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간부 술 시중 드는 ‘소총수·지뢰병’…“이러려고 군대 왔나”

입력 2017.08.09 (16:14) 수정 2017.08.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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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군대 왔나 싶었어요. 간부들 술 시중이 주된 업무입니다. "(○○ 부대회관 전역자)

육군 일선 각 부대엔 '부대회관'이라는 게 딸려 있습니다. 회관이라고 해서 구민회관, 마을회관을 떠올리면 안 됩니다. 차원이 다른 복합 휴게 공간입니다. 맛집에다 노래방이며, 목욕탕, 숙박시설까지 죄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 중 탁월한 부대회관은 군 가족들 사이에서 꼭 들려야 하는 명소로까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회관에서 일하는 장병들, 이른바 부대회관 관리병의 인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박찬주 전 2작전사령관의 공관병 '갑질' 폭로가 연일 제기되는 과정에서 부대회관 관리병들의 폭로도 함께 불거져 나왔습니다.

박찬주 대장의 2014년 7군단장 시절에 근무했던 부대회관 근무병들은 군인권센터를 통해 자신들도 '갑질'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찬주 대장이 부대회관이 쉬는 월요일에 식당을 찾아 개인 식사를 요구하곤 했다거나, 메뉴에 없는 돌솥밥을 시켜 돌솥을 구매했다는 등의 폭로입니다. 회를 주문하는 바람에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가서 회를 떠 와야 했다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또 다른 부대회관 관리병 전역자도 비슷한 취지의 증언을 했습니다. 부대회관 설립 목적은 장병들 복지 증진을 위한 건데, 실상은 간부들과 그 부인들, 예비역들의 놀이 공간으로 변질됐다는 겁니다.

가장 문제로 꼽히는 게 지휘관과 간부들 회식입니다. 이들은 따로 마련된 VIP실에서 회식을 하는데, 관리병들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의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이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부대회관 관리병들의 일과는 이렇습니다. 평일 오전에는 점심 준비를 위한 청소와 정비를 합니다. 그리고 본격 영업이 이어지고 늦은 밤 10시에 문을 닫습니다. 마무리와 정비를 마치면 새벽 1시쯤에 잠자리에 듭니다.

주말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12시간 영업합니다. 여기에 간부들이나 그들 부인들이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근무 일정은 더욱 빡빡해집니다. 이쯤 되면 '애국 페이'라 할만합니다.


문제는 관리병 중 상당수가 전투병이라는 데 있습니다. 부대회관을 확대 운영하려다 보니 관리병이 부족해졌고, 멀쩡한 전투병들을 편법 차출해 온 겁니다. KBS가 확보한 모 부대의 '부대회관 관리병 현황' 자료를 보면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관리병 상당수가 소총수, 지뢰병, 공병 등 일선 부대원들입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5년 국회 국정감사 때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일선 부대가 수익 사업을 하면서 전투병을 '불법 파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육군 부대회관 140곳에서 일하는 병사들은 전국적으로 1,14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인가된 정원 823명보다 40%가량 초과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이를 바로잡겠다고 국회에 약속했지만, 실상은 그대로입니다. KBS가 전국 부대회관 관리병 현황을 다시 확인해보니 전체 수는 815명 선까지 줄었지만, 인가된 정원보다 327명, 67%나 여전히 초과한 상황입니다.

부대회관 전역자들은 제대하고 '열정 페이'를 받아야 할 처진데, 군 복무 중에도 '애국 페이'를 해야 하느냐며 자조 섞인 말을 합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부대회관 인력을 민간 채용으로 충당하고 싶어도 예산이 넉넉하지 못하다며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말이 맞다면 복무자들을 '애국 페이' 시킬 게 아니라 시설을 줄여나가거나 제도를 폐지하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지휘관과 간부, 그리고 그들 부인의 회식 공간이 줄어드는 '피해'는 감수해야 할 일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벨 누르면 달려오는 ‘서빙병’…전투병 편법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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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간부 술 시중 드는 ‘소총수·지뢰병’…“이러려고 군대 왔나”
    • 입력 2017-08-09 16:14:08
    • 수정2017-08-09 16:14:48
    취재후·사건후
"이러려고 군대 왔나 싶었어요. 간부들 술 시중이 주된 업무입니다. "(○○ 부대회관 전역자)

육군 일선 각 부대엔 '부대회관'이라는 게 딸려 있습니다. 회관이라고 해서 구민회관, 마을회관을 떠올리면 안 됩니다. 차원이 다른 복합 휴게 공간입니다. 맛집에다 노래방이며, 목욕탕, 숙박시설까지 죄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 중 탁월한 부대회관은 군 가족들 사이에서 꼭 들려야 하는 명소로까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회관에서 일하는 장병들, 이른바 부대회관 관리병의 인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박찬주 전 2작전사령관의 공관병 '갑질' 폭로가 연일 제기되는 과정에서 부대회관 관리병들의 폭로도 함께 불거져 나왔습니다.

박찬주 대장의 2014년 7군단장 시절에 근무했던 부대회관 근무병들은 군인권센터를 통해 자신들도 '갑질'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찬주 대장이 부대회관이 쉬는 월요일에 식당을 찾아 개인 식사를 요구하곤 했다거나, 메뉴에 없는 돌솥밥을 시켜 돌솥을 구매했다는 등의 폭로입니다. 회를 주문하는 바람에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가서 회를 떠 와야 했다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또 다른 부대회관 관리병 전역자도 비슷한 취지의 증언을 했습니다. 부대회관 설립 목적은 장병들 복지 증진을 위한 건데, 실상은 간부들과 그 부인들, 예비역들의 놀이 공간으로 변질됐다는 겁니다.

가장 문제로 꼽히는 게 지휘관과 간부들 회식입니다. 이들은 따로 마련된 VIP실에서 회식을 하는데, 관리병들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의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이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부대회관 관리병들의 일과는 이렇습니다. 평일 오전에는 점심 준비를 위한 청소와 정비를 합니다. 그리고 본격 영업이 이어지고 늦은 밤 10시에 문을 닫습니다. 마무리와 정비를 마치면 새벽 1시쯤에 잠자리에 듭니다.

주말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12시간 영업합니다. 여기에 간부들이나 그들 부인들이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근무 일정은 더욱 빡빡해집니다. 이쯤 되면 '애국 페이'라 할만합니다.


문제는 관리병 중 상당수가 전투병이라는 데 있습니다. 부대회관을 확대 운영하려다 보니 관리병이 부족해졌고, 멀쩡한 전투병들을 편법 차출해 온 겁니다. KBS가 확보한 모 부대의 '부대회관 관리병 현황' 자료를 보면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관리병 상당수가 소총수, 지뢰병, 공병 등 일선 부대원들입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5년 국회 국정감사 때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일선 부대가 수익 사업을 하면서 전투병을 '불법 파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육군 부대회관 140곳에서 일하는 병사들은 전국적으로 1,14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인가된 정원 823명보다 40%가량 초과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이를 바로잡겠다고 국회에 약속했지만, 실상은 그대로입니다. KBS가 전국 부대회관 관리병 현황을 다시 확인해보니 전체 수는 815명 선까지 줄었지만, 인가된 정원보다 327명, 67%나 여전히 초과한 상황입니다.

부대회관 전역자들은 제대하고 '열정 페이'를 받아야 할 처진데, 군 복무 중에도 '애국 페이'를 해야 하느냐며 자조 섞인 말을 합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부대회관 인력을 민간 채용으로 충당하고 싶어도 예산이 넉넉하지 못하다며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말이 맞다면 복무자들을 '애국 페이' 시킬 게 아니라 시설을 줄여나가거나 제도를 폐지하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지휘관과 간부, 그리고 그들 부인의 회식 공간이 줄어드는 '피해'는 감수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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