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國記] “IS 겁내지 말라”…캐나다 지키는 시크교 무인

입력 2015.11.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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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 위협으로부터 국민 지킨다."

"IS는 분명 위협 요소다. 하지만 그들을 겁내야 하는가? 캐나다 국민은 자신을 지켜주는 안보시스템을 완전히 신뢰해도 된다."

캐나다 국방장관인 하지트 사잔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캐나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IS 공습 작전에 전투기를 파견해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IS의 보복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캐나다 내 무슬림 수도 인구의 3.2%, 111만 명이고, 이들 가운데 극단주의자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어난 국회의사당 총격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 국방장관의 발언은 어찌 보면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하지트 사잔 국방장관

▲ 하지트 사잔 캐나다 국방장관(가운데)


■ 캐나다 국방장관은 인도 출신 시크교도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45세)은 이달 초 새로 출범한 트뤼도 총리 내각의 일원이다. 이 내각은 남녀 비율을 똑같이 하고 종교적 소수자와 장애인, 원주민 등을 포함해 캐나다 역사상 가장 파격적 면모를 띄고 있다. 그 파격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시크교도다. 서구 국가들에서 이주민 출신을 장관으로 발탁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었지만 한 나라의 국방 책임자로 기용하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탁월하다는 얘긴데, 하지트 사잔은 캐나다 국기를 가슴에 달고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세 차례 파병돼 작전을 수행했고 보스니아에서도 복무했다. 군에 들어가기 전에는 벤쿠버 경찰로 11년간 활약했다.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각종 훈장들은 캐나다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잘 나타낸다.

시크교도 남자는 특이한 외모로 금방 눈에 띈다. 머리를 감싼 터번과 덥수룩한 수염이다. 시크교도는 종교적 전통에 따라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는다. 깎지 않은 기다란 머리카락을 감싸는 것이 터번인데, 가정 안에서만 풀어놓을 뿐, 밖에서는 늘 착용하고 다닌다. 다른 군대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군인들은 정해진 복장 규정에 따라 군모를 착용한다. 하지만 시크교도는 터번을 결코 벗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그렇다. 시크교도에게만은 군모 대신 터번을 쓰도록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트 사잔은 그래서 중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한 번도 캐나다 군대의 통일된 모자를 써본 일이 없다.

시크교도 부대시크교도 부대

▲ 인도군 시크교도 부대의 행진 장면


■ 시크교도의 피에는 무인 기질이 흐른다.

서방국 캐나다의 인도 출신 시크교도 국방장관. 매우 특이한 장면이지만 시크교도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융합해 16세기 인도에서 생긴 시크교는 무굴제국의 핍박에 맞서 무장항쟁을 거듭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크교도 남자들은 전사 집단으로 커왔다. 인도를 지배한 영국은 이들의 무인 자질에 주목해 대거 군인으로 발탁했다.
군에 투신하는 전통은 독립 인도에서도 이어졌다. 인도에서 시크교도 수는 약 2,000만 명, 인구의 1.7%에 불과하지만 군 장교의 2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적 군인 아잔 싱 원수를 필두로 합참의장과 참모총장, 사령관 등 수많은 장성이 배출됐다. 거대 인도에서 소수 중의 소수에 불과한 집단이지만 군에서만큼은 시크교도의 위상과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시크교도의 피에 흐르는 무인 체질을 이해한다면 저 멀리 캐나다까지 가서 국방장관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시크교도 경호원이 인도 총리 암살

시크교도는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북부 펀자브 주에 밀집해 거주한다.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고 성품도 강직하다. 이 때문인지 전 연방총리 만모한 싱을 비롯해 정·재계에 유력 인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하지만 시크교도는 인도 현대사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인디라 간디 총리 암살 사건이다.

황금사원황금사원

▲ 시크교 최고 성지인 '황금사원'


시크교의 본산은 펀자브 주 암리차르에 있는 황금사원이다. 1984년 5월 이곳에서 수백 명의 시크교도 무장세력이 농성을 벌였다. 펀자브를 중심으로 시크교도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분리주의 그룹이었다. 인도군은 인디라 간디 총리의 명령을 받아 진압 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크고 복잡한 사원 안에서 중무장한 대원들을 진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탱크가 동원됐다. 10대 안팎의 탱크가 사원 안으로 진입해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무장대원은 모두 사망했다. 공식 사망자 수는 인도군 83명, 무장대원 492명이었다.

황금사원 진압 작전이 일어난 지 6개월 후 인디라 간디 총리는 자신의 경호원 두 명이 곁에서 난사한 총격으로 즉사했다. 두 사람은 시크교도였다. 시크교의 성지가 탱크로 유린당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누구보다 충직한 경호원들이었지만 총리의 경호원이라는 신분보다 시크교도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다. 격분한 힌두교도들은 뉴델리 등 여러 곳에서 시크교도를 공격했다. 시크교도는 머리에 터번을 쓰고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다. 사흘 밤낮 계속된 이 공격으로 시크교도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복수를 복수로 갚은 비극이었다. 그 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시크교도들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1984 반시크교도 폭동1984 반시크교도 폭동

▲ 1984년 반시크교도 폭동


시크교도는 그 날의 기억을 깊이 간직한 채 인도와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영국과 캐나다에는 4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미국에도 25만 명가량이 이주해 있다. 700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시크교도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난 사람)는 그 사회에서 잘 적응한 이방인으로 꼽힌다. 영국에는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종교집단 중 평균 소득도 가장 높다. 미국에서는 아시아계 이주민 중 최초의 연방의원이 시크교도였다.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은 캐나다 안보의 수호자이다. 신앙에 철저하고 공동체에 충직한 시크교도가 이방 땅에서 이룬 성취다. 그의 유전자 안에 면면히 내려오는 무인의 DNA는 오늘도 푸른 눈의 캐나다인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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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國記] “IS 겁내지 말라”…캐나다 지키는 시크교 무인
    • 입력 2015-11-20 10:24:38
    7국기
■ "IS 위협으로부터 국민 지킨다." "IS는 분명 위협 요소다. 하지만 그들을 겁내야 하는가? 캐나다 국민은 자신을 지켜주는 안보시스템을 완전히 신뢰해도 된다." 캐나다 국방장관인 하지트 사잔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캐나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IS 공습 작전에 전투기를 파견해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IS의 보복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캐나다 내 무슬림 수도 인구의 3.2%, 111만 명이고, 이들 가운데 극단주의자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어난 국회의사당 총격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 국방장관의 발언은 어찌 보면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 ▲ 하지트 사잔 캐나다 국방장관(가운데)
■ 캐나다 국방장관은 인도 출신 시크교도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45세)은 이달 초 새로 출범한 트뤼도 총리 내각의 일원이다. 이 내각은 남녀 비율을 똑같이 하고 종교적 소수자와 장애인, 원주민 등을 포함해 캐나다 역사상 가장 파격적 면모를 띄고 있다. 그 파격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시크교도다. 서구 국가들에서 이주민 출신을 장관으로 발탁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었지만 한 나라의 국방 책임자로 기용하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탁월하다는 얘긴데, 하지트 사잔은 캐나다 국기를 가슴에 달고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세 차례 파병돼 작전을 수행했고 보스니아에서도 복무했다. 군에 들어가기 전에는 벤쿠버 경찰로 11년간 활약했다.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각종 훈장들은 캐나다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잘 나타낸다. 시크교도 남자는 특이한 외모로 금방 눈에 띈다. 머리를 감싼 터번과 덥수룩한 수염이다. 시크교도는 종교적 전통에 따라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는다. 깎지 않은 기다란 머리카락을 감싸는 것이 터번인데, 가정 안에서만 풀어놓을 뿐, 밖에서는 늘 착용하고 다닌다. 다른 군대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군인들은 정해진 복장 규정에 따라 군모를 착용한다. 하지만 시크교도는 터번을 결코 벗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그렇다. 시크교도에게만은 군모 대신 터번을 쓰도록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트 사잔은 그래서 중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한 번도 캐나다 군대의 통일된 모자를 써본 일이 없다.
시크교도 부대 ▲ 인도군 시크교도 부대의 행진 장면
■ 시크교도의 피에는 무인 기질이 흐른다. 서방국 캐나다의 인도 출신 시크교도 국방장관. 매우 특이한 장면이지만 시크교도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융합해 16세기 인도에서 생긴 시크교는 무굴제국의 핍박에 맞서 무장항쟁을 거듭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크교도 남자들은 전사 집단으로 커왔다. 인도를 지배한 영국은 이들의 무인 자질에 주목해 대거 군인으로 발탁했다. 군에 투신하는 전통은 독립 인도에서도 이어졌다. 인도에서 시크교도 수는 약 2,000만 명, 인구의 1.7%에 불과하지만 군 장교의 2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적 군인 아잔 싱 원수를 필두로 합참의장과 참모총장, 사령관 등 수많은 장성이 배출됐다. 거대 인도에서 소수 중의 소수에 불과한 집단이지만 군에서만큼은 시크교도의 위상과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시크교도의 피에 흐르는 무인 체질을 이해한다면 저 멀리 캐나다까지 가서 국방장관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시크교도 경호원이 인도 총리 암살 시크교도는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북부 펀자브 주에 밀집해 거주한다.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고 성품도 강직하다. 이 때문인지 전 연방총리 만모한 싱을 비롯해 정·재계에 유력 인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하지만 시크교도는 인도 현대사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인디라 간디 총리 암살 사건이다.
황금사원 ▲ 시크교 최고 성지인 '황금사원'
시크교의 본산은 펀자브 주 암리차르에 있는 황금사원이다. 1984년 5월 이곳에서 수백 명의 시크교도 무장세력이 농성을 벌였다. 펀자브를 중심으로 시크교도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분리주의 그룹이었다. 인도군은 인디라 간디 총리의 명령을 받아 진압 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크고 복잡한 사원 안에서 중무장한 대원들을 진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탱크가 동원됐다. 10대 안팎의 탱크가 사원 안으로 진입해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무장대원은 모두 사망했다. 공식 사망자 수는 인도군 83명, 무장대원 492명이었다. 황금사원 진압 작전이 일어난 지 6개월 후 인디라 간디 총리는 자신의 경호원 두 명이 곁에서 난사한 총격으로 즉사했다. 두 사람은 시크교도였다. 시크교의 성지가 탱크로 유린당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누구보다 충직한 경호원들이었지만 총리의 경호원이라는 신분보다 시크교도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다. 격분한 힌두교도들은 뉴델리 등 여러 곳에서 시크교도를 공격했다. 시크교도는 머리에 터번을 쓰고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다. 사흘 밤낮 계속된 이 공격으로 시크교도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복수를 복수로 갚은 비극이었다. 그 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시크교도들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1984 반시크교도 폭동 ▲ 1984년 반시크교도 폭동
시크교도는 그 날의 기억을 깊이 간직한 채 인도와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영국과 캐나다에는 4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미국에도 25만 명가량이 이주해 있다. 700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시크교도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난 사람)는 그 사회에서 잘 적응한 이방인으로 꼽힌다. 영국에는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종교집단 중 평균 소득도 가장 높다. 미국에서는 아시아계 이주민 중 최초의 연방의원이 시크교도였다. 하지트 사잔 국방장관은 캐나다 안보의 수호자이다. 신앙에 철저하고 공동체에 충직한 시크교도가 이방 땅에서 이룬 성취다. 그의 유전자 안에 면면히 내려오는 무인의 DNA는 오늘도 푸른 눈의 캐나다인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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