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검찰·법원, ‘한진일가’ 영장 갈등…발부 기준은?

입력 2018.07.18 (17:22) 수정 2018.07.1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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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영장이 기각된 날, '김병철'이란 이름이 하루종일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랐습니다. 조 회장의 영장을 기각한 판사의 이름입니다. 주요 인물의 영장 심사 때마다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이날 데스크에서 취재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현행 영장 제도에 개선점은 없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자." 그런데 막상 취재를 하려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장 심사는 그 결과가 판결문의 형태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판에는 판결문이 있습니다. 판사가 유,무죄 이유를 죽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언론은 그 논리에 모순이나 비약은 없는지 검증하지요. 그러나 영장전담판사는 심사 결과를 판결문처럼 자세히 쓰지 않습니다. 기각 사유는 서너 줄에 불과할 때도 많습니다.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다.' 정도인 것이죠. 판사의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영장이 왜 기각됐는지는 사실 알 수 없는 겁니다. 불가해한 영역인 셈이죠.

대신 취재 과정에서 이 점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종종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입니다. 형소소송법 70조는 구속의 사유를 세 가지 들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입니다. 검찰과 법원 모두 이 조항에 근거해 영장을 청구하고, 또 심사합니다. 그럼에도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는 이 조항을 언제 어떻게 적용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재판과 수사의 실무에서는 각자 기준이 다른 겁니다.

조양호 영장 : "증거인멸 우려" VS "자백 얻는 수단"

논란이 됐던 한진그룹 일가의 영장을 사례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혐의 부인에 따른 증거인멸의 우려.' 검찰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밝힌 구속 사유 중 하나입니다. 꼭 이 사건뿐 아니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흔히 드는 이윱유죠. 수사기관이 나름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피의자가 무조건 모르쇠라면 향후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러나 법원의 시각은 다릅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 심사 실무에 사용하는 가이드라인이자 지침서인 '실무제요'를 살펴보겠습니다. 형소법에 명시된 각 구속 사유에 대해 적용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을 구체적으로 적어놨습니다. '증거인멸'에 대해서는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한다는 이유만으로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자백 여부를 증거인멸 염려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는 결국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얻는 수단으로서 구속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하게" 된다는 이유에섭니다. 법원은 그러면서 "증거인멸 염려라는 구속사유는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의 보장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확대 해석하여 적용하는 경우 피의자의 방어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약할 위험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수사 효율성보다는 공권력 남용을 막는 데 방점을 둔다는 점에서 검찰 시각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명희 영장 : "재범 위험성" VS "실형 가능성 낮아"

이번에는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씨의 사례를 볼까요. 이명희 씨는 외국인 불법 고용 혐의를 받고 있죠. 현행법상 가사도우미는 재외동포나 결혼이민자 신분이어야 하는데 필리핀 여성을 불법 고용했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 대한항공 임직원까지 동원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영장은 기각됐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 중 하나는 '실형 선고 가능성'입니다. 기소 이후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할 만한 죄를 저질렀느냐가 중요한 판단 요소라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외국인 불법 고용 혐의는 실형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이런 점을 법원이 고려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검찰은 실형 선고 원칙에 특히 불만이 많습니다. 실형 선고가 예상되지 않더라도 "계속 중인 범죄를 조기에 중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거나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거나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 형사정책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현행 구속영장 기각기준에 관한 실무연구', 안승진 검사)

"입막음용 합의" VS "합의도 피의자 권리"

'피해자와의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찰과 법원의 입장이 다릅니다. 이명희 씨는 폭행이나 모욕을 당했던 과거 자신의 운전기사 등 피해자에게 거액을 주고 합의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찰은 이 씨가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 한 것으로 봅니다. 수사 과정에 꼭 필요한 피해자 진술을 받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런데 법원의 가이드라인(실무제요)은 다릅니다. "피의자와 변호인이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면서 "피의자와 변호인이 사건 관계자로부터 사정을 청취하거나 피해 변상 및 합의를 위하여 피해자 등과 교섭을 하는 일 등은 당연히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검찰이 청구한 영장의 기각률은 2015년 21.8%에서 16년 22.2%, 17년 25.1%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5월 기준 26.8%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울중앙지법은 불구속 재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2006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5개 원칙을 제시하면서 말입니다. "실형기준의 원칙 강화, 형사정책적 고려에 의한 구속 지양, 방어권 보장을 위한 불구속 확대, 비례의 원칙에 의한 불구속 확대, 소년범에 대한 특별한 배려." 물론 이것만으로 구속영장이 어떤 경위로 기각되는지, 검찰과 법원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 전부 설명되진 않습니다. 다만, 영장이 기각될 때 실검에 오르내리는 판사의 이름을 보면서 한 번쯤 이런 배경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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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검찰·법원, ‘한진일가’ 영장 갈등…발부 기준은?
    • 입력 2018-07-18 17:22:27
    • 수정2018-07-19 16:42:00
    취재후·사건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영장이 기각된 날, '김병철'이란 이름이 하루종일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랐습니다. 조 회장의 영장을 기각한 판사의 이름입니다. 주요 인물의 영장 심사 때마다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이날 데스크에서 취재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현행 영장 제도에 개선점은 없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자." 그런데 막상 취재를 하려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장 심사는 그 결과가 판결문의 형태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판에는 판결문이 있습니다. 판사가 유,무죄 이유를 죽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언론은 그 논리에 모순이나 비약은 없는지 검증하지요. 그러나 영장전담판사는 심사 결과를 판결문처럼 자세히 쓰지 않습니다. 기각 사유는 서너 줄에 불과할 때도 많습니다.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다.' 정도인 것이죠. 판사의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영장이 왜 기각됐는지는 사실 알 수 없는 겁니다. 불가해한 영역인 셈이죠.

대신 취재 과정에서 이 점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종종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입니다. 형소소송법 70조는 구속의 사유를 세 가지 들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입니다. 검찰과 법원 모두 이 조항에 근거해 영장을 청구하고, 또 심사합니다. 그럼에도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는 이 조항을 언제 어떻게 적용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재판과 수사의 실무에서는 각자 기준이 다른 겁니다.

조양호 영장 : "증거인멸 우려" VS "자백 얻는 수단"

논란이 됐던 한진그룹 일가의 영장을 사례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혐의 부인에 따른 증거인멸의 우려.' 검찰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밝힌 구속 사유 중 하나입니다. 꼭 이 사건뿐 아니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흔히 드는 이윱유죠. 수사기관이 나름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피의자가 무조건 모르쇠라면 향후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러나 법원의 시각은 다릅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 심사 실무에 사용하는 가이드라인이자 지침서인 '실무제요'를 살펴보겠습니다. 형소법에 명시된 각 구속 사유에 대해 적용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을 구체적으로 적어놨습니다. '증거인멸'에 대해서는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한다는 이유만으로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자백 여부를 증거인멸 염려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는 결국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얻는 수단으로서 구속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하게" 된다는 이유에섭니다. 법원은 그러면서 "증거인멸 염려라는 구속사유는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의 보장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확대 해석하여 적용하는 경우 피의자의 방어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약할 위험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수사 효율성보다는 공권력 남용을 막는 데 방점을 둔다는 점에서 검찰 시각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명희 영장 : "재범 위험성" VS "실형 가능성 낮아"

이번에는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씨의 사례를 볼까요. 이명희 씨는 외국인 불법 고용 혐의를 받고 있죠. 현행법상 가사도우미는 재외동포나 결혼이민자 신분이어야 하는데 필리핀 여성을 불법 고용했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 대한항공 임직원까지 동원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영장은 기각됐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 중 하나는 '실형 선고 가능성'입니다. 기소 이후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할 만한 죄를 저질렀느냐가 중요한 판단 요소라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외국인 불법 고용 혐의는 실형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이런 점을 법원이 고려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검찰은 실형 선고 원칙에 특히 불만이 많습니다. 실형 선고가 예상되지 않더라도 "계속 중인 범죄를 조기에 중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거나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거나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 형사정책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현행 구속영장 기각기준에 관한 실무연구', 안승진 검사)

"입막음용 합의" VS "합의도 피의자 권리"

'피해자와의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찰과 법원의 입장이 다릅니다. 이명희 씨는 폭행이나 모욕을 당했던 과거 자신의 운전기사 등 피해자에게 거액을 주고 합의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찰은 이 씨가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 한 것으로 봅니다. 수사 과정에 꼭 필요한 피해자 진술을 받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런데 법원의 가이드라인(실무제요)은 다릅니다. "피의자와 변호인이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면서 "피의자와 변호인이 사건 관계자로부터 사정을 청취하거나 피해 변상 및 합의를 위하여 피해자 등과 교섭을 하는 일 등은 당연히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검찰이 청구한 영장의 기각률은 2015년 21.8%에서 16년 22.2%, 17년 25.1%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5월 기준 26.8%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울중앙지법은 불구속 재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2006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5개 원칙을 제시하면서 말입니다. "실형기준의 원칙 강화, 형사정책적 고려에 의한 구속 지양, 방어권 보장을 위한 불구속 확대, 비례의 원칙에 의한 불구속 확대, 소년범에 대한 특별한 배려." 물론 이것만으로 구속영장이 어떤 경위로 기각되는지, 검찰과 법원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 전부 설명되진 않습니다. 다만, 영장이 기각될 때 실검에 오르내리는 판사의 이름을 보면서 한 번쯤 이런 배경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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