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국정원 직원, 의문의 ‘스파이앱’ 구입…이번엔 의혹 풀릴까?

입력 2017.10.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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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국정원 직원, 의문의 ‘스파이앱’ 구입…이번엔 의혹 풀릴까?

[취재후] 국정원 직원, 의문의 ‘스파이앱’ 구입…이번엔 의혹 풀릴까?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 하나가 제출됐습니다.

고소장을 낸 사람은 현직 경찰 수사관 A 씨. 고소를 당한 사람은 현직 국가정보원 직원 S 씨와 A 씨의 직속상관이었던 현직 경찰 간부 J 씨였습니다.

S 씨는 정보통신망 침해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J 씨는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는 게 A 수사관의 주장인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현직 경찰관이 한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인물과 자신이 속한 조직, 그리고 국정원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을까요?


고소장 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보겠습니다.

2014년, 당시 경찰청 소속이던 A 수사관은 동료들과 함께 이른바 스파이앱을 이용한 스마트폰 불법 도청 사범들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스파이앱: 타인의 스마트폰에 몰래 설치해 통화 목록, 주소록, 문자메시지, 사진, 동영상 등을 빼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통화 내용을 도청하고 녹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 주변의 소리도 녹음할 수 있고, 사용자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스파이앱으로 배우자를 감시하던 사람, 돈을 받고 도청과 미행을 대행하던 심부름센터 등을 줄줄이 찾아냈고요.

그러던 중 '데이비드 조'란 인물이 2013년 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구매대행업자를 통해 해외에서 유통되는 스파이앱 65개, 1400여만 원어치를 사들인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어 '데이비드 조'가 사용한 인터넷 IP, 구매대금을 입금하는 모습이 찍힌 은행 CCTV 사진 등을 확보한 수사팀은 이 인물이 30대 남성 S 씨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리고는 2014년 10월, 압수수색을 위해 S 씨의 집을 찾아가게 되죠. 하지만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직전, A 씨는 직속상관인 J 씨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 집이 국정원 직원 집이다. 일단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지 말고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집니다.

이후 경찰청 수사팀 안에서는 충돌이 빚어졌다는 게 A 수사관의 주장입니다.

"국정원 직원이라도 스파이앱으로 누군가를 도청하는 것은 불법인 만큼 S가 실제로 도청을 했는지, 했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왜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A 씨 주장에 상관인 J는 "국정원에서 업무상 한 일이라는데 덮어두자"고 맞섰다고 합니다.

A 씨는 국정원이 직접 수사해 불법 여부를 밝히도록 사건을 국정원으로 넘기자는 제안도 했지만 J 씨는 "데이비드 조가 S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내가 책임질 테니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하라"고 지시했다고 하고요.

서울중앙지검의 지휘 검사 역시 "국정원과 전쟁하려는 것은 아니지요?"라면서 "웬만하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시죠"라고 말했다는 게 A 씨의 얘기입니다.

결국, 국정원 직원이 1,400만 원을 들여 65명을 도청할 수 있는 스파이앱(앱 한 개로 스마트폰 한 대만 도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을 샀는데, 이 지점에서 사건이 묻히게 된 겁니다.


스파이앱을 샀다는 사실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현재로써는 스파이앱을 산 S씨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수사 경험상 스파이앱을 산 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 1,4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스파이앱을 65개나 산 점, 스파이앱의 도청 내용을 전송받기 위한 이메일 계정을 S씨가 등록한 점 등으로 볼 때 S씨가 실제로 불법 도청을 했을 것으로 본다"는 입장입니다.

또 "합법적인 감청을 위해서는 법원의 감청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가 날 경우 통신사의 협조를 받아 감청을 진행하기 때문에 굳이 스파이앱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와의 대화를 마치고, 지금도 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J 씨와 통화했습니다. J 씨는 3년 전 스파이앱 사건을 수사했으며, 당시 국정원 직원의 집을 압수 수색을 하거나 진술을 받지 못하고 수사를 끝냈다고 확인해 줬습니다.

그 이유로 J 씨는 형사소송법과 국가정보원직원법 조항을 제시했습니다. 요약해 말씀드리면, "국가 기밀과 관련된 사항의 경우 압수수색을 하거나 국정원 직원의 진술을 받으려면 해당 기관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당시 국정원에서는 동의를 해주지 않았고, 결국 수사를 진행할 수가 없어 무혐의 처리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입니다.

국정원에도 연락했습니다. 국정원은 "적폐청산TF에서 조사 중인 사안으로,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짤막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2012년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으로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했고, 경찰 윗선의 수사 관련 압력을 폭로했던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국정원의 불법 행위에 대한 경찰 수사는 늘 이런 식으로 압수수색 단계부터 방해받고, 결과까지 종용받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은폐와 축소 압력이 있었는지 규명돼야 하고, 국정원이 불법 활동을 통해 어떤 정보를 취득했는지, 피해자들은 누구인지 함께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권 의원은 이어 "경찰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국정원의 부당한 외압에 굴복해서 어떤 수사를 종료했는지,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국정원 직원, 도청프로그램 대량구입”…경찰 간부가 수사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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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국정원 직원, 의문의 ‘스파이앱’ 구입…이번엔 의혹 풀릴까?
    • 입력 2017-10-12 11:29:22
    취재후·사건후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 하나가 제출됐습니다.

고소장을 낸 사람은 현직 경찰 수사관 A 씨. 고소를 당한 사람은 현직 국가정보원 직원 S 씨와 A 씨의 직속상관이었던 현직 경찰 간부 J 씨였습니다.

S 씨는 정보통신망 침해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J 씨는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는 게 A 수사관의 주장인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현직 경찰관이 한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인물과 자신이 속한 조직, 그리고 국정원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을까요?


고소장 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보겠습니다.

2014년, 당시 경찰청 소속이던 A 수사관은 동료들과 함께 이른바 스파이앱을 이용한 스마트폰 불법 도청 사범들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스파이앱: 타인의 스마트폰에 몰래 설치해 통화 목록, 주소록, 문자메시지, 사진, 동영상 등을 빼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통화 내용을 도청하고 녹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 주변의 소리도 녹음할 수 있고, 사용자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스파이앱으로 배우자를 감시하던 사람, 돈을 받고 도청과 미행을 대행하던 심부름센터 등을 줄줄이 찾아냈고요.

그러던 중 '데이비드 조'란 인물이 2013년 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구매대행업자를 통해 해외에서 유통되는 스파이앱 65개, 1400여만 원어치를 사들인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어 '데이비드 조'가 사용한 인터넷 IP, 구매대금을 입금하는 모습이 찍힌 은행 CCTV 사진 등을 확보한 수사팀은 이 인물이 30대 남성 S 씨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리고는 2014년 10월, 압수수색을 위해 S 씨의 집을 찾아가게 되죠. 하지만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직전, A 씨는 직속상관인 J 씨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 집이 국정원 직원 집이다. 일단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지 말고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집니다.

이후 경찰청 수사팀 안에서는 충돌이 빚어졌다는 게 A 수사관의 주장입니다.

"국정원 직원이라도 스파이앱으로 누군가를 도청하는 것은 불법인 만큼 S가 실제로 도청을 했는지, 했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왜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A 씨 주장에 상관인 J는 "국정원에서 업무상 한 일이라는데 덮어두자"고 맞섰다고 합니다.

A 씨는 국정원이 직접 수사해 불법 여부를 밝히도록 사건을 국정원으로 넘기자는 제안도 했지만 J 씨는 "데이비드 조가 S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내가 책임질 테니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하라"고 지시했다고 하고요.

서울중앙지검의 지휘 검사 역시 "국정원과 전쟁하려는 것은 아니지요?"라면서 "웬만하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시죠"라고 말했다는 게 A 씨의 얘기입니다.

결국, 국정원 직원이 1,400만 원을 들여 65명을 도청할 수 있는 스파이앱(앱 한 개로 스마트폰 한 대만 도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을 샀는데, 이 지점에서 사건이 묻히게 된 겁니다.


스파이앱을 샀다는 사실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현재로써는 스파이앱을 산 S씨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수사 경험상 스파이앱을 산 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 1,4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스파이앱을 65개나 산 점, 스파이앱의 도청 내용을 전송받기 위한 이메일 계정을 S씨가 등록한 점 등으로 볼 때 S씨가 실제로 불법 도청을 했을 것으로 본다"는 입장입니다.

또 "합법적인 감청을 위해서는 법원의 감청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가 날 경우 통신사의 협조를 받아 감청을 진행하기 때문에 굳이 스파이앱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와의 대화를 마치고, 지금도 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J 씨와 통화했습니다. J 씨는 3년 전 스파이앱 사건을 수사했으며, 당시 국정원 직원의 집을 압수 수색을 하거나 진술을 받지 못하고 수사를 끝냈다고 확인해 줬습니다.

그 이유로 J 씨는 형사소송법과 국가정보원직원법 조항을 제시했습니다. 요약해 말씀드리면, "국가 기밀과 관련된 사항의 경우 압수수색을 하거나 국정원 직원의 진술을 받으려면 해당 기관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당시 국정원에서는 동의를 해주지 않았고, 결국 수사를 진행할 수가 없어 무혐의 처리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입니다.

국정원에도 연락했습니다. 국정원은 "적폐청산TF에서 조사 중인 사안으로,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짤막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2012년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으로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했고, 경찰 윗선의 수사 관련 압력을 폭로했던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국정원의 불법 행위에 대한 경찰 수사는 늘 이런 식으로 압수수색 단계부터 방해받고, 결과까지 종용받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은폐와 축소 압력이 있었는지 규명돼야 하고, 국정원이 불법 활동을 통해 어떤 정보를 취득했는지, 피해자들은 누구인지 함께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권 의원은 이어 "경찰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국정원의 부당한 외압에 굴복해서 어떤 수사를 종료했는지,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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