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어느 가족’ 집중분석① - 경계를 묻다

입력 2018.08.17 (11:30) 수정 2019.04.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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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화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서 우리 생활과 만나는 접점을 찾아보는 쓸모 있는 이야기, '영화의 쓸모' 송형국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입니다.

국내에 탄탄한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고레에다 감독 영화 중에서도 보고 나온 분들의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나, 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혈연 관계가 아니면서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여섯 식구의 이야기죠.

이들이 어떻게 한 집안에서 살게 됐는지 극이 진행되면서 하나하나 과거 사연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 곧 관객이 이 영화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들어가게 되는 여정이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인데요.

내용도 따라가기가 아주 쉬워서 여기서는 주로 이런 스토리 아래 깔려있는 감독의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인데요.

마트에 들어가서 물건을 고르는 척 하다 몰래 가방에 집어넣습니다.

일본에는 이런 행동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영화 원제목이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이죠.

바로 이 '만비키'라는 말이,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사는 척 하다 몰래 가지고 나오는 좀도둑질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의 일이고, 훔치는 건 이런 제도를 벗어난 행위죠.

그래서 영화는,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제도권 안과 밖, 가족이라는 제도, 법 제도, 경찰, 미디어, 이런 시스템의 경계에 대해 살펴보자고 제안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프롤로그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인물이 물건을 훔치고 화면 밖으로 빠지면, 화면 안에 남는 것은 손님인 척 하기 위해 끌고다닌 카트입니다.

대형마트가 생긴 이래 습관처럼 형성된 하나의 규범, 제도를 나타내는 이 카트를 관객이 물끄러미 바라볼 때 역시 마트 시스템인 바코드 인식기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그러니까 이 프롤로그는 시스템 밖으로 스스로 나간 주인공과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제도권, 그 경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라고 감독이 손을 내밀면서 영화의 문을 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 아베 총리를 비롯해 우익 정치인들이 이 작품이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 할 수 있는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도 축전 한통 보내지 않고 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죠.

뒤늦게 축전을 보냈지만, 감독은 거부했고요.

그간 고레에다 감독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이와 같은 세계관의 차이와 연관이 있겠죠.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들 중에는 일탈이나 범죄행위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면 연쇄살인마의 사건을 다룬 영화가 있다면 범인, 즉 개인이 사이코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는지 아니면 지금 보시는 영화처럼 그 사회의 풍경과 시대 분위기 속에서 경찰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접근했는지에 따라서 작가나 감독의 세계관은 상반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 부모가 사망했는데도 이를 속이고 노인 연금을 계속해서 부정수급한 어느 가족의 기사에서 이 이야기를 착안했다고 합니다.

많은 미디어들은 저런 나쁜 사람들, 하면서 죄를 저지른 개인을 표면적으로 비난하는 데 그치겠지만 감독은 한발 더 들어간 건데요.

예를 들어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불을 지른 노인이 정말 몹쓸 사람이다라는 데 대다수 언론이 집중할 때 몇몇 언론들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요.

고레에다 감독도 이 노인의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을 들었다면 토지보상이란 게 대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비뚤어지게 만들었을까, 고민해보고 개발 예정지에서 보상금을 놓고 주민들끼리 벌이는 웃지못할 이야기를 각본으로 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어떤 사안을 놓고 개인의 문제에 집착하느냐, 구조 혹은 전체의 문제를 파고드느냐를 보면 적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범죄나 테러를 소재로 다루면서 범인만의 잘못으로 몰고가는 성향도 볼 수 있는데요.

그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영화들을 보면 좀더 깊이있게 작품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주인공들은 혈연관계가 아닌 가짜 가족에다가, 가짜 손님이기도 하고 관청에 등록돼있는 것과 달리 가짜 독거노인이고, 가짜사랑을 나누는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구도 있습니다.

가짜 낚시 미끼, 가짜 손가락으로 하는 눈속임 마술 같은 것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영화에는 방송 뉴스나 취재진의 모습이 몇차례 나오는데 저 매스미디어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알고 있거든요.

우리가 흔히 진짜라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사태의 실체와 거리가 멀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가짜 가족인 이 만비키 가족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오히려 더 진짜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가족'을 출발시킨 세계관에 대해 말씀드렸고요.

다음 편에서는 이 영화의 화면 구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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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쓸모] ‘어느 가족’ 집중분석① - 경계를 묻다
    • 입력 2018-08-17 11:30:34
    • 수정2019-04-09 17:23:20
    영화
안녕하세요, 영화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서 우리 생활과 만나는 접점을 찾아보는 쓸모 있는 이야기, '영화의 쓸모' 송형국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입니다. 국내에 탄탄한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고레에다 감독 영화 중에서도 보고 나온 분들의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나, 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혈연 관계가 아니면서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여섯 식구의 이야기죠. 이들이 어떻게 한 집안에서 살게 됐는지 극이 진행되면서 하나하나 과거 사연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 곧 관객이 이 영화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들어가게 되는 여정이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인데요. 내용도 따라가기가 아주 쉬워서 여기서는 주로 이런 스토리 아래 깔려있는 감독의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인데요. 마트에 들어가서 물건을 고르는 척 하다 몰래 가방에 집어넣습니다. 일본에는 이런 행동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영화 원제목이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이죠. 바로 이 '만비키'라는 말이,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사는 척 하다 몰래 가지고 나오는 좀도둑질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의 일이고, 훔치는 건 이런 제도를 벗어난 행위죠. 그래서 영화는,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제도권 안과 밖, 가족이라는 제도, 법 제도, 경찰, 미디어, 이런 시스템의 경계에 대해 살펴보자고 제안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프롤로그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인물이 물건을 훔치고 화면 밖으로 빠지면, 화면 안에 남는 것은 손님인 척 하기 위해 끌고다닌 카트입니다. 대형마트가 생긴 이래 습관처럼 형성된 하나의 규범, 제도를 나타내는 이 카트를 관객이 물끄러미 바라볼 때 역시 마트 시스템인 바코드 인식기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그러니까 이 프롤로그는 시스템 밖으로 스스로 나간 주인공과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제도권, 그 경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라고 감독이 손을 내밀면서 영화의 문을 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 아베 총리를 비롯해 우익 정치인들이 이 작품이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 할 수 있는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도 축전 한통 보내지 않고 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죠. 뒤늦게 축전을 보냈지만, 감독은 거부했고요. 그간 고레에다 감독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이와 같은 세계관의 차이와 연관이 있겠죠.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들 중에는 일탈이나 범죄행위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면 연쇄살인마의 사건을 다룬 영화가 있다면 범인, 즉 개인이 사이코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는지 아니면 지금 보시는 영화처럼 그 사회의 풍경과 시대 분위기 속에서 경찰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접근했는지에 따라서 작가나 감독의 세계관은 상반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 부모가 사망했는데도 이를 속이고 노인 연금을 계속해서 부정수급한 어느 가족의 기사에서 이 이야기를 착안했다고 합니다. 많은 미디어들은 저런 나쁜 사람들, 하면서 죄를 저지른 개인을 표면적으로 비난하는 데 그치겠지만 감독은 한발 더 들어간 건데요. 예를 들어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불을 지른 노인이 정말 몹쓸 사람이다라는 데 대다수 언론이 집중할 때 몇몇 언론들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요. 고레에다 감독도 이 노인의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을 들었다면 토지보상이란 게 대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비뚤어지게 만들었을까, 고민해보고 개발 예정지에서 보상금을 놓고 주민들끼리 벌이는 웃지못할 이야기를 각본으로 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어떤 사안을 놓고 개인의 문제에 집착하느냐, 구조 혹은 전체의 문제를 파고드느냐를 보면 적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범죄나 테러를 소재로 다루면서 범인만의 잘못으로 몰고가는 성향도 볼 수 있는데요. 그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영화들을 보면 좀더 깊이있게 작품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주인공들은 혈연관계가 아닌 가짜 가족에다가, 가짜 손님이기도 하고 관청에 등록돼있는 것과 달리 가짜 독거노인이고, 가짜사랑을 나누는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구도 있습니다. 가짜 낚시 미끼, 가짜 손가락으로 하는 눈속임 마술 같은 것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영화에는 방송 뉴스나 취재진의 모습이 몇차례 나오는데 저 매스미디어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알고 있거든요. 우리가 흔히 진짜라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사태의 실체와 거리가 멀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가짜 가족인 이 만비키 가족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오히려 더 진짜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가족'을 출발시킨 세계관에 대해 말씀드렸고요. 다음 편에서는 이 영화의 화면 구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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