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황당한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두 번 우는 청년들

입력 2018.11.16 (07:01) 수정 2018.11.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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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인 ‘우리마을 청년보안관’

정부가 새로 추진한 고용 정책 가운데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올해 상반기 시작돼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된 정책으로,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인건비를 대는 방식이다.

전국 370여 개 사업에 천7백억 원 넘는 예산이 들어갔는데, 중도에 포기하는 청년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찌 된 이유인지 취재했다.

8월에 출범한 부산시의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인 '우리마을 청년보안관'을 살펴봤다. 이 사업은 마을 재생을 돕기 위한 대표적인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시작됐다. 석 달이 지난 지금, 과연 사업 성과는 어떨까.

취재 결과는 황당했다. 이 사업 주체는 부산지역 사회적 기업인데, 청년보안관들은 당초 하기로 돼 있는 마을 재생 관련 복지 사업이 아닌 엉뚱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 기업이 참여하는 박람회 행사장에서 커피를 팔거나 양초, 타일 등 갖가지 물품 장사를 한 것이다. 모두 업체가 마케팅 일환으로 벌이는 사업과 연관된 수익 활동들이다. 한 청년보안관은 "회사가 마케팅을 해 주는 업체 홍보를 위해 커피 부스를 마련했다"며, "커피 아르바이트를 해 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그런 사람을 위주로 커피를 뽑게 했다"고 말했다.

행사 동원은 일상적이었다. 구청에서 주관한 행사에도 이 기업이 참여했는데 청년보안관들은 행사장에서 자리를 지키는, 이른바 '행사 도우미' 일을 떠안기도 했다.

‘청년 일자리 사업’의 실상을 이야기하는 청년들‘청년 일자리 사업’의 실상을 이야기하는 청년들

KBS가 청년보안관들의 두어 달 치 업무 보고서를 확인해 전부 분석했다. 놀라웠다. 트로트 가수를 섭외하거나 팝콘이나 아이스크림 기계 따위를 대여하고, 행사 초청장을 작성하는 등의 엉뚱한 잡무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청년보안관은 "본 업무인 사회 복지 활동과 관련 없는, 수익 창출만을 위한 프로그램에 보안관들이 동원됐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현상은 보안관들의 잇따른 퇴사로 이어졌다. 전체 50명의 청년보안관 가운데 20%에 이르는 10명 가까이가 사업 시작 석 달도 안 돼 중도 포기하고 줄줄이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취업 역량을 강화해 준다는 목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자신감만 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게 청년들의 이야기다.

‘부산 청년 파란 일자리 사업’ 안내문‘부산 청년 파란 일자리 사업’ 안내문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의 또 다른 사업인 '파란 일자리 사업' 역시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원래 취지는 부산지역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아 취업 역량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근무 여건과 처우 조건이 너무나 열악해 이 사업 역시 퇴사자가 잇따르고 있다.

청년들의 적성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지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행정안전부의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의 원래 취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의미는 하나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못 하고 정말 그냥 돈만 받아가는 생활이 된 것이다. 더 이상은 할 이유가 없으니까 퇴사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청년 일자리 사업의 ‘표준 인턴약정서’청년 일자리 사업의 ‘표준 인턴약정서’

도대체 왜, 지역에 맞는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사업이 왜 현장에서 겉돌고 있을까.

한 가전부품업체는 정규직을 뽑는다고 공고했다. 청년은 그 말을 믿고 입사했다. 그런데 업체 측은 입사자에게 '연봉계약서'가 아니라 정부 일자리 사업 '인턴 약정서'를 쓰도록 했다. 업체는 석 달 동안 인건비의 8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은 별다른 이점이 없다. 적은 보수를 받고 3개월 인턴을 마친 뒤에도 정규직이 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청년 일자리 사업 계획을 보면(아래 그래픽 참조), 참여 대상, 지원 내용 모두 기존에 있던 중소기업 지원 사업과 비슷하다. 이름만 청년들을 위한 것처럼 바뀌었을 뿐인 셈이다.

기존의 ‘중소기업 지원 사업’과 현행 ‘청년 일자리 사업’의 비교기존의 ‘중소기업 지원 사업’과 현행 ‘청년 일자리 사업’의 비교

사업을 주도해야 할 자치단체는 오히려 기업 입장을 고려하는 데 급급하다. 부산시 이수일 일자리경제정책과장은 "아직 사업 시행 초기여서 현장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면서도 기업의 수익구조 확보를 위해 기업이 여러 가지 사업을 발굴하고 노력한 부분을 존중해 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처는 예산 확대 편성에 우려를 표명했다국회예산처는 예산 확대 편성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마당에 행정안전부는 사업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에 올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2천6백억 원의 새해 예산을 편성했다. 홍정우 행정안전부 지역일자리경제과 사무관은 "조금이라도 행정을 효율적으로 해서 속도감 있게 사업 하려고 한다. 기간도 2배 되고 사람도 2배가 되니까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규모가 매년 증가하지만, 고용여건 개선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의 객관적 성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예산 확대 편성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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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11-16 0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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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인 ‘우리마을 청년보안관’

정부가 새로 추진한 고용 정책 가운데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올해 상반기 시작돼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된 정책으로,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인건비를 대는 방식이다.

전국 370여 개 사업에 천7백억 원 넘는 예산이 들어갔는데, 중도에 포기하는 청년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찌 된 이유인지 취재했다.

8월에 출범한 부산시의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인 '우리마을 청년보안관'을 살펴봤다. 이 사업은 마을 재생을 돕기 위한 대표적인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시작됐다. 석 달이 지난 지금, 과연 사업 성과는 어떨까.

취재 결과는 황당했다. 이 사업 주체는 부산지역 사회적 기업인데, 청년보안관들은 당초 하기로 돼 있는 마을 재생 관련 복지 사업이 아닌 엉뚱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 기업이 참여하는 박람회 행사장에서 커피를 팔거나 양초, 타일 등 갖가지 물품 장사를 한 것이다. 모두 업체가 마케팅 일환으로 벌이는 사업과 연관된 수익 활동들이다. 한 청년보안관은 "회사가 마케팅을 해 주는 업체 홍보를 위해 커피 부스를 마련했다"며, "커피 아르바이트를 해 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그런 사람을 위주로 커피를 뽑게 했다"고 말했다.

행사 동원은 일상적이었다. 구청에서 주관한 행사에도 이 기업이 참여했는데 청년보안관들은 행사장에서 자리를 지키는, 이른바 '행사 도우미' 일을 떠안기도 했다.

‘청년 일자리 사업’의 실상을 이야기하는 청년들
KBS가 청년보안관들의 두어 달 치 업무 보고서를 확인해 전부 분석했다. 놀라웠다. 트로트 가수를 섭외하거나 팝콘이나 아이스크림 기계 따위를 대여하고, 행사 초청장을 작성하는 등의 엉뚱한 잡무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청년보안관은 "본 업무인 사회 복지 활동과 관련 없는, 수익 창출만을 위한 프로그램에 보안관들이 동원됐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현상은 보안관들의 잇따른 퇴사로 이어졌다. 전체 50명의 청년보안관 가운데 20%에 이르는 10명 가까이가 사업 시작 석 달도 안 돼 중도 포기하고 줄줄이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취업 역량을 강화해 준다는 목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자신감만 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게 청년들의 이야기다.

‘부산 청년 파란 일자리 사업’ 안내문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의 또 다른 사업인 '파란 일자리 사업' 역시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원래 취지는 부산지역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아 취업 역량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근무 여건과 처우 조건이 너무나 열악해 이 사업 역시 퇴사자가 잇따르고 있다.

청년들의 적성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지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행정안전부의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의 원래 취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의미는 하나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못 하고 정말 그냥 돈만 받아가는 생활이 된 것이다. 더 이상은 할 이유가 없으니까 퇴사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청년 일자리 사업의 ‘표준 인턴약정서’
도대체 왜, 지역에 맞는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사업이 왜 현장에서 겉돌고 있을까.

한 가전부품업체는 정규직을 뽑는다고 공고했다. 청년은 그 말을 믿고 입사했다. 그런데 업체 측은 입사자에게 '연봉계약서'가 아니라 정부 일자리 사업 '인턴 약정서'를 쓰도록 했다. 업체는 석 달 동안 인건비의 8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은 별다른 이점이 없다. 적은 보수를 받고 3개월 인턴을 마친 뒤에도 정규직이 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청년 일자리 사업 계획을 보면(아래 그래픽 참조), 참여 대상, 지원 내용 모두 기존에 있던 중소기업 지원 사업과 비슷하다. 이름만 청년들을 위한 것처럼 바뀌었을 뿐인 셈이다.

기존의 ‘중소기업 지원 사업’과 현행 ‘청년 일자리 사업’의 비교
사업을 주도해야 할 자치단체는 오히려 기업 입장을 고려하는 데 급급하다. 부산시 이수일 일자리경제정책과장은 "아직 사업 시행 초기여서 현장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면서도 기업의 수익구조 확보를 위해 기업이 여러 가지 사업을 발굴하고 노력한 부분을 존중해 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처는 예산 확대 편성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마당에 행정안전부는 사업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에 올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2천6백억 원의 새해 예산을 편성했다. 홍정우 행정안전부 지역일자리경제과 사무관은 "조금이라도 행정을 효율적으로 해서 속도감 있게 사업 하려고 한다. 기간도 2배 되고 사람도 2배가 되니까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규모가 매년 증가하지만, 고용여건 개선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의 객관적 성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예산 확대 편성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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