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이 뭐길래…1조원 가치 있나?

입력 2017.03.27 (14:49) 수정 2017.03.27 (16:3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는 4월 12일 재보궐 선거에 유일하게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곳이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이다. 자유한국당 김종태 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열리게 된 선거다.

이번 선거 와중에 한 예비 후보의 재산 규모를 두고 화제가 만발하고 있다.

이 지역 선거 후보로 고문서 수집가 배익기(54)씨도 등록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져 있다.

배씨는 자신의 재산을 1조4800만원이라고 상주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조 단위의 재산은 국내 굴지의 대 기업 회장 중에도 몇 명 안된다. 그러면서 그는 재산의 근거로 감정서를 첨부했다.

그렇다면 과연 훈민정음 해례본이 뭐길래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붙였을까.

훈민정음 비밀 밝힌 해례본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 그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40년 이전만 해도 한글 창제원리에 대해 학자들은(주로 일본 학자들) 고대글자 모방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등의 다양한 가설들을 내놨다. 이런 가설들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가설들이 모두 엉터리였음이 밝혀진 건 한 건의 책 덕분이었다. 그게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例儀)와 해례(解例)로 나누어져 있다.

배익기씨가 방송에서 공개했던 훈민정음 해례본 모습배익기씨가 방송에서 공개했던 훈민정음 해례본 모습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게 ‘예의’라면, 해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예의 부분은 간략해 『세종실록(世宗實錄)』과 『월인석보(月印釋譜)』 등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와 용법을 자세히 적은 해례는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해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린 훈민정음 정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원리는 비로소 밝혀졌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 바로 해례본이었다.

이 ‘소중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까지 딱 한본만 전해지고 있다. 간송 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이른바 ‘간송본’이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2008년 발견된 해례본 상주본

딱 하나밖에 없던 것으로 알던 훈민정음 해례본의 또 다른 판본이 등장하자 문화계는 탄성을 질렀다.

2008년 8월, 문화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고서적상 배익기씨가 올린 글이었다.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서적 한권이 나왔는데, 문화재로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조사를 나간 문화재청 학예사 2명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세상에 딱 한 본 인줄 알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서문 네 장과 뒷 부분 한 장이 없어졌지만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이었다.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무엇보다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 소리 등에 대한 당시 연구자의 주석은 한글 창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소중한 자산이었다. 이 소식은 한 지역방송국에 보도되기도 했다.

[바로가기] 훈민정음 해례본 500년 만에 ‘햇빛’ [기사 출처 = 안동 MBC 보도]

이로부터 한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시 골동품상 조모씨(사망)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조씨는 “그 해례본은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데, 배 씨가 고서적들을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슬쩍 끼워 훔쳐갔다”며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조씨의 주장을 반박하며 자신은 조씨로부터 해례본까지 포함해 고서적들을 함께 사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형사 고소건은 무혐의 처리됐지만, 민사소송은 조씨 손을 들어줬다. 2011년 6월 대법원은 “해례본을 조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민사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배씨는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

배익기씨 모습배익기씨 모습

이 무렵 다시 수사에 나선 검찰은 결국 배씨에 대해 해례본을 훔치고 훼손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배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인 2심은 ‘훔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2014년 6월 무죄 원심을 확정했다.

동일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권을 놓고 민사재판은 조씨의 손을, 형사재판은 배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은 꼬였다.

이후 출소한 배씨는 해례본의 보관 장소에 대해 일체 함구했다. 문화재청이 공개와 반납을 설득했지만 그의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던 중 2015년 3월 26일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나 해례본이 소실된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상주시 선관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신고하면서 일단 소실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1조원 가치는 과장”

그렇다면 실제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는 1조원대에 달할까.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하자는 서명운동도 열리고 있다.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하자는 서명운동도 열리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데는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훈민정음을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 해야 한다는 서명 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 사람들은 해례본 상주본의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건 인정하면서 액수는 과장됐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문화재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배씨는 검찰이 처음 절도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한 차례 매각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한 고미술품 경매 사이트를 통해 100억원대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최종 성사 단계에서 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민사소송과 검찰의 재수사가 이어지면서 해례본은 자취를 감췄다.

이런 재산 가치 논란 와는 별도로 결국 그의 1조원 재산 등록은 상주시선거관리위원회의 이의제기로 이뤄지지 못했다.

선관위 측은 "실물 소유를 확인할 수 없어서 1조원을 기재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부동산, 예금 등 4천800만원만 기재했다. 선관위에서 재산등록과 다른 서류를 점검하느라 5∼6시간이 걸렸다고 배씨는 설명했다.

배씨는 "재산신고 서류에 골동품란이 있어 문화재청 감정서를 근거로 1조원을 신고하려 했는데 선관위가 실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제지했다"며 "다른 선거 후보 경우에도 박물관에 있는 골동품을 모두 확인할 수 없을 텐데…"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물급·국보급 골동품이 있지만, 재산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선관위가 결정한 사안이니 나중에 신고누락으로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는 12일 열리는 재보선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의 재보궐 선거는 다음달 12일 치러진다. 보수층인 두꺼운 지역적특성을 감안해 자유한국당 과 바른정당의 공천을 놓고 후보자들간 경쟁이 치열했다.

자유한국당 공천자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김재원(53) 전 정무수석이 결정됐다. 바른정당 후보로는 김진욱 전 울진경찰서장이 결정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역 당협위원장인 김영태(52) 토리 식품 대표가 결정됐다. 이 밖에 코리아당 류승구씨와 무소속 박완철·배익기 ·성윤환 등 7명이 후보자로 등록 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훈민정음 해례본이 뭐길래…1조원 가치 있나?
    • 입력 2017-03-27 14:49:14
    • 수정2017-03-27 16:36:23
    취재K
오는 4월 12일 재보궐 선거에 유일하게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곳이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이다. 자유한국당 김종태 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열리게 된 선거다.

이번 선거 와중에 한 예비 후보의 재산 규모를 두고 화제가 만발하고 있다.

이 지역 선거 후보로 고문서 수집가 배익기(54)씨도 등록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져 있다.

배씨는 자신의 재산을 1조4800만원이라고 상주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조 단위의 재산은 국내 굴지의 대 기업 회장 중에도 몇 명 안된다. 그러면서 그는 재산의 근거로 감정서를 첨부했다.

그렇다면 과연 훈민정음 해례본이 뭐길래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붙였을까.

훈민정음 비밀 밝힌 해례본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 그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40년 이전만 해도 한글 창제원리에 대해 학자들은(주로 일본 학자들) 고대글자 모방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등의 다양한 가설들을 내놨다. 이런 가설들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가설들이 모두 엉터리였음이 밝혀진 건 한 건의 책 덕분이었다. 그게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例儀)와 해례(解例)로 나누어져 있다.

배익기씨가 방송에서 공개했던 훈민정음 해례본 모습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게 ‘예의’라면, 해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예의 부분은 간략해 『세종실록(世宗實錄)』과 『월인석보(月印釋譜)』 등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와 용법을 자세히 적은 해례는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해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린 훈민정음 정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원리는 비로소 밝혀졌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 바로 해례본이었다.

이 ‘소중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까지 딱 한본만 전해지고 있다. 간송 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이른바 ‘간송본’이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2008년 발견된 해례본 상주본

딱 하나밖에 없던 것으로 알던 훈민정음 해례본의 또 다른 판본이 등장하자 문화계는 탄성을 질렀다.

2008년 8월, 문화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고서적상 배익기씨가 올린 글이었다.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서적 한권이 나왔는데, 문화재로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조사를 나간 문화재청 학예사 2명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세상에 딱 한 본 인줄 알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서문 네 장과 뒷 부분 한 장이 없어졌지만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이었다.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무엇보다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 소리 등에 대한 당시 연구자의 주석은 한글 창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소중한 자산이었다. 이 소식은 한 지역방송국에 보도되기도 했다.

[바로가기] 훈민정음 해례본 500년 만에 ‘햇빛’ [기사 출처 = 안동 MBC 보도]

이로부터 한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시 골동품상 조모씨(사망)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조씨는 “그 해례본은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데, 배 씨가 고서적들을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슬쩍 끼워 훔쳐갔다”며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조씨의 주장을 반박하며 자신은 조씨로부터 해례본까지 포함해 고서적들을 함께 사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형사 고소건은 무혐의 처리됐지만, 민사소송은 조씨 손을 들어줬다. 2011년 6월 대법원은 “해례본을 조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민사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배씨는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

배익기씨 모습
이 무렵 다시 수사에 나선 검찰은 결국 배씨에 대해 해례본을 훔치고 훼손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배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인 2심은 ‘훔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2014년 6월 무죄 원심을 확정했다.

동일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권을 놓고 민사재판은 조씨의 손을, 형사재판은 배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은 꼬였다.

이후 출소한 배씨는 해례본의 보관 장소에 대해 일체 함구했다. 문화재청이 공개와 반납을 설득했지만 그의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던 중 2015년 3월 26일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나 해례본이 소실된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상주시 선관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신고하면서 일단 소실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1조원 가치는 과장”

그렇다면 실제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는 1조원대에 달할까.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하자는 서명운동도 열리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데는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훈민정음을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 해야 한다는 서명 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 사람들은 해례본 상주본의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건 인정하면서 액수는 과장됐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문화재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배씨는 검찰이 처음 절도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한 차례 매각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한 고미술품 경매 사이트를 통해 100억원대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최종 성사 단계에서 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민사소송과 검찰의 재수사가 이어지면서 해례본은 자취를 감췄다.

이런 재산 가치 논란 와는 별도로 결국 그의 1조원 재산 등록은 상주시선거관리위원회의 이의제기로 이뤄지지 못했다.

선관위 측은 "실물 소유를 확인할 수 없어서 1조원을 기재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부동산, 예금 등 4천800만원만 기재했다. 선관위에서 재산등록과 다른 서류를 점검하느라 5∼6시간이 걸렸다고 배씨는 설명했다.

배씨는 "재산신고 서류에 골동품란이 있어 문화재청 감정서를 근거로 1조원을 신고하려 했는데 선관위가 실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제지했다"며 "다른 선거 후보 경우에도 박물관에 있는 골동품을 모두 확인할 수 없을 텐데…"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물급·국보급 골동품이 있지만, 재산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선관위가 결정한 사안이니 나중에 신고누락으로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는 12일 열리는 재보선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의 재보궐 선거는 다음달 12일 치러진다. 보수층인 두꺼운 지역적특성을 감안해 자유한국당 과 바른정당의 공천을 놓고 후보자들간 경쟁이 치열했다.

자유한국당 공천자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김재원(53) 전 정무수석이 결정됐다. 바른정당 후보로는 김진욱 전 울진경찰서장이 결정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역 당협위원장인 김영태(52) 토리 식품 대표가 결정됐다. 이 밖에 코리아당 류승구씨와 무소속 박완철·배익기 ·성윤환 등 7명이 후보자로 등록 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