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군함도’의 전쟁을 끝내려면…

입력 2017.03.13 (14:40) 수정 2017.03.1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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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야구장 두 개 크기의 하시마란 섬이 있다.

미쓰비시 그룹은 19세기 후반부터 이 섬의 해저에 있는 석탄 채굴에 나섰으며, 1916년에는 일본 최초로 이 섬에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7층 아파트를 건립했다. 이 섬은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해상에서 바라본 모양이 미쓰비시 중공업이 1921년 건조한 일본전함 '도사(土佐)'를 닮아 '군함도'로 불려졌다.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낡은 건물들이 보인다. 2015.6.6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낡은 건물들이 보인다. 2015.6.6

군함도는 20세기 초반까지는 석탄 채굴로 활기를 띄었으나, 일본 석탄업계가 침체에 빠진 1974년에 석탄채굴이 중단된 이후 무인도로 남아있다.

군함도에는 강제징용돼 석탄을 캐야했던 조선인의 뼈아픈 고통이 저며있다. 2012년 국무총리 산하기관이 공개한 군함도 조선인 징용자 관련 조사에 따르면 1943년에서 1945년 사이 약 최대 800여 명의 조선인이 군함도에 징용돼 강제노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함도 해저 갱도에서 누워서 석탁을 채굴하는 조선인 강제징용자군함도 해저 갱도에서 누워서 석탁을 채굴하는 조선인 강제징용자

이들은 파도가 수시로 들이닥치는 아파트의 가장 낮은 층 좁은 방에 기거하면서 하루에 12시간씩 가스 폭발 위험을 무릅쓰고 서 있기도 힘든 좁은 해저갱도에서 일했다. 『이 중 일부는 부적합한 채굴 조건으로 인해 병에 걸리거나 탄광 사고, 영양실조로 사망했으며, 탈출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져 익사하기도 했다.』(두산백과사전)

조선인 강제징용자에게 '군함도'는 그야말로‘지옥 섬’바로 그 자체였다.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의 방문객 견학 광장에서 바라본 건물. 사진에 보이는 계단은 지하 600m까지 갈 수 있는 갱도의 입구로 이어진다. 2015. 6. 6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의 방문객 견학 광장에서 바라본 건물. 사진에 보이는 계단은 지하 600m까지 갈 수 있는 갱도의 입구로 이어진다. 2015. 6. 6

지난 2015년 7월 5일(현지 시간)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탄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이 유산에는 징용된 조선인 5만7천900여 명이 강제노역한 '군함도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등 7개 시설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소설가 한수산과 소설 군함도소설가 한수산과 소설 군함도

일본에 대한 공분이 채 가시기 전인 지난해 6월, 소설 '부초'의 작가 한수산이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뼈아픈 삶을 그린 소설 '군함도'를 펴냈다.

한수산은 1988년 일본에 체류할 때 한 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접한 뒤 군함도에 있던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소재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후 군함도와 나가사키에서만 10여 차례 탐문하고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2003년 5권 분량의 대하소설 '까마귀'를 펴냈다

지난해 출간한 '군함도'는 이 '까마귀'를 서사에 중점을 두고 다시 쓰다시피 해, 2권 분량으로 압축한 소설이다.

'지옥의 섬' 군함도의 탄광에 끌려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는 조선인 징용자들의 삶을 통해 일제의 만행과 그 속에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 뜨거운 사랑과 희망을 오롯이 복원했다

소설가 한수산소설가 한수산

한 작가는 지난해 '군함도' 발표 이후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 식민지 시대의 참상과 고난을 제대로 그린 소설이 한 권도 없다. 작가로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라는 말로 자신이 27년이란 세월 동안 공들여 '군함도'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때 방한한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가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 영화가 몇 편이 있나? 그 시대를 다룬 노래가 지금도 불리고 있나?'라는 질문을 받고 부끄러워했다며 '작가는 절대 잊혀서는 안 될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1. 출판‘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1. 출판

한수산이 작가의 사명감 소회를 밝힌지 10달 가까이 흐른 최근 친일인명사전편찬 등 일제 파시즘 잔재 청산에 앞장서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군함도의 아픈 기억을 다시 살려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3월1일에 맞춰 군함도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 강제징용된 조선인의 원통한 삶을 르포와 연구서 형태로 담은 '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을 펴냈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뤄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로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또 군함도를 비롯해 강제동원 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제의 역사왜곡에 맞서 싸운 시민단체의 활동을 기록했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으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조선인 군인, 군속, 위안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4부에서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 투쟁 과정을 소개하고,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 및 배상 등 일본과의 전쟁을 끝낼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1. 출판‘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1. 출판

책은 1부에서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가 쓴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출간한 『원폭과 조선인』에 등장하는 최장섭과 박준구, 서정우 등 군함도에서 강제 노역한 조선인 징용자의 이야기를 다시 인용해 들려준다.

이 중 최장섭은 ' 해저탄광에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간신히 기어 나온 뒤에도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한참동안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하시마를 가득 채웠다'라고 회고한다.

일제에 강제 징용된 위안부일제에 강제 징용된 위안부

1부에서는 또 '군함도에는 해저갱도에서 일하는 갱부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3개의 위안소를 운영했으며, 조선인 여성 9명이 보름에 한 번 진료소에서 검진을 받았다'고적고 있다

3부에서는 대만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하이난 섬의 '조선촌'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일제는 1943년 경 하이난 섬에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조선인을 보내 도로 건설 등에 투입했는데, 1945년 패전하자 천여 명의 조선인을 살해하고 묻었다. 일본군이 철수한 후 현지 주민들이 조선인이 묻힌 곳을 '천인갱'이라 부르고, 애도의 뜻을 담아 마을 이름을 '조선촌'으로 바꿔 불렀다는 당시 도로 건설에 동원됐던 현지인의 증언을 담고 있다.

지난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소녀상이 30일 부산 동구청에도착했다. 동구청은 야적장에 소녀상을 방치했다가 이날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반환했다. 2016.12.30지난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소녀상이 30일 부산 동구청에도착했다. 동구청은 야적장에 소녀상을 방치했다가 이날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반환했다. 2016.12.30

올들어 한.일 관계는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를 둘러싸고 냉전 기류에 휩싸였다. 한 때 강제철거했으나, 시민단체가 재설치한 것을 우리 지자체가 허용하는 쪽으로 기울자 일본이 대사와 총영사 소환으로 강경대처한 것이다.

이 책은 4부에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 등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것은 '한일 협정'으로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잘못 꿰인 때문으로 풀이한다. 안보와 경제에 급급해 정치적 타협에 몰두하는 바람에, 먼저 해결해야 할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 청산과 극복 방안을 충분히 모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일협정조인식 / 2005.1.1한일협정조인식 / 2005.1.1

이 때문에 일본은 침략을 반성하기는 커녕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기에 이르렀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불행은 일본의 경제부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한.일 강제합병 100년이 되던 지난 2010년 8월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는 각각 도쿄와 서울에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시민대회'를 열고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실현을 위한 한일시민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서 한.일 시민단체는 '한국병합조약'의 불법성과 부당성의 문제를 넘어 식민지배 그 자체가 범죄 행위임을 비판한 뒤, 한일 시민운동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계획을 모색하고 공동대응할 것을 결의했다.

(일본 나가사키현 서쪽 바다에 있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서 방문자들이 군함도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5.6.5(일본 나가사키현 서쪽 바다에 있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서 방문자들이 군함도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5.6.5

'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집필에 참여한 7명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인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로 야기된 한.일문제의 해결은 한일 시민연대운동에서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한.일 양국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하고 한.일 시민단체가 박물관 건립 운동을 공동으로 적극 펼칠 것을 요청한다.

한.일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아로새겨진 '군함도'가 한.일 시민의 노력으로 양국의 미래 우의를 담보하는 기념비적 유산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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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플러스] ‘군함도’의 전쟁을 끝내려면…
    • 입력 2017-03-13 14:40:15
    • 수정2017-03-13 14: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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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야구장 두 개 크기의 하시마란 섬이 있다.

미쓰비시 그룹은 19세기 후반부터 이 섬의 해저에 있는 석탄 채굴에 나섰으며, 1916년에는 일본 최초로 이 섬에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7층 아파트를 건립했다. 이 섬은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해상에서 바라본 모양이 미쓰비시 중공업이 1921년 건조한 일본전함 '도사(土佐)'를 닮아 '군함도'로 불려졌다.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낡은 건물들이 보인다. 2015.6.6
군함도는 20세기 초반까지는 석탄 채굴로 활기를 띄었으나, 일본 석탄업계가 침체에 빠진 1974년에 석탄채굴이 중단된 이후 무인도로 남아있다.

군함도에는 강제징용돼 석탄을 캐야했던 조선인의 뼈아픈 고통이 저며있다. 2012년 국무총리 산하기관이 공개한 군함도 조선인 징용자 관련 조사에 따르면 1943년에서 1945년 사이 약 최대 800여 명의 조선인이 군함도에 징용돼 강제노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함도 해저 갱도에서 누워서 석탁을 채굴하는 조선인 강제징용자
이들은 파도가 수시로 들이닥치는 아파트의 가장 낮은 층 좁은 방에 기거하면서 하루에 12시간씩 가스 폭발 위험을 무릅쓰고 서 있기도 힘든 좁은 해저갱도에서 일했다. 『이 중 일부는 부적합한 채굴 조건으로 인해 병에 걸리거나 탄광 사고, 영양실조로 사망했으며, 탈출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져 익사하기도 했다.』(두산백과사전)

조선인 강제징용자에게 '군함도'는 그야말로‘지옥 섬’바로 그 자체였다.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의 방문객 견학 광장에서 바라본 건물. 사진에 보이는 계단은 지하 600m까지 갈 수 있는 갱도의 입구로 이어진다. 2015. 6. 6
지난 2015년 7월 5일(현지 시간)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탄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이 유산에는 징용된 조선인 5만7천900여 명이 강제노역한 '군함도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등 7개 시설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소설가 한수산과 소설 군함도
일본에 대한 공분이 채 가시기 전인 지난해 6월, 소설 '부초'의 작가 한수산이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뼈아픈 삶을 그린 소설 '군함도'를 펴냈다.

한수산은 1988년 일본에 체류할 때 한 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접한 뒤 군함도에 있던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소재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후 군함도와 나가사키에서만 10여 차례 탐문하고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2003년 5권 분량의 대하소설 '까마귀'를 펴냈다

지난해 출간한 '군함도'는 이 '까마귀'를 서사에 중점을 두고 다시 쓰다시피 해, 2권 분량으로 압축한 소설이다.

'지옥의 섬' 군함도의 탄광에 끌려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는 조선인 징용자들의 삶을 통해 일제의 만행과 그 속에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 뜨거운 사랑과 희망을 오롯이 복원했다

소설가 한수산
한 작가는 지난해 '군함도' 발표 이후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 식민지 시대의 참상과 고난을 제대로 그린 소설이 한 권도 없다. 작가로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라는 말로 자신이 27년이란 세월 동안 공들여 '군함도'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때 방한한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가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 영화가 몇 편이 있나? 그 시대를 다룬 노래가 지금도 불리고 있나?'라는 질문을 받고 부끄러워했다며 '작가는 절대 잊혀서는 안 될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1. 출판
한수산이 작가의 사명감 소회를 밝힌지 10달 가까이 흐른 최근 친일인명사전편찬 등 일제 파시즘 잔재 청산에 앞장서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군함도의 아픈 기억을 다시 살려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3월1일에 맞춰 군함도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 강제징용된 조선인의 원통한 삶을 르포와 연구서 형태로 담은 '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을 펴냈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뤄져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로 불리던 하시마와 인근 다카시마를 직접 취재해 강제동원의 실상을 담았다.또 군함도를 비롯해 강제동원 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제의 역사왜곡에 맞서 싸운 시민단체의 활동을 기록했다. 2부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전쟁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부에서는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됐으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조선인 군인, 군속, 위안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4부에서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 투쟁 과정을 소개하고,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 및 배상 등 일본과의 전쟁을 끝낼 남겨진 과업을 제시한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민족문제연구소 2017. 3. 1. 출판
책은 1부에서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이가 쓴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출간한 『원폭과 조선인』에 등장하는 최장섭과 박준구, 서정우 등 군함도에서 강제 노역한 조선인 징용자의 이야기를 다시 인용해 들려준다.

이 중 최장섭은 ' 해저탄광에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간신히 기어 나온 뒤에도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한참동안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하시마를 가득 채웠다'라고 회고한다.

일제에 강제 징용된 위안부
1부에서는 또 '군함도에는 해저갱도에서 일하는 갱부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3개의 위안소를 운영했으며, 조선인 여성 9명이 보름에 한 번 진료소에서 검진을 받았다'고적고 있다

3부에서는 대만에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하이난 섬의 '조선촌'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일제는 1943년 경 하이난 섬에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조선인을 보내 도로 건설 등에 투입했는데, 1945년 패전하자 천여 명의 조선인을 살해하고 묻었다. 일본군이 철수한 후 현지 주민들이 조선인이 묻힌 곳을 '천인갱'이라 부르고, 애도의 뜻을 담아 마을 이름을 '조선촌'으로 바꿔 불렀다는 당시 도로 건설에 동원됐던 현지인의 증언을 담고 있다.

지난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소녀상이 30일 부산 동구청에도착했다. 동구청은 야적장에 소녀상을 방치했다가 이날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반환했다. 2016.12.30
올들어 한.일 관계는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를 둘러싸고 냉전 기류에 휩싸였다. 한 때 강제철거했으나, 시민단체가 재설치한 것을 우리 지자체가 허용하는 쪽으로 기울자 일본이 대사와 총영사 소환으로 강경대처한 것이다.

이 책은 4부에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 등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것은 '한일 협정'으로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잘못 꿰인 때문으로 풀이한다. 안보와 경제에 급급해 정치적 타협에 몰두하는 바람에, 먼저 해결해야 할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 청산과 극복 방안을 충분히 모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일협정조인식 / 2005.1.1
이 때문에 일본은 침략을 반성하기는 커녕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기에 이르렀고,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불행은 일본의 경제부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한.일 강제합병 100년이 되던 지난 2010년 8월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는 각각 도쿄와 서울에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시민대회'를 열고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실현을 위한 한일시민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서 한.일 시민단체는 '한국병합조약'의 불법성과 부당성의 문제를 넘어 식민지배 그 자체가 범죄 행위임을 비판한 뒤, 한일 시민운동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계획을 모색하고 공동대응할 것을 결의했다.

(일본 나가사키현 서쪽 바다에 있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서 방문자들이 군함도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5.6.5
'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집필에 참여한 7명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인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로 야기된 한.일문제의 해결은 한일 시민연대운동에서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한.일 양국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하고 한.일 시민단체가 박물관 건립 운동을 공동으로 적극 펼칠 것을 요청한다.

한.일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아로새겨진 '군함도'가 한.일 시민의 노력으로 양국의 미래 우의를 담보하는 기념비적 유산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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