서 장수119안전센터) : "(할아버지가) 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할머니가 떠나가시면 자기도 같이 따라가겠다고 생각을 하셨다고, 감기약에 농약을 넣어서 한 세 컵 정도를 마셨다고 하셨거든요."

대체 이 노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여행을 떠난 건 한 달 전쯤이었습니다.

청천벽력같은 말기 암 판정을 받게 된 할머니.

병원에서는 할머니의 남은 생이 길어야 한 달 정도일 거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머니가 인천 쪽 병원에서 말기 암 진단을 받고 한두 달 밖에 못 사신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께서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곳에서 여행을 다니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남은 재산을 털어 캠핑카 한 대를 구입합니다.

어쩌면 아내와 함께하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행길.

모든 걸 잊고, 노부부는 둘 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아버지가 중고 캠핑카를 사신 거예요. 그래서 지리산으로 해서 돌아다니다가…."

젊은 시절부터 오붓한 여행을 즐겨 다녔다는 부부.

살고 있던 인천을 떠난 노부부는 전국 곳곳을 발길 닿는 대로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산과 들, 바다와 강.

덜컹이는 캠핑카에 몸을 실은 부부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새기며, 둘 만의 시간에 푹 빠졌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할머니의 병도 할아버지의 걱정도 모두 없는 일인 듯 했는데요,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아버지가 참 정성스럽게 보살펴 드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캠핑카 내부도 깨끗하고, 정리정돈도 잘 돼 있고요."

하지만, 야속한 시간은 함께 있고 싶었던 부부를 마냥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한 달 정도 뒤, 할아버지와의 행복한 시간에 빠져있던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맙니다.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예정된 시간은 너무나 빨리 닥쳐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손을 한동안 놓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할머니가) 여행 중에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영정사진도 할아버지, 할머니 것 (두 개를) 준비했고."

그렇게 할머니가 숨을 거두고, 실의에 빠진 할아버지는 그만 해서는 안 될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맙니다.

<인터뷰> 양영호(경위/장수경찰서 산서파출소) :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자기도 생을 마감해야 되겠다. 자기도 살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전에부터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집에서 준비해 온 농약을 마셨다."

할머니 없는 삶이 견디기 힘들었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유서를 쓰고, 장례식에 써달라는 비용까지 봉투에 넣어 둔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유서내용은 할아버지가 “암 환자 가족입니다. 아내를 따라서 가려고 하니까 5백만 원 현금이 있으니까 조용히 장례를 치러주십시오“ 라고……."

하지만, 농약을 마신 할아버지는 얼마 뒤 극적으로 정신을 차리게 됐고, 이를 알게 된 가족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져 다행히 목숨을 구했습니다.

<인터뷰> 김효선(의사/전북대병원 응급의학과) : "차콜이라고 해서 흡수를 시켜서 약을 빼내는 약을 투여했고, 합병증이 나타나거나 이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폐나 위 이런데 문제는 나타날 수 있어서 그 부분은 증상 조절을 하면서……."

<인터뷰> 이관성(장수경찰서 강력팀 팀장) : "본인이 음독하고 별 이상이 없으니까 새벽에 사위한테 연락을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위가 현장에 한 새벽 5시쯤 도착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었던 그제.

취재팀은 성치 않은 몸으로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챙기던 할아버지를 어렵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큰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다행히 할아버지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는데요,

<녹취> 박모 할아버지(음성변조) : "여행 많이 갔지. 낚시도 다니고 같이. 동네에서 다 부러워할 정도로 그렇게 했어요. 없이는 살았지만 우리는 반말을 해본 적이 없어 서로가. 어딜 가도 내 걱정하고, 나도 어딜 가면 집사람 걱정하고 살았거든요."

할아버지는 아직까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받아 들이는게 무척 어려워 보였습니다.

<녹취> 박모 할아버지 (음성변조) : “나는 참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나는 먼저 갈 테니까 잘 하고 잘 살다 오시라”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을 보내놓고 내가 살 면목도 없고 용기가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한 거예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사랑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마지막 여행을 떠났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에게 할머니의 빈자리는 너무 커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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