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황도는 안 열리고’…50만 원 가짜 묘목, 배상금은?

입력 2018.09.22 (10:53) 수정 2018.09.2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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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뉴스9] 정체불명 복숭아만 열려 ‘황당’…“묘목값 20배 배상”

잘못된 물건을 팔았다면, 당연히 물건값을 물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잘못된 묘목을 팔았다면 어떨까요? 더군다나 그 묘목이 가짜라는걸 다음 해에야 알았다면 말입니다.

경북 김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이종석 씨(73) 부부는 2016년 봄 한 묘목상에서 50만 원을 주고 '백천 황도' 묘목 50주를 샀습니다.

꽤 이름이 알려진 황도의 한 품종인데, 수확이 늦어져도 다른 복숭아에 비해 잘 무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이 든 노부부가 기르기엔 딱 알맞아 보였습니다.

부부는 묘목을 심고 애지중지 돌봤습니다. 절반은 포도 농사를 지었던 땅을 새로 개간해 심었기 때문에 특별히 더 손이 많이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햇수로 2년째인 지난해 여름에 마침내 기다리던 복숭아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가지에 열린 건 '황도'가 아닌 '백도'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놀란 이종석 씨는 곧장 묘목상에 전화를 걸어 따졌습니다.

돌아온 답은 황당했습니다. '3년이 지나면 다시 황도로 바뀐다'. '나무가 멀쩡하니 10원도 물어줄 수 없다'.

결국 가짜 묘목을 속아서 구매한 셈인데, 화나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급히 복숭아 품종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원래 구매했던 백천 황도는 아니더라도 일단 아쉬운대로 팔 수라도 있다면 다행이니까요.

그런데 농업기술센터조차도 품종을 알 수 없다는 답을 내놨습니다. 품종이 확인되지 않는 복숭아는 사실상 농협 등을 통해 판매할 수 없습니다.

품종 문제가 아니더라도 복숭아가 시중 복숭아들에 비해 너무 작아 기자가 보기에도 시장에 내다파는건 힘들어보였습니다.

2년간의 농사가 수포로 돌아간겁니다.


복숭아는 품종은 다양한 편이지만 묘목일 때는 생김새가 엇비슷하다고 합니다.

이종석 씨도 이미 약 7년 정도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었으니 복숭아에 문외한은 아닌데, 묘목일 때는 눈으로 품종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묘목이 어느정도 자라서 열매를 맺어야 품종을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이종석 씨도 백천 황도라고 굳게 믿고 나무를 애지중지 돌봤던겁니다.

하지만 내다 팔수도 없는 정체불명의 흰 복숭아가 열렸으니 이종석 씨 부부의 2년 동안의 땀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간 셈입니다.

복숭아는 모두 폐기했습니다. 50그루의 나무는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길러서 쓸데가 없으니 방치하기 시작했고, 애써 개간했던 밭은 잡초가 무성해졌습니다.

얼핏 보면 임야 같아 보일 정도입니다.


이종석 씨 표현을 빌리자면 '울어봐야 소용 없고 잠 못 자봐야 소용 없는 대책 없는 일' 입니다.

결국, 이종석 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묘목상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종석 씨는 손해배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단순히 묘목값만 생각하면 겨우 50만 원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농사'에 들어가는 돈은 훨씬 많습니다. 2년 동안 사용한 농약, 퇴비, 각종 중장비에 들어간 돈을 고려해야 합니다.

묘목상 쪽도 나름대로 방어에 나섰습니다.

이 씨 부부의 밭에는 이 50그루의 가짜 복숭아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키우고 있던 100그루의 정상적인 복숭아나무도 있습니다.

그러니 농사에 들어간 농약 등 각종 물품과 비용은 자신이 판매한 가짜 묘목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를 위해서도 사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달,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묘목상이 이 씨에게 1,120만 원을 물어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묘목값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재판부는 묘목값은 물론 부지 조성에 들어간 비용, 퇴비·농약 값, 그리고 이 씨가 정상적인 백천 황도 복숭아를 길러 팔았다면 얻을 수 있었을 수입까지 일정 부분 손해배상액에 포함시켰습니다.

물론 묘목상의 말처럼 농약이나 퇴비가 이 씨 부부가 기르는 다른 나무 100그루에도 쓰였다는 점이 고려된 금액입니다.


이종석 씨의 소송을 도운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농가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손해를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고, 소송 자체도 번거롭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포기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충분히 준비해 볼 것을 조언합니다. 현금으로 값을 지불했다면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농약이나 퇴비를 구매할 때 받은 영수증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이종석 씨처럼 지역의 농가소득표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손해를 입증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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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리던 황도는 안 열리고’…50만 원 가짜 묘목, 배상금은?
    • 입력 2018-09-22 10:53:42
    • 수정2018-09-22 21: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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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뉴스9] 정체불명 복숭아만 열려 ‘황당’…“묘목값 20배 배상”

잘못된 물건을 팔았다면, 당연히 물건값을 물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잘못된 묘목을 팔았다면 어떨까요? 더군다나 그 묘목이 가짜라는걸 다음 해에야 알았다면 말입니다.

경북 김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이종석 씨(73) 부부는 2016년 봄 한 묘목상에서 50만 원을 주고 '백천 황도' 묘목 50주를 샀습니다.

꽤 이름이 알려진 황도의 한 품종인데, 수확이 늦어져도 다른 복숭아에 비해 잘 무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이 든 노부부가 기르기엔 딱 알맞아 보였습니다.

부부는 묘목을 심고 애지중지 돌봤습니다. 절반은 포도 농사를 지었던 땅을 새로 개간해 심었기 때문에 특별히 더 손이 많이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햇수로 2년째인 지난해 여름에 마침내 기다리던 복숭아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가지에 열린 건 '황도'가 아닌 '백도'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놀란 이종석 씨는 곧장 묘목상에 전화를 걸어 따졌습니다.

돌아온 답은 황당했습니다. '3년이 지나면 다시 황도로 바뀐다'. '나무가 멀쩡하니 10원도 물어줄 수 없다'.

결국 가짜 묘목을 속아서 구매한 셈인데, 화나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급히 복숭아 품종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원래 구매했던 백천 황도는 아니더라도 일단 아쉬운대로 팔 수라도 있다면 다행이니까요.

그런데 농업기술센터조차도 품종을 알 수 없다는 답을 내놨습니다. 품종이 확인되지 않는 복숭아는 사실상 농협 등을 통해 판매할 수 없습니다.

품종 문제가 아니더라도 복숭아가 시중 복숭아들에 비해 너무 작아 기자가 보기에도 시장에 내다파는건 힘들어보였습니다.

2년간의 농사가 수포로 돌아간겁니다.


복숭아는 품종은 다양한 편이지만 묘목일 때는 생김새가 엇비슷하다고 합니다.

이종석 씨도 이미 약 7년 정도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었으니 복숭아에 문외한은 아닌데, 묘목일 때는 눈으로 품종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묘목이 어느정도 자라서 열매를 맺어야 품종을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이종석 씨도 백천 황도라고 굳게 믿고 나무를 애지중지 돌봤던겁니다.

하지만 내다 팔수도 없는 정체불명의 흰 복숭아가 열렸으니 이종석 씨 부부의 2년 동안의 땀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간 셈입니다.

복숭아는 모두 폐기했습니다. 50그루의 나무는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길러서 쓸데가 없으니 방치하기 시작했고, 애써 개간했던 밭은 잡초가 무성해졌습니다.

얼핏 보면 임야 같아 보일 정도입니다.


이종석 씨 표현을 빌리자면 '울어봐야 소용 없고 잠 못 자봐야 소용 없는 대책 없는 일' 입니다.

결국, 이종석 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묘목상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종석 씨는 손해배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단순히 묘목값만 생각하면 겨우 50만 원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농사'에 들어가는 돈은 훨씬 많습니다. 2년 동안 사용한 농약, 퇴비, 각종 중장비에 들어간 돈을 고려해야 합니다.

묘목상 쪽도 나름대로 방어에 나섰습니다.

이 씨 부부의 밭에는 이 50그루의 가짜 복숭아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키우고 있던 100그루의 정상적인 복숭아나무도 있습니다.

그러니 농사에 들어간 농약 등 각종 물품과 비용은 자신이 판매한 가짜 묘목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를 위해서도 사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달,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묘목상이 이 씨에게 1,120만 원을 물어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묘목값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재판부는 묘목값은 물론 부지 조성에 들어간 비용, 퇴비·농약 값, 그리고 이 씨가 정상적인 백천 황도 복숭아를 길러 팔았다면 얻을 수 있었을 수입까지 일정 부분 손해배상액에 포함시켰습니다.

물론 묘목상의 말처럼 농약이나 퇴비가 이 씨 부부가 기르는 다른 나무 100그루에도 쓰였다는 점이 고려된 금액입니다.


이종석 씨의 소송을 도운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농가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손해를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고, 소송 자체도 번거롭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포기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충분히 준비해 볼 것을 조언합니다. 현금으로 값을 지불했다면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농약이나 퇴비를 구매할 때 받은 영수증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이종석 씨처럼 지역의 농가소득표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손해를 입증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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