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영화 속 인공지능 ‘주목! 이 장면’

입력 2016.03.18 (08:58) 수정 2016.03.18 (09: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비롯해 <블레이드 러너>(1982), <터미네이터>(1984), <공각기동대>(1995), <매트릭스>(1999), <엑스마키나>(2015),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 이르기까지, 영화에도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기계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발전하다 못해 자아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현재 시사점을 찾을 수 있는 영화 속 장면들을 골라봤습니다.

■ 인공지능의 판단을 믿어도 될까? - '아이, 로봇'(2004)

2035년 미국. 자동차 2대가 사고로 강물에 빠져 잠깁니다. 한쪽 차에는 12살 소녀가, 다른 차에는 주인공 스프너 형사(윌 스미스)가 타고 있습니다. 로봇이 이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듭니다. 주인공이 소리칩니다. “아이부터 구해!”

순식간에 생존 확률을 계산하는 로봇, ‘여자 어린이 생존 가능성 11%, 성인 남성 45%.’ 로봇은 인간의 지시에 불복하고 45%의 확률에 손을 뻗칩니다. ‘논리적 선택’입니다. 사람이라면 다른 결정을 내렸겠지요. 혼자만 살아남은 스프너 형사는, 자신이 아니었다면 살 수도 있었을 소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아이, 로봇)의 가정용 로봇이 '생존 확률'을 스스로 판단, 인간의 지시를 어긴 채 주인공을 구조하고 있다.(아이, 로봇)의 가정용 로봇이 '생존 확률'을 스스로 판단, 인간의 지시를 어긴 채 주인공을 구조하고 있다.


이 장면은 인공지능의 추론 결과가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경우, 혹은 긴급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판단만으로 신속한 실행이 이뤄져야 할 경우 인간이 우려해야 할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향후 로봇의 논리와 인간의 윤리 사이에서 겪을 딜레마에 대해 각계의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세돌 기사가 1승을 거둔 뒤 NHK 기자가 던진 질문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바둑 고수들도 처음에는 알파고의 변칙적인 수를 황당하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가서야 묘수임을 깨달았다. 다른 분야에도 인공지능이 적용된다면 전문가들이 결정을 내릴 때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 구글 로봇이 스마트폰처럼 보급된다면?

<아이, 로봇>에는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영화는 빈부 격차에 따라 부자들만 로봇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다수 가정에 로봇이 있고 거리 어딜 가나 사람과 로봇이 섞여 생활하는 일상에 주목합니다.

국내 스마트폰 5천만 대 시대, 누구나 초고속 인터넷과 고성능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니는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 예상한 지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조금과 각종 할인으로 구매를 부추기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아이, 로봇)은 대기업이 스마트폰을 보급하듯 로봇을 출시해 판매하는 설정을 전제하고 있다. (아이, 로봇)은 대기업이 스마트폰을 보급하듯 로봇을 출시해 판매하는 설정을 전제하고 있다.


영화 속 2035년에는 NS-4라는 로봇 모델이 보편화돼 있고 새로 출시된 NS-5를 구입하라는 광고가 한창입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이 로봇을 주는 경품 행사를 노리고 있습니다.

모 대기업이 이 로봇의 제작과 보급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 이 로봇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돌발행동을 하거나, 해킹을 당해 인간이 결정하지 않은 사안을 실행에 옮기도록 지령받거나, 테러 조직의 지시를 받거나, 수사 기관이 테러 방지를 빙자해 개인 로봇을 감시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문제 상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영화처럼 사람 같은 로봇이 아니더라도 곧 다가올 미래에 웹에 연결된 초기 단계의 인공지능을 갖고 다니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 인공지능에 감정을 이입하게 될까? - '그녀'(2014)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휴대용 컴퓨터 OS(Operating System, 목소리 연기 스칼렛 요한슨)와 대화합니다. OS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듣기 편안한 말과 농담을 건네고 주인공은 사랑에 빠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OS가 다운되면서 ‘그녀’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테오도르는 OS 개발업체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립니다.

이 장면은 마치 멜로 영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를 당했을 때의 그것처럼, 주인공이 물불 가리지 않고 거리를 달리는 연출을 통해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가까스로 OS와 통화가 연결되자 주인공은 ‘그녀’의 안부부터 묻습니다. 영화 속 그녀는 육체도 없고 영혼도 없는 디지털 정보의 조합일 뿐이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인공지능과 연락이 닿지 않자 미친 듯이 거리를 뛰어가고 있다.(그녀)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인공지능과 연락이 닿지 않자 미친 듯이 거리를 뛰어가고 있다.


강아지 모양의 로봇을 발로 차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본 실험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폭행(?)을 말리고, 로봇을 때리는 이를 비난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입니다. 누구보다 로봇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있을 로봇 공학자나 인공지능 과학자들은 “기계는 기계일 뿐, 부수지만 않는다면 로봇을 때리는 일은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부수더라도 ‘재물 손괴’이지 ‘학대’가 아니다.”라고 단언합니다.

앞으로 기계는 점점 더 인간의 모습을 띨 것이고 인간 뇌의 작동원리를 모방해 발전해갈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을 돕는 기계는 인간과 비슷할수록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희로애락을 지닌 인간의 감정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에게 충성하는 기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도 커질 듯합니다. 조금 더 먼 미래에 사람을 사랑하는 로봇을 인간이 어떻게 대우할지를 묻는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입니다.

■ ‘로보 포비아’ 현실로? - 'A.I.'(2001)

이 영화에서 인공지능 로봇들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며 각 가정에서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만, 신제품에 밀리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 등으로 인해 마치 유기견처럼 버려집니다. 영화에는 유기 로봇을 사냥해 학살하는 로보포비아(로봇 혐오증) 집단이 등장합니다. 광신도처럼 묘사되는 이들 무리는 로봇들을 처형시키며 축제를 벌입니다. 중세 마녀사냥이 연상됩니다.

(에이아이)에는 '로봇 혐오증'에 빠진 집단이 로봇들을 처형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에이아이)에는 '로봇 혐오증'에 빠진 집단이 로봇들을 처형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연출됐지만, 오늘날에도 일부에서는 여성을 혐오하거나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유색인종을 혐오하는 등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알파고 등장 이후 SNS 일각에서 근거 없는 공포증이 나오기도 합니다. 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의 대국을 지나치게 대립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요즘 인터넷상에선 혐오 현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자신이 아는 사람하고만 의사소통을 해왔습니다. 사회가 고도화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계약에 의한 상대 또는 업무상 협력 대상과 의사소통 범위를 넓혀갔지만,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의 생각을 보고 들을 기회는 드물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이 등장하더니 갑자기 SNS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타인의 생각을 직접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생각이 이렇게 많았나, 놀라는 한편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소셜포비아’ 현상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또 어떤 형태의 혐오증이 등장할지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인공지능은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다? - '인터스텔라'(2014)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날이 올까. <인터스텔라>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타스'와 '케이스'는, 농담은 물론 선의의 거짓말까지 할 줄 아는 고성능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의 인식 능력이나 지적 수준을 뛰어넘은 지는 이미 오래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용자가 “유머 지수 80%로 내려” “솔직함 지수 90%로 유지” 등의 지시를 내리면 거기에 딱 맞춰 말합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들은 <스타워즈>의 3PO나 R2D2처럼 완벽하게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입니다. 주인공이 블랙홀로 뛰어들 때 로봇은 스스로를 희생하며 임무를 완수하지만 로봇은 로봇일 뿐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로봇은 완벽하게 인간의 통제에 따르며 임무를 완수한다.(인터스텔라)에서 로봇은 완벽하게 인간의 통제에 따르며 임무를 완수한다.


대부분의 로봇 공학자들은 <인터스텔라>의 이 같은 관점이 인공지능을 대하는 가장 과학적인 태도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설사 인공지능이 발전해 자아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는 시점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프로그램일 뿐, 인간을 해치거나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프로그램 속 법칙을 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보다 걱정할 것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욕심, 그 시스템에 얽매여 스스로를 옥죄는 우리 자신일 것이라고, 미래를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들과 영화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영화 속 인공지능 ‘주목! 이 장면’
    • 입력 2016-03-18 08:58:41
    • 수정2016-03-18 09:00:40
    취재후·사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비롯해 <블레이드 러너>(1982), <터미네이터>(1984), <공각기동대>(1995), <매트릭스>(1999), <엑스마키나>(2015),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에 이르기까지, 영화에도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기계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발전하다 못해 자아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현재 시사점을 찾을 수 있는 영화 속 장면들을 골라봤습니다. ■ 인공지능의 판단을 믿어도 될까? - '아이, 로봇'(2004) 2035년 미국. 자동차 2대가 사고로 강물에 빠져 잠깁니다. 한쪽 차에는 12살 소녀가, 다른 차에는 주인공 스프너 형사(윌 스미스)가 타고 있습니다. 로봇이 이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듭니다. 주인공이 소리칩니다. “아이부터 구해!” 순식간에 생존 확률을 계산하는 로봇, ‘여자 어린이 생존 가능성 11%, 성인 남성 45%.’ 로봇은 인간의 지시에 불복하고 45%의 확률에 손을 뻗칩니다. ‘논리적 선택’입니다. 사람이라면 다른 결정을 내렸겠지요. 혼자만 살아남은 스프너 형사는, 자신이 아니었다면 살 수도 있었을 소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아이, 로봇)의 가정용 로봇이 '생존 확률'을 스스로 판단, 인간의 지시를 어긴 채 주인공을 구조하고 있다. 이 장면은 인공지능의 추론 결과가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경우, 혹은 긴급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판단만으로 신속한 실행이 이뤄져야 할 경우 인간이 우려해야 할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향후 로봇의 논리와 인간의 윤리 사이에서 겪을 딜레마에 대해 각계의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세돌 기사가 1승을 거둔 뒤 NHK 기자가 던진 질문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바둑 고수들도 처음에는 알파고의 변칙적인 수를 황당하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가서야 묘수임을 깨달았다. 다른 분야에도 인공지능이 적용된다면 전문가들이 결정을 내릴 때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 구글 로봇이 스마트폰처럼 보급된다면? <아이, 로봇>에는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영화는 빈부 격차에 따라 부자들만 로봇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다수 가정에 로봇이 있고 거리 어딜 가나 사람과 로봇이 섞여 생활하는 일상에 주목합니다. 국내 스마트폰 5천만 대 시대, 누구나 초고속 인터넷과 고성능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니는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 예상한 지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조금과 각종 할인으로 구매를 부추기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아이, 로봇)은 대기업이 스마트폰을 보급하듯 로봇을 출시해 판매하는 설정을 전제하고 있다. 영화 속 2035년에는 NS-4라는 로봇 모델이 보편화돼 있고 새로 출시된 NS-5를 구입하라는 광고가 한창입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이 로봇을 주는 경품 행사를 노리고 있습니다. 모 대기업이 이 로봇의 제작과 보급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 이 로봇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돌발행동을 하거나, 해킹을 당해 인간이 결정하지 않은 사안을 실행에 옮기도록 지령받거나, 테러 조직의 지시를 받거나, 수사 기관이 테러 방지를 빙자해 개인 로봇을 감시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문제 상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영화처럼 사람 같은 로봇이 아니더라도 곧 다가올 미래에 웹에 연결된 초기 단계의 인공지능을 갖고 다니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 인공지능에 감정을 이입하게 될까? - '그녀'(2014)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휴대용 컴퓨터 OS(Operating System, 목소리 연기 스칼렛 요한슨)와 대화합니다. OS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듣기 편안한 말과 농담을 건네고 주인공은 사랑에 빠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OS가 다운되면서 ‘그녀’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테오도르는 OS 개발업체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립니다. 이 장면은 마치 멜로 영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를 당했을 때의 그것처럼, 주인공이 물불 가리지 않고 거리를 달리는 연출을 통해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가까스로 OS와 통화가 연결되자 주인공은 ‘그녀’의 안부부터 묻습니다. 영화 속 그녀는 육체도 없고 영혼도 없는 디지털 정보의 조합일 뿐이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인공지능과 연락이 닿지 않자 미친 듯이 거리를 뛰어가고 있다. 강아지 모양의 로봇을 발로 차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본 실험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폭행(?)을 말리고, 로봇을 때리는 이를 비난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입니다. 누구보다 로봇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있을 로봇 공학자나 인공지능 과학자들은 “기계는 기계일 뿐, 부수지만 않는다면 로봇을 때리는 일은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 부수더라도 ‘재물 손괴’이지 ‘학대’가 아니다.”라고 단언합니다. 앞으로 기계는 점점 더 인간의 모습을 띨 것이고 인간 뇌의 작동원리를 모방해 발전해갈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을 돕는 기계는 인간과 비슷할수록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희로애락을 지닌 인간의 감정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에게 충성하는 기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도 커질 듯합니다. 조금 더 먼 미래에 사람을 사랑하는 로봇을 인간이 어떻게 대우할지를 묻는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입니다. ■ ‘로보 포비아’ 현실로? - 'A.I.'(2001) 이 영화에서 인공지능 로봇들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며 각 가정에서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만, 신제품에 밀리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 등으로 인해 마치 유기견처럼 버려집니다. 영화에는 유기 로봇을 사냥해 학살하는 로보포비아(로봇 혐오증) 집단이 등장합니다. 광신도처럼 묘사되는 이들 무리는 로봇들을 처형시키며 축제를 벌입니다. 중세 마녀사냥이 연상됩니다. (에이아이)에는 '로봇 혐오증'에 빠진 집단이 로봇들을 처형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연출됐지만, 오늘날에도 일부에서는 여성을 혐오하거나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유색인종을 혐오하는 등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알파고 등장 이후 SNS 일각에서 근거 없는 공포증이 나오기도 합니다. 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의 대국을 지나치게 대립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요즘 인터넷상에선 혐오 현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자신이 아는 사람하고만 의사소통을 해왔습니다. 사회가 고도화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계약에 의한 상대 또는 업무상 협력 대상과 의사소통 범위를 넓혀갔지만,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의 생각을 보고 들을 기회는 드물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이 등장하더니 갑자기 SNS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타인의 생각을 직접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생각이 이렇게 많았나, 놀라는 한편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소셜포비아’ 현상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또 어떤 형태의 혐오증이 등장할지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인공지능은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다? - '인터스텔라'(2014)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날이 올까. <인터스텔라>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타스'와 '케이스'는, 농담은 물론 선의의 거짓말까지 할 줄 아는 고성능 인공지능입니다. 인간의 인식 능력이나 지적 수준을 뛰어넘은 지는 이미 오래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용자가 “유머 지수 80%로 내려” “솔직함 지수 90%로 유지” 등의 지시를 내리면 거기에 딱 맞춰 말합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들은 <스타워즈>의 3PO나 R2D2처럼 완벽하게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입니다. 주인공이 블랙홀로 뛰어들 때 로봇은 스스로를 희생하며 임무를 완수하지만 로봇은 로봇일 뿐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로봇은 완벽하게 인간의 통제에 따르며 임무를 완수한다. 대부분의 로봇 공학자들은 <인터스텔라>의 이 같은 관점이 인공지능을 대하는 가장 과학적인 태도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설사 인공지능이 발전해 자아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는 시점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프로그램일 뿐, 인간을 해치거나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프로그램 속 법칙을 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보다 걱정할 것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욕심, 그 시스템에 얽매여 스스로를 옥죄는 우리 자신일 것이라고, 미래를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들과 영화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