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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종걸 “노회찬, 정의의 중심에 서려했던 친구”
입력 2018.07.24 (15:47) 수정 2018.07.24 (16:29) 오태훈의 시사본부
[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종걸 “노회찬, 정의의 중심에 서려했던 친구”
* 방송 : 오태훈의 시사본부 (FM 97.3 MHz / 월-금 12:20-14:00)
* 진행 : 박노원 앵커 (KBS 아나운서)
* 방송일시 : 2018년 7월 24일 화요일
* 출연자 :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 故 노회찬 의원은 나에게 위안을 주는 희망의 근원, 늘 적확한 표현으로 친구들 감동시켜
- 권력놀이하는 ‘정치’에는 한없이 미숙했지만, ‘정의’의 중심에 서려 했던 사람.
- 고인의 결혼식 때 결혼행진곡 쳐준 추억있어.. 엄혹한 시기라 결혼사진도 제대로 못 찍어
- 도 변호사는 과묵하고 정치에 기웃거리는 친구 아니었어...주역에 심취했다는 얘기 들어

□ 박노원 / 진행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그 어렵던 시절, 함께 꾸었던 꿈은 내 몫으로 남겨졌구려. 부디 평안하기를." 노회찬 의원의 별세 소식을 듣고 한 의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추모글입니다. 고 노회찬 의원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민주화 시기에 많은 인연을 쌓아온 민주당 이종걸 의원 전화 연결합니다. 의원님, 나와계시죠?

□ 이종걸

네, 안녕하셨습니까? 이종걸입니다.

□ 박노원 / 진행

빈소에는 다녀오셨나요?

□ 이종걸

네, 어제 늦게까지 있다가 왔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빈소로 향하는 길에 심경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 이종걸

제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친구이자 정치적인 저의 인도자이자 저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 희망의 근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한 12명 친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동기들인데 모두 다 빈소를 지켰습니다. 말을 못 하고 있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1학년 때부터 친구셨나요?

□ 이종걸

네, 1학년 화동 경기고 교정에서 만났습니다. 약간 극적인 것 같습니다만 그때 1학년 때 다 풍운의 꿈을 안고 그때,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에서 시험 봐서 올라온 아주 넉넉해 보이는 친구였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고 노회찬 의원의 학창시절, 고등학교 때부터 유신반대투쟁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이종걸 의원이 기억하시는 노회찬 의원은 어땠습니까?

□ 이종걸

결코 음흉하지 않았습니다. 밝고 맑았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표현은 참 늘 좋은 표현으로, 아주 적확한 표현으로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겁 많던 제가 노회찬 따라서, 사실 저는 어느 신문에 유신독재 시절에 '비위 있는 자들아'라고 하는 반정부 유인물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다니까 저보고 아주 대단하다고 하는데 사실은 저는 겁 많은 사람으로 노회찬 의원하고 몇 친구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저는 좀 겁을 내면서 따라갔던 그런 때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어요. 제가 철핀으로 그 반정부 유인물을 각 교정에 일일이 문을 따서 열어서 밤에 들어가서 과학실, 1학년 반, 2학년 반, 3학년 반까지 밤에 다 뿌리고 그런 용의주도한, 청와대에도 보내고 했던 그 시절에 그래서 2, 3일 후에 유류파동이라는 것으로 해서 방학을 한 달 전에 갑자기 하게 됐는데 그런 고등학교 흐름들이 대학의 민청학련 사건에서 넘겨 붙는 것을 정권은 막기 위해서 갑작스럽게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 방학을 시킨 그때 허탈함. 갑자기 학교 갔는데 내일부터 방학이라고 하니까 그때 노회찬 의원의 표정, 허탈해 하는 모습들 이런 것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때 학생운동으로 인해서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그러지는 않았었나요?

□ 이종걸

전격적으로 등교를 못 하게 하면서 조사 중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다음에 나중에 알려졌지 수사대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어땠습니까? 만날 기회가 종종 있으셨나요? 정계 입문하기 전에, 학교 졸업하고요.

□ 이종걸

그때 대학을 다닐 때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했습니다만 노회찬 의원은 좀 언더, 학교의 공식적인 서클이 오픈된 서클에서 언더서클로 나가는 그런 초기 시기였는데 아주 강력한 비밀 언더서클에서 활동했던 걸로 됐습니다. 그리고 군대도 마쳤고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는 제한된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밀화 된 운동이나 이런 것들은 서로 얘기 안 하는, 서로 간에 자기 조직과 활동자 간의 목적을 통한 대화 아니고는 친구들 사이에도 그런 얘기들을 자제하고 했지만 그러나 언제든지 사회문제에 대해서, 또 그때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재밌게 또 너털웃음으로 또 그리고 항상 정확한 소재를 가지고 정확한 표현을 쓰는 노회찬의 우수성, 저희한테 인도자가 되는 능력이나 이런 것들은 그때부터 놀라웠던 것 같고요.

□ 박노원 / 진행

노회찬 의원 하면 유머, 해학, 촌철살인, 그렇게 상징되는데 학창시절에도 그런 면모가 있었나요?

□ 이종걸

어린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랬나. 그때 당시에는 책보다는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했던 학교공부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안 쏟았던 것 같고요. 우리 국내에 있었던 '창작과비평', 함석헌 선생의 문헌들 이런 것들에 고등학생 시절엔 좀 조숙해 보일 수 있는 지식생활, 정신생활을 했고 그런 바깥의 아직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을 재밌게 서로 얘기하면서 고등학생으로 보기에는 좀 더 넘는 정치적 시점과 사회비판의식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때부터 그때 당시 엄혹한 독재체제에 대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노동자들 힘든 지친 분들이 이렇게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래서 내가 어떤 활동을 해야 된다는 책임감, 사회정의에 대한 욕망 이런 것들이 그냥 말소리에, 말투에 녹아나는 친구였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대학 졸업 후 자주 뵙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가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아셨을 텐데, 그 이후에 국회에서 언제 조우하시게 된 거예요?

□ 이종걸

그 전에 제가 잠시 친구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사법시험을 해서 변호사가 됐을 때 그때 본격적인 장면의 사회운동, 인민노련 창설하고 또 그 이전에 서노련이라고 하는 아주 강고한 노동조직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사회운동조직에서 집단적인 검거가 이루어지면 도망하고 튀고 집을 옮기고 또 수배된 시간을 몇 년이나 거쳤고 이럴 때 제가 변호사로서 수배됐을 때는 수배관계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아내야 될 그런 의무를 제가 가지고 있었고요. 또 집을 옮길 때는 차에 짐, 짐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짐을 다 실어서 옮기고 이런 일들이, 도망치는 노회찬에게 자랑스럽고 어떨 때는 쓸쓸한 모습을 던져주고 또 제가 헤어지고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그 시기에 젊은 사람을 저희 집에 소개해서 같이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분이 지금 어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제가 한번 물어본다고 했는데 아직 물어보지 못한 채 길을 떠나버렸는데 참 야속합니다. 또 그분이 집사람하고 집에서 대화하고 하면서 저희 집사람을 많은 감동을 시킨, 능동적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본래의 모습들을 알게 하는, 아주 저한테는 너무 고마운 분입니다.

□ 박노원 / 진행

청취자 조윤형님께서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상대적으로 그나마 양심적인 정치인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은 오히려 천수를 누리죠."

또 김미숙님은 "아직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 정계에 꼭 필요한 분이 이리 허망하게 가시니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이러셨는데, 의원님도 고인의 빈소에서 누구보다도 칼날 같은 자기검열을 일생동안 했던 사람이라고 친구 노회찬 의원을 평가했습니다. 본인에게 너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했던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신 거죠?

□ 이종걸

네, 이번 사안도 제가 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만 노회찬 의원만이 이 사안을 가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부담, 또 무엇보다도 정의당이라고 하는 자기 몸과 같은 진보적 성향의 집단체 이것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책임감, 도덕감, 자기 엄격한 기준 다음에 이렇게 된 것이고요. 3월이면 총선인데요. 총선 직전입니다. 엑스파일 사건으로 사실 의원직을 상실 당했을 때 원외에서 창원으로 내려가서 선거를 시작할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정신이 없죠. 처음 새로운 지역에 가서 선거운동의 어떤 지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많은 노력이 집중되어야 되는데 그때 아마 후원금을 받지 못하는 시기였을 겁니다. 후원금을 받으려면 운동기간 15일 그때가 가능한 거였거든요. 그때 조금 한 달 정도 앞선 시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아마 정신없이 하다 보니까 드루킹이라든지 아무튼 잘 모르니까, 본인이 알았겠습니까? 누가 후원을 해서 후원 모금하는 액수를 한 달 뒤에 모금한 사람에게 모집대리인이라든지 이런 제도를 만들어서, 다 알고 있습니다. 노회찬이 모를 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후원한 사람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통장에 부치게 했으면 전혀 문제가 없는, 정말 이것은 이렇게 우리의 협애한 정치자금 후원금제도를 엄격하게 한 탓에 기간이나 액수 제한을 해놓은 그런 것에 조금 못 맞춘. 사실 선거 때라는 것은 다 그런 방식으로 후원을 해 주는 것들이 많거든요. 이 후원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것에 대해서 사실 알 수도 없는 거거든요. 더더군다나 고등학교 친구인 도변이라고 하는 변호사가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걱정감 이런 것들이 해제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친구면 그 도 모 변호사도 이종걸 의원이 아십니까?

□ 이종걸

네, 알고 있어요.

□ 박노원 / 진행

어떤 사람입니까?

□ 이종걸

말이 별로 많지 않고 또 정치 쪽에서 나대고 이런 정치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훌륭한 변호사로서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지낸 친구였는데 제가 듣기로는 주역, 주역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하다 보면 많이 빠져들어간다고 하는데 주역에 많이 심취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문득 생각이 났는데요. 노회찬 의원은 첼로 연주, 또 이종걸 의원은 피아노 연주가 가능하시잖아요. 혹시 "우리 나중에 시간 되면 연주 한번 할까?" 그런 말씀은 나눠본 적 없어요?

□ 이종걸

네, 그런 얘기는 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너무 평화롭고 지친 서민에 맞지 않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그조차도 편하게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평화시대가 오고 우리가 대한민국에 새로운 냉전이 걷어나면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이 년 후, 3년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기가 오는데 이렇게 … 저는 참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지금 떠오른 것은 결혼식 때였는데요. 부산에서 조하승 목사님이 주례를 하셨는데,

□ 박노원 / 진행

노회찬 의원 결혼식이요?

□ 이종걸

네, 그렇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그때 참석하셨습니까?

□ 이종걸

네, 부산에 가서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첼로를 했던 친구이기 때문에 악기나 이런 것이 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제가 거기 가서 결혼행진곡과 축가도 쳐드렸는데 그걸 그렇게 보고, 또 음악적 재능과 소양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이 있는 것이 그에게는 굉장히 마음이 편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때 몇몇 친구들이 왔는데 그 친구들은 또 사진을 못 찍더라고요. 사진을 왜 못 찍느냐 하면 그때 엄혹한 시즌이기 때문에 만약에 사진이 또 하나의 증거가 되면 조직적으로 엮이고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 피하고 결국 사진도 제가 혼자 노회찬 결혼식 사진에 증거로 남게 됐던 것 같습니다. 첼로도 쇼스타코비치라고요. 러시아 혁명기 아주 사회적 상을 아주 적합하게 표현했다고 어렸을 때 생각했던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제일 좋아하고 또 그것을 즐겨 연주하는 친구였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끝으로 이종걸 의원님, 이제 금요일에 발인이죠?

□ 이종걸

네, 그렇습니다.

□ 박노원 / 진행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정치인 노회찬, 친구 노회찬에게 마지막 말씀 한 말씀 해 주세요.

□ 이종걸

저는 이전에 몇 년의 시간이 그렇게 길었나, 정말 마음이 찢어집니다. 본인은 이 정치에 들어와서 결코 훌륭한 정치인, 완숙한 정치인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놀이라는 측면의 정치에서는 끝없이 미숙했던, 본인은 정의의 중심에 서려고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50년 동안 울려오던 정의의 북, 정의의 북이 오늘 저는 찢어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노회찬에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서 제가 건네 드릴 그날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노회찬의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하는 뜻 그것을 반드시 꼭 지켜드리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박노원 / 진행

전당대회 얘기 좀 여쭤보려고 그랬는데 시간이 다 지나서 전당대회 얘기는 시간상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 이종걸

네, 감사합니다.

□ 박노원 / 진행

말씀 감사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었습니다.
  • [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종걸 “노회찬, 정의의 중심에 서려했던 친구”
    • 입력 2018.07.24 (15:47)
    • 수정 2018.07.24 (16:29)
    오태훈의 시사본부
[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종걸 “노회찬, 정의의 중심에 서려했던 친구”
* 방송 : 오태훈의 시사본부 (FM 97.3 MHz / 월-금 12:20-14:00)
* 진행 : 박노원 앵커 (KBS 아나운서)
* 방송일시 : 2018년 7월 24일 화요일
* 출연자 :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 故 노회찬 의원은 나에게 위안을 주는 희망의 근원, 늘 적확한 표현으로 친구들 감동시켜
- 권력놀이하는 ‘정치’에는 한없이 미숙했지만, ‘정의’의 중심에 서려 했던 사람.
- 고인의 결혼식 때 결혼행진곡 쳐준 추억있어.. 엄혹한 시기라 결혼사진도 제대로 못 찍어
- 도 변호사는 과묵하고 정치에 기웃거리는 친구 아니었어...주역에 심취했다는 얘기 들어

□ 박노원 / 진행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그 어렵던 시절, 함께 꾸었던 꿈은 내 몫으로 남겨졌구려. 부디 평안하기를." 노회찬 의원의 별세 소식을 듣고 한 의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추모글입니다. 고 노회찬 의원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민주화 시기에 많은 인연을 쌓아온 민주당 이종걸 의원 전화 연결합니다. 의원님, 나와계시죠?

□ 이종걸

네, 안녕하셨습니까? 이종걸입니다.

□ 박노원 / 진행

빈소에는 다녀오셨나요?

□ 이종걸

네, 어제 늦게까지 있다가 왔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빈소로 향하는 길에 심경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 이종걸

제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친구이자 정치적인 저의 인도자이자 저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 희망의 근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한 12명 친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동기들인데 모두 다 빈소를 지켰습니다. 말을 못 하고 있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1학년 때부터 친구셨나요?

□ 이종걸

네, 1학년 화동 경기고 교정에서 만났습니다. 약간 극적인 것 같습니다만 그때 1학년 때 다 풍운의 꿈을 안고 그때,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에서 시험 봐서 올라온 아주 넉넉해 보이는 친구였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고 노회찬 의원의 학창시절, 고등학교 때부터 유신반대투쟁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이종걸 의원이 기억하시는 노회찬 의원은 어땠습니까?

□ 이종걸

결코 음흉하지 않았습니다. 밝고 맑았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표현은 참 늘 좋은 표현으로, 아주 적확한 표현으로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겁 많던 제가 노회찬 따라서, 사실 저는 어느 신문에 유신독재 시절에 '비위 있는 자들아'라고 하는 반정부 유인물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다니까 저보고 아주 대단하다고 하는데 사실은 저는 겁 많은 사람으로 노회찬 의원하고 몇 친구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저는 좀 겁을 내면서 따라갔던 그런 때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어요. 제가 철핀으로 그 반정부 유인물을 각 교정에 일일이 문을 따서 열어서 밤에 들어가서 과학실, 1학년 반, 2학년 반, 3학년 반까지 밤에 다 뿌리고 그런 용의주도한, 청와대에도 보내고 했던 그 시절에 그래서 2, 3일 후에 유류파동이라는 것으로 해서 방학을 한 달 전에 갑자기 하게 됐는데 그런 고등학교 흐름들이 대학의 민청학련 사건에서 넘겨 붙는 것을 정권은 막기 위해서 갑작스럽게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 방학을 시킨 그때 허탈함. 갑자기 학교 갔는데 내일부터 방학이라고 하니까 그때 노회찬 의원의 표정, 허탈해 하는 모습들 이런 것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때 학생운동으로 인해서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그러지는 않았었나요?

□ 이종걸

전격적으로 등교를 못 하게 하면서 조사 중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다음에 나중에 알려졌지 수사대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어땠습니까? 만날 기회가 종종 있으셨나요? 정계 입문하기 전에, 학교 졸업하고요.

□ 이종걸

그때 대학을 다닐 때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했습니다만 노회찬 의원은 좀 언더, 학교의 공식적인 서클이 오픈된 서클에서 언더서클로 나가는 그런 초기 시기였는데 아주 강력한 비밀 언더서클에서 활동했던 걸로 됐습니다. 그리고 군대도 마쳤고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는 제한된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밀화 된 운동이나 이런 것들은 서로 얘기 안 하는, 서로 간에 자기 조직과 활동자 간의 목적을 통한 대화 아니고는 친구들 사이에도 그런 얘기들을 자제하고 했지만 그러나 언제든지 사회문제에 대해서, 또 그때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재밌게 또 너털웃음으로 또 그리고 항상 정확한 소재를 가지고 정확한 표현을 쓰는 노회찬의 우수성, 저희한테 인도자가 되는 능력이나 이런 것들은 그때부터 놀라웠던 것 같고요.

□ 박노원 / 진행

노회찬 의원 하면 유머, 해학, 촌철살인, 그렇게 상징되는데 학창시절에도 그런 면모가 있었나요?

□ 이종걸

어린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랬나. 그때 당시에는 책보다는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했던 학교공부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안 쏟았던 것 같고요. 우리 국내에 있었던 '창작과비평', 함석헌 선생의 문헌들 이런 것들에 고등학생 시절엔 좀 조숙해 보일 수 있는 지식생활, 정신생활을 했고 그런 바깥의 아직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을 재밌게 서로 얘기하면서 고등학생으로 보기에는 좀 더 넘는 정치적 시점과 사회비판의식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때부터 그때 당시 엄혹한 독재체제에 대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 노동자들 힘든 지친 분들이 이렇게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래서 내가 어떤 활동을 해야 된다는 책임감, 사회정의에 대한 욕망 이런 것들이 그냥 말소리에, 말투에 녹아나는 친구였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대학 졸업 후 자주 뵙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가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아셨을 텐데, 그 이후에 국회에서 언제 조우하시게 된 거예요?

□ 이종걸

그 전에 제가 잠시 친구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사법시험을 해서 변호사가 됐을 때 그때 본격적인 장면의 사회운동, 인민노련 창설하고 또 그 이전에 서노련이라고 하는 아주 강고한 노동조직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사회운동조직에서 집단적인 검거가 이루어지면 도망하고 튀고 집을 옮기고 또 수배된 시간을 몇 년이나 거쳤고 이럴 때 제가 변호사로서 수배됐을 때는 수배관계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아내야 될 그런 의무를 제가 가지고 있었고요. 또 집을 옮길 때는 차에 짐, 짐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짐을 다 실어서 옮기고 이런 일들이, 도망치는 노회찬에게 자랑스럽고 어떨 때는 쓸쓸한 모습을 던져주고 또 제가 헤어지고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그 시기에 젊은 사람을 저희 집에 소개해서 같이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분이 지금 어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제가 한번 물어본다고 했는데 아직 물어보지 못한 채 길을 떠나버렸는데 참 야속합니다. 또 그분이 집사람하고 집에서 대화하고 하면서 저희 집사람을 많은 감동을 시킨, 능동적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본래의 모습들을 알게 하는, 아주 저한테는 너무 고마운 분입니다.

□ 박노원 / 진행

청취자 조윤형님께서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상대적으로 그나마 양심적인 정치인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은 오히려 천수를 누리죠."

또 김미숙님은 "아직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 정계에 꼭 필요한 분이 이리 허망하게 가시니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이러셨는데, 의원님도 고인의 빈소에서 누구보다도 칼날 같은 자기검열을 일생동안 했던 사람이라고 친구 노회찬 의원을 평가했습니다. 본인에게 너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했던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신 거죠?

□ 이종걸

네, 이번 사안도 제가 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만 노회찬 의원만이 이 사안을 가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부담, 또 무엇보다도 정의당이라고 하는 자기 몸과 같은 진보적 성향의 집단체 이것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책임감, 도덕감, 자기 엄격한 기준 다음에 이렇게 된 것이고요. 3월이면 총선인데요. 총선 직전입니다. 엑스파일 사건으로 사실 의원직을 상실 당했을 때 원외에서 창원으로 내려가서 선거를 시작할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정신이 없죠. 처음 새로운 지역에 가서 선거운동의 어떤 지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많은 노력이 집중되어야 되는데 그때 아마 후원금을 받지 못하는 시기였을 겁니다. 후원금을 받으려면 운동기간 15일 그때가 가능한 거였거든요. 그때 조금 한 달 정도 앞선 시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아마 정신없이 하다 보니까 드루킹이라든지 아무튼 잘 모르니까, 본인이 알았겠습니까? 누가 후원을 해서 후원 모금하는 액수를 한 달 뒤에 모금한 사람에게 모집대리인이라든지 이런 제도를 만들어서, 다 알고 있습니다. 노회찬이 모를 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후원한 사람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통장에 부치게 했으면 전혀 문제가 없는, 정말 이것은 이렇게 우리의 협애한 정치자금 후원금제도를 엄격하게 한 탓에 기간이나 액수 제한을 해놓은 그런 것에 조금 못 맞춘. 사실 선거 때라는 것은 다 그런 방식으로 후원을 해 주는 것들이 많거든요. 이 후원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것에 대해서 사실 알 수도 없는 거거든요. 더더군다나 고등학교 친구인 도변이라고 하는 변호사가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걱정감 이런 것들이 해제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 박노원 / 진행

고등학교 친구면 그 도 모 변호사도 이종걸 의원이 아십니까?

□ 이종걸

네, 알고 있어요.

□ 박노원 / 진행

어떤 사람입니까?

□ 이종걸

말이 별로 많지 않고 또 정치 쪽에서 나대고 이런 정치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훌륭한 변호사로서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지낸 친구였는데 제가 듣기로는 주역, 주역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하다 보면 많이 빠져들어간다고 하는데 주역에 많이 심취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문득 생각이 났는데요. 노회찬 의원은 첼로 연주, 또 이종걸 의원은 피아노 연주가 가능하시잖아요. 혹시 "우리 나중에 시간 되면 연주 한번 할까?" 그런 말씀은 나눠본 적 없어요?

□ 이종걸

네, 그런 얘기는 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너무 평화롭고 지친 서민에 맞지 않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그조차도 편하게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평화시대가 오고 우리가 대한민국에 새로운 냉전이 걷어나면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이 년 후, 3년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기가 오는데 이렇게 … 저는 참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지금 떠오른 것은 결혼식 때였는데요. 부산에서 조하승 목사님이 주례를 하셨는데,

□ 박노원 / 진행

노회찬 의원 결혼식이요?

□ 이종걸

네, 그렇습니다.

□ 박노원 / 진행

그때 참석하셨습니까?

□ 이종걸

네, 부산에 가서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첼로를 했던 친구이기 때문에 악기나 이런 것이 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제가 거기 가서 결혼행진곡과 축가도 쳐드렸는데 그걸 그렇게 보고, 또 음악적 재능과 소양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이 있는 것이 그에게는 굉장히 마음이 편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때 몇몇 친구들이 왔는데 그 친구들은 또 사진을 못 찍더라고요. 사진을 왜 못 찍느냐 하면 그때 엄혹한 시즌이기 때문에 만약에 사진이 또 하나의 증거가 되면 조직적으로 엮이고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 피하고 결국 사진도 제가 혼자 노회찬 결혼식 사진에 증거로 남게 됐던 것 같습니다. 첼로도 쇼스타코비치라고요. 러시아 혁명기 아주 사회적 상을 아주 적합하게 표현했다고 어렸을 때 생각했던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제일 좋아하고 또 그것을 즐겨 연주하는 친구였습니다.

□ 박노원 / 진행

끝으로 이종걸 의원님, 이제 금요일에 발인이죠?

□ 이종걸

네, 그렇습니다.

□ 박노원 / 진행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정치인 노회찬, 친구 노회찬에게 마지막 말씀 한 말씀 해 주세요.

□ 이종걸

저는 이전에 몇 년의 시간이 그렇게 길었나, 정말 마음이 찢어집니다. 본인은 이 정치에 들어와서 결코 훌륭한 정치인, 완숙한 정치인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놀이라는 측면의 정치에서는 끝없이 미숙했던, 본인은 정의의 중심에 서려고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50년 동안 울려오던 정의의 북, 정의의 북이 오늘 저는 찢어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노회찬에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서 제가 건네 드릴 그날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노회찬의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하는 뜻 그것을 반드시 꼭 지켜드리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박노원 / 진행

전당대회 얘기 좀 여쭤보려고 그랬는데 시간이 다 지나서 전당대회 얘기는 시간상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 이종걸

네, 감사합니다.

□ 박노원 / 진행

말씀 감사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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